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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130화 (130/150)
  • 130화 이변

    세계의 이변.

    그것을 느낀 이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느낀 이들의 표정은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 중 가장 여실히 느낀 것은 헥토르였다.

    “하. 이게 가능하다고?”

    8성에 오른 뒤로도 꾸준히 강해지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얼마 전에 만난 카이는 대적자라고 여길만큼 대단한 수준이었다.

    태초의 속성이라고 했던가?

    ‘뱀’이 다루는 태초의 어둠을 보았을 때도 놀라웠다. 그런 힘을 다루는 자여서 싸울만 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 느낀 것은 뭔가?

    ‘뱀’이 그 날 이후로 사람을 잡아먹으며 힘을 키우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힘을 키우는 것이 ‘뱀’이 원하는 것이었고, 그걸 도우면서 자신도 전쟁의 신 강림을 준비하고 있었다.

    자신이 화신이 되기 위해서 정신을 고양하고, 힘을 키우고 있었는데 지금 보여준 것은 뭔가?

    신을 믿고 따르기에 안다. 지금 저 먼 거리에서 느껴진 것이 그만한 격이라는 것을.

    얼마 전에 만났던 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 특유의 기운이 아니라면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을 정도로 수준이 차이가 났다.

    자신도 계속 강해지고 있다고 여겼지만, 어떤 벽을 훌쩍 넘겨버린 것을 느꼈다.

    “이봐. 이래서야 네가 힘을 되찾아도 못 이기는 거 아냐?”

    동굴 안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우로보로스가 그 말에 눈을 반짝였다.

    <어차피 이 세계가 허락하는 힘은 정해져 있다. 그 힘을 넘어서게 되면 세계가 붕괴한다. 그러니 저놈은 저 이상의 힘을 낼 수 없다. 오늘도 그 한계점을 느껴보려고 한 것 같은데 오히려 잘 됐지. 덕분에 나도 그걸 알아냈으니까.>

    “멍청하긴. 지금 멜라임에서 보여줬잖아. 자신이 이곳에 있다고. 그러니까 앞으로 네가 영육을 얻을 수 있을 곳이 없어졌다는 얘기지.”

    <괜찮아. 이번에 얻은 것을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더 늘어나니까. 다른 방식으로 인간들을 구하면 된다.>

    우로보로스가 눈을 감으며 말했다.

    <이제 곧 밤은 나의 시간이 될 거다.>

    말을 마친 우로보로스가 고개를 다시 묻는 것을 보며 헥토르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어차피 자신에게도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카이는 경고의 목적만 남긴 것이 아니었다. ‘뱀’이 원치 않게 도시에 자신의 잔향을 남긴 것처럼 멜라임 전역에 자신의 기운을 남겼다.

    잔향처럼 남아있기도 하지만 이곳에서 만약 ‘뱀’이 나타난다면 자신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당연히 놈을 찾아 죽일 수도 있으리라.

    카이는 할바인을 돌아보다가 다른 이들에게 시선을 줬다.

    “일단 멜라임에 ‘뱀’이 나타나면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이런 짓을 몇 번이나 할 수는 없다는 게 문제네요.”

    한계를 확인해 본다고 세계가 거의 찢어질 때까지 힘을 발현하다 보니 알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세계에 자신의 기운을 투사하고 다니면 ‘뱀’이 무슨 수를 써도 파악할 수 있을 테지만, 대륙에 이런 짓을 하고 다니다가는 자신 때문에 세계에 멸망이 먼저 찾아올지도 몰랐다.

    지금도 조금 전의 영향으로 비구름이 몰려와 밖에 비가 쏟아지고 있었으니까.

    멜라임이 비가 잘 안 오는 곳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 이상 현상을 생각해서라도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태초의 속성을 불러내 바람으로 흩어내도 될 문제지만, 그게 더 문제가 될 것 같아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놈의 흔적을 추적하는 일은 굉장히 위험한 일입니다. 하지만 놈이 하려는 일이 예언대로 종말에 관한 거라면 그냥 손 놓고 있을 일도 아니죠. 멜라임 입장에서는 더욱.”

    할바인도 그 말에 동의했다.

    “그렇지 않아도 조사단은 파견 나가 있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레인저들을 더 풀 생각이죠. 뒤를 추적하는 것에는 이골이 난 이들이니 크게 걱정할 일은 없을 겁니다.”

    할바인의 태도가 변했다. 카이가 보여준 격은 그만큼이나 충격적이었던 것.

    카이는 자신에게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수정구를 건네줬다. 멜라임에 문제가 생길 일은 없겠지만, 만약을 위해서였다.

    그렇게 수정구를 건네준 카이가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퀸이 소녀의 손을 잡은 것을 보고 카이가 물었다.

    “그 아이 데려갈 거야?”

    “소피아에요.”

    “그렇기는 한데 여기 남아있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아직 치료도 받아야 하고.”

    퀸이 소피아를 돌아보자 그녀가 손을 번쩍 들었다.

    “언니가 검을 가르쳐준다고 했어요.”

    카이는 그 말에 픽 웃음을 흘렸다. 퀸의 검술은 누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깨닫고 까마득한 경지에 오른 검술을 누가 배울 수 있겠나?

    카이는 그래도 퀸이 마음 쓰는 아이가 생겼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 기초 검술을 가르쳐줄 스승도 있으니 걱정할 것 없지.”

    카이가 일행 모두를 데리고 공간 이동하자 할바인은 혼자 남아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잠깐이지만, 시간이 느려지고 공간이 일그러지는 그 경험은 7성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8성의 경지를 보았던 것에 작은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두렵기도 했지만, 얻은 것도 있던 만남.

    그리고 왕국의 적도 알아냈다. ‘뱀’이라는 존재를.

    흔적만 찾으면 ‘뱀’을 추적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뱀’도 만만한 놈이 아니었다. 사람을 이천 명도 넘게 잡아먹으면서도 흔적을 이렇게 깔끔하게 지울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다 싶었다.

    카이조차 찾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하게 흔적을 숨긴 것.

    사람을 잡아먹을 때 남긴 잔향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지만, 몸을 빼내는 것은 완벽하게 해냈다.

    카이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실 이번에 한계를 시험하면서 살짝 기대도 했었다. 만약 시엘이 존재한다면 세계에 그만큼 힘을 투사한 카이를 느꼈을 터. 어떤 식으로든 반응할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만큼이나 힘을 투사했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을 보면 시엘이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싶었다. 분명 신성력을 다루는 이들이 있고, 성녀가 대를 이어 내려가는 것을 보면 분명 존재하기는 한데 반응이 없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렇다고 신성 교국에 가서 시엘의 존재 여부에 대해 물을 수는 없었다. 다만 예언자의 말을 빌리자면 시엘은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시엘의 도움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살짝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예언이 맞는다면 적어도 신령 둘이 미쳐 날뛸 테고 피스토도 상대해야 했으니까.

    카이는 하늘에서 시선을 거두고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카이의 시선에 퀸의 가르침을 받는 소피아가 보였지만, 제대로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천재가 일반인을 가르치는 일이 쉬울 리 없었으니까.

    다행이라면 티투스가 아니타를 가르치고 있었기에 소피아도 기초 검술은 그쪽에서 배우면 될 것 같았다.

    카이는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카메룬과 덴다르트를 보았다.

    “그럼 가볼까요?”

    카메룬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카이는 그들을 데리고 방랑 마법사단의 본단이 있는 이오르 산맥으로 공간 이동했다. 방랑 마법사단도 피스토에 관련된 자료가 있다고 하니 그것을 찾기 위해서였다.

    카메룬이 덴다르트도 함께 갔으면 좋겠다고 하기에 셋이 함께 공간 이동했던 것.

    카이는 카메룬이 알려준 위치의 좌표를 기억하고 단번에 공간 이동했는데, 이동하기 무섭게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가볍게 실드를 펼쳐서 바람을 막은 카이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이오르 산맥에 지어진 거대한 건축물. 초대 방랑 마법사단장은 무슨 생각으로 이곳에다가 이런 건축물을 지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카메룬이 앞장서서 들어가자 본단을 지키던 마법사들이 나와 인사를 건넸다. 카메룬은 그들에게 인사를 받고는 일행을 소개해주었다.

    “이쪽은 신조의 대마도사 카이님. 이쪽은 덴다르트. 7성에 올랐네.”

    마법사들은 카이의 머리 위에 올라있는 신조를 보고는 이해했지만, 대마도사라는 말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카이가 은연중에 뿜어내는 기도에 질려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카메룬은 그들이 소란스러워지기 전에 말을 꺼냈다.

    “피스토에 관련된 모든 자료를 구해오게.”

    “곧 준비해 오겠습니다.”

    카메룬의 말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이들을 보고 카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안에 들어오니 밖의 매서운 바람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아 아무래도 이곳에 펼쳐진 마법진을 오랫동안 방랑 마법사들이 손을 봐온 것 같았다.

    제법 훌륭한 마법진을 본 카이는 그걸 구경하면서 불쑥 덴다르트에게 물었다.

    “스승님을 데리고 온 것을 보면 정말 떠넘기려나 봅니다.”

    “방랑 마법사단? 됐다. 귀찮아 죽겠다. 난 그레이스 소속이라니까. 방랑 마법사 그만뒀다.”

    저렇게 말하고 있지만, 그가 방랑 마법사단 소속을 자랑스러워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카이가 워낙에 큰 적을 상대하는 것을 알았기에 곁에 있어 주는 것이라는 것도.

    아마 ‘뱀’을 상대하는 일이 끝난다면 그때는 다시 방랑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방랑 마법사들의 추대를 받으며 단장이 될지도.

    카이는 덴다르트가 자신을 위해 함께 한 시간을 알기에 그의 뜻을 존중해줄 생각이었다.

    카메룬이 기다리는 동안 자신의 방으로 안내해서 차를 내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피스토에 관련된 자료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닐 거요.”

    “다방면의 정보가 필요해서 모으려고 하는 것이니 너무 개의치 마십시오.”

    예언가의 예언은 생각보다 정확했다. 지금도 미래를 보는 일은 하지 말라고 했음에도 종종 미래를 예견하는데 그게 상당 부분 도움이 되고 있었다.

    피스토가 늑대와 뱀을 부리며 나타나고 신조로 막아선다는 예언을 들은 이상 놈의 약점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약점이라도 쥐고 싸워야지 혼자서 셋을 상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차를 마시는 중에 피스토의 자료가 하나둘 쌓이기 시작했다. 카메룬의 말과 다르게 방랑 마법사단이 보유하고 있는 피스토에 대한 정보는 상당했다.

    교황청에서 가져온 바에 비할 바는 아니나 이것만 해도 당분간 정신없을 정도의 양이었다.

    카이가 챙기려고 할 때 카메룬이 손을 들어 막고는 말했다.

    “내용을 정리해서 가져오게. 피스토가 약점이나, 특징들을 추려내면 좋겠군.”

    “그리하겠습니다.”

    자료들을 다시 가지고 나가는 모습을 보고 카이가 카메룬을 바라보자 그가 담담히 말을 이었다.

    “피스토에 관련된 모든 정보를 취합하고 특징들을 추려낼 것이오. 그리고 무력이 필요하지만 쓸만한 곳이 있소.”

    “무력이 필요하다고요?”

    덴다르트가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설마 해적왕을 털러 가려는 겁니까?”

    카메룬이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피스토의 부활에 대해서는 몇 번의 시도가 있었지. 그중 교국의 눈을 피해 불완전하기는 해도 부활에 성공했던 곳이 해상 왕국 칼버그. 그곳의 후예들이 세운 것이 해적 도시 버그람이이고 그곳의 주인이 해적왕이니 그들에게는 아마 제대로 된 정보가 남아있을 수 있겠지.”

    카이는 그 말에 해적왕을 떠올렸다. 7성에 이른 강자. 그리고 해적왕과 함께 하는 이 또한 7성의 대마법사였다. 환풍의 대마법사.

    둘이 한 팀을 이뤄 바다의 무법자가 되었다고 했다.

    바람을 부르는 대마법사와 7성의 해적.

    둘의 조합에 근처 왕국에서도 통행세를 내거나 그들의 해역을 피해 다닌다. 그들을 만나면 순순히 가진 재물을 모두 토해내고 간신히 목숨만 부지한 채 돌아온다고 들었다.

    대수림을 끼고 사는 카이와는 연이 닿지 않을 이들이었지만, 피스토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털어봐야 하지 않겠나?

    “거기가 어딥니까?”

    돌싱 후 대마법사-해적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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