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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120화 (120/150)
  • 120화 피스토

    신지에 봉인할 생각이었지만, 그냥 돌려보낼 생각은 없었다. 피스토가 하늘신의 대적자라고 할 정도이니 그 파편을 만났을 때 뭔가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카이는 연구소로 돌아와 사방에 결계를 쳤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서 피스토의 파편을 들어 보았다.

    작은 구슬처럼 보이는 피스토의 파편을 결계의 중심에 놓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위험할 일은 없을 터였다. 혹시 결계를 뚫고 나간다고 해도 성에는 퀸이 있으니 위험할 일은 없으리라.

    카이는 결계의 중심에서 눈을 감고 피스토의 파편을 들여다보았다.

    검붉은 피스토의 파편을 바라보자 그 안에는 핏물의 바다에 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주위가 일그러지며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뭔가?

    카이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마치 다른 세계로 온 것 같은 느낌.

    그러나 그 핏물의 바다에 휩쓸리는 일은 없었다. 카이는 무심한 눈으로 주위를 돌아보다가 주위를 감싼 핏물의 바다가 갈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곳에는 뼈로 만들어진 날개 네 장으로 몸을 감싼 자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독존하지 않았다면 이 핏물의 바다에 들어온 순간 이미 휩쓸려 정신을 잃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카이는 다르다.

    온전히 정신을 유지한 채 상대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

    “폼 잡지 말고 고개를 들어 봐라.”

    고개를 숙이고 있던 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동자가 있어야 할 곳이 텅 빈 공허만 있는 존재. 그러나 시선이 마주쳤음을 느낄 수 있었다.

    카이가 바라보는 것을 인지했는지 그자가 입을 열었다.

    [격을 이룬 손님이군. 그대만 한 자가 내게 바라는 것이 있나?]

    카이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일곱 개 파편 중 하나. 온전한 힘을 쏟아낼 수 없는 데도 느껴지는 격이 예사롭지 않았다.

    “네가 피스토냐?”

    [그래. 내가 피스토다.]

    “하늘 신 시엘의 대적자라고 불린다지?”

    네 장의 날개로 몸을 감싼 피스토가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분명 입가를 말아 올리며 미소를 짓는데 그 미소가 얼마나 흉흉한지 보는 것만으로 소름이 돋았다.

    독존하는 카이조차 그 미소에서 전해지는 흉흉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지독한 악의가 서린 미소였다.

    [정인이자 배다른 오빠지. 그리고 그녀에게 배신당했지.]

    정인과 배다른 오빠가 어떻게 같은 문장에 섞일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네 사연 따위는 듣고 싶지 않다.”

    하늘신 시엘과 같은 선상에 놓일 정도의 강자. 그 격을 온전히 느껴보고 싶었다. 늑대의 신령과 ‘뱀’만을 본 것만으로는 부족했기에 만나보고 싶었다.

    피스토는 언제 미소를 지었냐는 듯 얼굴에서 표정을 지웠다. 그는 카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런데 너를 보니 정말 시엘의 생각이 옳았나 보군. 인간 중에 언젠가 우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존재가 나타날 거라고 하더니.]

    “시엘이 미리 예견했다는 건가?”

    [그래. 때를 알지는 못했지만, 예견했었지.]

    시간과 공간에 간섭하는 것과 미래를 예견하는 것은 다르다. 아무래도 하늘신 시엘은 미래를 예견하는 것에 더 특화되었든지 아니면 그저 그 수준에 오르면 미래를 볼 수 있게 되는지는 모르겠다.

    피스토 조차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을 보면 분명 그녀만의 특별한 능력이 아닌가 싶었다.

    그건 그렇고 피스토를 바라보던 카이가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

    이곳의 능력이나 피스토에게서 느껴지는 힘이 자신의 예상보다 많이 떨어진다.

    [실망했다면 미안하지만, 지금의 나는 온전한 내가 아니야. 파편이 모두 모여야 온전한 힘을 개방할 수 있지. 뭐 시엘이 그걸 그냥 두고 볼 리는 없지만.]

    “그랬나? 솔직히 실망했거든.”

    늑대의 신령이나 ‘뱀’에 비해서 한참 부족했으니까.

    “혹시 ‘뱀’에 대해 알고 있나?”

    [그 최초의 짐승들에 대해 묻는 건가?]

    “그래.”

    [알지. 짐승 주제에 섭리를 깨달은 존재들. 그러나 인간이 아닌 짐승의 이치를 들이대기에 너희 인간에게는 재앙이나 마찬가지일 거다.]

    “무슨 개소리야? 신령족이 그들을 신령으로 모시고 사는데.”

    [크흐흐. 그래. 인간의 머리 꼭대기에서 살아가는 거지. 그러나 그 정도에 만족할 리가 없다. 특히나 ‘뱀’이라면.]

    “너 ‘뱀’의 목적을 알고 있나?”

    피스토는 그 물음에 미소를 지은 채 카이를 바라보았다.

    [맨입으로 답할 수는 없지.]

    ‘뱀’의 목적을 알아낼 수 있다면 분명 앞서갈 수 있을 테지만, 피스토의 농간에 놀아날 수는 없다.

    카이는 팔짱을 낀 채 답했다.

    “맨입으로 말하고 싶지 않으면 닥쳐. 그 짐승들의 땅에 묻어 버릴 테니까.”

    [뭐?]

    “신지에 봉인할 거야. 하늘신 시엘의 봉인과는 조금 다른 형태일 테지.”

    [자, 잠깐. 놈들에게 날 먹이로 줄 생각이냐?]

    “먹어?”

    [그래. 그 짐승들은 나를 먹어 제힘을 키울 거다.]

    카이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해 보았다. 늑대의 신령이 이걸 먹고 힘을 키울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널 가지고 있을 이유는 없어. ‘뱀’도 너를 노리고 있으니까.”

    [날 넘기지 않는다면 ‘뱀’의 목적을 알려주지.]

    “됐어. 어차피 목적을 이루기 전에 죽이면 될 일이야.”

    피스토는 한숨을 내쉬다가 바닥을 발로 툭툭차며 말했다.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마음대로 해.]

    카이는 피스토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뭔가 초월한 분위기. 될 대로 되라는 식이지만, 악마라고 불리는 피스토가 이리 쉽게 자신을 포기할까?

    그러나 지금 피스토의 힘은 늑대의 신령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만나서 반가웠다.”

    일곱 개의 파편 중 하나라고는 하나 피스토의 격을 엿본 것만으로도 카이에게는 큰 도움이 됐다. 게다가 주변에 가득한 이 검붉은 기운도.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기운이었지만, 그 끈적하고 끔찍한 느낌은 확실히 기억해 두었다.

    [그런데 돌아갈 수 있겠나?]

    “당연한 소리를.”

    카이가 손을 가볍게 휘두르자 검붉은 핏물의 바다가 쩍하고 갈라졌다. 카이가 그곳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고 피스토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또 보자고.]

    카이는 천천히 눈을 떴다. 결계 중심에 있는 피스토의 파편은 변한 것이 없었다. 카이가 손을 내밀어 피스토의 파편을 회수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연무장에는 페코가 웅크리고 있었고, 그 사이에 메르샤가 앉아있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메르샤는 페코에게 기댄 채로 정령력을 늘리고 있었다. 페코와 계약하지 않아도 자신의 의지를 지닌 정령인 페코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성장할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저 수련할 때는 왜 옷을 홀딱 벗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럴 거면 어디 방에라도 들어가서 하든가!

    카이는 고개를 휘휘 내젓고는 그녀를 본 척도 않고 걸음을 옮겨 덴다르트를 찾았다. 덴다르트는 카이가 온 것을 보고는 물었다.

    “왔냐?”

    “아티펙트는 어때요?”

    제국에서 받아왔던 빙옥을 이용해서 만든 아티펙트. 8성급 빙계 비전 마법 얼음 골렘을 소환을 만들어냈다. 가장 도움이 되는 마법이 무엇일까 싶어서 고민하던 중에 얼음 골렘 소환식을 만들어냈다.

    8성급 얼음 골렘을 소환하기만 하면 얼음 골렘이 알아서 싸운다. 얼음 골렘이 주가 되고 오히려 마법사가 부가 되어 지원하는 형식.

    “소모하는 마력의 양이 상당해. 이건 줄일 방법 없지?”

    “이곳에서 사용하는 것이라면 상관없지만, 외부에 나가면 직접 마력을 사용하셔야 해요.”

    “에휴. 아직도 멀었네.”

    7성에 오른 대마법사가 되었음에도 아직도 부족함을 느낀다. 마력의 부족함 때문에 아티펙트를 사용하는 것도 여의치 않은 상황.

    얼음 골렘을 소환하면 비전 마법도 사용하지 못할 정도.

    덴다르트는 한숨을 내쉬고 카이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무슨 일이냐?”

    카이는 그 물음에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피스토의 파편을 구했습니다.”

    “제국에서 구해 온다고 했던 그거? 어때? 보니 뭔가 좀 나오더냐?”

    카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지금 자신이 걱정하는 바를 알려줬다.

    “신지에 봉인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했는데 피스토의 말을 들어 보니 은근히 바라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니까 피스토의 말대로라면 늑대의 신령이 자신을 잡아먹을 거라고 했다고?”

    “예. 그런데 그걸 바라는 것 같은데 그 힘이나 격으로 보아서 절대로 늑대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이 문제죠.”

    “그렇다면 고민할 필요 있나? 늑대 신령에게 가져다줘. 그 수준에 오르지 못한 내가 해줄 조언은 없어 보이니.”

    카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피스토가 늑대의 신령을 알고 있다는 것은 늑대도 피스토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 그대로 전해주면 될 일.

    “좋아요. 다녀오겠습니다. 그간 이곳을 지켜주세요.”

    “그래. 다녀와라.”

    이곳에서는 용맥을 이용해서 아티펙트를 사용할 수 있으니 덴다르트만 있어도 어느 정도 안심이었다. 퀸까지 있으니 이곳이 위험할 일은 없으리라.

    카이는 공간 이동으로 신령의 숲으로 가서 칼리를 만났다.

    “신지에 다녀올게요.”

    “같이 가요.”

    칼리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카이가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이라면 혼자서 갈 수 있어요.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요.”

    “예? 그게 가능할 리가.”

    카이는 그 말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피스토의 파편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는데 칼리와 아이를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카이의 말을 듣고도 칼리는 쉬이 결정하지 못했는데 마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해 보시죠. 뭔가 잘못된다고 하더라도 늑대가 허락하셨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칼리는 주저하다가 카이에게 신지로 향하는 길을 열어줬다. 카이는 그 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피스토의 파편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 자신이라면 신지를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을 터. 카이는 신지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서는 손을 내밀었다.

    지독한 어둠이 길을 열었을 때 카이는 성큼 그 안으로 들어섰다. 예전에는 은은히 빛나는 칼리의 뒤만 쫓아야 했던 곳에서도 카이는 태연히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그렇게 걷기 시작한 카이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길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 길을 걸은 카이는 끝내 신지를 볼 수 있었다.

    칼리의 몸을 빌려 나타났던 늑대의 신령. 카이는 눈을 감고 깊이 숨을 들이 마셨다.

    피스토의 파편을 들여다보며 그 세계로 들어가는 법을 알아냈기에 카이는 곧장 신지의 실체로 다가갔다. 신지는 현세에 존재하지만 진정한 신지는 이곳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늑대의 신령도 이곳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

    카이는 이번에 직접 신지로 갔다.

    카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앞에는 늑대의 신령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기를 어떻게 들어온 거냐?]

    카이가 피스토의 파편을 꺼내 보이며 답했다.

    “이 녀석을 연구하다가 들어오는 법을 알게 됐지.”

    [그건 악마의 파편이구나.]

    “그래. 이 녀석의 파편이 ‘뱀’에게 들어가면 곤란하다고 해서 가지고 왔다. 이곳에 봉인하려고.”

    [그런데?]

    “그런데 이 녀석이 말하기를 짐승인 너희가 자신을 잡아먹을 거라고 하더군.”

    늑대의 신령이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재미있구나. 피스토. 나와 봐라.]

    그러자 피스토의 파편이 빛이 나며 검붉은 기운을 몸에 두른 채 모습을 드러냈다. 카이는 그 등장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신지의 영역을 밀어내며 피스토 자신의 몸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는 핏물의 구체. 피스토는 그 안에서 뼈로 만들어진 날개를 펼치며 입을 열었다.

    [늑대였나?]

    피스토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곳은 짐승의 낙원인 신지로군.]

    피스토가 눈을 붉게 물들이며 카이를 돌아보았다.

    [정말로 날 이곳에 데려다줄 줄은 몰랐는데?]

    피스토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그를 감싼 핏물의 구체가 형체를 이루더니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마치 실핏줄이 퍼진 것 같은 형상.

    그리고 그 핏줄이 뻗어 나간 곳은 신령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었다.

    [이걸 기다렸다!]

    피스토가 수작을 부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설마 신지에 잠들어 있는 신령들을 노릴 줄은 몰랐다. 카이가 마법을 쓰려고 하기도 전에 늑대가 그대로 피스토의 머리를 물어뜯었다.

    피스토의 머리가 사라지자 그가 다른 신령에게 꽂아 넣었던 핏줄이 말라 비틀어져 사라졌다.

    카이가 손을 쓸 틈도 없었다.

    늑대는 피스토의 머리를 으적으적 씹어 꿀꺽 삼켰다.

    [어디서 개수작을 부리는 거냐?]

    카이는 서늘한 늑대의 반응에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피스토가 수작을 부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말대로 늑대가 정말로 그를 잡아먹었다.

    피스토는 여기까지 내다본 것일까?

    돌싱 후 대마법사-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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