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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126화 (126/150)
  • 126화 예언가

    카이는 늑대의 신령에게 물었다.

    “그보다 넌 어때? 피스토를 먹고 뭔가 문제가 생긴 건 아니지?”

    <아니. 그 정도로 문제가 생기지는 않아. 특히 이곳 신지에서는.>

    카이가 보기에도 별문제는 없어 보였다. 세계를 인지한 이후로 카이는 보는 것도 전과 달라져 있었으니까.

    만약 늑대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카이도 알아볼 수 있었으리라. 그런데 아무런 것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문제는 없어 보이네. 그보다 나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지?”

    늑대는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카이도 따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지상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별자리가 보였다.

    “뭐야? 이 별자리들은?”

    <저기 붉게 빛나는 별이 보이나? ‘뱀’의 별자리인데 유독 붉게 빛나는군. 아마 더 강한 힘을 손에 넣은 것 같다.>

    카이는 붉게 빛나는 별을 바라보며 순순히 답했다.

    “너처럼 피스토의 파편을 하나 먹었거든.”

    <그랬던 건가?>

    카이도 ‘뱀’이 더 강해질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힘을 되찾는 중이겠지만.

    공간을 격리할 정도의 결계를 칠 수 있는 ‘뱀’이라면 자신의 눈을 피하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닐 터.

    이제 놈을 상대할 힘을 손에 넣었으니 ‘뱀’과의 숨바꼭질이 시작되었음을 알았다.

    인과가 비틀려 카이가 힘을 얻은 만큼 ‘뱀’도 강해질 수 있다고 하니 그 전에 놈을 찾아 죽이면 될 일이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건 이번에 확실히 알았지만.

    그렇다고 그냥 손을 놓고 일이 흘러가는 대로 둘 생각은 없었다. 인과가 비틀렸다고 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할 생각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으니까.

    카이는 늑대가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고, 이곳에서 ‘뱀’의 힘이 강해지는 것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뱀’의 위치를 파악하거나 놈의 힘이 생각 이상으로 강해지면 마야를 통해서 연락해.”

    늑대의 신령은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별자리를 읽는 것만으로 그것을 세세하게 읽을 수는 없다. 그래도 네 말대로 문제가 생기면 연락하마.>

    “그리고 너도 이상이 생기면 얘기해. 피스토는 정신을 오염 시키는 놈이라고 하니까.”

    <걱정하지 말래도.>

    어딘가 늠름하게 말하는 늑대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카이가 돌아섰다.

    <그보다 나중에 그 친구도 신지에 들이는 것은 어떠냐? 그만한 힘을 가졌다면 신지에 머물기에 충분할 것 같은데.>

    카이는 그 말에 고개를 내젓고는 답했다.

    “미안하지만 요 녀석은 나랑 연결된 녀석이라 무리야. 난 이곳에 살 생각이 없거든.”

    신조가 카이의 말에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고 늑대가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아쉽군. 언제라도 신지에 올 자격이 있음을 알려주겠네.>

    “뭔 소리야? 난 이 세계 사람이거든?”

    <아직은 이해가 안 가나 보는군. 곧 이해하는 날이 올 거다.>

    뭔가 뜬구름 잡는 것 같은 표정을 보고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다 떠났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늑대는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이미 인간을 벗어났음을 모르고 있군.>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을 뿐 이미 인간의 경지를 아득하게 추월했다. 스스로만 그걸 못 느끼고 있을 뿐.

    카이는 칼리와 저녁을 먹고는 영지로 돌아왔다.

    가장 보고 싶은 것은 퀸이라 그녀의 곁으로 공간 이동을 하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 검을 들고 있던 그녀가 눈을 떴다.

    “아빠!”

    와락 끌어안는 퀸의 등을 두드려주면서 카이가 물었다.

    “어떻게 안 거야?”

    퀸은 그 물음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몰라. 그냥 지금! 이라고 느껴졌어.”

    카이는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확실히 퀸은 특별했다. 자신이 세계를 인지하고 그 안의 생명체를 인지할 때 퀸과 자신의 아이만 자신을 보았다.

    마치 자신의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것처럼.

    그런데 지금도 그랬다. 퀸을 생각하고 공간 이동했는데 어떻게 알고 느꼈을까?

    카이는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그 손길에 미소를 짓던 퀸이 카이의 어깨에 올라와 있던 신조를 보고는 손을 뻗었다.

    “안녕?”

    신조가 퀸의 손가락 위로 올라가 그 손등을 쪼았다. 헬리움으로 이뤄진 신체가 신기했던지 부리로 두드리는 모습을 보니 둘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퀸은 신조를 손등에 올린 채 카이를 돌아보며 투덜거렸다.

    “정말이지 아빠는 내가 쉴 틈을 안 주네.”

    “그럼. 언제나 자랑스러운 아빠로 남고 싶으니까.”

    퀸은 그 말에 웃고는 신조를 핸들링했다. 그녀의 손등에서 손등으로 날아서 이동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카이가 입을 열었다.

    “너도 놀고만 있던 것은 아닌 것 같네.”

    헬리움으로 만들어진 그녀라 예전에는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그녀의 내면을 살펴볼 수 있었다.

    “헬리움은 여분이 있지?”

    “응.”

    성장하는 만큼 헬리움을 흡수하고 있는 퀸이었기에 헬리움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만큼 성장했다는 얘기였다.

    “언제든 필요하면 얘기해.”

    “응. 그러고 보니 덴다르트가 뭔가를 찾은 것 같았어.”

    “그래? 그럼 이따 보자.”

    카이가 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공간 이동으로 덴다르트를 찾았다. 카메룬과 메르샤가 함께하고 있으니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카이는 그곳에서 세 구의 시체를 봤다.

    “어떻게 된 겁니까?”

    덴다르트는 퀭한 눈으로 카이를 돌아보았다.

    “왔냐?”

    “예. 그런데 어떻게 된 겁니까? 설마 그 동안 이걸 다 본 거예요?”

    “그래. 조금 전에 끝났다.”

    덴다르트가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카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몇 가지 알아낸 게 있는데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교국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아무래도 그들이 만든 자료는 각색했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거든.”

    카이는 교국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였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래. 그래서 말인데 예언가 라리사를 찾아봐야겠다.”

    “예언가 라리사요? 어떤 예언을 했는데요?”

    덴다르트가 보여준 예언서를 본 카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달을 삼키는 늑대와 해를 삼키는 뱀. 아무리 봐도 늑대와 뱀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카이가 굳은 표정으로 예언서를 바라보았다.

    마지막에는 시엘이 강림해서 심판의 검으로 심판한다고 하니 딱 봐도 의심할 만했다.

    카이는 다른 것도 살펴봤다. 덴다르트와 메르샤, 카메룬이 조사한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피스토는 신선한 피를 좋아한다고 했고, 달꽃의 가루를 싫어한다고 했다.

    피스토가 일으킨 대규모 영혼 오염 사태에도 달꽃 가루를 이용해 그들을 되돌렸다고 했다. 다만 영혼이 오염된 이들은 기억을 잃었다는 얘기도 있었다.

    카이가 피스토의 추종자가 벌였던 자료들을 바라보는 사이에 그곳에 모여있던 이들은 카이의 어깨 위와 머리 위를 오가는 신조를 구경하고 있었다.

    크기는 손바닥 안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주제에 그 품고 있는 힘의 편린을 느꼈다. 그런데 그걸 느끼고 나니 더 믿기지 않았다.

    소환수인가 싶었지만, 카이가 떠날 때 했던 말은 경지에 도달하고 나서야 돌아오겠다고 했다. 그 말은 9성에 올라서 돌아왔다는 게 아닐까?

    그러나 깨달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원한다고 찾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원한다고 성급을 올릴 수 있다면 지금까지 대륙의 한계점이 고작 8성일 리가 없었으니까.

    메르샤와 카메룬이 눈짓하자 덴다르트가 한숨을 내쉬고는 카이를 불렀다.

    “제자야.”

    카이가 돌아보자 덴다르트가 물었다.

    “우리가 조사한 것을 확인했다면 이제 물어도 되지 않을까? 너한테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카이는 그 말에 그제야 그들을 돌아보았다. 퀸에게 그들이 뭔가 찾은 것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와서 그걸 확인하기만 바빴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카이는 생각을 정리하고는 답했다.

    “9성에 올랐습니다.”

    다른 어떤 말보다 확실하게 자신의 경지를 설명하는 말.

    특히 8성을 노리고 있는 이들은 그 말이 주는 무게감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럼 어깨 위에 그 새는 뭐야?”

    카이는 신조의 턱을 쓰다듬어 주며 답했다.

    “신조라고 하죠. 칠채마력의 완성형입니다.”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기는 한다.”

    카이조차 아직 신조의 힘을 전력으로 끌어내 본 적이 없었다. 그 힘을 온전히 끌어내면 그걸 투사할 곳이 없을 정도.

    “위력은 시험해 보지 않았어요. 그럴 필요도 없었고. 하여튼 자의적인 의지를 지닌 존재고, 새로운 근원이 되었어요.”

    칠채마력이라는 것이 원래 없던 것. 신조 또한 원래는 없던 새로운 근원이 된 셈이다.

    카이는 흘끔 신조를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뱀’과 싸울 힘을 손에 넣었는데, 이것 때문에 ‘뱀’이 더 강해질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인과가 비틀렸다고 했던가?”

    “그게 뭔 개소리야?”

    덴다르트의 대구에 카이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튼 예언가를 만나보고 오라는 거죠?”

    “그래. 정확한 예언의 내용이 뭔지 알아야 할 것 같아. 늑대와 뱀의 이야기가 있는 걸 보면 아마도 머지않아 이 종말이 다가올 수도 있으니까.”

    카이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언가가 무얼 보았다고 해서 그것만 믿을 생각은 없었지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터였다.

    카이는 고민하는 대신 일행을 돌아보았다.

    “그럼 다녀올게요.”

    카이는 그대로 교황청으로 공간 이동했다.

    카이가 등장하니 언제나처럼 성기사단이 나타나 그를 포위했고, 곧 아나벨을 만날 수 있었다.

    아나벨은 카이에게 차를 내주고는 그의 머리 위에 올라가 있는 신조를 보고는 물었다.

    “소환 마법도 다룰 수 있으신 건가요?”

    “그런 건 아니고 이번에 운이 좋아 얻게 된 힘입니다.”

    7성에 오른 성녀였기에 그 경지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8성 대마법사였던 때보다 확 멀어진 느낌만 들었다. 정확히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멀어진 느낌.

    저 신조도 그렇다. 신을 제외하고 이만한 존재의 격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그 부분에 관심을 두고 살피니 카이도 그렇다.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같은 인간이라고 믿기 힘든 수준의 격.

    새삼 카이가 두려워진 아나벨이 몸을 뒤로 물릴 때 카이가 종이를 꺼내서 건넸다.

    “혹시 이 예언서를 보셨습니까?”

    아나벨은 카이가 용건이 있어서 찾아왔다는 것을 깨닫고는 손을 뻗어 예언서를 보았다.

    “뭔지 알겠네요. 마베르니 님의 예언서에요. 이미 은퇴하고 수녀원에서 지내시죠.”

    “수녀원에서요?”

    아나벨은 잠시 주저하다가 말을 이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시거든요.”

    카이가 그 말에 살짝 당황했다. 그녀에게 예언을 제대로 듣고 싶었는데 이런 상황이면 곤란하지 않나 싶었다.

    “혹시 만나볼 수 있을까요?”

    “그건 가능하죠.”

    카이는 아나벨 성녀가 가르쳐준 수녀원으로 공간 이동했다. 그렇게 공간 이동한 곳에서 아나벨 성녀는 수녀원장을 만났고, 마베르니를 만날 수 있었다.

    강이 보이는 언덕 위 벤치에 앉아있는 노파가 멍하니 강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카이는 아나벨 성녀를 돌아보고는 물었다.

    “그런데 신성력으로도 해결이 안 되나요?”

    “예. 안 되더라고요. 예언서가 완성되고 치매 증상이 오기 시작해서 멜라니 성녀님이 오랫동안 돌봤지만, 회복되지 않았어요.”

    카이는 마베르니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격이 오르면서 보는 눈이 달라진 카이는 아나벨 성녀를 돌아보며 물었다.

    “제가 혼자 만나봐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아나벨 성녀가 사람들을 데리고 물러나자 카이는 마베르니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눈을 마주쳤다. 멍한 시선의 그녀를 바라보던 카이가 쓴웃음을 지었다.

    “고생 많으셨겠어요.”

    그녀의 머리에 송곳처럼 박힌 신성력이 보였다. 그녀도 신성력을 품고 있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그 이질감을 느낀 카이는 그녀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단숨에 머리에 박힌 신성력을 뽑아낸 카이는 그녀 눈동자에 초점이 잡히는 것을 보았다.

    델라니 성녀.

    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었다.

    “정신이 좀 드십니까?”

    돌싱 후 대마법사-마베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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