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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119화 (119/150)
  • 119화 피스토의 파편

    신령족은 바헬의 습격 때문에 큰 고난을 겪었다. 전사 중에도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쳤고, 주술사들은 그 수가 크게 줄었다.

    그중에는 타베시도 있었다. 차기 전사장으로 가장 유력했던 타베시였지만, 팔을 잃은 후에는 그 실력이 크게 줄었다. 그 부상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지만, 아직 마력이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것을 어쩐단 말인가?

    다른 이들의 부상에 비하면 적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예전의 기량을 되찾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게다가 마음에 두고 있던 대족장도 엉뚱한 인간과 결혼까지 해버렸으니 타베시는 요즘 술에 빠져 사는 중이었다. 수련을 게을리하고 술에 빠져 사는 타베시의 집 문이 덜컹 열리며 안으로 들어서는 이가 있었다.

    “뭐하냐?”

    타베시는 그 물음에 인상을 찌푸린 채로 빛을 등지고 선 자를 바라보았다.

    “누구야?”

    “날 찾아올 때의 패기는 어디 갔나? 이런 패배자의 냄새는 싫은데.”

    그리 말한 상대가 손짓하자 창문이 덜컥 열리고 사방에서 빛이 들어왔다. 그렇게 들어온 빛이 닿자 타베시는 상대를 볼 수 있었다.

    감히 대족장을 아내로 삼은 대륙인. 카이가 그곳에 서 있었다.

    “네가 여기는 무슨 일이냐?”

    카이는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들고 온 가방을 내려놓았다.

    “네 팔 달아주러 왔다.”

    “팔?”

    “그래. 대신 엄청 아플 거다. 하지만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선다면 예전 네 팔 만큼은 못해도 쓸 만할 거다.”

    타베시는 그 말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이가 미운 것은 미운 것이고, 그의 능력은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자신이 그와 견줄 만하다 여겼는데 바헬을 죽이던 그 모습을 보면 이미 그의 능력은 전사장이나 제사장에 버금가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아픔 따위는 괜찮아. 다시 팔을 달아만 준다면··· 그 은혜는 잊지 않지.”

    카이는 씨익 웃고는 타베시의 팔을 대체할 의수를 꺼냈다. 헬리움은 만들 수는 있어도 쓸 수 있는 것은 퀸 뿐이라 트리달리움으로 만든 의수였다.

    타베시가 마력을 운용하는 것을 지금까지 지켜보고 그 운용법에 어울릴만한 회로를 그려 넣은 의수였다.

    “그럼 시작할까?”

    카이는 손을 뻗어 타베시가 팔이 잘린 곳을 바람의 칼날로 베었다.

    “크윽!”

    생살을 베니 피가 왈칵 치솟았다. 타베시가 황급히 마력을 일으켜 치료하려 할 때 카이가 고개를 내저었다.

    “기다려. 일부러 낸 상처다.”

    카이는 의수를 가져다 대고는 말을 이었다.

    “원래 사용하던 대로 마력을 운용해.”

    팔이 잘린 후에 팔로 가던 마력을 우회해서 몸 안에서 휘돌게 했다. 있지도 않은 팔에 마력을 돌려봐야 마력의 소실만 있을 것이기에 어쩔 수 없었던 것.

    그러나 타베시 또한 7성에 오른 전사다. 우회했던 마력 회로를 그대로 운용하니 자신의 마력이 부드럽게 흘러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흘러간 마력이 다시 돌아와 몸으로 흐르는 것을 느끼며 타베시는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의 마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예전의 기량을 되찾을 수 있다.

    타베시가 눈을 떠 의수를 바라보았다. 천천히 의수를 들어서 그 손가락을 움직여 보는 동안 카이가 의수를 조작했다. 그때마다 끔찍한 고통이 전해졌지만, 그건 의수와 근육, 피부, 신경을 연결할 때 전해지는 고통이었다.

    그 고통은 오히려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팔을 되찾고 있는 지금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집중해. 연결은 내가 해주지만, 이 팔을 온전히 네 것으로 만드는 것은 네가 해야 할 일이니. 일부러 강화 마법은 걸어놓지 않았다.”

    어지간한 수준의 이들이라면 강화 마법을 도배해줬겠지만, 7성까지 오른 타베시라면 그저 팔을 대신해 줄 능력에만 충실하면 됐다.

    카이의 제작술은 이제 경지에 들어 이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타베시가 집중해서 손가락을 움직이고 주먹을 쥐었다.

    그그극.

    주위의 마력이 요동칠 정도로 새로 달아 준 의수를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을 보고 카이는 새삼 그를 바라보았다. 신경과 근육을 연결하는 과정이 끝나기도 전에 마력 회로가 연결된 것만으로 거의 제 수족처럼 다루고 있었다.

    주술사들 대부분이 죽고, 전사 중에도 죽거나 다친 자가 많았는데 그중 눈여겨보던 타베시를 치료하고 나면 다른 이들도 의수와 의족을 달아줄 생각이었다.

    타베시는 전사 대표로 시험해 보는 중이었다. 이게 가능하다면 다른 이들에게 달아주는 것도 어렵지 않으리라.

    카이가 모든 신경까지 연결하는 것을 마무리했을 때 타베시는 편히 앉아 자신의 팔에 온 정신을 집중한 채 앉아있었다. 이미 작동하는 것을 지켜보았으니 더는 타베시에게 볼 일이 없었기에 카이는 칼리를 만나러 이동했다.

    위훌루와 마야가 함께 지키고 있는 대족장의 거처에서 과일을 먹던 칼리는 카이가 나타나자 눈웃음을 지었다.

    “왔어요?”

    카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의 옆에 앉아 과일을 먹으며 위훌루를 돌아보았다.

    “타베시에게 의수를 달아줬는데 결과 보고 얘기해. 전사 중에 사지를 잃은 이들이 제법 되지? 그들 모두에게 맞춰 줄 테니까.”

    “의수? 그런 거 단다고 얼마나 도움이 되겠나?”

    카이는 그 말에 픽 웃음을 흘렸다. 자신이 만든 의수는 일반적인 것들과는 수준을 달리한다. 그걸 모르니 저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

    카이는 더 말하지 않고 마야를 돌아보았다.

    “아나벨 성녀에게 들었는데 보옥을 대체할 만한 것이 있다고 하더군요.”

    “들었어요. 악마 피스토의 파편이라고 하던가? 그 하나하나는 보옥에 미치지 못하지만, 모두 모은다면 보옥 세 개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을 거예요.”

    카이는 그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옆에서 듣고 있던 칼리가 물었다.

    “무슨 얘기에요?”

    카이는 그 물음에 한숨을 내쉬고는 답했다.

    “하늘 신 시엘의 대적자인 악마 피스토의 파편이 있는데 지금은 그를 숭배하는 이들이 모두 죽고 봉인되어 있어서 찾는 이가 없지만, ‘뱀’이 그걸 찾을 가능성이 있음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일단 제국의 것을 받아오려고.”

    하나하나가 보옥보다 못하다고 해도 ‘뱀’이 그걸 얻을 때마다 격을 되찾을 수 있으니 미리 막아야 했다.

    칼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신지에 봉인하면 아무리 ‘뱀’이라고 해도 찾아갈 수 없어요. 그러니 그걸 찾게 되거든 이곳으로 가지고 와요.”

    “그럴게요.”

    카이는 손에 든 과일을 다 먹고는 칼리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는 공간 이동으로 떠났다. 그 모습에 마야가 쓴웃음을 지었다.

    “무슨 옆집 다녀오듯 떠나는 것을 보니 새삼 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네요.”

    멀리 떨어져 지내지만, 그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칼리와 마야가 서로를 바라보며 카이의 칭찬을 하는 모습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위훌루는 타베시를 찾아갔다. 아무리 그를 인정했다고 해도 뭐라도 트집을 잡아 따지고 싶었다.

    위훌루가 타베시를 찾아갔을 때 타베시는 도끼 두 자루를 휘두르고 있었다. 팔이 잘리기 전만큼은 아니나 그 움직임이 점점 익숙해지는 것이 마력이 잘 흐르고 있다는 뜻이었다.

    의수라는 것이 그저 팔이 잘린 부위의 허전함을 달래는 용도가 아니라 온전히 팔을 대체할 물건일 줄은 몰랐다.

    위훌루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흠잡을 곳이 없었다.

    테오르는 앞에 놓인 아티펙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아티펙트에 들어간 마법진을 해독했고, 최상급 마정석을 준비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활성화를 주저하게 된다.

    어째서인지 안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쉬이 손을 대지 못하고 있던 테오르의 뒤에서 불쑥 목소리가 들렸다.

    “제법 잘 재현했네요.”

    테오르가 돌아보니 카이가 그의 뒤에서 팔짱을 낀 채로 아티펙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네 왔나?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찾아온 건가?”

    몰래 만들던 것을 대놓고 들켰기에 찔끔한 테오르가 슬쩍 가리며 하는 말에 카이가 괜찮다는 듯 손을 내밀었다.

    “활성화 시켜보세요.”

    “쩝. 아무래도 뭔가 부족해 보여서 말일세.”

    카이는 흘끔 테오르를 돌아보았다. 그가 깨달음을 얻어서 전보다 실력이 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감이 좋을 줄은 몰랐다.

    마치 미래를 예지하기라도 한 것처럼 구는 모습을 보니 카이가 입맛을 다셨다. 이걸 활성화 시키려고 했다면 최상급 마정석만 잃었을 텐데 그걸 또 피한 것을 보니 아쉽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맞아요. 마법진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활성화는 못 시켰을 겁니다.”

    “그렇지? 이유가 뭔지 물어도 되겠나?”

    “이거 활성화 시키려면 태초의 순수 마력을 다룰 수 있어야 하니까요.”

    “하긴 어째 자네가 만드는 과정을 모두 보여주더라니 다 이유가 있었군.”

    “뭐 계속 찍어낼 수 있다면 가치가 떨어지니 어쩔 수 없죠.”

    카이는 그리 말하고는 테오르에게 말을 꺼냈다.

    “그보다 거래할 것이 있어 왔습니다.”

    “거래?”

    “예. 의수 하나를 달아 드릴 테니 제가 원하는 것을 하나 주시죠.”

    “자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내주지. 그런데 의수라니?”

    카이는 테오르의 말에 미소를 지은 채 답했다.

    “마력 회로를 넣어서 예전처럼 쓸 수 있는 팔이 될 겁니다. 마법적인 가공은 하지 않았지만, 테오르님 정도 된다면 촉각도 되찾을 수 있을 겁니다.”

    팔을 되찾을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이미 팔을 우회해서 마력을 사용하는 데 익숙해졌다고 하나 제대로 팔을 쓸 수 있게 된다면 지금보다 더 성장할 가능성이 있었다.

    수인만 제대로 맺어도 새로운 비전 마법을 더 강력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럼 부탁하네. 자네가 원하는 것은 내가 황궁 비고를 털어서라도 구해 줄 테니까.”

    카이는 테오르의 말에 미소를 짓고는 의수를 꺼내 들며 말했다.

    “그런데 아플 겁니다.”

    “제까짓 것이 아파봐야 팔을 되찾는 이득만 하겠는가?”

    당당하게 소리친 테오르는 카이가 의수를 달아주는 동안 쉬지 않고 비명을 지르다가 기절해 버렸다. 타베시와는 확실히 달랐다.

    테오르는 약속을 지켰다.

    의수를 다는 동안 고통을 참지 못하고 혼절했었지만, 깨어난 그는 의수를 사용하는 법을 타베시보다 더 일찍 깨우쳤다. 카이가 대마법사로서 의수에 준비해 놓은 모든 것을 온전히 깨우친 테오르는 카이를 데리고 황제를 찾아갔다.

    클레바논은 카이가 테오르의 팔을 찾아준 것에 감사를 표하고는 카이에게 황궁 보고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카이가 작정하고 침입한다면 얼마든지 황궁 보고를 털 수 있음에도 테오르의 의수를 만들어 주고 그 보답을 달라는 것이니 주지 못할 것이 없었다.

    클레바논의 허락을 받고 들어선 황궁 보고에서 카이는 가장 깊은 곳을 향했다.

    그곳에는 온갖 보물이 있었지만, 몇 가지가 눈에 띄었다. 카이가 원한 것은 어차피 보물이 아니었다.

    누가 말해주지 않았음에도 피스토의 파편은 알아볼 수 있었다. 가장 황당한 형태로 봉인되어 있었으니까.

    “이거 누구의 유해입니까?”

    카이의 물음에 함께 황궁 보고에 들어왔던 테오르가 답했다.

    “이름 없는 성인이었다고 들었다. 제국에서 암암리에 피스토를 부활시키려던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수준이 꽤 높았다고 들었다. 그들을 모두 죽였음에도 저 파편만으로도 피스토가 깨어나려고 할 때 스스로 그걸 집어삼킨 신관이었지. 종군 신관으로 무명의 인물이었는데 그는 저걸 삼키고 희생 주문을 통해서 봉인했다. 아마 시엘의 가호가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겠지.”

    “성녀도 아니고 이름도 없는 종군 신관이 봉인했다고요?”

    “그러니 대단한 일 아니겠는가?”

    테오르도 감탄하는 기색을 보이자 카이는 새삼 그 유해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악마 피스토가 부활했다면 단순히 제국에서 끝날 일이 아니었을 터.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서 봉인까지 한 종군 신관에게 예를 표한 카이가 손을 내밀었다.

    카이의 손이 닿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유해가 재가 되어 흩어지고 피스토의 파편이 손에 들어왔다.

    “허! 저 봉인은 지금까지 한 번도 풀린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된 건가?”

    카이도 자세한 것은 모르겠지만, 봉인이 풀리지 않은 채 피스토의 파편이 손에 들어왔다. 지극히 위험해 보이는 검붉은 빛을 내는 손톱만 한 크기의 보석을 바라보던 카이가 주먹을 쥐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테오르가 입을 열었다.

    “조심하게. 심연을 바라보면 심연도 자네를 바라보듯 그것을 연구하다가 자네 또한 악마가 될 수 있으니.”

    카이는 그 말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독존하기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그럴 위험은 없었다. 이걸 통해서 한 발 더 나아갈 뿐이다.

    돌싱 후 대마법사-피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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