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싱 후 대마법사-107화 (107/150)
  • 107화 가르침

    완성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들지 모르고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갈지 모르는 상황. 1조 프랑을 들여서 아티펙트 하나를 만들 수 있다면 남는 장사였다.

    테오르가 지금 당장은 만들지 못하고 있지만, 조합 마법진을 배웠으니 그걸 이용해서 만든 아티펙트를 연구하면 얼마든지 재생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1조 프랑도 비싼 가격이 아니었다.

    그렇게 계약이 이뤄졌다.

    당장 가르침을 주고받자는 것은 아니었기에 일단 쉬고 내일부터 차근차근 진행하기로 했다.

    카이 일행의 안내를 맡은 것은 클란드라였다. 황녀인 그녀가 직접 그들을 안내했다.

    그녀는 다른 이들을 모두 방에 보내고, 카이의 방을 안내하고는 그와 독대했다. 퀸이 따라 들어오려는 것을 카이가 내보내고 둘이 독대했다.

    클란드라는 가만히 카이를 바라보았다.

    8성 대마법사임을 밝혔던 그를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레이스’에서 더는 제품을 만들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그랬기에 황궁에 그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기쁘기도 했고, 기대도 됐다. 그가 왜 황궁을 찾아왔을까?

    설마 자신을 보러 온 건가?

    그러나 그는 자신을 보러 오지 않았다. 그저 딸이 검성의 가르침을 받게 해주려고 한 것뿐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다시 보니 반가웠다.

    8성 대마법사에게 이혼이 무슨 흠이고 딸 하나 있는 게 어찌 흠이겠나?

    대륙의 여섯 번째 8성급 대마법사였으니까.

    그 긴 역사에 고작 여섯밖에 없는 이였다. 도시 파괴자라는 이명으로 불리는 경지.

    그러나 역사를 통틀어도 그만큼 뛰어난 이는 없으리라.

    조합 마법진과 축소 마법진을 만든 것도 모자라 그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제국의 보호 마법진을 뚫고 들어왔다. 차라리 부수고 들어왔다면 이해할 수 있었다.

    8성 대마법사가 도시도 파괴할 수 있는 마법을 사용해서 부수고 들어왔다면야 가능할지도 몰랐을 일이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올 수 있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그가 얼마나 뛰어난 대마법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뭔가 달라진 것 같네요.”

    당당하게 자신을 밝히던 그는 자신감에 넘쳤지만, 지금은 뭔가 더 자신감에 차 있었다. 대마법사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부족한 부분이 채워지기라도 한 것처럼.

    카이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카이는 ‘뱀’을 상대하기로 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얻었다. 태초의 바람을 통해서 세계를 구성하는 근원을 엿본 것만으로 카이는 전과는 확연히 다른 존재가 되었다.

    성급에 구애받지 않는 경지.

    카이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퀸이 검성과 비슷한 경지에 들어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막연하긴 했지만, 카이는 혼자서 둘도 상대할 자신이 있어 여기 온 것이었다.

    클란드라는 자신이 사람을 잘 본다고 여겼는데 카이가 확실히 달라졌음을 느꼈다. 뭔가 그에게 다가갈 기회가 있는가 싶었는데 그런 기회는 보이지 않았다.

    클란드라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편히 쉬세요.”

    어차피 제국이 원하는 것은 이번 계약으로 체결되었다. 자신이 원하는 공국을 얻을 수는 없겠지만, 남의 도움으로 얻겠다는 생각부터가 잘못되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다시 처음부터.

    황권에 위협이 될 정도가 되면 황권을 지키기 위해 두 가지 결정을 한다. 공국을 내주거나 죽이거나.

    그러나 죽일 수 없다면 공국을 내주게 된다.

    클란드라가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카이는 창가로 걸어가 제국의 황궁을 바라보았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황궁답게 잘 꾸며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이는 아티펙트를 만들어준다고 했지 그걸 복제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제 돈은 별 의미가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받아서 나쁠 것은 없었다. 현물로 받아도 되고.

    어차피 퀸을 위한 일이었다. 공간과 시간에 간섭할 수 있게 된 퀸은 싸운 상대의 모든 것을 흡수했다. 그러니 이번에 검성의 모든 것을 흡수하길 바랄 뿐이다.

    검성 맥클렌이 퀸에게 가르침을 내리는 것을 볼 수 있는 이들은 극히 한정적이었다.

    카이 측에서야 온 이들이 전부 왔지만, 제국에서는 클레바논 황제와 클로이트 황태자, 클란드라를 포함해 검성 맥클렌의 제자이자 7성급 기사인 헌트만 참석했다.

    어차피 다른 이들은 봐도 배울 것이 없을 테니까.

    맥클렌은 퀸의 앞에서 검을 뽑으며 말했다.

    “그날 네가 보여줬던 검은 분명 대단했다. 그 나이에 그만한 경지. 솔직히 황궁에 돌아와서 생각이 나더군. 그러나 기회는 없을 거라 여겼다.”

    맥클렌의 기억에도 남을 정도로 뛰어난 검이었다. 그렇기에 제대로 가르쳐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기회가 닿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워낙 먼 거리가 떨어져 있기도 했지만, 이곳은 황궁.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한다면 올 일이 없겠다고 여겼으니까.

    “그러니 이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겨두었으면 좋겠군.”

    퀸은 맥클렌의 말을 모두 듣고 나서야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 모습에 맥클렌이 미소를 지을 때 그녀가 검을 쥐었다.

    그녀가 검을 쥔 순간 맥클렌의 인상이 미미하게 굳어졌다. 그리고 검이 뽑혀 나오는 순간 맥클렌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처음에는 가볍게 생각했다. 지도 대련 같은 것이라고.

    그러나 그녀가 검을 뽑는 순간 그녀가 8성에 올랐음을 알 수 있었다.

    시간의 벽을 부수고, 공간을 베는 경지.

    이건 생각도 못 했던 일이었다. 카이가 8성 대마법사가 된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할 일이었는데 그 딸마저 저만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명백하게 느껴지는 기세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내가 무례했군. 이미 가르침을 받을 수준이 아니었거늘.”

    퀸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다시 보고 싶었어. 아저씨.”

    투신을 만나지 못해 8성에 오른 이후로 적수를 만나보지 못했던 검성 맥클렌은 퀸의 말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검을 나눌 상대를 만났다는 것에 손끝이 짜릿할 정도로 쾌감이 밀려왔다.

    “그럼 시작할까?”

    맥클렌이 먼저 움직이자 퀸도 그를 향해 마주 달려들었다.

    퀸과 맥클렌이 싸우기 시작하자 그걸 알아본 것은 테오르 뿐이었다. 옆에 있던 헌트는 보고도 이해하지 못했다.

    테오르가 카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저 아이 언제 8성에 오른 건가?”

    “얼마 전에.”

    “어떻게?”

    카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검성이 보여준 검을 보고 얻은 깨달음으로.”

    반만 진실이었다. 시간의 벽을 베고 넘어가는 것은 위훌루에게 배웠지만, 굳이 그걸 밝힐 필요는 없었다.

    “검성의 검을 본 건 뱀을 상대할 때뿐이었을 텐데?”

    “맞아.”

    “믿기지 않는군.”

    27살에 8성에 오른 카이의 재능이 다시는 없을 재능이라 믿었는데 검성이 휘두른 검을 보고 8성에 올랐다고? 그것도 뱀을 상대하는 그 잠깐 사이에 본 것이 전부인데?

    그때 옆에서 듣고있던 클레바논 황제가 물었다.

    “저 여인이 검성과 같은 경지에 이르렀단 말인가?”

    테오르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8성에서도 경지가 천차만별이라 검성보다 강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8성에 오른 것은 확실해 보이오.”

    클레바논 황제는 카이가 왜 이곳에 오면서 여유를 부렸는지 그제야 파악했다. 황궁에 있는 8성에 이른 자들과 같은 경지에 이른 이가 둘이나 되니 태연히 이곳에 올 생각을 했다는 것을.

    제국도 아니고 저 대륙 서부의 일개 왕국에 이만한 인재들이 있다는 것이 아까울 따름이다.

    이만한 이들이 자신의 밑에 있었다면 벌써 대륙을 통일했을 테니까.

    쩌어엉!

    강렬한 충돌음과 함께 맥클렌과 퀸이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맥클렌은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검이 반으로 잘려있었다.

    시선을 들어 올린 맥클렌은 퀸의 검이 멀쩡한 것을 보았다.

    “이거 아쉽게 됐군.”

    퀸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검을 좀 쓰지.”

    맥클렌의 검은 프레야 대장간의 전대 명장의 역작이었다. 이걸 만들고 진이 빠져 은퇴했을 정도로 대단한 검이었다.

    트리달리움 합금으로 만든 최고의 검이었는데 그게 잘렸다.

    퀸의 실력은 경탄 그 자체였다. 8성 육체 강화자와의 대결이 처음이었던 자신과 다르게 시간을 뚫고, 공간을 베는 것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고 그걸 다뤄서 적을 상대하는 것에 익숙했다.

    그건 같은 8성의 적과 싸워보지 않았다면 절대로 익힐 수 없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맥클렌의 성취가 조금 더 깊었다. 그래서 동수를 이룰 수 있었던 것.

    그렇게 교차하는 검격 속에서 처음으로 검이 마주쳤고, 그 충격에 검이 깨졌다. 마력으로 보호하고 있었음에도 검이 맞닿는 순간 그 마력이 흩어지며 검끼리 부딪쳤고 깨져나갔다.

    그렇다고 해도 상대의 검이 더 뛰어난 검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아쉽지만 더는 이어갈 수 없었다.

    같은 수준의 검이라면 모를까 수준이 떨어지는 검으로는 대적할 수 없을 경지에 이른 여인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대련하는 중에도 그녀는 자신의 검술을 배워갔다.

    말 그대로 가르침을 내렸던 것.

    자신도 얻은 것이 많았다. 8성 육체 강화자가 어떻게 싸우는지를 보고 배웠다. 시간을 뚫고, 공간을 베는 이들의 싸움이 어떤 것인지.

    지금까지처럼 압도하는 것만이 아니라 비슷한 수준의 경지에 이른 이와 싸우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과 검술을 가르쳤고.

    맥클렌은 한 걸음 물러난 채 검을 거꾸로 쥐고 검례를 취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퀸도 검을 거꾸로 쥐고 검례를 취했다.

    클레바논 황제는 둘의 대결을 지켜보다가 카이를 돌아보았다.

    “저 검은 대체 뭔가?”

    “퀸이 만든 특별한 검이죠.”

    “저만한 경지에 든 이가 검까지 저렇게 잘 만든다는 건가?”

    카이는 그 말에 미소를 지은 채 답했다.

    “원래 제 딸이 다재다능합니다.”

    딸바보가 된 기분이지만 아무렴 어떤가? 카이가 자랑스러워 할 만큼 그녀는 대단했으니까.

    “저런 검 하나 더 만들어줄 수 있겠나? 값은 제대로 치르겠네.”

    카이는 그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죄송합니다. 저 검은 판매용이 아닙니다.”

    다른 건 몰라도 헬리움만은 절대로 외부에 전해줄 수 없었다. 맥클렌이 휘두른 검이 깨진 것은 그의 마력마저 흩어냈기에 깨진 것.

    그러니 저 검은 내줄 수 없다. 8성 육체 강화자가 저 검을 들면 아무리 날고 기는 8성 대마법사라고 해도 도망치는 것 외에는 답이 없을 테니까.

    물론 마력을 다루는 육체 강화자도 저 검은 다루지 못한다. 쥐는 순간 손으로 마력을 넣을 수 없으니까. 검기를 다루지 못하게 되니 오히려 그 전력은 약해질 수도 있었다.

    헬리움을 흡수하는 것만으로 더 빠르고 강하게 움직이는 퀸이 특별할 뿐이다. 오직 그녀만을 위한 검.

    클레바논 황제가 입맛을 다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계약은 지킬 거라 믿겠네.”

    “물론입니다.”

    퀸과 맥클렌의 대결은 시간을 뚫고, 공간을 베며 이뤄진 것이라 8성에 이르지 못한 이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테지만, 카이는 그 모든 광경을 제대로 보았다.

    그래서 퀸이 검성과 싸우면서 빠르게 성장하는 것을 보았다.

    같은 검을 쥐고 싸운다고 해도 퀸이 검성을 넘어서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으리라.

    그럼 이제 수 속성 비전 마법을 배울 차례였다. 테오르가 평생을 쌓아온 모든 것을 흡수하고 태초의 물을 깨우칠 시간이다.

    카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테오르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테오르님의 연구실로 가보죠.”

    오래전에 8성에 오른 테오르. 그의 연구실에 가면 또 배워올 것이 있을지 몰랐다.

    테오르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카이는 그의 모든 것을 배워올 자신이 있었다.

    퀸만큼은 아니어도 자신의 재능 또한 부족하다고 여긴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돌싱 후 대마법사-위력 시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