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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106화 (106/150)
  • 106화 거래

    조합 마법진을 배우고 그걸 연구하고, 자신의 비틀린 마력을 바로 잡기 위해서 매일매일 정신이 없던 테오르는 황궁 전역에 펼쳐 놓은 보호 마법진이 잠시지만 꺼졌다는 것을 느꼈다.

    그 모든 것을 관리하는 것이 테오르였기에 알 수 있었던 것.

    테오르는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우연이라도 발생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그 일을 확인하기 위해 연구실을 박차고 나왔던 테오르는 순간 느껴지는 기운을 읽었다.

    그리고 이 이변이 어디서 일어난 것인지 깨닫고 곧장 공간 이동을 사용했다. 장거리 공간 이동은 무리지만, 그래도 황궁 내에서는 얼마든지 이동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공간 이동한 테오르는 황제의 옆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황궁 앞에서 인사하는 자를 볼 수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카이입니다.”

    8성 대마법사 카이.

    아무리 그라고 해도 제국에 올 일은 없다고 여겼다. 제국에서 그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그를 찾으러 갈 때의 황제의 안위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먼저 찾아온다면 얘기가 다르다. 비록 자신이 아직 과거의 힘을 되찾지 못했다고 해도 얼마든지 도움을 줄 수 있다.

    자신이 돕고 검성 맥클렌이 나선다면 그를 주저앉히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데 감히 황궁에 온다?

    아무리 제국과 그의 사이가 좋다고 해도 권력자들은 특히나 자신의 안위에 민감한 이들이다. 문제가 생길 여지를 남겨 두지 않으려고 하는 자들이었으니까.

    테오르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고민할 때 옆에 서 있던 클레바논 황제가 입을 열었다.

    “귀한 손님이군. 안으로 모셔라.”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서는 클레바논 황제의 눈에는 탐욕이 이글거렸다. 그걸 보고 테오르가 짧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그를 거둘 마음은 포기하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난 포기라는 것을 모르네. 가서 클란드라 황녀에게도 그가 왔음을 알려라.”

    황궁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이도 살면서 제국의 황궁에 올 일은 없을 거라 여겼다. 이곳은 말 그대로 용담호혈.

    그런데 지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구경하면서 걸을 수 있었다. 놀라운 예술품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무심하게 걸려 있었다. 그런데도 그것들이 모두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걷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웠다.

    그렇게 회랑을 지나 도착한 곳은 큰 연회장이었는데 그곳에는 비장한 기운이 넘치고 있었다.

    회랑을 지나오는 동안 연락을 받고 온 것인지 커다란 원형 테이블의 한쪽에는 클레바논 황제와 클로이트 황태자, 클란드라 황녀가 있었다.

    그들의 옆으로는 각기 검성 맥클렌과 테오르가 자리하고 있었고, 연회장의 벽을 따라서 황궁 기사단이 도열해 있었다.

    긴장한 것이 보이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카이는 무심히 안내받은 자리에 앉았다. 카이를 비롯한 일행이 자리에 앉자 차가 준비되었다.

    클레바논 황제는 그런 카이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연락도 없이 이렇게 찾아올 줄은 몰랐군.”

    “제 딸이 검성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다기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클레바논 황제의 시선이 카이 일행을 훑었다. 딸이라고 칭할 만한 이는 보이지 않았다.

    카이의 나이 27에 장성한 딸이 있을 리는 없었으니까.

    그런 그의 시선에 카이는 퀸을 가리켰다.

    “이쪽이 제 딸 퀸입니다.”

    딸의 이름을 퀸이라 지은 것도 놀라웠지만, 전혀 딸로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18세 이상.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클레바논 황제는 다시 카이에게 시선을 주었다. 검성에게 가르침을 청하겠다는 것이 진짜 이유인지 아니면 지금 가져다 댄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등장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럼 다른 질문을 하나 해도 되겠나? 황궁의 보호 마법진은 절대 뚫리지 않을 거라 믿고 있었거든.”

    “보호 마법진 자체는 제가 보기에도 놀랍더군요.”

    넓은 영역에 펼치는 마법진이기 때문에 조합 마법진과 축소 마법진이 필요 없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과 돈을 투자한 보호 마법진이었다. 그것도 8성 대마법사가.

    당연히 보호 마법진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다.

    카이도 부수는 것이라면 모를까 지금처럼 문제없이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태초의 순수 마력을 손에 넣었기 때문이었다. 마력의 근원에 닿았던 덕분에 마력에 관련된 것이라면 잠깐 마력을 끊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보호 마법진을 어렵지 않게 지나올 수 있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태초의 순수 마력을 손에 넣은 것 자체가 운이 좋았기에 가능했던 일.

    카이의 대답을 들은 클레바논 황제는 그를 빤히 바라보았는데 그의 여유로움이 상당히 거슬렸다. 다만 저 여유로움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짐작하기 어려울 따름이었다.

    황궁에는 8성에 이른 이가 둘이 있다. 그리고 7성에 이른 이도 셋을 보유하고 있었다.

    한 집단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전력을 한 손에 틀어쥐고 있는 자신 앞에서 저런 태도를 보일 수 있는 것은 어디서 기인한 일일까?

    저 자신감의 근원이 궁금했다.

    그가 8성 대마법사라는 것은 알았지만, 검성과 테오르 둘을 상대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 둘을 상대로도 여유가 있는 것 같았다.

    클레바논 황제의 시선이 카이에게서 다른 이들을 향했다.

    “그러고 보니 함께 온 이들은 누군가?”

    “이쪽은 제 스승님이신 덴다르트님. 그리고 이쪽은 안타르시아의 시장인 메르샤입니다.”

    클레바논 황제는 자신 앞에서도 스승을 높여 부르는 모습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까지 살면서 누군가 자신의 앞에서 다른 이를 높여 부르는 것도 처음 들었다.

    자신은 대륙의 정점에 있는 이라고 알아왔으니까.

    “그래. 반갑군.”

    자신을 소개할 필요도 없는 존재. 카이는 굳이 그에게 따져 물을 마음은 없었다.

    클레바논이 일단 입을 다물자 옆에 있던 테오르가 물었다.

    “그런데 그 정령은 처음 보는 정령이군. 메르샤. 새로운 정령과 계약이라도 한 건가?”

    페코는 굳이 나서지 않았고, 메르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새로 계약한 정령이에요.”

    테오르는 페코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정령술을 익히지 않았어도 뿜어내는 기세를 보면 알 수 있었다. 페코는 지금까지 나왔던 어떤 정령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하긴 그러니 카이가 이곳까지 데리고 왔겠지.

    “그런데 폐하 앞에서 정령을 소환한 채로 있겠다는 건가?”

    그건 적대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지만, 메르샤도 페코를 역소환 시킬 수는 없었다. 그때 페코가 천천히 흐릿해지더니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것은 역소환이 아니라 정령계로 돌아가는 것이었지만, 다른 이들은 메르샤를 오해하기에 딱 좋았다.

    카이는 테오르의 시선이 변하는 것을 보고는 물었다.

    “‘뱀’에 대해 뭐 좀 찾은 게 있습니까?”

    “···아직은 없네.”

    테오르는 조합 마법진을 연구하고 자신의 마력을 안정화하면서도 반쯤 영체에 가까웠던 ‘뱀’을 떠올렸다. 그 앞에서 당했던 무력감을 떠올리며 놈을 찢어 죽일 방법을 연구 중이지만 아직 얻은 것은 없었다.

    카이는 자신이 ‘뱀’을 죽일 만큼 강해지기를 원하지만, 꼭 자신이 ‘뱀’을 죽여야 하는 것은 아니라 여겼다. 그렇기에 카이는 가방에서 뱀의 비늘을 하나 꺼내 놓았다.

    검성과 퀸이 베어 떨어트린 비늘. 카이는 그 중 하나를 순순히 내놓았다.

    “이걸로 연구하시죠.”

    ‘뱀’의 비늘을 가지고 그것을 연구한다면 죽일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테오르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맥클렌에게 듣기는 했지만 정말 비늘이 있었군. 고맙네. 잘 쓰도록 하지.”

    카이의 시선이 맥클렌을 향했다. 이미 한번 보았던 사이였지만, 그때는 너무 다급하게 모든 것이 흘러갔다. 테오르를 구하기 위해서 함께 손을 쓰고 신성 교국으로 공간 이동하는 순간까지만 함께 했었다.

    “제 딸에게 가르침을 내려주시겠습니까?”

    맥클렌은 당시 자신의 옆에서 검을 휘두르던 소녀를 떠올렸다. 7성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였는데 그 아이가 그 잠깐 사이에 이만큼이나 커서 돌아왔다.

    그것도 신기했지만, 당시에도 경지가 읽히지 않았다. 마력을 품고 있다면 그 마력의 양으로 대충이나마 경지를 읽을 수 있는데 이 아이는 그것도 아니었다.

    그런 아이가 자신에게 가르침을 청하러 왔다니 오히려 기대됐다.

    투신과도 겨뤄보고 싶지만, 황제의 안위를 지키느라 겨루지 못했다. 아마도 자신의 자리를 다른 이에게 물려준다면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그럴 일은 없으리라.

    한 시대에 8성급 육체 강화자가 둘이 나온 것만 해도 역사에 없던 일이었으니까.

    그런 그에게 후학이 가르침을 청하는 일은 점점 없어지고 있었다. 제자 중에 7성 기사가 나오면서 가르침은 보통 그의 선에서 해결되고 있었으니까.

    사실 8성에 이른 검성의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을 이해하려면 최소 7성은 되어야 했기에 가르칠 이가 없는 실정이었다.

    7성 정도 될 때도 퀸은 ‘뱀’의 비늘을 떨어트린 아이였다. 그러니 기대가 됐다.

    클레바논 황제가 돌아보자 맥클렌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클레바논 황제는 미소를 지었다.

    “좋아. 검성도 동의했으니 그렇게 하도록 하지. 하지만 검성의 가르침을 공짜로 받을 수는 없지 않겠나?”

    검성은 순수하게 가르침을 주고 싶어 했지만, 황제는 다른 생각인 것 같았다.

    “무얼 원하시는 겁니까?”

    “8성급 아티펙트를 원하네.”

    “약속한 조합 마법진은 드렸을 텐데요?”

    클레바논 황제는 쓴웃음을 지었다.

    “덕분에 최상급 마정석이 막대하게 줄어들고 있지. 이러다가 파산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일세.”

    카이는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러려면 테오르 님의 비전 마법을 제가 배워야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다른 이가 저런 소리를 했다면 비웃고 끝났을지 모른다. 배우고 싶다고 배워지는 것이 었다면 비전이라 부르지도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속성을 가리지 않고 익힐 수 있는 카이라면 달랐다. 그가 정말로 테오르의 마법을 배우게 된다면 그의 마법에 대한 파훼법을 만들 수도 있다.

    한 마디로 테오르가 무력화될 수도 있다는 얘기.

    8성 대마법사 간에 우열이 갈리게 된다는 이야기였으니 반가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클레바논 황제도 그 말에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고 카이의 마법을 쓸 수 있는 아티펙트를 만들어 내놓으라는 것은 억지였다.

    그때 테오르가 입을 열었다.

    “내 마법을 가르쳐주고 만들어 달라고 한다면?”

    카이는 그 말에 테오르를 빤히 바라보았다. 사실 테오르의 마법은 필요 없었다. 물론 그의 비전 마법을 익힌다면 수 속성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것은 알았지만, 이게 과연 남는 장사일까?

    테오르의 마법을 기반으로 아티펙트를 만들어도 그가 파악하지 못하도록 손을 쓸 방법은 있었다. 그에게 가르쳐 준 조합 마법진은 허수를 넣어 만드는 것이 아닌 그저 자신의 마법을 조합 마법진으로 만드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조합 마법진을 완성하려면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 번 실패할 때마다 막대한 돈이 들었으리라.

    그리고 테오르는 이 아티펙트를 만드는 것에서 손을 떼고 싶은지도 몰랐다.

    카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딱 하나만 만들어 드리죠. 그 대가로 1조 프랑입니다.”

    클레바논 황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을 때 카이의 말이 이어졌다.

    “물론 검성의 가르침과는 별개로 받는 겁니다.”

    돌싱 후 대마법사-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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