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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131화 (131/150)
  • 131화 해적왕

    해적 도시 버그람.

    그곳에 머무는 이들 모두 해적과 연이 닿아 있는 이들이었다. 암상이나 노예상은 물론이고, 창부등 모두 해적과 연이 닿아있는 이들.

    그런 버그람은 다섯 개의 섬이 모여있었고, 사방에 있는 네 개의 섬 중앙에 위치한 섬이 해적왕과 그의 수하들이 머무는 곳이었다.

    천혜의 요새.

    그런 해적왕의 성에서 두 사내가 모여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해적왕 시무스는 거친 수염에 묻은 술을 한 손으로 훔쳐 털어내고는 물었다.

    “앞으로 몸을 사리라는 거야?”

    그런 시무스와는 반대로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답했다.

    “바람이 모두 숨을 죽일 정도의 이변이었어. 바람을 부리고 있지 않았다면 나도 느끼지 못했을 만큼 먼 거리였지만, 그만큼 위험한 존재가 나타났다는 거지. 그러니 몸을 사려야 돼.”

    “어차피 제국만 건들지 않으면 상관없다고 했잖아. 아, 이제는 엘도 왕국도 조심해야 하기는 하지.”

    8성 대마법사의 존재는 언제나 주의해야 했다. 8성급 육체 강화자도 시공간에 간섭할 수 있지만, 8성 대마법사는 공간 이동으로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

    그들이 등장한다면 날고기는 이들이라고 해도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미치광이 바헬이 지금까지 벌인 일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제국을 피하던 중에 새로운 대마법사가 튀어나왔다.

    무결의 대마법사의 등장에 해적단은 엘도 왕국과 관련된 이들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아예 당분간 장사를 접자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환풍의 대마법사 칼라한은 그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당시 바람을 부리고 있었기에 느낄 수 있었다. 까마득한 거리에서 세계를 부술만한 힘이 갑자기 튀어나왔다는 것을.

    “어쩌면 피스토가 소환되었을지도 몰라.”

    칼라한의 말에 시무스의 굵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무슨 소리야?”

    “그런 괴물이 튀어나오지 않았다면 그만큼 세계가 진감하지는 않았을 거야.”

    시무스는 그 말에 인상을 굳혔다. 피스토가 소환되었다면 아마 지금쯤 대륙에서는 난리가 났을 터.

    그렇다면 어떻게든 대륙과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것이 좋았다. 괜히 영혼이 오염된 자가 넘어오기라도 하면 그때는 감당할 수 없으니까.

    “자급자족은 불가능하잖아. 비축한 식량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했어?”

    “지금 당장은 6개월 정도 살 수 있어.”

    “그래서 몇 달이나 상황을 보자는 거야?”

    “그래. 만약 엮이게 되면 얼마나 위험한지 알잖아.”

    시무스는 그 말에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며 중얼거렸다.

    “수백 년 전 이야기잖아. 교국에서 눈에 불을 켜고 있는데 그 일이 가능하기는 해?”

    “모르지.”

    시무스는 칼라한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고는 잔을 비웠다.

    “뭔 악연인지 모르겠다.”

    시무스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옆에 끌러 놓은 커틀러스를 반쯤 뽑았을 때 그의 몸을 통째로 감싼 얼음이 나타났다. 칼라한이 그 모습을 보고 다급히 바람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바람이 맺히지 않았다.

    칼라한의 눈이 커졌을 때 불쑥 목소리가 들렸다.

    “피스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나?”

    칼라한은 머리 위에 새 한 마리를 앉힌 사내를 보고는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지금도 마력을 움직여 바람을 일으키려 하지만 그 앞에서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마력을 다룰 줄 아는 마법사 수준으로 내려갔다. 게다가 외부의 마력도 모두 그의 통제하에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시간과 공간이 모두 그의 지배 아래 있는 느낌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는다.

    “환풍의 대마법사?”

    “칼라한이라고 합니다.”

    “좋아. 난 카이.”

    칼라한이 그 말에 고개를 번쩍 들고 카이를 바라보았다.

    “무결의 대마법사?”

    카이는 그 말에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의 머리 위에 앉아있는 신조를 가리키며 답했다.

    “이제는 신조의 대마도사다. 9성에 올랐으니.”

    “예?”

    인간은 지금까지 9성에 오른 이가 없었다.

    그런데 앞에 서 있는 카이의 말을 들으니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빙옥으로 시무스를 굳힌 것을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니다. 이 근방의 시공을 지배하고 있는 그가 9성에 오르지 않았다면 감히 누가 9성에 올랐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카이는 그런 칼라한의 앞에 앉으며 술병을 들어 술잔에 따랐다.

    “피스토에 관련된 모든 정보를 구해 와. 그러면 해적왕을 풀어주겠다.”

    “피스토를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에 관련된 정보가 필요해.”

    칼라한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에 관한 정보를 청하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해적왕의 오른팔로 대해를 호령하던 환풍의 대마법사 칼라한이었지만, 지금 카이 앞에서는 바짝 엎드려 물었다.

    카이는 그 물음에 술잔을 비우고는 답했다.

    “피스토가 소환될 거라는 예언이 나왔고, 그 예언의 날이 다가오는 중이다.”

    칼라한은 그 말에 고개를 숙인 채 답했다.

    “그렇다면 시무스를 풀어주시지요. 그가 가지고 있는 인장이 필요합니다.”

    “그런가?”

    “예. 그리고 피스토에 관련된 일이라면 저희도 거들고 싶습니다.”

    카이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빙옥이 흩어져 사라지고, 시무스가 밖으로 나왔다. 시무스는 커틀러스를 다시 검집에 넣고는 술병을 들어 입에 털어 넣었다.

    술을 비우는 시무스를 바라보면서 카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카메룬에게 이곳의 소식을 듣고 찾아왔는데 지금 말을 들어보니 어쩌면 쓸만한 전력을 둘 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로 종말이 일어난다면 그때는 한팔 거들 이들이 필요했다. 7성의 해적과 7성의 대마법사라면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을 터.

    시무스가 술병을 비우고는 카이를 돌아보았다. 빙옥이라는 것이 그의 비전 마법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등장을 눈치챈 순간에 커틀러스를 뽑기도 전에 빙옥에 갇혔다. 그 안에서 모든 것을 들은 시무스는 카이와 눈을 마주친 채 답했다.

    “정말로 피스토와 싸우는 것이라면 나도 받아내야 할 것이 있으니 돕게 해주시오.”

    피스토의 소환이 부분적으로나마 이뤄졌던 것이 칼버그. 그 후예인 시무스는 불만이 많았나 보다.

    카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피스토에 관련된 모든 자료를 가져와.”

    “그건 내 보고 안에 있소. 같이 갑시다.”

    시무스를 따라 걸어간 카이는 그 성의 지하에 있는 보고를 볼 수 있었다. 해적의 보고라고 여기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곳이었다.

    천연 동굴에 손을 대 만든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보고에서 마주한 것은 카이도 감탄할 정도로 많은 보물이었다. 시무스는 그런 보물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안으로 걸어가서는 산처럼 쌓여 있는 보물 중 왕관 하나를 잡아 돌렸다.

    그러자 보물들이 촤르륵 흘러내리며 길이 열리고 그 안쪽으로 문이 하나 나왔다.

    “이 안에 있는 것이 진짜니 따라오시오.”

    시무스가 걸어가 다시 인장을 가져다 대고 문을 열자 그 안에는 확실히 수준이 다른 물건들이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심에는 산처럼 쌓인 자료가 있었다.

    그걸 바라보며 시무스가 입을 열었다.

    “칼버그의 역사를 기록한 것들입니다. 당시 피스토의 소환 때문에 왕국이 몰락할 때 챙겨온 물건이라 누락된 것이 많기는 해도 피스토에 관련된 것들은 이를 악물고 수집했소. 저 교국에 비할 바는 아니나 제법 쓸만한 것들이 있을 것이오.”

    카이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내밀어 그곳에 있던 책들을 모조리 공간 이동으로 날려보냈다. 그 모습을 보고는 시무스보다 칼라한이 기겁했다.

    8성 대마법사들이 공간 이동이 가능하다고 하나 저렇게 자유자재로 다룰 줄은 몰랐으니까.

    카이는 그렇게 모든 것을 공간 이동으로 날려 보내고는 둘을 돌아보았다.

    “언제 데리러 올까?”

    “내일이면 됩니다.”

    카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그대로 사라지자 시무스가 식은땀을 닦으며 칼라한을 돌아보았다.

    “후우. 죽는 줄 알았네. 정말 9성에 도달한 것 같냐?”

    “그건 모르지. 하지만 우리 둘을 죽이고 싶었다면 그 자리에서 손도 써보지 못하고 죽었을 거다. 얼음 덩어리에 갇혀서 몰랐겠지만, 바람도 마력도 일으킬 수 없었거든.”

    “하긴 시공이 지배된다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시간에 간섭하고 공간에 간섭하는 것만으로도 8성에 이른 이들은 상대가 불가능한 족속들이었다. 그런데 시공을 지배한다?

    무슨 짓을 해도 당해낼 수 없다.

    “피스토가 소환된 것이 아니라면 휴업을 할 필요는 없겠군. 우리 없다고 무슨 문제가 생기거나 하지는 않겠지?”

    “별일 없을 거다.”

    그들이 자리를 비운다고 감히 통행세를 내지 않을 왕국은 없다. 피스토에게 왕국을 잃은 망국의 후예인 해적왕 시무스는 그 일에 대해 아직도 이를 갈고 있지만, 칼라한은 훨씬 현실적인 문제로 이번 일을 돕고자 했다.

    9성에 오른 대마도사. 시공을 지배하는 그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 배울 것이 넘쳐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8성에 오를 단초를 얻을지도 몰랐다.

    “그럼 나도 가지고 갈 것들을 준비하지. 자네도 준비하게.”

    “술이라도 준비해야 하나?”

    칼라한이 한심하다는 듯 시무스를 보며 말했다.

    “최고급 술로 준비해.”

    시무스가 칼라한을 향해 엄지를 척 내밀고는 또 다른 문을 열고 자신의 술 창고로 향했다.

    카이는 영지로 데리고 온 둘을 일행들에게 소개해 줬다.

    “이쪽은 해적왕 시무스. 이쪽은 환풍의 대마법사 칼라한.”

    시무스와 칼라한은 카이와 함께 공간 이동하기 전만 해도 꿈에 부풀어 있었다. 카이의 최측근이 되어 그에게서 많은 것을 얻어갈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그런데 이거 소개받은 이들이 만만치 않았다.

    “난 메르샤.”

    신령의 대마법사는 소문보다 훨씬 강해 보였다. 특히나 그녀의 뒤에 서 있는 정령은 바람을 다루는 칼라한이 보기에 말도 안 되는 존재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정령과는 그 수준이 다르다.

    “카메룬일세.”

    방랑 마법사단의 단장인 풍륜의 대마법사 또한 같은 바람을 다루는 자로서 처음 마주했는데 만만치 않은 자였다. 바다에서 바람을 불어 해전에서 승리를 거머쥐던 칼라한과는 결이 다른 워 메이지였다.

    “난 덴다르트. 카이의 스승이지.”

    그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무엇보다 그가 뿜어내는 기세는 같은 7성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쥐고 있는 장비 하나하나도 품고 있는 마력이 범상치 않았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카이에게 다가와 태연히 팔짱을 낀 여자를 보기 전까지는.

    “난 퀸. 아빠 딸.”

    카이에게 저렇게 큰딸이 있는지도 몰랐지만, 그녀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 품고 있던 마력이 밀려난다. 카이가 주변의 시공은 물론이고 마력까지 틀어쥐고 있었던 것과 다르게 품고 있는 마력마저 밀려나는 괴이한 현상.

    칼라한이 뒷걸음질 칠 때 시무스가 앞으로 나섰다.

    “난 시무스다. 검을 차고 있는 것을 보니 한 번 실력을 봐도 될까?”

    마법사들만 우글거리는 곳에 검을 들고 있는 미녀를 보니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카이의 딸이라고 한다면 그 마음을 얻을 수만 있다면 가장 카이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자신의 야성미와 실력이면 충분하다고 여긴 시무스가 앞으로 나서자 모두들 한 걸음 물러나 줬다. 카이가 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살살.”

    “안 죽여. 같이 싸울 거라며.”

    퀸의 대꾸에 시무스는 슬쩍 감정이 상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럼 시작해 볼까?”

    시무스는 커틀러스를 뽑아 들기 무섭게 뒤로 튕겨 날아가 혼절했다. 옆에서 시무스를 보고 있던 칼라한도 무슨 일이 벌어진지 파악하지 못했다.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시무스가 뻗었으니까.

    턱이 돌아가고 이가 우수수 쏟아진 것을 보고 칼라한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 시무스의 옆에 쪼그리고 앉은 퀸이 그 뺨을 쿡쿡 찔러보며 카이에게 물었다.

    “아빠. 너무 약한데?”

    카이도 옆에서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이다. 해적왕이라고 해서 살짝 기대했는데 실망이네.”

    카이가 고개를 돌려 칼라한을 바라보자 그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얼른 시무스가 가지고 온 가방을 열었다. 그 안에서 튀어나온 술병의 마개를 열자 진한 주향이 퍼져 나왔다.

    “이건 칼버그 28입니다!”

    모두의 시선에 호기심이 일 때 메르샤가 소리쳤다.

    “그거 지금은 돈 주고도 못 구하는 술인데? 칼버그가 망한 지가 벌써 이백 년이 넘었는데 그게 아직 남아있다고?”

    시무스가 아끼고 아끼던 술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대륙에 마지막 남은 다섯 병입니다.”

    카이가 칼라한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꼭 쥐며 말했다.

    “훌륭한 인재였군. 그럼 한잔할까?”

    칼라한은 카이에게 이끌려 걸어가며 기절한 시무스에게 속으로 사과했다.

    돌싱 후 대마법사-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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