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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101화 (101/150)
  • 101화 명성

    왕궁 안의 독인들이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진 것은 카이가 해주하면서 벌어진 일.

    이번 일은 ‘뱀’에 관련된 일이자 문그록과도 관련이 있는 일이었다. 카이는 이곳에서 놈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싶었다.

    일단 이 담배에는 ‘뱀’의 독과 함께 저주가 작동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담배를 피우는 것만으로 독인이 될 수 있게 만든 것만 해도 감탄이 나올 능력이었다.

    대륙 서부 전체를 아우를 정도로 강대한 저주 술식. 그리고 동시에 그 술식을 발동한 것만 보아도 ‘뱀’이 가진 힘을 유추할 수 있다.

    매개체 없이 저주를 해주하다 보니 카이는 고작 왕궁 하나에 그쳤지만, 그 실마리를 잡았다.

    이 독인은 전염성이 강해서 가만뒀다면 왕궁을 넘어 왕국 전체가 위험에 빠졌을 터였다. 아니, 지금도 실시간으로 대륙 서부의 왕국들이 위험에 빠지는 중이었다.

    귀족들만 피울 수 있는 담배였으니 귀족들이 독인이 되어 가족을, 영지의 기사와 병사들을 독인으로 만들 터였다.

    이 독인의 움직임은 원래 육체의 능력과 관계가 있는 것인지 모두 수준이 달랐다. 기사들이 쉽게 당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독인이 된 영주를 베지 못한다면 결국 당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렇게 당하기 시작하면 대륙 서부가 독인 천지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카이는 무심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왜 지금인지,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은 뒤로 미룬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독인 사태를 막는 것.

    하지만 카이 혼자서는 대륙 곳곳을 돌아다니며 해주를 할 수 없다. 뭔가 다른 수를 떠올려야 했다.

    카이가 고민하는 사이에 왕궁 안쪽에서 다가오는 이들이 있었다. 카이가 시선을 돌려 바라보니 레인 국왕이 호위를 받으며 다가오는 중이었다.

    레인 국왕은 카이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인상을 굳혔다. 자신을 찾아왔던 그 사내였다. 협상안을 제시했던 자.

    지금은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8성 대마법사, 무결의 대마법사 카이.

    그가 어째서 엘도 왕국이 휘청거릴 정도의 전쟁 배상금을 받으라고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엘도 왕국의 영지도 포기하게 했는지도 짐작하기 어려웠다.

    “이 상황을 처리한 것이 자네인가?”

    카이가 무심히 고개를 끄덕이자 레인 국왕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고맙네.”

    카이는 감사 인사를 받을 마음이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으니까.

    “맨입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닐 거로 생각하는데.”

    옆에서 불쑥 들려오는 말에 카이가 돌아보니 덴다르트가 씨익 웃으며 손짓했다.

    “협상은 내게 맡겨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닌 것 같아서요.”

    “쯧. 그냥 도와주면 호구 취급받아. 일단 최상급 마정석이라도 챙겨야지.”

    하긴 왕국을 구했으니 그 정도는 받아내도 될 것 같았다.

    “알아서 하세요.”

    덴다르트는 문그록을 추적하는 와중에도 받을 것은 받아내겠다고 말하니 카이도 그저 고개를 끄덕여 줬다. 지금 자신은 그런 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으니까.

    왕도 정도가 아니라 더 넓은 곳을 해주하기 위한 방도를 찾을 때였다.

    카이는 태초의 바람을 불러내 그대로 솟구쳤다. 하늘로 올라간 카이를 올려다보던 레인 국왕이 입을 열었다.

    “대단하군.”

    그런 레인 국왕의 앞에서 덴다르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왕궁의 가치를 따져볼까요?”

    레인 국왕은 카이와 함께 나타난 덴다르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자네는 누군가?”

    “7성 대마법사이자 저 무결의 대마법사의 스승인 덴다르트라고 합니다.”

    스승보다 뛰어난 제자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8성 대마법사들은 다 스승보다 뛰어난 이들이었으니까.

    무엇보다 카이의 스승이 덴다르트라는 것은 알려져 있었는데 그가 7성에 올랐다는 것은 금시초문이었다. 무엇보다 둘의 대화를 짐작해 보면 그가 이번 일의 전권을 위임받았음을 알았다.

    8성 대마법사가 작정하고 돈을 뜯어내겠다고 하면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 현실이었지만, 지금은 왕궁을 구해준 대가를 받아내겠다고 하는 것이니 최대한 성의를 보여야 할 때였다.

    “원하는 것을 말해보게.”

    덴다르트가 그 말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태초의 바람을 이용해서 왕궁 상공 높은 곳에 오른 카이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태초의 바람에 동화되어 바람이 닿는 곳에 자신의 의지를 실어 보낸다. 카이의 강대한 정신력으로도 바람이 뻗어 나가는 모든 영역에 도달하지 못했다.

    카이는 그 영역을 한정했다. 대충 타메아 왕국의 절반에 달하는 크기.

    그 정도를 아우르고 나서야 깨달았다. ‘뱀’과 자신의 격차를.

    그러나 이만큼이나 보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카이는 바람에 해주 술식을 풀었다.

    태초의 바람이 닿는 모든 곳에 해주의 술식이 퍼졌고, 그 술식이 닿은 독인들이 쓰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카이는 그들이 쓰러지는 것을 느끼고는 천천히 자신에게로 의식을 되돌렸다. 자신의 몸에 들어온 카이는 지독한 어지러움을 느끼고는 떨어져 내렸다.

    플라이 마법조차 다루지 못할 정도로 지독한 어지러움에 떨어지던 카이를 구한 것은 덴다르트였다. 하늘을 날아온 그가 카이를 받아든 채 물었다.

    “무슨 일이야?”

    카이는 쓴웃음을 짓고는 답했다.

    “무리했더니 어지럽네요.”

    왕국의 절반에 달하는 영역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분석하는 것은 아무리 카이라고 해도 무리였다. 그래도 그 영역을 고스란히 느낀 것만으로도 얻은 것이 많았다.

    ‘뱀’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깨닫기도 했지만, 그 간격이 좁히지 못할 정도가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카이는 눈을 감은 채 자신을 느낀다. 태초의 속성에 의지를 덧씌우는 것만으로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그래도 일순간 얻었던 전능함을 떠올리면 충분히 감수할 만한 위험이었다.

    덴다르트가 바닥에 내려서며 내려주자 카이도 천천히 두 발을 땅에 디뎠다. 묘한 감각이다.

    조금 전까지 왕국의 절반을 아우르던 영역을 자유롭게 날았던 순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에서 느껴지는 괴리감.

    그러나 카이는 곧 자신을 똑바로 바라봤다. 태초의 바람에 의지를 덧씌운 탓에 성격에 변화는 있을지 몰라도 자신은 카이였다.

    무결의 대마법사 카이.

    ‘뱀’의 대적자.

    카이는 길게 숨을 내쉬고는 마음을 다스렸다. 그렇게 자신을 똑바로 보게 된 카이가 레인 국왕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카이도 굳이 자신이 벌인 일을 설명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태초의 바람에 의지를 덧씌우고 해주 술식을 뿌려댄 탓에 마력의 손실이 컸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쉴 수는 없는 노릇.

    카이는 레인 국왕을 바라보며 말했다.

    “왕국을 구해준 대가는 나중에 받으러 오겠다.”

    카이가 덴다르트의 손을 잡고 공간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있던 레인 국왕은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새삼 8성 대마법사가 얼마나 대단한 자인지 깨닫는다.

    전에 제안했던 대로 원한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생명을 거둬갈 수 있는 존재.

    같은 8성이 아니면 대적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괴물.

    새삼 제국이 부러워졌다.

    “왕궁 보고를 열어라.”

    대적할 수 없다면 잘 보이는 수밖에 없다.

    영지로 돌아온 카이가 덴다르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타메아 왕국의 영토 절반에 걸쳐 해주했어요. 태초의 바람에 해주 술식을 담아 퍼트리는 것이 가능했는데 지금 제 능력으로는 그 정도가 한계에요.”

    덴다르트는 새삼 카이를 바라보았다. 잠깐 하늘에 떠오르는 것 같더니 그런 이적을 벌이고 온 건가?

    그런데 ‘뱀’은 홀로 대륙 서부 전체에 저주를 퍼트렸다. 그 격의 차이를 실감하고 나니 지금 상대해야 할 적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된다.

    “제자야. ‘뱀’ 정말로 이길 수 있겠냐?”

    카이는 잠시 고민해보다가 답했다.

    “‘뱀’이 대단한 건 인정해야겠죠. 놈도 아마 태초의 속성 중 하나를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이번 일은 격의 차이라기보다 준비의 차이라고 봐야겠죠.”

    덴다르트는 잠시 생각해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하긴 매개체가 있으면 이야기가 다르지. 게다가 독인이 된 자들을 해주하는 것이 더 힘든 것도 사실이야.”

    “그래도 아직은 놈에게 닿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만큼이나 대단한 녀석이라는 것은 이번에 확실히 알았어요.”

    카이는 한숨을 내쉬고는 벽에 등을 기댔다. 독인이 된 자는 해주가 되어도 죽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단순히 저주의 영향으로 독인이 된 자들은 무리 없이 깨어났으니 저 저주가 퍼진다고 해도 실제로 죽는 이는 얼마 되지 않으리라.

    다만 이런 계획을 한 이유가 뭔가 궁금할 따름이다.

    담배는 귀족들만 피울 수 있을 정도로 고가의 물건. 그런 귀족들이 일시에 독인이 되었다. 해주해도 죽을 정도로 지독한 일을 벌였는데 그 이유가 뭘까?

    대륙 서부의 귀족들을 싹 밀어내야 할 이유.

    카이는 그 부분에 대해 고민하면서 덴다르트를 바라보았다.

    “일단 해주를 마무리하고 움직여야 할 것 같아요.”

    “물론이다. 대신 나도 같이 가자.”

    카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해주해 보니 알겠다. 태초의 속성에 해주 술식을 쏟아붓다 보니 반쯤 탈진했다.

    마력 부족보다도 탈진에 가까운 현상이었다. 그럴 때 덴다르트가 있어 준다면 무사할 수 있다.

    퀸과 함께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 퀸은 공간 이동을 하지 못한다. 태초의 바람을 이용해서 이동 속도를 비약적으로 올릴 수 있지만, 지금 당장 공간 이동을 못 하는 이상 함께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니 지금은 덴다르트가 최선이었다.

    “그럼 저는 잠깐 쉴게요.”

    “그래라.”

    마력도 회복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정신이 지쳤다. 그러니 하루 쉬면서 이번에 얻은 깨달음을 떠올린다.

    태초의 바람에 의지를 덧씌운 순간 자신은 바람이 되어 왕국 절반에 달하는 영역을 바라보고 인지할 수 있는 전능감을 얻었었다.

    마력 감지로 주변을 인지하던 것을 넘어선 그 감각. 게다가 바람에 자신의 술식을 더해서 날려 보냈던 것은 마법의 새로운 지평이다.

    바람에 실어서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마법을 발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니까.

    이 자리에 앉아서 바람이 닿는 곳에다가 마법을 쏟아부을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그것이 아니라고 해도 바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태초의 속성에 다가갈수록 그 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 같았다. 얻은 것이 많았지만, 그만큼 위험했던 것.

    아마 이 모든 저주를 해주할 때쯤이면 태초의 바람과 더욱 가까워지리라.

    대륙 서부의 모든 저주를 해주하는 데 걸린 시간은 사흘. 오전과 오후로 나눠서 카이는 각 왕국의 왕궁으로 날아갔고, 뒤에 찾아간 곳일수록 카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이번 일로 인해 대륙 서부는 문그록에 대해서 현상금을 걸었다. ‘뱀’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각 왕국의 국왕들만 전해 들었고, ‘뱀’ 척살에 대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대륙 서부 전역에 문그록에 대한 수배를 내렸다.

    대륙 서부의 왕국들에서 죽어 나간 귀족의 수만 해도 천 명을 헤아리니 그 권력의 공백 또한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어떤 왕국에서는 국왕이 담배를 피워 독인이 된 덕분에 왕권이 교체된 곳도 있었다.

    그렇게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영지로 돌아온 카이의 앞에서 덴다르트가 씨익 웃으며 가방을 열었다.

    “일차적으로 받은 거다.”

    덴다르트의 공간 확장 마법 가방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린 것은 각 왕국이 보유하고 있던 최상급 마정석들이었다. 왕궁의 보물 창고를 탈탈 털어서 구하기라도 했는지 그 양이 지금까지 모았던 최상급 마정석의 열 배도 넘었다.

    카이가 돌아보자 덴다르트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최상급 마정석은 거의 털어왔고, 나머지는 협상하기로 했다. 각 왕국에서 보낸 협상단이 영지로 올 거다.”

    “그 짧은 시간에 그렇게 많이 뜯어내신 겁니까?”

    “이번에 확실히 보여줬으니까 군말하지 못하는 거지.”

    공간 이동으로 나타나 왕국의 절반에 달하는 크기에 해주 술식을 뿌리는 것으로 카이의 이적을 경험한 그들은 감히 그에게 대적할 생각 따위는 하지 못했다.

    덕분에 카이는 미치광이처럼 각 왕국을 협박하지 않고도 많은 것을 얻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명성이 따라온다.

    덴다르트는 흐뭇한 표정을 지은 채 카이를 바라보았다.

    “그보다 이번에 얻은 것은 이것만이 아니지?”

    카이는 그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의 주위로 태초의 바람이 네 개나 소환되었다. 동시에 소환할 수 있는 태초의 속성에 대한 용량 자체가 늘었고, 바람 속성에 관해서는 전과 비할 수 없을 정도의 깊은 이해를 마쳤다.

    인간의 한계라는 8성 대마법사의 경지를 어느새 한 걸음 벗어났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할 만큼 성장했다.

    “마침 카메룬의 행적도 알아냈다고 하는데 같이 가실래요?”

    카이가 대륙 서부에 펼쳐졌던 저주들을 해주하는 사이에 테오는 카메룬의 행적을 찾아냈다.

    덴다르트는 그 말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밤 아니타의 비명이 들리니 그의 분노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는 중이었다.

    “그 말을 기다렸다.”

    카이는 덴다르트의 손을 잡고 카메룬의 행적이 발견된 무역 도시 이타르로 공간 이동했다.

    돌싱 후 대마법사-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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