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싱 후 대마법사-124화 (124/150)
  • 124화 뇌조

    피스토에 대한 걱정이 있기는 했지만, 지금 당장 카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러니 자료 조사를 맡기고 카이는 다음으로 한 일은 두 개 남은 태초의 속성을 깨우는 일이었다.

    섣불리 태초의 속성을 합치려고 하다가는 곤란한 상황이 올 수도 있으니 남은 두 개의 속성을 깨우기 위해서 움직이기로 했다.

    다행이라면 카이가 피스토를 탐색하면서 대륙 전역을 살펴보았다는 점이었다. 그 하나하나를 명확히 인지하고 기억하기는 힘들었지만, 이색적인 곳은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오늘의 목적지였다.

    마법이 발달하면서 대륙의 대부분이 밝혀졌다고 하지만 그러지 못한 곳도 있었다. 대수림처럼 그 안에 사는 야만족들이 위험하므로 그런 곳도 있었지만, 도저히 인간의 발길이 닿지 못할 만큼 위험한 곳도 있었다.

    그리고 아직 미지의 영역. 바다를 넘어 위험한 해협을 지나야 도달할 수 있는 곳.

    카이도 그런 곳이 있을 줄은 몰랐다. 세계의 끝이 있다는 것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바다는 아직 전부 밝혀지지 않았으니까.

    바다에 미친 대마법사가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카이가 공간 이동을 한 곳은 뇌우가 뭉쳐 있는 곳이었다. 사시사철 벼락이 비처럼 쏟아지는 곳에 감히 찾아갈 이들이 있을까?

    게다가 근처에는 폭풍이 몰아치고, 소용돌이가 다섯 개나 돌고 있었다.

    카이는 그 상공에서 그곳을 내려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태초의 속성을 깨우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라 찾아오기는 했지만, 너무 작위적이다.

    어떻게 이런 공간이 존재할 수 있을까?

    바람의 협곡이라는 곳이 있어 온갖 바람이 휘몰아친다는 곳은 바람의 정령이 사는 곳이라고 하지만 이곳은? 번개의 정령이 사는 곳이기라도 할까?

    카이는 잠시 그곳을 바라보다가 뇌우 사이로 뛰어내렸다. 바람이 펄럭이며 떨어지던 카이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비처럼 쏟아지는 벼락이 카이라고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러나 카이는 날아오는 벼락을 향해 무심히 손을 내밀 뿐이었다.

    광대한 힘을 품은 벼락이 그의 손 앞에 둥글게 뭉쳤다. 그 힘을 온전히 회전하며 손 앞에 모은 카이는 계속해서 떨어지는 벼락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크기는 변하지 않지만, 그 안에 품은 힘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끼면서 카이는 눈을 감고 그 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벼락이 품고 있던 태초의 힘을 좇아 그 근원을 탐색해 나가는 동안에도 벼락은 계속 떨어져 그의 손 앞의 구체에 더해졌다.

    시간에 손을 대지 않았음에도 카이의 의식은 찰나를 쪼개고 그 흐름을 인지했다. 벼락이 움직이는 그 불규칙한 흐름을 따라 이동하는 인지의 가속.

    그렇게 이동한 끝에 카이는 마주할 수 있었다.

    한 마리 작은 새를.

    태초의 뇌 속성을 쫓아 이동했던 의식이 도달한 곳에 있는 한 마리 작은 새.

    벼락으로 이루어진 작은 새를 보며 카이는 손을 내밀었다. 작은 새는 카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이곳에 자신 외에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을 처음 인지한 것처럼.

    카이는 천천히 다가갔다. 순간 작은 새의 몸집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 크기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거대해져서 카이를 내려다보았다.

    카이는 그런 새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새는 카이가 두려움 없이 손을 내미는 것을 보고는 눈을 마주했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휘몰아치는 뇌광만이 가득했지만, 시선을 피하지 않자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카이의 손이 닿자 새는 천천히 작아져 카이의 손안으로 들어왔다.

    카이는 손에 들어온 새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뇌조.”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을 뜬 카이의 손에 뭉쳐 있던 수를 헤아리기 힘든 벼락의 집합체가 천천히 의식이 도달해서 만났던 뇌조가 되어 있었다.

    뇌조.

    다른 태초의 속성들도 그 근원을 마주했었지만, 이렇게 형체가 있는 것은 몰랐다.

    지금까지 만났던 태초의 속성들과는 뭔가 다른 존재.

    카이가 뇌조를 그만 소환해제 하려고 했는데 뇌조는 사라지지 않았다.

    “응?”

    이건 카이도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다.

    “너 왜 안 돌아가냐?”

    카이의 마력을 쓴다고 해봐야 크게 쓰지도 않은 채 소환된 형태라 크게 부담이 되지는 않았지만, 제 맘대로 굴어서는 곤란하다.

    카이가 뇌조의 턱을 긁어주며 하늘을 올려다보자 뇌조가 입을 쩍 벌렸다. 작은 새가 입을 벌려봐야 얼마나 큰가 싶지만, 그 입에서 튀어나온 벼락을 보면 생각이 바뀌었다.

    거대한 벼락 줄기가 뇌우를 가로질렀다. 단번에 뇌우가 흩어지고 청명한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카이는 구멍이 뚫린 하늘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카이도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지만, 별다른 마력 소모도 없이 이 정도 일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다 여겼다. 태초의 속성을 이용하면 그 위력을 끝없이 끌어올릴 수 있지만, 너무나 간단히 도시 하나를 태워버릴 위력을 냈다는 것이 대단해 보였다.

    카이는 뇌조와 ‘감응’을 시작했다. 다른 속성들과 다르게 뇌조와 ‘감응’한 순간 카이는 다시 한번 인지의 가속화를 느꼈다. 시간에 간섭하지 않고 감응하는 것만으로 이 정도의 인지 가속화를 겪는다는 것은 아마도 찰나마저 쪼개는 뇌조의 인지 능력 때문이겠지.

    카이는 뇌조의 턱을 쓰다듬고는 ‘감응’을 풀었다.

    찾을 것은 모두 찾았으니 이제는 격의 크기를 늘려야 할 때다. 격을 늘릴 방법을 알아냈으니 이제 그걸 실행하러 갈 때다.

    카이가 뇌조를 품에 안고 공간 이동한 곳은 산골의 한 오두막이었다. 사냥꾼들이 사냥철에 쓰는 곳인지 오두막에는 오랫동안 사용한 흔적이 없었다.

    카이는 오두막의 주위를 둘러보다가 밖으로 나가 마법진을 하나씩 그리기 시작했다. 환영 마법으로 이곳의 존재를 숨기고, 다른 이가 다가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렇게 만든 이유는 단 하나.

    이곳이 세계의 중심이었다. 어느 이름 모를 산자락의 오두막일 따름인데 세계의 크기를 정확하게 가늠해 본 카이가 알아본 중심 좌표.

    그 중심에 자리를 잡은 것은 온전히 세계를 인지하기 위해서였다.

    신령들은 신지를 가지고 있었고, 피스토는 연옥을 가지고 있었다. 혈해라는 다른 이름을 가진 곳을.

    그렇다면 카이가 가질 곳은 어디일까?

    자신의 영역으로 삼을만한 곳은.

    카이는 세계를 자신의 영역으로 삼기로 하고 탐색 마법을 변화시켜 세계를 인지하기 위한 마법으로 개량했다.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 머리에 과부하가 걸렸던 것을 생각하면 이 모든 것을 인지하는 것이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물러나지 않는다.

    바헬이 걸었던 마력 봉인을 풀 때처럼 아무것도 걸지 않고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태초의 순수 마력을 소환하고 그곳에서 끌어온 막대한 마력을 통해서 카이의 인지가 넓어져 간다. 대륙의 서부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정확히 세계의 중심에서 시작한 탐지가 그의 머릿속에 세계를 그려줬다.

    무리하지 않기 위해서 생명체를 제외하고 대륙의 형태를 인지하는 것에 집중한 카이는 무아지경에 빠졌다. 온전히 정신을 차린 상태로는 그 형태를 인지하는 것만도 부족했던 것.

    그렇게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메르샤가 꺼내든 종이를 펄럭이며 말했다.

    “이거 봤어? 피스토와 계약한 영혼은 연옥으로 끌려간다는군. 그럴수록 피스토의 힘은 강해진다고 하는데?”

    덴다르트도 종이를 펄럭이며 답했다.

    “여기에서 나온 대로라면 피스토는 인류의 마지막 날에 혈해를 가르고 나타날 거라고 하더군. 그런데 재미있는 구절은 이거야.”

    덴다르트가 꺼내든 종이에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의 시선이 닿은 곳은 교국에서 만든 예언서의 구절 중 하나였다.

    “달을 삼키는 늑대와 해를 삼키는 뱀을 데리고 나온다고?”

    카메룬이 읽으며 묻는 말에 덴다르트가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피스토를 삼킨 것이 늑대의 신령과 뱀의 신령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단순히 예언이라고 보고 넘길 일은 아닌 것 같군.”

    카메룬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물었다.

    “무결의 대마법사가 하는 말을 빌리자면 까마득한 격을 지니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그 둘이 피스토 본체도 아니고 고작 그 파편을 집어삼킨 것만으로 피스토의 종이 된다는 건 믿기 힘든데?”

    그때 메르샤가 다른 종이 하나를 꺼내와 보여줬다.

    “그래도 인류를 사랑한 시엘이 강림하고 심판의 검으로 쓰러트린다고 되있는 걸 보면 걱정할 필요는 없는 건가?”

    덴다르트는 그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예언자도 결국 교국의 인물이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자신이 본 것을 그대로 적지 않았을 수도 있어. 인류가 무너질 수도 있을 테고,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각색했겠지.”

    카메룬도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교국이 제 입맛대로 역사를 바꾼 것이 하루이틀 일도 아니고.”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메르샤가 턱을 만지며 말했다.

    “그런데 이 예언자 말이야.”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것도 눈치채지 못한 메르샤가 중얼거렸다.

    “아직 살아있을 수도 있겠는데?”

    “뭔 소리야?”

    “이거 기록된 종이 말이야. 옮겨 적은 것이 아닌 원본이라고 가정하면 아직 살아있을 수 있어. 이 종이는 벤탈린에서 만든 건데 이 등급의 종이가 나오기 시작한 지 60년 밖에 안 됐으니까.”

    카메룬이 그 말을 듣고는 종이를 살펴보았다. 종이를 뒤집어 만져본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군. 살아있을 수도 있겠어. 다만 만나기도 쉽지 않을 테고, 만난다고 해도 사실을 듣기 어려울 수도 있어. 교국에서 각색하게 한 거라면 지켜보는 눈이 꽤 있을 테니까.”

    “60년 전이면 델라니 성녀 시절인가?”

    “맞아.”

    메르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지독한 년이라면 분명 수작을 부렸을 텐데. 만날 수나 있을지 모르겠군.”

    덴다르트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말했다.

    “카이가 있다면 어떻게든 될 텐데. 일단 이 예언자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고, 더 조사해 봅시다.”

    “그러자고.”

    카이가 던져주고 간 피스토에 관련된 자료는 산더미를 방불케 했다. 피스토에 관련된 내용만이 아니라 저들이 잡아들였던 피스토 추종자들이 모았던 자료들까지 싹 다 모아놓은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료의 양이 상상 이상이었다.

    헥토르는 신전으로 들어오는 우로보로스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괜찮은 거냐?”

    <보면 모르겠나?>

    헥토르도 봐서 알고 있었다. 우로보로스가 빠르게 자신의 힘을 되찾고 있음을.

    그러나 과연 저게 올바른 길일까?

    어차피 자신은 자신의 신을 섬기는 것에만 집중하니 상관이 없다고 여기지만, 피스토는 그들의 성서에도 나온다.

    종말을 부르는 자.

    피스토의 일부를 흡수한 우로보로스가 뭔가 달라졌다. 인간의 영혼을 섭취하면서 힘을 되찾고 있는데 그것이 피스토의 능력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그럼 내 몸을 부탁하지.>

    헥토르는 저리 말하는 우로보로스가 무슨 생각인지 알고 있었다. 어차피 자신을 믿지 않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바헬이나 자신의 처지나 다를 바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온전히 자신의 힘을 되찾을 때까지 자신의 힘을 빌리려는 것일 뿐.

    그리고 그건 자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강해지고 그 격이 높아질수록 전쟁의 신에 자신이 다가가고 있었으니까.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것.

    당연한 것 아니겠나?

    돌싱 후 대마법사-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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