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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112화 (112/150)
  • 112화 위기

    전사 중 태반이 중독되어 마비됐다. 위훌루 휘하에 있는 이들은 최소 5성 이상의 인물들이었는데 마비 독에 저항도 제대로 못하고 굳는 것을 보면 보통 독이 아니었다.

    그나마 6성과 7성들은 어떻게든 몸을 움직일 수 있지만, 평시 전력의 반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위훌루는 식사를 함께 준비하지 않았다. 자신이 따로 요리해 먹기에 이번에 독에 당하지 않았지만, 상황은 가벼이 볼 일이 아니었다.

    분명 ‘뱀’과 연관이 있었다.

    위훌루가 길게 휘파람을 불자 도시 전체가 깨어난다. 전사단의 핵심 전력이 모인 곳에 치명적인 독이 퍼졌다고 해도 도시 외곽을 지키는 이들이 버티고 있었다.

    식사에 독이 들어 있었다고 해도 외곽을 지키던 이들은 독에 당하지 않았다. 식사 시간을 조절하고 있었으니까.

    비상 태세를 갖추고 움직이려던 위훌루가 그 자리에서 멈춰 뒤돌아보았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다가오는 자가 있었다. 흉흉한 기세만 보아도 느껴진다.

    결코 자신의 밑이 아니었다.

    “타베시! 대족장을 지켜라!”

    타베시가 고개를 끄덕이고 움직일 때 마비된 전사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거구의 사내가 날아들었다. 마치 바위처럼 단단해 보이는 사내는 불문곡직하고 그대로 다가와 주먹을 내뻗었다.

    위훌루가 도끼를 휘둘러 그를 베어갔다.

    쩌엉!

    역시나 시간의 벽을 부수고 뻗어온 주먹이었기에 간신히 도끼로 받아낼 수 있었다.

    충분히 튕겨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힘이 부족하다고 여긴 적이 없었다.

    일족 최강의 자리는 언제나 그였으니까.

    그런데 이 자는 아니다. 힘에 있어서는 가히 압도적.

    쩡! 쩌저저정!

    삽시간에 공격이 오가는 동안 놈의 뒤편으로 그와 비슷한 복장을 한 자들도 달려들었다. 그자들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는데 7성이 둘에 6성에 이른 자가 열이나 되었다.

    고작 그 정도 인원으로 신령족을 공격한다는 것은 멍청한 짓이지만 마비 독에 당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지금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평시의 반도 힘을 못내는 이들을 향해 적들의 공격이 쏟아졌다. 이대로 죽는 건가 싶을 때 나무뿌리가 솟구치며 그들을 공격했다.

    그들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시간은 끌어줄 수 있었다.

    주술사들은 대부분 식사를 자신들이 직접 챙겨 먹기에 독에 당한 이들이 많지 않았다. 덕분에 주술사들이 도와 전장이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검은 불길이 날아들었다.

    주술사를 표적 삼아 날아온 검은 불길이 그대로 주술사들을 태웠고, 머리 위로 날아 지나가는 놈을 볼 수 있었다.

    “바헬!”

    얼핏 보았지만, 확실했다. ‘뱀’의 편에서 지금까지 그들을 괴롭혔던 자다.

    그자가 날린 공격에 주술사 태반이 죽어 나갔다. 잠깐 균형이 이뤄지던 것이 다시 기울어졌다.

    그렇게 정신이 팔린 사이에 상대의 주먹이 도끼의 면을 후려쳤고, 제대로 방비하지 못한 도끼날에 쩍쩍 금이 갔다.

    주먹으로 싸우는 자와의 싸움에서 무기를 잃는다는 것은 위험한 일.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온전히 전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 자를 최대한 빨리 제압하는 것이 모두를 살리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은 위훌루의 기세가 일변했다.

    “그래야지. 이 싸움에 모든 걸 걸어라!”

    투신 헥토르가 껄껄 웃으며 더욱 사납게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세렌티는 차기 제사장이 유력하다고 알려진 인물. 그녀가 제사장 마야가 강력한 술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앞으로 나섰고, 타베시도 허리에 차고 있는 도끼를 연달아 던져냈다.

    바헬이 도끼를 쳐내는 사이에 타베시가 머리에 두르고 있던 늑대 가죽의 눈이 시퍼렇게 빛나며 그의 몸에 깃들어 있던 독기가 빠져나갔다.

    신령 중 지금 힘을 제대로 빌려줄 수 있는 것은 늑대뿐이고 늑대 가죽을 쓰는 것은 지금 타베시뿐이었다. 그렇기에 위훌루가 보냈던 것.

    타베시가 온전히 힘을 되찾아 던지는 도끼는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러나 바헬은 비스듬히 만든 쉴드로 간단히 흘려냈다.

    시간을 늘릴 수 있는 8성을 7성이 잡으려면 그 마력이 바닥이 나도록 시간을 끌어야만 했다. 그래서 8성은 7성이 잡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

    그러나 지금은 물러날 수 없었다.

    타베시가 신령의 힘을 빌렸다고 해도 시간을 끄는 것이 전부였다. 그때 옆에서 세렌티가 손바닥을 단검으로 베어서 피를 뿌렸다.

    사방에 뿌려진 핏물에서 혈목이 일어나 바헬을 덮쳐갔다.

    “크흐흐. 귀엽구나.”

    검은 불꽃이 혈목을 삽시간에 잿더미로 만들었다. 주술사들이 사용하는 술법이 대부분 신령의 숲에 기원하는 바, 그들이 쓰는 술법은 목 속성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바헬은 화 속성 마법으로 8성에 오른 대마법사. 상성 상 우위에 있는 그가 패할 일은 거의 없었다. 지금까지 직접 이곳을 급습하지 않았던 것은 전사장인 위훌루 때문이었지, 제사장 마야가 문제가 아니었다.

    투신 헥토르와 그를 따르는 이들이 위훌루와 전사를 상대하는 동안 자신이 신령족의 주술사들을 처리하면 될 일이다.

    바헬이 세렌티의 마법을 태우는 사이에 다가온 타베시의 도끼가 관자놀이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바헬은 코웃음을 치고는 시간을 늘리며 그 공격을 피해내려고 했다.

    그때 불쑥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나무뿌리가 있었다. 그 움직임은 늘린 시간 속에서도 무서울 정도로 빨랐는데 그걸 인지한 순간 바헬은 시간을 늘리던 것을 멈추고 뒤로 물러났다.

    바헬이 있던 자리를 꿰뚫은 나무뿌리에서 그가 피한 방향으로 재차 나무뿌리가 뻗어 나왔다. 바헬이 일으킨 검은 불꽃이 나선으로 회전하며 날아드는 나무뿌리를 모두 태웠을 때 다리를 베어오는 공격이 있었다.

    나무뿌리를 피해서 달려드는 타베시는 시공간에 간섭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바헬과 마야의 공방에 몸을 집어넣어 도끼를 휘두를 정도는 되었다.

    어떻게든 빈틈을 만들어내려는 모습에 바헬은 잠시 고민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대족장 칼리일 뿐 이들의 죽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 무리해서 싸움을 이어가야 할지 아니면 대족장만 노려야 하나 잠깐 고민이 들었다.

    재차 뒤로 물러나던 바헬은 뒤에서 덮쳐오는 혈목과 사방에서 조여오는 마야가 소환한 무수한 나무뿌리들을 보며 살짝 인상을 굳혔다.

    이곳은 신령의 숲에서도 가장 강하게 신령의 힘이 깃들어 있는 곳. 그 힘을 빌려 쓰는 제사장보다 상성 상 우위에 있지만, 태워도 태워도 계속 자라나는 나무뿌리를 보니 짜증이 일었다.

    대족장을 살려둬야 했기에 힘을 쓰는 것을 주저했지만, 이러다가는 오히려 자신이 잡힐 판이었다.

    7성 둘의 보조를 받는 마야는 생각보다 까다로운 상대였다. 힘을 아끼면서 상대할 때가 아니다.

    바헬의 눈동자가 뱀의 눈처럼 길쭉하게 갈라지면서 그의 전신에서 어둠이 뻗어 나왔고, 검은 불꽃이 그 주위를 휘감았다가 폭발했다.

    콰아앙!

    그 폭발에 휩쓸린 나무뿌리가 박살 나 커다란 공터가 만들어졌고, 사방에 붙은 검은 불꽃은 계속해서 뻗어나가며 주위를 태우기 시작했다.

    연기조차 내지 않고 완전히 연소시키는 검은 불꽃을 보며 마야의 인상이 굳어졌다.

    “마법사가 자신을 내려놓은 것이냐!”

    “남의 힘을 빌려 쓰는 건 너나 나나 마찬가지가 아니었던가?”

    오히려 반문한 바헬은 폭발에 휘말려 튕겨 날아간 타베시를 향해 불꽃의 창을 만들어 던졌다. 타베시가 황급히 도끼를 들어서 베어내려 했지만, 도끼를 그대로 쪼개며 날아간 불꽃의 창이 그의 어깨를 관통했다.

    타베시는 어깨에 검은 불꽃이 닿는 것을 본 순간 반대 손으로 도끼를 뽑아서 자신의 팔을 잘랐다.

    어둠의 불꽃은 태초의 어둠의 성질을 가지고 있었고, 닿은 모든 것을 태울 때까지 멈추지 않을 터였다. 타베시의 마력마저 연료로 태워버릴 것이었는데 눈치 빠르게 팔을 잘라내 치명상은 피했다.

    그러나 팔을 잘라낸 이상 타베시는 이 전투에 끼어들지 못한다. 저 몸으로 끼어들었다가는 삽시간에 불꽃의 제물이 될 테니.

    단번에 대규모로 나무뿌리를 파괴한 데다가 검은 불꽃이 주위를 태우고 있으니 마야도 섣불리 손을 쓰지 못했다. 지금의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던 바헬이 재차 수인을 맺었다.

    8성에 오른 대마법사가 수인까지 맺어가며 마법을 펼치려고 하자 마야도 지팡이를 흔들며 빠르게 주문을 외웠다. 검은 불꽃에 타던 나무뿌리가 스스로 잘려 바닥에 떨어졌고, 다시 나무뿌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로 한번 격돌해 보았기에 어느 정도 상대를 가늠할 수 있게 된 지금 둘이 다시 전력으로 마법과 술법을 준비하는 것을 보고 세렌티가 뒤로 물러나 마야의 옆에 섰다.

    “제 주력을 이용하세요.”

    “아직 네 주력을 써야 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시간을 오래 끌어서 좋을 것은 없어 보여요.”

    마야는 잠시 주저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보조해라.”

    마야가 펼치는 술법은 대규모 술법으로 속성의 열세를 뒤집어 엎을 정도로 강력한 술법을 준비 중이었다. 만약 자신이 패한다면 대족장의 운명이 어찌 될지는 불보듯 뻔했다.

    그래서 그녀는 이번 일에 목숨을 걸었다.

    마야가 펼친 술식이 완성되며 주위의 나무뿌리들이 꼬이면서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것은 높은 천장을 넘어선 거체.

    목 속성 술법의 끝자락이라고 할 수 있는 목각인형의 술.

    20미터에 가까운 목각인형이 주먹을 내리쳤다. 그 거체에서 뿜어내는 물리력은 불꽃으로 태운다고 해도 일시에 태워 사라지게 하지 못한다면 통하지 않을 터.

    바헬은 그제야 마야가 펼친 술법의 가치를 깨달았다.

    단순히 시간을 끄는 것이 아니라 이 자리에서 자신을 죽이고자 마음을 먹고 펼친 술법.

    상성의 우위조차 무의미해질 정도의 규모를 지닌 술법. 그러나 자신이 펼칠 술법 또한 소환의 술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를 감싸고 있던 검은 불꽃이 대번에 규모를 키웠고, 그것은 거대한 검은 불꽃의 뱀이었다.

    콰드드득.

    날아들던 목각인형의 주먹을 피해 그 팔을 휘감고 타고 올라가는 검은 불꽃의 뱀은 그 길이만 20미터가 넘었다. 체급에서는 목각인형에 비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었으나 상성 상 우위에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우로보로스의 힘을 가장 쉽게 빌려오는 형태였다.

    덕분에 목각인형의 팔이 그대로 잿더미가 되었고, 그런 검은 불꽃의 뱀 머리 위에 선 바헬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대로 죽어라!”

    바헬의 말은 마치 선언과도 같았다. 검은 불꽃의 뱀이 그대로 목각인형의 머리를 물어뜯었다. 목각인형의 머리가 단번에 타서 잿더미가 되더니 더는 형상을 유지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그 모습에 마야는 입술을 짓씹어야만 했다.

    바헬은 단순히 하수인이 아니라 ‘뱀’의 힘을 온전히 얻은 8성급 대마법사라는 것을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 펼친 저 검은 불꽃의 뱀은 우로보로스의 힘을 가장 쉽게 빌려오는 형태.

    그래서 목각인형을 태워버릴 정도로 강력한 소환을 성공한 것이었다.

    마야가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고 해도 지금 당장은 저걸 막을 술법이 없었다.

    바헬이 승자의 미소를 지은 채 손짓하자 검은 불꽃의 뱀이 그대로 입을 쩍 벌리고 마야를 덮쳐갔다. 마야가 팔뚝을 물어뜯으려고 하는 찰나 공간의 균열을 감지했다.

    대족장 칼리의 뒤에서 일어난 공간의 균열에 놀란 마야가 황급히 고개를 돌리다가 눈을 크게 떴다.

    “이건 또 뭔 일이야?”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무시무시한 냉기의 창이 뻗어 나와 그대로 검은 불꽃 뱀의 벌어진 아가리를 관통했다.

    쩌저저적!

    검은 불꽃 뱀이 그대로 얼어 터져 나갈 때 그 머리 위에 타고 있던 바헬이 황급히 뛰어올라 간신히 얼어붙는 것을 피하고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네가 어떻게 여기에?”

    카이가 태초의 얼음 결정을 소환한 채 바헬을 바라보며 오히려 되물었다.

    “너야말로 여기서 뭐하냐?”

    돌싱 후 대마법사-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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