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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110화 (110/150)
  • 110화 독존

    바람이 자유로웠다면 물은 고요했다.

    끔찍할 정도의 고요함.

    그러나 그 고요함 속에 깃든 광포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카이는 그 광포함마저 마주했다.

    하나만 따라가서는 안 된다. 온전한 태초의 물을 얻기 위해서 카이는 그 광포함마저 마주했고, 그 광포함 속에서도 고요함을 유지했다.

    그것이 온전히 태초의 물을 마주하는 자세였는지 이해도가 크게 오르면서 카이는 그 물의 힘을 손에 고스란히 쥐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태초의 능력을 소환할 수 있게 되었다.

    ‘감응’이 굉장히 위험한 일이기는 했지만, 그 위험을 마주하는 만큼 카이는 자신이 성장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걸 깨달은 카이가 수면 위에 누운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지 밤이 되어 있었다.

    밤하늘에 별들이 쏟아지듯 떠 있었고, 그 별이 반사되는 수면 위에 누운 카이는 온전히 우주 속에 홀로 서 있는 자신을 느꼈다.

    물의 고요함과 광포함을 마주했기 때문인지 우주 속에서 홀로 떠 있는 것 같은 이 순간에도 차분했다. 눈을 뜨고 별빛을 보면서 카이는 자신을 돌아보았다.

    지금까지 ‘감응’을 통해서 태초의 속성에 접속해 왔던 카이는 그간 조금씩이지만 흔들려왔다. 그 속성에 ‘감응’한 만큼 그 속성이 가진 성격을 조금씩 닮아 왔다.

    자신도 모르게 닮아가던 것.

    하지만 이렇게 홀로 우주에 떠 있다 보니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오직 자신.

    이 우주에 홀로 빛나는 자신.

    그 흔들림 없는 자신을 느낀다.

    독존(獨存).

    흔들려 왔던 자신을 온전히 수습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멍하니 별의 움직임을 바라보던 카이가 정신을 차린 것은 다시 해가 떠오를 때였다.

    아침 해가 밝아와 별빛이 흐려질 때 정신을 차린 카이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늑대의 신령이 아무렇지 않게 태초의 바람을 다루던 것을 이해했다. 온전한 자신이 성립되고 나서야 태초의 속성을 깨워도 흔들리지 않음을 이해했던 것.

    카이는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았다. 공고하게 다져진 자신의 내면을 본 카이는 이제 여섯 개까지 태초의 속성을 다룰 수 있게 되었음을 알았다.

    태초의 물을 깨달으며 다섯 개로 늘었던 것이 자신을 온전히 돌아보는 것만으로 다시 하나가 늘었다.

    어떤 태초의 속성을 깨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흔들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자신이 다루는 일곱 가지 속성을 동시에 다루기까지 이제 하나 남았다. 그걸 깨달은 것만으로 이번 벨트리안 호수행은 성공적이었다.

    카이는 벨트리안 호수를 바라보다가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넓은 벨트리안 호수의 수면을 타고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던 카이는 미소를 지은 채 가볍게 바람을 불러와 몸을 말리고는 그대로 공간 이동을 통해 영지로 돌아왔다.

    카이가 며칠은 있다가 올 거라고 해서 그런지 새벽의 영지는 조용했다.

    카이는 자신의 방으로 부드럽게 날아갔는데 침대에는 퀸이 앉아서 명상에 잠겨 있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의 눈은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아빠. 왔어?”

    “그래. 안 자고 있었어?”

    “응. 올 때까지 안 자려고 했지.”

    인공 영혼인 그녀는 잠을 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으나 그녀는 카이가 자는 시간에 맞춰서 옆에 가만히 누워 있는 것을 좋아했다.

    카이도 그걸 알기에 맞춰줬던 것.

    카이는 그녀의 말에 두르고 있던 로브를 벗고 침대에 누웠다. 이미 오는 길에 바람으로 모두 말리고 왔기에 침대가 젖는 일은 없었다.

    카이가 침대에 눕자 그의 팔베개를 하고 퀸이 누웠다. 카이는 그런 퀸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헬리움이 더 필요하지는 않아?”

    퀸은 피식 웃고는 물었다.

    “내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왔어? 사실 헬리움이 필요해.”

    8성에 오른 뒤로도 퀸은 계속 성장 중이었다. 그녀의 성장에 맞춰서 필요한 헬리움의 이유는 제대로 된 이해가 없었지만, 그녀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들어줄 생각이었다.

    “이번에 제국에게서 받을 것이 있으니 트리달리움 위주로 받아서 만들어줄게.”

    “고마워.”

    카이가 눈을 감자 퀸은 고개를 돌려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검성 맥클렌과의 대결을 통해서 많은 것을 깨달았던 퀸은 그와의 거리가 좁혀졌다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태초의 물을 얻으러 가기 전만 해도 한 걸음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던 그가 지금은 까마득하게 멀리 느껴진다. 이렇게 바로 옆에 있어도 그는 저 멀리 있는 것 같은 불길함에 그녀는 카이를 꼭 끌어 안았다.

    킹을 옆에서 지켜주는 퀸처럼.

    자신의 이름처럼 그의 곁에 가장 어울리는 것은 자신 뿐이라고 여기며.

    제국에서 클란드라와 테오르가 다음 날 도착했다.

    카이가 태초의 물을 깨닫는 것이 늦었다면 엇갈렸을 정도의 시간.

    카이는 그들을 자리에 안내하고는 테오가 타온 차를 내주었다. 클란드라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카이를 바라보다가 불쑥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카이가 바라보자 옆에 있던 테오르가 대신 물었다.

    “뭔가 이상한데?”

    “뭐가 말입니까?”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격이라고 해야 하나?”

    가장 9성에 가까운 인간이라고 그를 평가했던 테오르조차 지금 카이를 보면서 위축되는 것을 느꼈다. 싸워서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차이가 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린 아이가 마치 거인을 마주한 느낌.

    8성에 이른 대마법사의 감이란 어떤 때는 예언보다 정확했다.

    그러나 고작 이틀 지났다. 카이가 떠나고 황궁에서 1조 프랑을 준비하는 시간이.

    현물로 대체할 때는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는지 황궁 창고의 재고 현황을 확인하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그 중에 카이가 원할만한 물건들을 추려내는 데 고작 이틀 밖에 걸리지 않은 것은 클란드라의 능력 덕분이었다.

    그녀가 만약 재상이 된다면 제국은 크게 성장할 거라는 말이 많았지만, 그녀는 황녀였다. 황권을 위협할 수 있는 인물.

    그렇기에 그녀는 재상에 오를 수 없었는데 그런 그녀가 거의 밤을 새워가며 준비해오는 동안 카이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앞에 앉아서 미소를 머금은 채 차를 마시고 있지만, 그는 이미 인세에서 반쯤 벗어난 느낌을 주고 있었으니까.

    클란드라가 그렇게 느낄 정도로 카이는 달라져 있었다.

    카이는 그들의 반응에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태초의 속성을 깨우치면서 오롯한 자신을 깨우친 덕분이었으니까.

    그것은 태초의 속성을 깨우는 것보다 훨씬 큰 도움이 되었다. 다시는 태초의 속성에 휩쓸릴 일이 없을 정도가 되었으니까.

    테오르는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정말이지 자네는 내 예상을 언제나 뛰어넘는군.”

    카이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 다른 답은 하지 않았다. 그를 바라보던 클란드라가 가방에서 서류 하나를 꺼내서 건넸다.

    “황궁에서 내드릴 수 있는 현물 목록과 보고의 보물들이에요. 만약 현금으로 원하신다면 절반을 바로 드리고, 나머지는 2년 동안 나눠서 드렸으면 해요.”

    아무리 제국이라고 해도 갑자기 뚝딱 1조 프랑을 뽑아낼 수는 없다. 그만한 돈을 구하려면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카이도 그걸 이해했다.

    사실 태초의 속성을 깨우친 이후로 카이는 황궁 보고에는 볼 일이 없었다. 그 어떤 아티펙트도 카이가 만드는 것에 따르지는 못하니까.

    그래서 카이는 현물을 위주로 살폈다. 최상급 마정석부터 시작해서 구하기 어려운 물건들이 목록에 차곡히 쌓여 있었다.

    그제야 새삼 제국의 저력을 느낀다.

    제국이 아닌 황궁의 창고만 열었는데도 이만큼이나 많은 것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

    카이가 손을 들어 올리자 양피지 하나가 날아왔고, 그 위로 그가 원하는 목록이 부드러운 필체로 써내려간다.

    주력으로 원하는 것은 트리달리움이었고, 세공 전의 보석부터 시작해서 필요한 것들을 챙겼다. 그렇게 현물로 5000억 프랑을 챙기려고 하다 보니 상당한 양을 손에 넣었다. 그 중에는 보고에 있는 물건도 몇 개를 골랐기에 대충 돈을 맞출 수 있었다.

    영주 성을 확장해야 모두 담을 수 있는 양이었다. 카이의 공간 확장 마법으로도 모두 담을 수 없을 정도의 양.

    겸사겸사 영주 성도 확장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테오르가 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황궁 보고의 보물 중에는 자네가 쓸만한 것들은 없는데 저건 왜 고른 건가?”

    “스승님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그것 참 부럽군.”

    테오르도 카이에게 가르침을 내리긴 했지만, 그건 가르침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오히려 자신이 더 큰 깨달음을 얻었으니 카이에게 뭔가 바랄 수도 없었다.

    “이 정도 양이면 나도 한 번에 옮겨올 수는 없어. 못해도 마차 백 대 분은 되겠는데?”

    “다 모아놓고 연락하세요. 제가 옮기죠.”

    “하긴 자네라면 충분히 옮길 수 있겠군. 그럼 준비를 다 하면 다시 오지.”

    카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테오르가 클란드라를 데리고 공간 이동으로 사라졌다.

    카이는 홀로 남자 차를 마저 마시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길 좌우로는 수많은 가로등이 설치되었다. 더는 밤이 어둡지 않게 된 자신의 영지를 바라보던 카이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태초의 속성을 다루게 된 지금이라면 자신은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

    물이 필요하면 지하수를 끌어올려 호수를 만들 수도 있었으니까.

    그 생각 끝에 카이는 연구실로 향했다. 그리고 태초의 순수 마력을 꺼냈다.

    카이는 그걸 가만히 바라보다가 바닥에 손을 대고 ‘감응’을 시작했다. 용맥을 따라서 이동할 때처럼 카이의 정신은 곧 그 흐름을 타고 이동해서 다시 순수한 마력의 핵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뻗은 수많은 용맥을 느꼈다.

    예전이었다면 이것 자체가 위험했지만, 이제는 그곳에서도 온전히 자신의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카이는 그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용맥의 지류 하나를 끌어왔다. 그 용맥이 카이의 의지대로 움직였다.

    그 용맥이 올라오며 다른 곳의 용맥으로 흘러가는 양이 줄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그렇게 용맥을 끌어온 카이가 눈을 떴다.

    그의 발밑으로 느껴지는 강대한 마력의 흐름. 용맥이 카이의 연구실로 이어졌다.

    시간을 둔다면 이 용맥에서 뿜어내는 마력 덕분에 지질 구조가 바뀌고 마정석들이 생길 테지만, 카이는 이 용맥의 마력을 직접 이용해서 마법진을 가동할 생각이었다.

    무한한 용맥에서 끌어오는 마력. 그걸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그것도 이제 8성을 넘어 더 높은 곳을 바라보던 카이에게.

    문이 벌컥 열리며 덴다르트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주위를 돌아보더니 물었다.

    “또 뭔 짓을 했기에 이렇게 마력이 휘몰아치는 거냐?”

    카이는 덴다르트의 물음에 바닥을 가리켰다. 덴다르트의 시선이 바닥을 향했다. 그리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용맥이 발견 된 거냐? 대박인데?”

    용맥이 발견되면 그곳에는 최상급 마정석을 발굴할 수 있는 광산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건 돈방석에 앉는 길이었다.

    “제가 끌어왔습니다.”

    “뭐?”

    “용맥을 끌어왔다고요.”

    덴다르트는 그 말을 듣고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야! 네가 아무리 8성 대마법사라고 해도 뻥은 조금 성의를 가지고 쳐야 하지 않겠냐?”

    카이는 덴다르트조차 믿지 못할 기적을 자신이 벌였다는 것을 깨닫고는 픽 웃음을 흘린 후에 눈을 감았다. 그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마법진이 조합되고, 결합되어 나갔다.

    그렇게 만든 것은 제국에서 보았던 마법진.

    그걸 보았을 때 느꼈던 보안점을 떠올리며 마법진을 만드는 것은 찰나의 시간만이 필요했다. 시간을 길게 늘이는 것이 가능해진 카이가 다시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양손을 활짝 펼쳤다.

    그의 손을 따라 움직인 마력이 영주 성 전역으로 뻗어 나가며 마법진을 그려냈다. 그리고 용맥에서 솟구친 마력이 그걸 따라 뻗어 나가며 마법진에 숨을 불어 넣는다.

    그리고 그 마법진이 완성된 순간 영주성을 따라 올라가는 거대한 보호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황궁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영주성이었지만, 그만한 영주성을 보호 마법진 아래 두려면 한참을 마법진을 그리고 다녀야 하는데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이뤄졌다.

    덴다르트는 그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보고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괴물을 키웠구나.”

    돌싱 후 대마법사-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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