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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113화 (113/150)
  • 113화 최후

    비기니움이라 이름 지은 우연에 의해 만들어진 보석을 보며 카이는 연구를 거듭하고 있었다. 비기니움이 마력을 몰아내는 힘은 압도적이라 아무리 카이라고 해도 마력을 이용해서는 그걸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행이라면 독존한 이후로 그걸 손에 쥐어도 문제가 없다는 정도였지만, 그건 단순히 품고 있기에도 위험한 물건이었다. 대체 어디에 써야 할지 몰랐지만, 우연히 손에 넣었다고 그냥 지켜만 볼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이것을 이용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는 것이 마법사의 숙명이었다.

    그래서 비기니움을 바라보던 중에 문득 간지러움을 느꼈다. 마치 머릿속을 뭔가 살살 긁는 느낌.

    그것은 불쾌하기보다는 애처롭고 그리운 느낌이라 당혹스러웠다.

    독존하는 자신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이 뭘까?

    그 느낌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은 계속해서 자극이 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공간 이동으로 영주성의 정상에 오른 카이는 그 감각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보이는 대수림을 눈에 담은 카이의 미간이 좁혀졌다. 대수림에서 뭔가가 자신을 부르고 있다.

    신령이었다면 이럴 일이 없으니 대체 뭔가 싶었던 카이는 일단 확인해 보기로 했다. 방향만 주어지고 거리감도 없지만, 신령족을 찾아가면 뭔가 단서가 나오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대로 공간 이동을 펼치려 했다. 그런데 칼리의 곁으로 공간 이동 좌표가 잡히지 않았다. 뭔가 좌표를 흐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카이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래서 좌표를 흐리는 마력을 감지하고 그대로 잡아 찢었다.

    이만한 거리를 뛰어넘어 그 마력을 찢어내는 것만 보아도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 수 있었지만, 그런 것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칼리의 곁으로 공간 이동한 카이의 눈에 들어온 것은 머리를 잃고 허물어지는 거대한 나무 골렘이었다.

    그리고 거대한 검은 불꽃의 뱀.

    그 형상만 보아도 무슨 일인지 짐작이 갔다.

    “이건 또 뭔 일이야?”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카이는 곧장 태초의 얼음 결정을 소환하고는 거대한 얼음 창을 만들었다. 얼음 창이 쩍 벌린 검은 불꽃의 뱀을 관통했고, 통째로 얼려버렸다.

    태초의 얼음 결정을 제대로 사용한 만큼 그 위력은 8성급 마법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검은 불꽃의 뱀 머리 위에 서 있다가 뛰어올라 간신히 얼어붙는 것을 피한 것은 카이가 지금까지 찾아 헤매던 자였다.

    “네가 어떻게 여기에?”

    “너야말로 여기서 뭐 하냐?”

    카이는 태초의 얼음 결정을 손에 띄운 채로 바헬을 바라보았다. 바헬은 카이를 내려다보다가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외부로 연락을 취하는 것도 금하고, 안으로 진입하는 것도 금하기 위해서 우로보로스가 힘을 쓰고 있었다. 신령족의 전사들이 마비 독을 먹은 순간 외부로 모든 연락을 막고 진입을 금하는 결계는 우로보로스가 직접 힘을 써야만 했다.

    그 안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신지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인 대족장을 손에 넣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작전은 보기 좋게 실패했다.

    상성 상 우위에 있었고, 술법 대결에서도 승리를 거머쥐었음에도 난입한 저 카이라는 놈 때문이었다.

    놈은 시간과 공간에 간섭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대마법사.

    자신이 키운 호랑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지금 다시 보니 뭔가 달라보였다.

    예전이라면 동등한 위치에서 술식간의 우열로 승패가 갈렸다면 지금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 그 승패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카이는 바헬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이상 도망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보다 다른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무슨 수작을 부린 건지 대충 짐작이 가는군.”

    신령족의 도시 전체를 아우르는 결계가 펼쳐져 있었다. 그러니 직접적인 소통 외에 다른 방식으로 위험을 알린 것이었겠지.

    그래도 대단하다고 할만한 것은 이만한 결계를 뚫고 자신에게 연락을 취했다는 점이었다.

    카이는 사방으로 마력을 뻗어냈고, 곧 위훌루와 싸우고 있는 자도 감지해 낼 수 있었다.

    8성에 이른 데다가 퀸과 대련을 통해서 경험도 다른 이들보다 월등한 위훌루가 열세일 정도인 상황.

    카이는 그런 존재를 하나 떠올렸다.

    “투신까지 데리고 온 건가?”

    검성과 그 이름을 같은 위치에 올려놓고도 토벌당하지 않은 강자. 그런 강자까지 ‘뱀’의 편에 선 건가?

    카이의 중얼거림을 들은 바헬이 검은 불꽃을 소환하며 답했다.

    “그래. 곧 전사장을 죽이고 합류할 거다.”

    자신 혼자서는 카이를 감당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둘이라면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아니,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떠든 바헬이 시간을 끌고자 하는 모습에 카이는 픽 웃음을 흘렸다.

    왕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바헬은 그 소문보다도 더한 절망을 보여주었다. 고작 두 번 만에 자신은 바닥에 쓰러졌고, 그런 자신의 마력을 봉했던 자다.

    그랬던 자가 이제는 확실히 눈 아래로 보였다.

    그것은 태초의 속성을 하나하나 깨우치고, 독존하며 자신을 확실히 보았기 때문이리라.

    모든 속성을 깨우쳐 전인미답의 9성에 오른 것이 아니지만, 확실히 다른 눈높이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뱀’의 진체를 만나지 않는 한 위험할 일은 없으리라.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이미 테오르와 맥클렌. 둘을 동시에 상대할 자신이 있었던 카이였다.

    이곳에서 ‘뱀’의 가장 큰 전력인 이 둘을 죽여버리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굳이 둘을 동시에 상대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이곳에 있는 이들도 살려야 할 것 아니겠는가?

    ‘뱀’이 무리해서 이곳을 노린 것은 아마도 신지를 탐냈기 때문일 터.

    그러니 이곳에서 바헬을 죽인다.

    카이가 살의를 품는 순간 바헬은 섬뜩함을 느꼈다. 마치 세계가 자신을 노리는 것 같은 섬뜩함.

    바헬은 발작적으로 수인을 맺어갔다.

    검은 불꽃의 뱀은 목각인형을 상대하기 위한 물리력까지 필요해서 만들었던 것. 그렇다면 지금은 대인전으로 최강의 마법을 만들어내야 할 때였다.

    바헬의 주위를 휘돌던 검은 불꽃이 그의 가슴 앞에 모이며 무시무시한 열량을 내뿜었다. 극고온의 구체를 보면서 카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태초의 불꽃을 만들어 카이에게 영감을 주었던 바헬은 어째서인지 실력이 퇴보했다.

    지금 보여주는 저 검은 불꽃도 자세히 보면 태초의 어둠 속성을 이용한 것 같기는 하지만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 흉내만 낸 것에 지내지 않았다.

    카이의 손에서 태초의 불이 타올랐다.

    “네가 준 영감이다. 어쩌면 네가 도달했을지도 모를 경지지.”

    카이의 중얼거림에 바헬이 인상을 찌푸렸다. 되살아나면서 ‘뱀’의 힘을 얻은 만큼 자신이 포기한 것도 있음을 알았다. 죽음 직전에 일으켰던 그 불꽃을 다시는 소환하지 못할 거라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포기하기에는 일렀다. 자신이 손에 쥔 것을 최선을 다해서 갈고 닦아 무기화하는 것이 마법사.

    바헬은 그래서 어둠을 이용한 불꽃을 만들어냈다. 그것만으로도 자신이 예전에 사용하던 마법보다는 더욱 강해졌다는 것을 알았다.

    바헬이 원래 쓰던 도시를 파괴할 때나 쓰던 마법.

    염열파.

    이 구슬이 터지는 순간 뿜어져 나가는 열기의 파도는 그대로 도시 하나를 날려버릴 정도였다. 게다가 ‘뱀’의 힘을 빌려서 얻어낸 어둠의 힘까지 더한다면 도시를 온전히 검은 불꽃으로 태워버릴 수 있다.

    그런 자신감을 내보일 수 있는 마법을 꺼내 놓고도 카이가 소환한 태초의 불을 보니 마음이 흔들렸다.

    저것은 자신이 죽음의 문턱에서 소환해 냈던 불꽃. 그 괴물 같던 소녀 검사조차 베어내지 못했던 불꽃을 꺼내 드는 것을 보니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자신이 먼저 완성한 마법을 쓴다.

    어차피 다른 수도 없으니 이것으로 승부를 가릴 계획이었다.

    염열파의 구체가 떨어져 내릴 때 카이가 태초의 불꽃을 양손으로 맞잡았다. 그 손바닥을 떨어져 내리는 염열파를 향해 살짝 벌려 보이는 것이 카이가 한 전부였다.

    카이가 벌린 손바닥 사이로 한줄기 섬광처럼 불꽃의 선이 그어졌다. 그 선은 그대로 염열파에 직격했고, 그대로 구체를 관통했다.

    그리고 바헬의 가슴마저 관통한 불길은 천장을 뚫지도 않은 채 흩어졌다.

    완벽하게 힘을 통제하는 모습에 바헬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가슴을 관통한 곳에서 시작한 불길에 바헬의 몸이 부르르 떨릴 때 그가 날린 염열파는 카이의 불길에 삼켜져 흩어졌다.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이 이리도 허망하게 사라지는 것에 바헬은 죽음보다도 큰 허망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제야 저것이 자신이 마지막에 깨달았던 태초의 불꽃을 제대로 활용한 방식의 마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주문 영창도, 수인도 필요없을 정도로 간단하면서도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강력한 위력을 낼 수 있는 힘.

    부활은 자신이 취했던 힘마저 돌려주지 않고 자신을 억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8성에 달한 대마법사를 손에 넣기 위해서였음도 알았다.

    공간 이동을 온전히 쓰기 위해 자신의 몸을 거둬들였다. 자신의 가능성을 빼앗은 채로.

    그것이 모두 ‘뱀’의 계획이었음을 깨달은 바헬은 자신의 가슴이 타들어 가는 고통보다 ‘뱀’에게 놀아났다는 것에 대한 분노가 더 커졌다.

    부활했을 때는 기뻤다. 자신이 마지막에 얻었던 영감과 경지에 다시 닿지 못해도 괜찮다고 여겼다.

    자신을 죽인 카이와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 거라 여겼으니까. 육체도 강해진 지금이라면 다시 만났을 때 충분히 싸울 수 있을 거라 여겼기에 기뻐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뱀’이 자신을 부리기 위한 농간이었음을 깨달았다.

    자신이 마지막에 닿았던 그 힘은 어쩌면 ‘뱀’이 가지지 못하게 했을 수도 있음을 깨닫자 바헬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가슴에 난 구멍에 오른손을 쑤셔 넣었다.

    그렇게 꺼내 든 것은 ‘뱀’이 자신을 부활시키기 위해 집어넣은 핵이었다.

    이 핵을 넣으며 ‘뱀’도 힘을 꽤 잃었었던 만큼 강렬한 힘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 핵이 구멍이 나 있었다. 조금 전에 태초의 불꽃을 집약시켜 만들어낸 공격에 뚫린 구멍으로 ‘뱀’이 욱여넣었던 힘이 슬금슬금 나오다가 불길에 타들어 가는 중이었다.

    그걸 바라보던 바헬은 자신의 머릿속에 울리는 우로보로스의 목소리를 들었다.

    <터트려라!>

    그것이 곧 죽음과 직결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바헬은 그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제야 자신의 영혼이 ‘뱀’의 하수인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그 모든 내막을 깨달은 바헬은 양손으로 핵을 끌어안았고, 스스로 불태웠다.

    <무슨 짓이냐!>

    바헬은 우로보르스의 명령에 저항하며 스스로 불태우면서 미소를 지었다. 지금 일으킨 불꽃은 자신이 죽음에 직면했을 때 일으켰던 불꽃과 같았다.

    태초의 불길을 다시 일으킨 바헬은 흡족한 미소를 지은 채 핵과 함께 타올랐다.

    백 년을 넘는 세월 대륙을 질타하며 온갖 행패를 부리고 다녔던 8성급 대마법사 바헬의 마지막은 스스로 결심한 대로 이뤄졌다.

    자신의 운명은 자신의 결정으로.

    덕분에 ‘뱀’의 마지막 안배는 제대로 이뤄지지도 못하고 사라졌다.

    카이는 잠시 바헬이 잿더미가 되어 사라진 곳을 바라보다가 감각을 일깨웠다.

    바헬이 죽었다면 ‘뱀’이 가진 가장 강력한 패는 투신 헥토르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그 마저 죽인다면 ‘뱀’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줄어들 터.

    그래서 감각을 일깨웠는데 투신 헥토르의 기척은 사라져있었다. 소란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곧 소란이 잠잠해지고는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렇게 나타난 것은 위훌루.

    부서진 도끼를 쥔 그는 카이를 발견하고는 그제야 안도했다.

    “자네가 와줬군.”

    “누군가 불러서 왔지. 그런데 누가 날 부른 거지?”

    우로보로스가 펼쳐 놓은 결계도 사라졌다. 그 결계의 힘이 얼마나 강력했던지 기억한 카이는 그 결계를 뚫고 자신을 부른 감각을 선명히 기억했다.

    제대로 된 의사 전달은 아니었지만, 자신을 부른 그 느낌을 기억한 카이의 물음에 모두가 서로를 돌아보았다.

    “뭐야? 여기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어?”

    그때 마야가 고개를 돌려 칼리를 보았고,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배를 어루만졌다.

    돌싱 후 대마법사-내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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