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싱 후 대마법사-105화 (105/150)
  • 105화 순수 마력

    덴다르트가 아니타의 복수를 해준 뒤로 새벽에 들리던 비명이 사라졌다. 어떻게 된 것인지 몰라도 덕분에 성에 있는 이들 모두 안도했다.

    그 비명은 모골이 송연해지는 비명이었으니까.

    카이는 그래서 다른 것과도 ‘감응’하는 것에 집중했다. 카이가 다음으로 결정한 것은 얼음 결정이었다.

    바람이 자유로움을 줬다면 얼음 결정과 하나가 되었을 때 카이는 냉정함을 되찾았다.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강철과도 같은 마음.

    다만 다른 점은 얼음 결정에 깊이 ‘감응’한 상태로는 넓게 퍼지기보다 그러고 있는 것만으로 주위의 온도가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태초의 얼음 결정에 ‘감응’하려면 장소를 잘 선택해야 할 것 같았다.

    태초의 바람을 연달아 소환해도 결국은 그 하나에서 시작된다는 말을 들은 카이는 신령족을 찾아가기로 했다. 새로운 속성을 찾을 생각이었는데 그걸 찾기에 적당한 곳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퀸에게 영지를 맡기고 카이는 곧장 신령족의 마을로 공간 이동했다. 이제는 단번에 공간 이동해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예전과 다르게 대수림으로 단번에 공간 이동해도 문제가 없었기에 카이는 곧장 대족장의 방으로 이동했다.

    갑자기 나타난 카이를 보고 위훌루가 살짝 인상을 굳혔지만, 대족장 칼리는 환하게 웃으며 그를 반겼다.

    “왔어요?”

    “부탁할 것이 있어서 왔어.”

    “뭐든 말해 봐요.”

    카이는 뺨을 긁적이고는 답했다.

    “용맥으로 안내해 줘.”

    “그거야 어렵지 않죠.”

    칼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위치는 내가 알려줄게요.”

    카이는 머릿속으로 칼리가 알려주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위치를 좌표로 찍어주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의념으로 전해줄 줄은 몰랐던 카이는 잠시 그곳을 떠올리다가 입을 열었다.

    “고마워.”

    “대신 같이 가요.”

    카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족장인 그녀와 내외하는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카이가 용맥으로 그대로 공간 이동하자 칼리는 미소를 머금었다.

    “이런 느낌인 줄은 몰랐네요.”

    카이는 픽 웃음을 흘리고는 용맥을 돌아보았다. 고개를 위로 드니 대수림의 나무들 사이로 밤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숙여 주위를 돌아보니 용맥의 흔적을 따라 바닥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나온다. 채굴하면 마정석이 후두둑 떨어질 것 같은 용맥을 바라보던 카이는 이런 곳이 개방되어 있다는 것에 신기함을 느끼며 집중했다.

    칼리가 뭔가 말을 걸고 불편하게 대할 줄 알았는데 그녀는 조용히 떨어져 바위 위에 앉아 그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카이가 이곳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태초의 순수 마력이었다. 가장 순수한 마나가 모여있는 용맥에서라면 그걸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태초의 속성을 하나씩 더 소환할 수 있게 된다는 건 각기 다른 속성을 소환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태초의 바람을 두 개 소환하면 하나를 소환했을 때보다 더 빠르게, 더 강력하게 바람을 다룰 수 있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카이는 다른 속성을 소환하는 것에 집중하는 중이었다.

    칠채마력처럼 일곱 가지 마력의 속성을 모두 태초의 속성으로 얻고자 했던 것. 카이는 묵묵히 그곳에 서서 순수 마력에 집중했다.

    마력.

    세계를 구성하는 마력. 어떤 속성도 넣지 않은 순수한 마력을 파고든다.

    주변에 가득한 마력에 몸을 맡긴 채 카이는 그 마력의 근원을 따라 의식을 이동했다. 지금까지는 태초의 속성에 감응해 왔다면 이것은 반대로 마력에 감응해서 태초의 순수한 마력을 찾아가는 방식.

    태초의 바람에 감응하는 것에 적응해서 그런지 카이는 능숙하게 순수한 마력의 바다를 따라서 그 근원을 찾아갔다.

    자연스럽게 용맥을 따라 이동한 카이는 그 근원이 저 깊은 곳에 있음을 알았다. 이것이 실제로 용맥을 따라 신령의 숲 지하로 내려가는 것인지 아니면 추상적인 이미지인지 모르겠지만, 감응한 채로 카이는 순수 마력의 근원을 쫓아갔다.

    그렇게 찾아간 곳에는 푸른 빛이 있었다. 그것은 빛이기도 하면서 마력의 결정체이기도 했다.

    마치 이 세계의 근원 중 하나인 듯. 그곳에 연결된 수많은 핏줄이 대륙 곳곳으로 퍼져 용맥이 된 것 같았다.

    그 신비로움을 똑바로 응시하던 카이는 그것에 점점 다가갔다. 그 빛은 손바닥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것 같은데도 다시 보면 자신을 집어삼킬 정도로 거대해 보였다.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것 같은 그 근원을 쫓아간 카이가 마침내 그 근원에 닿았다.

    순수 마력에 손이 닿는 순간 카이는 잠깐이지만 세계를 구성하는 일면을 온전히 손에 틀어쥔 것 같은 전능함을 느꼈다. 모든 마력의 주인이 된 것 같은 느낌.

    이걸 이용한다면 상대의 마력마저도 틀어쥐고 흩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카이는 순수 마력의 근원에 휩쓸리지 않았다. ‘감응’한 채로 카이는 다시 자신의 몸을 찾아갔다. 그렇게 몸으로 돌아온 카이가 손을 내밀자 순수 마력의 근원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건 스스로 빛을 내는 푸른 결정 같았다. 그 결정을 바라보던 카이는 그것이 상상도 못 할 정도의 마력을 품고 있음을 알았다.

    태초의 속성은 마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 속성이 가진 힘을 이용할 수 있는 것.

    바람이 있는 곳은 어디서든 그 바람을 부릴 수 있었고, 불을 이용해서는 무엇이라도 태울 수 있었다.

    얼음 결정은 시간만 주어진다면 자신의 주위뿐 아니라 그 영향이 닿는 곳 모두를 얼려버릴 수도 있었다.

    불과 얼음은 그래서 상당한 주의가 필요했는데 이 순수 마력의 결정은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마정석 보다 뛰어난 마력을 품고 있었다.

    말 그대로 무한한 마력.

    태초의 순수 마력을 이용하면 어떤 마법이라도 쓸 수 있다. 마법에 마력량이 늘어나는 것만으로 위력이 늘어나고, 범위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얼마든지 그렇게 변형할 수 있음을 알고 있으니 카이는 마법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손에 넣었음을 떠올렸다.

    태초의 순수 마력은 감응하지 않아도 이건 사용할 방법이 무궁무진했다.

    카이가 그걸 바라보고 있으려니 칼리가 어느새 다가와 그의 허리를 끌어안고 어깨에 턱을 기댔다. 흠칫 놀란 카이가 돌아보았는 데도 칼리는 신경 쓰지 않고 그가 소환한 순수 마력의 결정체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태초의 속성을 이리 간단히 깨우는 거죠? 늑대의 신령께서도 태초의 바람과 친구라고 했지만, 쉬운 일이라고는 하지 않았어요.”

    “그렇기는 하지.”

    카이도 ‘감응’에 익숙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이곳이 용맥이었다고 해도 그 근원을 만나기가 쉽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러나 ‘감응’을 통해 그 근원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기 쉬운 용맥에 들었던 덕에 카이는 태초의 순수 마력을 얻을 수 있었다.

    만약 자신이 보았던 것이 진짜라면 그게 잘못되는 순간 대륙은 끝장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냥 돌아갈 거예요?”

    부드럽게 허리를 감은 손길에 카이는 태초의 순수 마력도 손에 얻었는데 뭐 급할 게 있나 싶었다. 그래서 뒤돌아 칼리를 끌어안았다.

    카이는 공간 이동으로 영지로 돌아왔다. 또 다른 태초의 속성을 찾으러 간다는 말을 듣고 기다리던 그들은 그가 돌아오자 득달같이 모여들었다.

    카이는 그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무슨 먹이 기다리는 아기새처럼 몰려왔어?”

    “갔던 일이 잘됐나 궁금해서 그랬지.”

    덴다르트의 대답을 들은 카이는 씨익 웃고는 답했다.

    “잘 됐습니다. 한 번 보실래요?”

    카이의 물음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는 그들의 앞에서 이번에 얻은 태초의 순수 마력을 소환했다.

    카이의 손 위에 들린 태초의 순수 마력을 읽은 이들의 눈이 커졌다.

    “그거 설마 마정석이냐?”

    “아뇨. 태초의 순수 마력이에요. 원한다면 무한한 마력을 끌어낼 수 있어요.”

    “그래 보이기는 하는데 이게 가능한 거야?”

    8성 대마법사의 마력을 이용하면 도시를 파괴하는 건 일도 아니다. 그런 대마법사가 마력을 무한히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

    마법의 위력을 계속 키운다면 그 마법은 도시가 아니라 왕국 하나를 파멸시킬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무한한 마력이 있다면 덴다르트도 도시 하나를 얼려버릴 수 있을 것 같았으니 카이가 그 힘을 손에 얻은 순간 그 격이 달라졌다.

    그걸 느낀 메르샤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령력도 그렇게 태초의 정령력이 있을까?”

    카이는 그 말에 픽 웃고 말았다. 태초의 속성을 끌어오는 것은 최소 8성 이상에 도달한 자만이 넘볼 수 있는 영역이었다. 어쩌면 정령력도 이런 것이 있을지 몰랐다.

    그리고 그걸 손에 얻으면 정령왕을 소환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령력은 카이와는 연이 없었다. 그러니 메르샤가 그걸 얻게 된다면 모를까 지금 당장은 답을 할 수 없었다.

    카이는 문득 메르샤를 돌아보고는 물었다.

    “그런데 안타르시아로 안 가도 돼?”

    “안타르시아? 나 없어도 잘 굴러가. 그리고 지금은 너를 돕는게 내가 해야 할 일이거든.”

    8성에 오를 수 있는 단초를 얻었는데 지금 안타르시아가 문제가 아니었다. 8성에 오르기만 한다면 안타르시아가 아니라 왕국도 세울 수 있다.

    자신만의 왕국을.

    권력욕이 있는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손에 쥘 생각이었다.

    카이는 그녀의 대답에 고개를 휘휘 내젓고는 페코를 돌아보았다. 혹시 몰라서 떠나기 전에 바헬을 찾아보라고 전해놓았었다. 바헬이 되살아 났다면 바람의 정령이 찾아서 알려줄 거라 믿고 했던 말.

    페코는 카이의 시선을 받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찾을 수 없었어.>

    “못 찾은 거야?”

    <일단 바람의 정령이 찾을 수 없는 곳에 있을 수도 있고.>

    바람의 정령은 어디든 있다고 하지만 신지만 해도 정령이 오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리고 ‘뱀’이 그렇게 영악하다면 자신의 몸을 숨기듯 바헬도 숨겼을 수 있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그래도 그는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어.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는 자니까 그를 발견하는 대로 말해 줘.”

    카이는 페코에게서 시선을 떼고 퀸을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퀸이 검성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예전이라면 검성을 만나는 것이 걱정이 됐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테오르는 아직 회복하지 못했을 테고, 검성 하나 정도는 자신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솔직히 8성과 싸워서 진다는 것은 상상이 안 갈 정도였다.

    예전이라면 퀸을 데리고 공간 이동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페코 덕분에 그녀를 데리고 공간 이동할 수 있으니 검성을 만나도 될 것 같았다.

    “퀸. 검성 만나러 가볼래?”

    “진짜?”

    “그래. 이제는 만나도 될 것 같아서.”

    당당하게 제국의 황궁으로 가도 감히 자신과 퀸을 위협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것 같았다.

    카이의 말에 메르샤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나도 갈래!”

    덴다르트도 손을 들었다.

    “나도 가고 싶다.”

    카이는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을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퀸과 자신만 가도 위협이 될 것이 없는데 7성급 둘이 더 간다고 하면 뭐 문제 될 것이 있겠나?

    “그래요. 갑시다.”

    카이가 손을 내밀자 페코가 메르샤와 퀸을 품었다. 덴다르트가 옆에 선 것을 확인한 카이가 그들 모두와 함께 공간 이동했다. 이제 마력이 부족할 일은 없었다.

    단번에 공간 이동한 카이는 잠시 상공에서 황궁을 내려다보았다. 엘도 왕국의 왕도 크기만 한 황궁을 내려다보며 카이는 감탄했다. 게다가 온갖 마법이 황궁을 감싸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상공을 통해서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손을 써놨다. 유지하는 데만도 막대한 마정석이 들어갈 것 같았다.

    카이는 잠시 그걸 내려다보다가 태초의 순수 마력을 소환한 채로 떨어져 내렸다. 수많은 보호 마법진에 들어가 있는 마력을 잠시 꺼버린다.

    모든 보호 마법진이 잠깐 꺼지고 그 사이로 카이와 일행이 떨어져 내렸다.

    사뿐히 내려선 곳은 황궁에서도 가장 거대한 궁. 황제가 머무는 궁이었다.

    그곳에 내리니 삽시간에 주위를 포위하는 이들이 느껴졌다. 카이는 그들의 시선을 고스란히 느끼며 황궁에서 나오는 이를 바라보았다.

    황궁의 보호 마법진을 단숨에 뚫고 들어온 이가 누구인지 궁금했는지 황제가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뒤에 있는 검성 맥클렌까지 확인한 카이가 미소를 지은 채 손을 들어 보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카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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