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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118화 (118/150)
  • 118화 답례

    카이는 신혼여행이라 여기고, 대륙을 돌아다녔다. 고작 사흘이지만, 바다와 산을 오가며 칼리와 함께 절경을 구경했다. 그리고 사흘 만에 신령의 숲으로 돌아온 카이는 거기 모여서 웃고 떠드는 이들을 보다가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클레바논 황제는 그 물음에 웃으며 옆에 앉아있는 여인의 허리를 팔로 감은 채 답했다.

    “이들의 축제가 신나더군. 마음이 통하는 이를 만나서 후궁으로 데리고 가기로 했다.”

    황궁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클레바논 황제도 신령족의 축제에 제대로 놀았는지 마음이 맞는 여인을 찾았고 황궁으로 데리고 간다고까지 했다.

    신령족이라고 신령의 숲에 모두 만족하고 사는 것은 아닌가 보다. 지금까지야 외부와 만날 일이 없었지만, 카이가 데리고 온 대륙인들은 저들에게 다른 모습을 보여줬기에 그것에 혹한 이가 나왔나 보다.

    테오르도 두 명의 여인을 옆에 끼고 앉아있었다.

    수많은 애인을 두고 있다고 하더니 여기서도 두 명의 여인을 꾀었나 보다.

    “데리고 가실 겁니까?”

    “아니. 자네한테 부탁하면 언제든 올 수 있으니 데리고 가진 않을 생각이네. 원래 8성 대마법사란 애인을 대륙 곳곳에 둬야 하는 법이지.”

    칼리의 눈빛이 카이를 슬그머니 바라보는데 괜히 식은땀이 흘렀다.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하던 카이였지만, 그 시선은 괜히 뜨끔했다.

    바람둥이 테오르 때문에 괜히 자신마저 곤란해지지 않았나?

    폐쇄적인 신령족이었지만, 또 이런 쪽으로는 개방적이었나 보다. 하긴 칼리도 카이와 혼인도 하기 전에 밤을 보냈으니 뭐라고 할 상황은 아니었다.

    검성 맥클렌은 위훌루와 함께 앉아서 술잔을 기울이는 것을 보니 둘도 없는 친구 같아 보였다. 그사이에 끼어서 같이 술잔을 기울이는 퀸을 보면 어이가 없었다.

    퀸은 굳이 뭘 먹지 않아도 되는데 뭘 저리 먹고 있나 싶었지만, 굳이 뭐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사흘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면서도 이들을 일단 돌려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 돌아가죠.”

    카이가 그리 말하며 게이트를 열었다. 게이트는 용맥도 필요했지만, 게이트를 발동하는데 최소한 8성 대마법사가 필요했다.

    다른 이들에게 만들어준다고 해도 의미가 없었다.

    카이는 그렇게 게이트를 열고 일행을 데리고 영지로 돌아왔다. 칼리와 함께 돌아가지 않은 것은 자신보다 신령족이 그녀를 더 잘 돌볼 것이기 때문이었다.

    카이야 언제든 찾아올 수 있으니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영지에서 황궁으로 돌아가는 것은 테오르의 역량으로 해야 할 일이었다.

    테오르는 카이를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언제든 생각날 때 오마. 신령의 숲으로 보내줄 수 있지?”

    “언제든지 와도 좋습니다. 제가 안내하죠.”

    카이는 그들을 돌아보다가 클란드라에게 시선이 머물렀다. 자신의 결혼식에 초대한 지인. 클레바논이 있는 자리에서 그녀와 자신의 사이를 확실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황녀님. 결혼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든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하세요. 제힘이 닿는 데까지 돕겠습니다.”

    클란드라가 눈을 동그랗게 뜰 때 옆에 있던 클레바논의 눈도 살짝 커졌다.

    카이의 능력이 테오르 이상 간다는 것과 혼자서 맥클렌과 테오르 둘을 동시에 상대할 정도의 강자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홀로 제국에 오지 않았을 테니까.

    그런 카이가 자신 앞에서 클란드라에게 저리 말하는 것을 보면 그녀를 깊이 생각한다는 뜻이다. 저만한 이가 그녀를 그리 생각한다면 자신도 더는 그녀를 홀대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족 중에서 황태자에게 위협이 될 자들은 미리 정리해야 하는데 카이가 저리 비호하고 나서니 그녀를 해할 수는 없다. 그러니 그녀에게 자신의 동생에게 했던 것처럼 공국을 내줘야 했다.

    클레바논은 마음을 결정했을 때 뒤로 미루는 성격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신령족의 비를 얻었는데 황궁에서 이런저런 말이 나올 수 있었다.

    그러니 이럴 때 자신의 편을 만들어 두는 것도 좋았다.

    “클란드라. 황궁으로 돌아가거든 너에게 공국을 내려주마.”

    클란드라가 놀라서 바라보자 클레바논이 차분히 말을 이었다.

    “공국의 영지를 정하고 인계하는 데까지는 길면 10년 정도 걸릴 테니 그동안은 태자를 돌보는 것에 집중해다오.”

    클란드라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클란드라는 공국을 물려받기 위해서 지금까지 이런저런 수를 쓰고 인맥을 넓히고 있었다. 태사도 자신의 편이라 여겼지만, 그는 결국 황제의 편이었다.

    황제도 그런 것을 알고 지금까지 공언하지 않았었는데 카이의 한 마디에 이렇게 공언하는 것을 보니 새삼 그의 위치를 실감한다.

    클레바논이 클란드라를 일으키며 말했다.

    “그리고 이번에 데리고 가는 비도 신경 써다오.”

    클레바논이 언제부터 비를 얻을 때 주변의 눈을 신경 썼다고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얼마든지 그의 편을 들어줄 생각이었다.

    “황궁에서 어떤 말도 나오지 않을 겁니다.”

    클레바논과 클란드라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볼 때 카이가 한마디 했다.

    “신령족이라고 무시하는 귀족이 있거들랑 얘기하십시오. 제가 가서 혼쭐을 내주죠.”

    카이에게 있어 신령족은 이제 가족이나 다름없으니 그의 말은 전혀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클레바논이 웃음을 터트릴 때 옆에 있던 테오르가 한마디 거들었다.

    “내 애인이 둘이나 있는 신령족을 감히 누가 무시한단 말인가? 그런 걱정은 말게.”

    테오르까지 저리 말한다면 클레바논을 따라가는 이가 고생할 일은 없으리라.

    “그럼 어서들 가시죠.”

    카이의 말에 테오르가 뺨을 긁적이며 물었다.

    “그런데 그 게이트라는 거 황궁이랑 만들어주면 안 되나? 딱 보니 8성 대마법사가 아니면 사용도 못 할 것 같던데 그래도 그게 있으면 마력 소모가 훨씬 적을 것 같은데.”

    “용맥을 끌어와야 하는 일이라 이건 돈 몇 푼으로 될 일이 아닙니다.”

    “그러고 보니 여기 없던 용맥이 생겼더니 용맥을 끌어오는 것이 가능한가?”

    카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테오르가 눈을 반짝였다. 사실 용맥은 최상급 마정석을 구할 수 있기도 하지만 그게 있다면 마법사로서 얼마나 많은 실험을 할 수 있겠는가?

    “내가 가진 거라면 뭐든 주겠네.”

    카이가 빤히 바라보자 테오르가 헛기침했다. 생각해 보면 카이가 부족한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보던 클레바논이 나섰다.

    “굳이 게이트가 필요하오? 이렇게 오가면 될 일을.”

    테오르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용맥을 끌어오면 더는 황궁을 지키는 마법진에 최상급 마정석이 필요하지 않는데 그 무슨 생각이오.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용맥을 끌어오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란 말이오.”

    클레바논은 그 말에 쓴웃음을 짓고는 시선을 돌려 카이를 바라보았다.

    “게이트를 열려면 얼마나 필요하겠나?”

    카이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용맥을 끌어오는 일이 쉬운 일도 아니고 돈으로 환산할 일도 아닙니다.”

    카이라면 용맥을 끌어오는 것이 어렵지 않았지만,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닌 지금 괜히 제국까지 가서 일 할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황궁이랑 게이트를 열 이유도 없었다.

    열어 놓으면 검성의 도움을 받기는 편하겠으나 어차피 검성은 황제를 지키고 있어야 하니 괜히 의미 없이 힘을 쓰고 싶지 않았다.

    돈이 필요하면 그때나 생각해 볼 문제였다.

    클레바논은 솔직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1조 프랑을 쓴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막대한 돈을 쓸 뻔했다. 자신의 대에 정복 전쟁을 멈추고 치세로 번 돈을 다 여기에 쓸 수야 없지 않은가?

    “태사. 그만 돌아갑시다.”

    테오르는 입맛을 다시고는 카이에게 떠나겠다고 하자 카이가 손짓했고, 테오가 눈짓해 인형들이 다가와 그들에게 하나씩 보석함을 건넸다.

    “이게 뭔가?”

    클레바논이 눈을 크게 뜨고 묻자 카이는 태연하게 답했다.

    “답례품입니다.”

    클레바논이 보석함을 열자 그 안에는 보석이 하나 들어 있었다. 정밀한 세공이 척 보기에도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진금을 선형으로 세공한 보석이라 그것만 해도 상당히 아름다워 보였다.

    그걸 보고 테오르가 미소를 지었다.

    “이거 충전식 광구로군. 전에 봤던 그거 맞지?”

    “예. 맞습니다. ‘그레이스’의 수석 디자이너가 세공한 특주품이죠.”

    아티펙트로서의 성능은 거의 없지만, 예술품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했다. 게다가 이건 카이의 결혼식에 참석했기에 받을 수 있던 것.

    무결의 대마법사와의 친분을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고맙네.”

    “결혼식에 참석해준 것이 고마울 따름이죠. 그럼 살펴 가십시오.”

    테오르가 흡족한 미소를 짓더니 하객들을 데리고 먼저 떠났다.

    그들이 떠나고 나서야 카이는 아나벨 성녀를 돌아보았다. 이곳에 올 때는 메르샤의 비공정을 이용했지만, 돌려 보낼 때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사흘간 지낼 만하셨습니까?”

    “물론이죠. 신령족에 대해서 사료로만 보았는데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어요. 특히 마야라는 제사장의 학식이 굉장히 뛰어나더군요.”

    “그랬습니까?”

    “예. 그리고 ‘뱀’에 대해서 들었었는데 듣고도 믿기 힘들더군요.”

    신령족은 신령을 신처럼 떠받드는 곳. 아무래도 성녀가 믿는 것과는 다르다 보니 의견 충돌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나벨은 성녀치고 개방적이라 그런지 그 이야기를 나눔에 있어 의견 충돌은 없었나 보다.

    “그만한 존재가 악마 피스토를 제외하고 또 있을 줄은 몰랐어요.”

    “그렇기는 하죠.”

    신격이라 할만한 수준의 존재들이다. 지금 ‘뱀’과 싸울 생각을 하는 것도 그 격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기에 가능한 것.

    실제 ‘뱀’과 싸우려면 카이도 칠채마력을 모두 태초의 것으로 만들고 나야 가능하리라.

    그러니 그 전에 처리해야만 했다.

    바헬이 없어 공간 이동을 쓰지 못할 줄 알았는데 ‘뱀’은 헥토르를 데리고 몸을 빼냈다. 그걸 보면 어떤 방식으로든 공간 이동을 쓰게 되었다는 것.

    투신 헥토르의 무력은 위훌루에 버금간다. 그런 자가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얼마나 위험한 일들을 저지를 수 있을까?

    다행이라면 ‘뱀’이 원하는 것은 보옥이라는 점이었다. 신지를 유지하는 보옥은 단순히 신지를 유지하는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고작 하나의 보옥을 가지고도 ‘뱀’이 신지를 벗어날 수 있었고, 더 많은 보옥을 얻으면 온전히 그 힘을 쓸 수 있다. 그렇기에 신령족이 신지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뱀’이 보옥을 노리는 것은 아직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인 것 같아요. 만약 그걸 알게 된다면 다른 방식으로 손을 쓸 수도 있어요.”

    “‘보옥’을 대신할 것이 있다는 겁니까?”

    아나벨은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교국은 물론이고 아마 제국 내에도 있을 거예요.”

    “그게 뭐죠?”

    “피스토의 파편이에요. 과거 피스토의 소환에 쓰였던 물건인데 하나하나는 보옥에 비할 바가 아니나 그것들을 모으면 보옥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거예요.”

    “악마 피스토 말입니까?”

    “예. 일곱 개의 파편이 있다고 알려지는데 그중에 교단이 봉인한 것이 다섯 개예요. 하나는 제국에 나머지 하나는 아직 위치가 밝혀지지 않았어요.”

    카이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 신 시엘의 대척점에 있다고 알려질 정도라면 피스토 또한 ‘뱀’만큼이나 위험한 놈이다.

    시엘 교단에서 다섯 개를 봉인하고 지킨다고 하니 위험할 일은 없을 듯싶지만, 그래도 주의해야 했다.

    카이는 품에서 작은 구슬 하나를 꺼냈다. 공간을 틀어막고 연락을 못 취하게 하는 것을 보고 느낀 것이 많았다. 칼리와 자신의 아이가 아니었다면 그녀를 잃을 뻔했다.

    그걸 깨닫고 어떤 상황에서도 연락을 받을 수 있는 준비를 해두었다. 그것이 지금 손에 들린 구슬.

    제국의 황궁이야 검성과 테오르가 있으니 위험할 일은 없을 테지만, 신성 교국은 다르다. 하늘 신 시엘의 가호가 내려진 곳이라고 해도 투신 헥토르와 ‘뱀’을 못 막을 수 있으니 이 구슬을 준비했다.

    “‘뱀’이 나타나거나 투신 헥토르가 나타나면 지체하지 말고 이 구슬을 깨십시오. 그리하면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귀한 물건이군요.”

    아나벨이 수정 구슬을 품에 넣는 모습을 확인한 카이가 손짓하자 테오가 그녀에게도 답례품을 가지고 왔다. 충전식 광구를 예술품의 수준까지 끌어올린 물건.

    “답례품입니다. 그리 대단한 물건은 아니지만, 결혼식에 참석해 주신 것에 대한 답례입니다.”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답례까지 받을 줄은 몰랐네요.”

    “친구라는 말이 듣기 좋네요. 그럼 다음에 뵙죠.”

    말을 마친 카이가 그녀를 공간 이동으로 교국으로 보냈다. 그녀를 보낸 카이는 연구실로 향했다. 즐거운 한 때를 보낸 것도 중요하지만, 그간 준비해 오던 것도 이제 마무리를 지을 때가 되었다.

    연구소로 돌아간 카이는 눈앞에 보이는 의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조정이 끝났으니 이제 달아주러 가볼까?”

    두 개의 의수를 바라보던 카이는 테오르의 의수를 달아줄 때 제국에게서 피스토의 파편을 받아내야겠다고 여겼다. 제국이 보유하고 있다면 분명 안전할 테지만, 그래도 자신이 쥐고 있는 것만 하겠는가?

    그리고 악마 피스토의 파편이라고 한다면 카이에게도 뭔가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돌싱 후 대마법사-피스토의 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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