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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116화 (116/150)
  • 116화 하객

    바헬을 죽였다고 했으니 그의 무력은 짐작이 가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았다. 같은 8성의 경지에 이른 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강한 자가 이기게 되어 있는 법.

    이혼남 주제에 자신의 딸을 탐내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비록 대족장을 자신의 딸이라고 부르지 못했지만, 그 핏줄이 이어진 것은 숨길 수 없었다. 그리고 위훌루는 그 뒤로 결혼도 하지 않았다.

    칼리의 엄마이자 전대 대족장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던 자신에게 이혼남이 웬 말인가?

    그래서 한 방 먹여주려고 대결을 청했다. 어차피 늑대의 신령이 선택한 이를 죽일 마음은 없었다. 그냥 떡이 되도록 두들겨 패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마주한 공터.

    신령족의 도시를 벗어나서 만난 공터에서 위훌루가 도끼를 꺼내 들었다. 투신과의 대결을 통해서 금이 갔던 도끼도 이제는 형태를 온전히 회복했다.

    한 번 부서졌다가 다시 아물 때마다 더 단단해지는 특성을 보여서 이제는 어지간해서는 부서지지 않으리라.

    그러니 이제 손을 봐줄 차례다.

    카이는 그런 위훌루를 심드렁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퀸이라면 상성 상 조금 불리하지만 다른 이들은 별로 어려울 것도 없다.

    “시작하죠.”

    “그래. 시작하지.”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위훌루가 달려들었다. 단숨에 거리를 좁히고 들어오는 위훌루를 보면서 카이가 손을 뻗었다.

    시간이 느려지는 것을 느끼며 위훌루가 코웃음을 치며 도끼를 휘둘렀다. 단번에 느려지는 시간을 뚫고 자신만의 시간을 확보한 위훌루가 거리를 좁히려고 할 때 이미 그의 앞에는 얼음 방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

    도끼로 얼음 방벽을 쪼갠다. 어떤 마법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공간을 베는 참격 앞에서 아무리 단단한 방벽이라고 해도 단번에 쪼갤 수 있었다.

    쩍 갈라지는 얼음 방벽 뒤로 카이의 얼굴이 보이기에 웃으며 도끼를 휘두르려는데 덜컥 팔이 걸렸다. 언제 마력의 사슬이 자신의 팔을 묶어 두었던가?

    카이는 그런 상대를 향해 연달아 마법을 펼쳤다. 어차피 할 거라면 확실히 해주고 싶었다.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깨닫게 해줄 생각으로 카이의 마법이 연달아 펼쳐졌다.

    태초의 순수 마력으로 소환한 마력 사슬은 8성에 이른 위훌루도 쉽게 끊어내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카이가 빙옥으로 그를 가뒀다.

    얼음 결정이 그의 몸을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태초의 얼음 결정으로 펼친 빙옥이 어찌나 단단한지 위훌루도 작정하고 마력을 순환하지 않으면 그대로 얼어붙을 판이었다.

    위훌루가 이를 뿌득 갈 때 카이가 걸어와 빙옥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좋은 꿈 꿔.”

    아직 태초의 속성을 깨우지 못했지만, 뇌속성 마법은 쓸 수 있었다.

    그것도 비전 마법 수준으로.

    카이의 마력이 빙옥에 스며들며 전격이 터져 나왔다.

    파지지직!

    아무리 8성에 이른 상대라고 해도 마력 사슬로 묶고, 빙옥에 가둔 채 날린 8성급 뇌전 마법을 정통으로 맞으면 버티지 못한다. 그나마 8성 전사니까 맞고 살아남는 거지, 7성 이하였다면 다 죽었다.

    카이는 기절한 위훌루를 보고는 빙옥을 해제했다.

    위훌루는 눈을 떠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살다살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다.

    누군가와 대전 중에 제대로 손도 써보지 못하고 당한 것은.

    “이제 깼어요?”

    위훌루가 고개를 돌리니 마야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긴 어디요?”

    “어디긴 어디에요. 내 집이죠.”

    “흐흠. 그랬소?”

    얼른 몸을 일으킨 위훌루가 헛기침했다. 전대 대족장을 품고 그녀를 마음에 둔 탓에 위훌루는 제사장 마야의 마음을 받아주지 못했다.

    그런 그녀의 집에 들어왔으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가 이런 거예요?”

    위훌루는 그 물음에 쓴웃음을 지었다.

    “짜증이 나서 한 판 붙었는데 제대로 도끼질도 못 하고 졌지.”

    “바헬이 죽었다는 말 못 들었어요? 마음만 먹었으면 당신도 죽었어요.”

    위훌루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때 마야가 말을 이었다.

    “그는 격이 달라요. 8성 정도가 아니에요.”

    위훌루도 붙어보고 알았다. 늑대의 신령도 태초의 바람을 부리는 정도였는데 카이는 그걸 몇 개나 부리고 있었으니까.

    태초의 속성이 얼마나 큰 힘인지 위훌루도 이번에야 알았다. 고작 마력의 사슬이 어찌나 단단하던지. 그 빙옥도 도저히 깰 수 없었다.

    “그만 인정해요. 그만한 짝도 없어요. 그리고 가장 강력한 동맹이 될 거예요.”

    신령족은 적이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신령의 숲은 통일되어 있었으니까.

    그런데 우로보로스가 악령이 되어 날뛰는 지금은 신령이 선택한 카이가 강력한 우군이 될 수 있었다. 단순히 ‘뱀’을 잡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우군이 될 기회.

    신령의 숲에서는 정략결혼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마음 맞는 이들끼리 함께 하는 것.

    칼리와 카이가 마음이 맞았다고 하니 결혼을 인정해야겠지만, 대족장의 결혼이라는 것도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그리고 카이가 이혼남이라는 것 때문에 짜증이 일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인정해야겠다. 자신조차 눈 아래로 볼 정도로 강한 남자.

    대륙 최강의 마법사라면 신령족의 대족장의 짝으로는 인정해 줄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인정해야겠군.”

    위훌루도 더는 반대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카이는 위훌루를 기절시키고 그를 마야에게 인계한 뒤로 칼리와 둘이 만났다.

    “전사장은 괜찮나요?”

    “잠깐 기절한 정도에요. 곧 깨어날 겁니다.”

    칼리는 카이의 손을 가만히 잡아주고는 말했다.

    “한 달 후가 길일이던데. 그때가 어때요?”

    “저야 좋죠. 그럼 그때 맞춰서 오겠습니다. 친분이 있는 이들만 몇 명 모아 데리고 올게요. 준비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말해요. 종종 올 테니까요.”

    “알겠어요.”

    카이는 칼리를 살며시 안아주고는 뒤로 물러났다.

    “아빠. 또 올게.”

    카이가 그대로 공간 이동으로 사라지자 칼리는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미소를 지었다.

    대족장은 결혼한 사례가 없었기에 어떻게 될지 몰랐는데 전사장과 제사장도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어쩌면 그녀의 대족장 생활도 그리 심심하지만은 않으리라.

    결혼식 날짜까지 잡은 카이는 청첩장을 친필로 작성했다. 그가 초대할 인물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게 초대장을 쓴 카이는 테오르의 연구실로 곧장 이동했다. 그의 연구실에 갔을 때 이미 그가 만든 보안 마법을 모조리 인지해 두었기에 그걸 뚫고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카이가 공간 이동으로 나타나자 테오르가 아티펙트를 살피다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았다.

    “아이씨. 놀랐잖나!”

    카이는 8성급 아티펙트를 해체하다시피 한 그를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성과가 있습니까?”

    “공부가 되고 있기는 하네. 그런데 무슨 일인가?”

    카이는 두말하지 않고 그에게 청첩장을 건넸다. 청첩장을 열어 본 테오르가 눈이 휘둥그레 졌다.

    “자네 결혼하나?”

    “예.”

    “그 꼴을 당하고도?”

    카이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자신이 어떤 꼴을 당했는지, 그 복수가 어땠는지는 대륙에 있는 이들이 대부분 알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결혼한다고 하니 신기하게 보는 것도 당연한 일.

    카이는 미소를 지은 채 답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잠깐 그를 바라보던 테오르가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평생을 결혼하지 않고 살아온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그럼 클란드라는 어떻게 할 건가?”

    “황녀요? 좋은 친구로 남겠죠.”

    그레이스의 성장에 그녀의 몫이 컸던 만큼 카이는 그녀를 친구로 대할 생각이었다. ‘뱀’을 상대하는데 이용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필요하다면 힘이 되어줄 생각까지 있었다.

    그녀를 만났기에 ‘그레이스’를 만들 생각을 했었으니까.

    “그럼 그때 뵙죠.”

    “그래. 검성은 못가도 나는 가지.”

    “그래야죠. 영지로 오는 이들만 데리고 갈 거니까요.”

    “크흐흐. 한 달 안에 자네 영지에 도착하지 않으면 의미 없다는 뜻이로군.”

    테오르는 그리 말하고는 손을 내저었고, 카이는 클란드라를 찾아 이동했다.

    황궁의 마법진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가 움직이는 것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클란드라는 서재에서 서류를 확인하고 있었다. 카이는 집중한 그녀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귀족 중의 귀족이었던 그녀를 잠시 살펴보던 카이가 인기척을 냈다. 클란드라는 무심히 고개를 들었다가 그를 확인하고는 잠시 눈을 깜빡이며 바라보았다.

    황궁에서 아무런 연락도 없이 나타날 줄은 생각도 못 했기에 지금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 그녀에게 카이가 다가가서 말을 건넸다.

    “줄 게 있어서 왔어요.”

    “줄 거요?”

    카이는 그녀에게 청첩장을 건넸다. 그걸 확인한 클란드라가 불쑥 물었다.

    “이 칼리라는 여성이 누구죠? 처음 듣는 이름인데.”

    “신령족의 대족장이에요.”

    클란드라도 신령족에 대해서는 들었다. 카이가 알려줬던 대로라면 신령족의 전력은 제국과도 비견될 정도였다. 8성 전사와 8성 주술사를 데리고 있다고 했으니까.

    그런 곳의 대족장이라면 황녀인 자신보다 더 높은 위치였다. 황제에 버금가는 존재.

    그렇다고 해도 자신이 여자로서 매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니 대체 어떤 여인이 카이의 마음을 빼앗았는지 정도는 구경하러 갈 생각이었다.

    “이 청첩장 누가 받나요?”

    “제 지인들이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황제 폐하와 검성에게도 전하기는 할 생각이에요. 오지는 못하겠지만.”

    “또 받는 이가 있나요?”

    “그리고 성녀에게도 전해줄 생각입니다. 그 정도가 전부에요.”

    지인이라고 해봐야 얼마 되지도 않는다. 대부분 카이의 영지에서 머물고 나머지래 봐야 제국에 있는 이들을 제외하면 성녀가 유일했다.

    카이의 대답을 들은 클란드라는 미소를 지었다.

    8성 대마법사. 그것도 대륙에서 최강을 논할 사내답게 그와 친분이 있는 이들은 모두 대륙에서 쟁쟁한 이들이었다.

    자신에게도 청첩장이 왔다는 건 그만큼 친분이 있다는 얘기.

    어쩌면 이 청첩장을 받은 것 자체가 자신이 그와 그만큼 가깝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다. 아마 공국을 받는 데도 큰 도움이 되리라.

    “고마워요. 초대해줘서. 늦지 않게 갈게요.”

    “영지로 오시면 됩니다. 이것들은 황제 폐하와 검성에게 전해주시죠.”

    직접 청첩장을 전해줄 수도 있지만, 클란드라를 통해서 전해주는 것이 아무래도 그녀에게 도움이 될 터.

    테오르에게 말했던 것처럼 카이는 그녀에게 마음의 빚이 있었다. 그녀가 공국을 손에 쥐는 것이 꿈이라면 그 꿈을 직접 이뤄주지는 못해도 한 손 거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제가 꼭 전할게요.”

    “그럼 그때 뵙죠.”

    카이가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던 클란드라는 손에 쥔 청첩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솔직히 결혼까지 생각했었다. 공국을 얻기 위해서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는데 그의 마음에 자신이 없는 것을 깨닫고 깔끔하게 포기했었다.

    그런데 묘하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랑 결혼할 줄은 몰랐으니까.

    그래도 이만큼이나 도와준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아직 공국을 손에 넣는 것은 포기하지 않았다.

    한 달의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났다. 카이는 자신의 영지를 찾아온 이들을 보면서 뺨을 긁적였다.

    “저기 청첩장을 보내기는 했지만, 오실 줄은 몰랐는데요.”

    카이는 테오르가 데리고 온 일행 중 하나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자네 결혼식이라는데 안 올 수가 있나.”

    태연하게 너스레를 떠는 클레바논 황제와 그 뒤에 선 검성 맥클렌, 수몰의 대마법사 테오르, 클란드라를 보니 청첩장을 받은 이는 모두 온 셈이다.

    메르샤가 보낸 비공정으로 도착한 성녀까지 친다면 청첩장을 받은 이들은 모두 참석하기로 했다.

    카이는 씨익 웃고는 손을 내밀었다.

    “그럼 같이 가시죠.”

    카이의 손길을 따라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공간에 균열이 일어나며 그 반대편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걸 보고 클레바논이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물었다.

    “이, 이게 뭔가?”

    “게이트입니다. 먼저 건너가시죠.”

    클레바논 황제는 그 말에 당황하다가 일단 걸음을 옮겼다. 공간의 균열을 건넌 것일 뿐이었는데 전혀 다른 곳에 도착했다. 화려한 꽃이 도시 전체를 꾸민 곳이었기에 클레바논 황제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뒤를 따라 일행이 하나둘 건너왔다.

    카이의 일행마저 모두 건너온 후에야 카이가 넘어왔다. 균열이 닫히는 것을 보고 클레바논 황제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게이트가 대체 뭔가? 어떻게 공간 이동을 이렇게 할 수 있는 건가?”

    특별히 소모된 것도 없이 공간 이동을 할 수 있었다는 것에 놀란 클레바논 황제에게 카이가 담담히 답했다.

    “공간을 넘을 수 있는 문입니다. 게이트. 새로 개발한 마법이죠.”

    돌싱 후 대마법사-언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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