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싱 후 대마법사-103화 (103/150)

103화 도움

동시에 네 개의 태초의 속성을 소환할 정도로 능력이 향상되었지만, 네 번째 태초의 속성은 아직 소환하지 못했다. 카이는 그 이유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격이 올라서 더 많은 태초의 속성을 소환할 수 있게 된 것 같지만, 막상 또 다른 태초의 속성을 소환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수를 늘리는 것이 아닌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일곱 가지 속성을 모두 손에 넣어야 할 거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감이 잡히지 않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감각을 넓히는 것을 훈련 중이었다. 태초의 바람에 의지를 덧씌워 엘도 왕국을 살피는 중이었는데 그 영역을 조금씩 넓히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 번에 왕국 절반에 달하는 영토를 감각권 안에 넣으면 쉽게 지쳤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유지 시간을 늘리고, 감지 영역을 조금씩 늘려본다.

그렇게 주위를 살피던 카이의 감각권에 들어오는 존재가 있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는 존재였다.

어찌나 빠른지 자신이 태초의 바람을 타고 움직여도 이만한 속도를 낼 수 있을까 싶었다.

바람 마법을 전력으로 날린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빨랐는데 그 속도를 유지한 채 날아오는 중이었다.

그 목적지가 어딘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방향은 자신이 있는 곳이라 카이는 잠시 고민했다. 저게 영지까지 날아오도록 둬야 할까?

아니면 가서 잡아야 할까?

무시무시한 속도로 오는 중이라 이대로 둔다면 십 분 내외로 도착할 것 같았다.

그때 무시무시한 속도로 다가오던 존재가 카이를 바라보았다. 태초의 바람에 의지를 덧씌운 자신을 똑바로 인지하고 바라보더니 웃었다.

생긴 건 그리폰처럼 생겨서 머리도 매의 머리였는데 어떻게 웃는 것처럼 느껴졌는지 모르겠지만, 녀석은 분명 웃었다.

누군가 자신을 보면서 웃었다면 기분이 나쁠 수 있지만, 무척이나 반가워하는 느낌이라 카이도 뭐라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존재의 등을 떠밀어 줬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던 것의 속도가 배가 되었다. 그제야 그것의 등에 뭔가 달라붙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그게 누군지도 깨닫게 됐다.

“메르샤?”

카이는 태초의 바람에서 의지를 분리해 냈다. 잠시 눈을 감고 자신의 몸을 인지했다.

이렇게 한 번씩 바람에 의지를 씌울 때마다 카이는 자신이 얼마나 자유로워지는지 알고 있었고, 그것을 경계했다. 잘못하면 그것에 휩쓸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카이는 마력을 돌려 자신의 몸을 확인하고는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연병장에는 아니타가 새로운 육신에 적응하기 위해서인지 티투스에게 검술을 배우고 있었다.

기사단의 전술까지 배운 최강의 기사단이 만들어지고 나서 할 일이 없어진 티투스가 아니타에게 검을 가르쳐 주는 중이었다. 마법사였던 그녀는 지금 마법을 다루는 육신을 가장 잘 다룰 수 있었지만, 검을 다루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매일 밤 그렇게 비명을 지르면서도 기억을 못 하는 것을 보면 아마 다시는 죽은 이의 영혼을 저렇게 몸에 안착시키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들을 지켜보는 중에 퀸이 다가왔다.

그녀는 요즘 직접 검을 휘두르기 보다 생각에 잠겨 있는 시간이 더 많았는데 카이가 오랜만에 연병장으로 나오자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빠. 무슨 일이야?”

“조금 있으면 누가 올 거야.”

“누구?”

“바람의 정령?”

그건 정령이라는 말 외에는 딱히 부를 말이 없었다. 카이의 대답을 들은 퀸은 검의 손잡이를 쥐며 물었다.

“적? 친구?”

카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친구에 가깝겠다. 그래도 일단 만나보자.”

태초의 바람에 의지를 덧씌운 자신을 알아보는 것을 보면 보통 정령은 아닌 것 같았지만, 메르샤와 함께 오니 적은 아니리라.

그렇게 잠시 기다리니 바람의 정령이 저 멀리서 다가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퀸이 검의 손잡이를 쥐고는 말했다.

“저 여자도 정령이야?”

“아니.”

“그런데 왜 벌거벗고 정령을 타고 와?”

퀸의 목소리에 느껴지는 스산함에 카이가 손짓하자 카이의 방에서 창문을 통해 이불이 날아올라서 그녀를 향했다. 메르샤는 날아오는 이불을 몸에 둘둘 두르고는 손을 번적 들고 흔들었다.

“카이!”

카이는 저렇게 해맑게 자신을 부르는 모습을 보고는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을 속인 것에 대해서 조금도 화가 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보다는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때보다도 높은 텐션을 보니 기분이 무척이나 좋아 보였다.

카이가 기다리니 그녀는 바람의 정령과 함께 내려섰다. 바람의 정령은 늑대의 화신인 펜리르만큼 컸고, 카이도 처음 보는 종류의 것이었다.

카이가 바라보자 그리폰의 형상을 한 녀석이 다가와서 앞발을 들어 올렸다. 카이는 멀뚱히 그걸 바라보다가 손을 내밀어 잡아 줬다.

묘한 실체감.

바람의 정령 중에서 이렇게 자의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있던가?

카이는 고개를 돌려 메르샤를 보았다. 그녀가 더 강해진 것 같지는 않은데 이만한 바람의 정령을 새로 얻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직접 인사해.”

“직접?”

<반가워. 난 페코.>

카이는 바람의 정령이 직접 의지를 가지고 말했다는 것보다 그 이름에 주목했다.

“이름이 있어?”

정령 마법에도 잠시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그때 알게 된 것인데 등급외 판정을 받는 정령들이 있었다. 이름을 가진 자들로 그들은 각기 다른 능력을 지녔지만, 적어도 이름을 가졌다는 것은 정령계에서도 어깨에 힘 좀 줄 수 있다는 얘기였다.

카이가 놀라서 돌아보자 페코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태초의 바람을 깨운 그대를 왕께서 도우라 하셨다.>

“왕? 정령왕?”

<최초의 늑대 이후로 태초의 바람을 깨운 이가 없었으니 왕께서도 관심을 보이시는 것. 그리고 ‘뱀’을 대적하는 데는 여러 도움이 필요할 거라고 하셨거든.>

이름이 있는 존재는 그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다고 했다. 시간 개념이 다른 정령계에서도 오래 살아온 자들. 지성을 가진 그 존재들이 이렇게 어린 녀석처럼 굴 줄은 몰랐다.

카이는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자신이 손해 볼 일은 없었다.

“그래서 뭘 도와줄 수 있는 거지?”

솔직히 태초의 속성을 다루게 되면서 카이의 마법적인 한계는 더 넓어졌고, 더 강해졌다. 지금이라면 테오르 정도는 시공간 간섭하지 않고도 압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뱀’을 상대하는 데 도움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다. 정령왕도 도움을 주라고 한 걸 보면 ‘뱀’은 카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놈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실질적인 도움이 되겠다고 하니 궁금하기는 했다.

<난 무력이 강한 편이지.>

카이는 그 말에 씨익 웃었다. 무력을 논한다면 카이의 눈이 너무 높아졌다.

카이 자신도 그렇지만, 퀸도 8성에 올랐으니까.

작정한다면 눈앞의 이 페코라는 존재를 정령계로 돌려보낼 수 있다고 자신할 정도였다.

페코도 그걸 깨달았는지 어색하게 웃었다.

<너처럼 ‘감응’도 할 수 있지.>

태초의 바람에 의지를 덧씌우는 것을 ‘감응’이라고 하는 건가?

“좋아. 그럼 날 돕고 싶다면 사람 하나를 찾아 줘.”

‘뱀’을 직접 찾으라는 말은 삼갔다. 지금 당장 찾아도 ‘뱀’을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은 안 드니까.

<사람?>

“그래. ‘뱀’의 지시로 대륙에 저주를 뿌리는 데 도움을 주었던 인간. 녀석을 찾아온다면 인정해 주지. 도움이될 거라는 것을.”

<너처럼 ‘감응’할 필요도 없지. 이 세계 어디에도 바람의 정령이 없는 곳은 없으니 금방 찾아낼 거다.>

“그럼 찾아와. 문그록. 7성급 육체 강화자야.”

페코는 그 말에 고개를 쳐들고 입을 쩍 벌렸다. 그렇게 저 멀리 뻗어가는 기이한 울림. 그것은 카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어쩌면 정령들에게만 통하는 것일지도 모를 말.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니 페코가 눈을 뜨고는 카이를 바라보았다.

<곧 찾아낼 거야.>

카이는 그 말에 페코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지금 대륙 전역을 이 잡듯 뒤지고 있었다. 현상금을 걸고 대륙 서부의 왕국들이 그를 찾고 있었고, 정보 조직도 이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방랑 마법사단의 도움까지도 받은 상황. 이런 상황에서 다른 누구보다 먼저 찾는다면 확실히 페코는 도움이 될 터였다.

카이의 시선이 메르샤를 향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거야?”

“네가 부탁한 대로 태초의 불꽃에 관해 물으러 갔다가 정령왕을 만난 것 같아. 널 도우라며 페코가 함께 하기로 했어.”

“이름이 있는 정령을 받았는데 강해진 것은 없어 보이는데?”

“뭐 내가 8성에 오른 건 아니니까. 하지만 이번 일의 보수를 받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메르샤의 눈이 야망으로 빛났다. 정령 마법사 최초로 8성에 오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그녀는 모든 것을 걸 생각이었다.

마법사라면 8성에 당연히 오르고 싶어 한다. 그걸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내걸 수 있을 정도로.

카이는 고개를 돌려 페코를 보고 물었다.

“태초의 바람이 뭔지 알아?”

<알지. 그것은 정령계에서도 특별한 존재니까.>

카이는 태초의 바람을 네 개를 소환해 보였다. 그걸 보고 페코가 물었다.

<네 개로 분화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니야. 그건 모두 하나이니까.>

“원래는 하나다?”

<그래. 태초에 세상을 구성했던 요소 중 하나인 태초의 바람은 지금도 정령계에 있지만, 그 존재와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최소 이름을 얻은 이들만 가능해.>

“그럼 너도 소통해 보았다는 건가?”

<그래. 그래서 네 시선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고.>

카이도 몰랐던 부분이었기에 더 관심이 간다.

<그러나 주의하는 게 좋을 거야.>

“무슨 뜻이야?”

<태초의 바람에 감화되면 안 된다는 얘기야. 그 힘은 전능감을 주지만, 너무 가까이 가면 휩쓸려 흩어질 수도 있어. 이름을 얻은 이 중 많은 이들이 태초의 바람에 휩쓸렸다가 그와 하나가 되어 자아를 잃어버렸으니까.>

카이도 어렴풋이 느끼던 부분이었다. 태초의 바람에 의지를 덧씌우는 일이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그러나 마법사에게는 굉장한 유혹이 되는 일이었다. 그 힘만을 취하고 자신을 유지할 수 있다는 믿음. 아마도 정령계의 정령도 그런 마음을 가졌었겠지.

그리고 그러다 힘에 취해 넘어간 것이리라.

하지만 페코의 조언을 들으니 경각심이 돋는다.

태초의 바람과 하나가 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태초의 속성을 소환할 힘이 늘어나며 격이 상승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위험하다는 애기를 들으니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다른 속성과 교감하는 것에 집중해 보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퀸이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 그렇게 되면 내가 구해줄 테니까.”

“네가?”

“그럼.”

퀸이 그리 말하고는 씨익 웃어 보였다.

어째서일까? 그녀의 말이 위안이 됐다. 자신이 무슨 잘못을 하더라도, 설령 태초의 바람에 감화되어 그 자아를 잃는다고 해도 구하러 와줄 것 같은 느낌.

이게 가족에 대한 믿음인가?

아니면 퀸에 대한 믿음인가?

무엇이든 위로가 되었다.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마법사로서는 기대하기 힘든 감정이었는데 그 믿음이 위로가 됐다.

“너만 믿는다.”

카이가 퀸의 어깨를 두드려주자 메르샤는 그 둘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카이에게 끌린 것은 그가 8성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자신도 8성에 도달할 기회가 있다는 것을 느끼니 더는 그에게 끌리지 않았다.

왕. 그것도 정령왕을 직접 만난 것은 어떤 정령 마법사도 못 해냈던 일.

그 일을 해낸 지금 카이를 돕고 자신도 그 경지에 다가가면 될 일이었다.

그때 불쑥 페코가 입을 열었다.

<찾았다.>

지금까지 대륙의 모든 것을 동원해도 찾지 못했던 존재를 고작 이 잠깐의 시간을 이용해서 찾아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럼 너 ‘뱀’의 위치도 찾을 수 있나?”

<‘뱀’도 태초의 어둠을 다루기 때문에 그 위치는 특정할 수 없어.>

하긴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래도 문그록을 이리도 빨리 찾아냈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연병장으로 찾아오던 덴다르트가 옆에 섰다.

“찾았다고?”

“예.”

“그럼 가자.”

카이가 페코를 돌아보자 그가 다가와 날개를 활짝 피며 이마를 내밀었다. 카이가 그 이마에 손을 얹으니 ‘감응’하는 것처럼 바람의 정령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문그록의 위치를 느낄 수 있었다.

카이는 손을 떼고 페코를 바라보았다.

“너도 갈 거냐?”

<물론이지. 그보다 저 여인도 데리고 갈 건가?>

카이는 퀸을 가리키며 묻는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마법에 저항해서 데리고 갈 수 없어.”

<그거라면 내가 도와줄 수 있겠군.>

그리 말한 페코가 날개를 뻗어 퀸을 품에 안았다. 정말로 퀸을 데리고 공간 이동할 수 있는 걸까?

카이는 덴다르트와 페코를 데리고 공간 이동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서 카이는 페코의 품에서 나오는 퀸과 메르샤를 보았다. 메르샤는 언제 끼어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페코가 품에 안으면 카이의 공간 이동을 퀸이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카이는 페코를 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네 도움을 받아들이겠다. 페코.”

돌싱 후 대마법사-위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