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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98화 (98/150)
  • 098화 실마리

    에빌 마탑에서도 마탑 연합과의 일이 틀어진 상황에서 믿을 것은 카이 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카이에게 아낌없이 자신들이 아는 지식을 모두 털어놓았다. 그들에게 배우면서 카이는 강신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니까 악마가 실존한다는 건가?”

    “강신술은 거의 사장되어서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실제로 하늘 신 시엘의 대적자라고 불리던 악마 피스토가 있었다고 해요. 그리고 피스토의 힘을 부리는 흑마법사들의 맥은 신성 교국에서 이 악물고 뿌리를 뽑은 탓에 피스토의 힘을 쓸 수 있는 이들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강신술은 남았어요.”

    “재미있군.”

    “그렇다고 악마의 힘을 빌릴 것은 아니잖아요.”

    카이는 엘리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태초의 속성이 있어 그 속성을 따라 파생된 것이 정령술로 보이고, 신령족은 최초의 동물들을 숭배하며 그들의 힘을 빌린 형태로 발전했다.

    그러던 중 자연의 형태인 하늘의 신 시엘을 숭배하는 이들이 생겨났으니 그것이 신성 교국이다. 뒤늦게 나타나 자리를 잡기 위해서 그들은 칼과 성서를 들고 날뛰었고, 지금은 대륙의 가장 큰 교단이 되었다.

    그런 그들이 대적자로 내세울 정도라면 악마 피스토라는 존재도 실존했을 수 있겠다.

    신성력에 반대되는 어떤 힘이 존재하는가 본데 이제는 그들이 남아있지 않는다고 하니 알아볼 일은 없었다.

    카이가 퀸, 나이트, 룩을 인형에 접목시킨 것도 강신술의 일종이었다. 뭔가 초월적인 존재를 원하는 곳에 강신시키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그 기본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카이는 어렵지 않게 강신술을 배울 수 있었다.

    다만 특정한 존재를 강신시키려면 그 존재와 관련된 물건이 필요하다고 했다.

    격이 높은 ‘뱀’이라 강제 강신은 어려울 테지만, 길은 찾으면 될 일이다.

    카이는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주위를 돌아보았다. 빙의와 강신술을 배운 카이는 흑마법사들을 다시 보았다.

    흑마법사는 상대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그저 마법의 재료 정도로 보는 것. 타메아 왕국에서야 노예가 합법이니 이들의 재료 수급에는 문제가 없다지만 카이는 이들의 사고관이 자신과 어울리지 않음을 알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자들.

    지금 카이에게 이것을 가르쳐 주는 것도 목숨을 구해준 은혜를 갚는다기보다는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었다.

    카이는 콜린스를 돌아보았다.

    “‘뱀’을 강제로 강신시킬 방법을 찾아봐.”

    “물론이지. 그놈한테 카이저를 빼앗긴 걸 생각하면 잠도 안 와.”

    카이는 그 말을 듣고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제가 죽을 뻔했다는 것보다도 카이저를 빼앗긴 것이 더 열이 받는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럼 기대하지.”

    카이는 1억 프랑짜리 진금화를 하나 던지고는 말했다.

    “실제로 ‘뱀’을 강제로 강신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그때는 보수로 10억 프랑을 내줄 테니 작정하고 파 봐.”

    ‘뱀’정도 되는 자가 두 번이나 강제 강신에 당할 리는 없었다. 다만 한 번이라도 놈의 목숨을 줄여놓을 필요가 있었다.

    10억 프랑의 보상금이 걸리자 그들이 눈을 빛내는 것이 보였다.

    “실망시키지 마라.”

    말을 마친 카이는 그대로 공간 이동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엘리슨이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미치겠다. 8성 대마법사라니. 끝내주네.”

    “꿈 깨. 매혹 마법 쓰다가 뒈지는 수가 있어.”

    “나 같은 미녀가 유혹하는데 안 넘어올까?”

    탐욕의 마법사 제이머스가 그 말을 듣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크크크. 매혹 마법 없으면 누가 널 봐주겠냐?”

    “뒈질래?”

    콜린스는 장로들의 투닥거림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나 혼자 움직이던 자들이라 그런지 이렇게 마탑을 만들어서 모았더니 잡음이 너무 많았다.

    “집중해. 10억 프랑도 중요하지만, 나는 물론이고 너희까지 모두 노예로 만들었던 놈을 죽일 기회니까.”

    그 말에 모두의 표정이 변했다. 다른 인간들을 제물이나 재료로 사용하는 것은 자신들이지, 그 반대가 되고 보니 극도의 분노를 느꼈다.

    카이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참았을 뿐 이들은 서로를 잘 이해했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얼마나 짜증이 났는지는 그들만이 이해했다.

    대륙의 흑마법의 정점에 있는 이들이 지금은 하나의 마음으로 강신술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영지로 돌아온 카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태초의 불꽃을 소환하는 일이었다. 바헬이 만들고 해제하지 않아 남아있는 태초의 불꽃 옆에 카이가 소환한 태초의 불꽃이 만들어졌다.

    두 가지 태초의 속성을 소환했지만, 다른 것은 아직 감이 오지 않았다. 실제로 본 것은 만드는 것이 어렵지 않았지만, 다른 것을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포기하지 않았다. 태초의 불꽃과 태초의 바람만으로 충분히 전보다 위력적인 마법을 구현할 수 있었지만, 그보다 태초의 얼음 결정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빙결 마법으로 시작했던 카이였기에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소 퀸이 다른 이들을 가르치는 사이에 카이는 홀로 훈련실에 앉아서 집중했다.

    태초의 바람이 늑대의 신령의 벗이었던 것처럼 자신에게는 빙결 마법이 비슷했다. 그러니 자신도 태초의 얼음 결정을 소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태초의 바람과 불꽃을 보면서 느꼈던 직관을 따라 손을 뻗었다. 과연 그 예상이 틀리지 않았는지 카이의 주위로 시린 냉기가 모여들었다.

    사방에 서리가 내렸고, 내성의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질 때야 카이는 드디어 손끝에 태초의 얼음 결정을 소환할 수 있었다.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얼음 결정이었지만, 이 하나가 성 하나를 얼려 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왕도에 겨울을 불러올 수 있을 것 같았다.

    태초에 존재했던 속성을 일으킨 카이는 자신이 또 한 번 성장했음을 알았다. 8성이 인간의 한계라고 하고, 시간과 공간을 비틀 수 있는 권능을 얻었다고 했지만, 태초의 속성을 만지게 된 지금은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서게 됐다.

    그리고 자신이 일곱 가지 태초의 속성을 다루고 그게 하나로 합쳐졌을 때는 그조차 넘어설 수 있다고 여겼다.

    9성이라는 것이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었지만, 신령들이나 저 하늘 신 시엘, 악마 피스토라는 존재들도 그 정도 경지에 들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경지를 엿볼 기회를 손에 넣었음을 알았다.

    “바헬은 어찌 됐지?”

    8성에 오른 지 백 년이 넘은 바헬이 죽음에 직면한 순간에 일으켰던 태초의 불꽃 덕분에 이것이 기회라는 것을 알게 됐는데 만약 바헬도 이 경지에 도달한다면 어떻게 될까?

    카이는 고민하기보다 일단 세 가지 속성을 모두 소환해 보았다.

    불, 바람, 얼음.

    지금 당장은 이 세 가지 외에는 감조차 오지 않았고, 동시에 소환 가능한 것은 이 셋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불과 바람, 얼음과 바람은 조합이 가능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런 좁은 곳에서 실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지금까지 마법의 페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났다.

    자신의 의지대로 다룰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동력원이 마력이 아니다. 그리고 해제하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소환해 놓을 수 있으니 이 또한 활용할 곳은 무궁무진했다.

    카이는 바헬이 소환한 불꽃을 보았다. 태초의 불꽃. 그걸 이해하고 나니 왜 자신이 저 불꽃을 다루지 못했는지 알 수 있었다.

    소환자의 의지가 아니면 다루지 못한다. 하지만 흩어버릴 수는 있었다.

    카이는 바헬이 소환한 태초의 불꽃을 양손으로 붙잡아 흩어냈다. 차례대로 자신이 소환한 것도 흩어내고는 연구소를 나가니 덴다르트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령족에서 돌아오자마자 대체 어딜 갔다 온 거냐?”

    카이는 그 물음에 미소를 지은 채 답했다.

    “이번에 얻은 깨달음이 있어서요.”

    덴다르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카이가 8성에 오른 지 얼마나 됐다고 여기서 더 깨달음을 얻는다는 말인가?

    인류 역사 처음으로 9성에 오르기라도 할 생각인 건가?

    7성 대마법사가 되고 마음을 조금 놓고 있었더니 또 훌쩍 날아가려고 한다. 9성 제자를 두려면 적어도 8성 대마법사는 되어야 하지 않겠나?

    다만 자신이 7성에 오른 것도 천운과 뛰어난 제자의 아낌없는 가르침 때문이라고 여겼으니까.

    한숨을 내쉰 덴다르트가 고개를 휘휘 내저으며 물었다.

    “그래서 뭘 깨달았는데?”

    카이는 그 말에 차례로 하나씩 자신이 소환한 태초의 속성을 일으켰다. 태초의 불꽃을 시작으로 태초의 바람, 태초의 얼음 결정이 소환되어 떠오르자 그걸 바라보던 덴다르트가 울상을 지었다.

    “그 비밀을 깨달은 거냐?”

    “일부지만 깨달았어요.”

    “하. 미치겠네. 어떻게 다루는 지도 알게 된 거야?”

    카이는 두말하지 않고 태초의 바람을 이용해 둘의 몸을 띄웠다. 플라이 마법처럼 마력을 이용한 것도 아니고 부드럽게 허공에 떠오른 덴다르트는 펄럭이는 로브를 잡아 누르면서 주위를 돌아보았다.

    “바람이 돕는 거냐?”

    “예. 제 의지로 소환한 태초의 속성은 그 힘을 빌릴 수 있어요.”

    카이는 허공에서 시험해 보기로 했다. 태초의 불꽃으로 일으키는 거대한 불길에 바람을 싣는다.

    화아악!

    거센 불길의 바람이 시야가 닿는 하늘을 불태워버린다. 열풍의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구름도 사라지고 청명한 하늘만이 남았다.

    덴다르트는 그걸 보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건 존재할 수 없는 자연재해였다. 감히 인간이 다뤘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초고온 열풍. 태초에 신이 있어 그의 분노가 드러난다면 이러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이건 마법이 아니잖아?”

    카이는 그 물음에 뺨을 긁적였다. 실제로 두 가지 태초의 속성을 섞어본 결과 묘하게 신경을 자극하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에 집중하려고 하니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이걸 제대로 따라가기만 해도 저 ‘뱀’을 상대로도 승리를 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천히 눈을 뜬 바헬은 앞에 선 우로보로스를 바라보았다. 실체와 영체가 반반 섞인 우로보로스의 형색을 살피던 바헬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거냐?”

    <목숨을 하나 잃었다.>

    “네가?”

    바헬은 알고 있었다. 우로보로스가 신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존재라는 것을. 신령족이 신처럼 모시는 이였다.

    그 격 자체도 신격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존재. 보옥을 가지고 나오더니 현계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되었는데 그의 도움으로 부활한 바헬은 우로보로스의 목숨이 다하면 자신도 죽음을 알게 되었다.

    다만 우로보로스가 죽지 않는다면 자신도 죽지 않는 불사의 힘을 손에 넣었음도 알았다.

    대신에 대가로 마지막에 얻었던 그 깨달음을 잃었다. 지금 자신은 8성 대마법사의 힘과 강대한 힘을 지닌 육체를 가지게 됐다.

    어지간한 공격은 몸으로 받아내도 흠집 하나 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진 몸과 8성 대마법사의 마법이라면 이것만으로 대륙 최고라고 자부할 만했다.

    “누구한테 잃은 거냐?”

    <무결의 대마법사.>

    바헬은 그 이름을 듣고는 픽 웃음을 흘렸다. ‘뱀’은 신격을 지니고 있지만 전능하지는 않다. 그러니 놈에게 당한 것이겠지.

    놈의 실력은 자신도 알고 있었다. 시공간을 비트는 데다가 함께 하는 소녀도 예상을 뛰어넘었다. 마법사의 천적이라고 할 만한 이를 데리고 다니는 그 존재는 지금 다시 붙는다고 해도 이길 자신이 없었다.

    “복수는 못 해주겠는데?”

    자신이 불사의 힘을 지녔어도 두 콤비를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우로보로스는 그 말에 미소를 지은 채 답했다.

    <그건 내가 할 일이고, 넌 해줘야 할 일이 있다.>

    바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얻은 힘을 확인해 봐야겠어. 그보다 뭔가 도움이 될만한 게 없나?”

    <부활시킨 것만으로는 성에 안 차나?>

    “네 힘을 얻은 것도 있지만, 상대할 놈들이 얼마나 강한지 알았으니까.”

    백 년을 넘게 살면서 무서울 것이 없었던 바헬도 이제는 공포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니 받아낼 수 있는 것이라면 마다할 생각이 없었다.

    그 말에 그를 바라보던 우로보로스가 몸을 부르르 떨자 뱀 비늘로 만들어진 로브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기다란 송곳니도 하나 떨어졌다.

    <이거면 충분할 거다.>

    바헬이 봐도 그랬다. 뱀의 비늘로 만든 로브는 뛰어난 항마력에 강력한 방호력을 줄 테고, 뱀의 송곳니라면 찌르는 순간 상대를 중독시킬 수 있을 터였다.

    육체 능력도 강회된 지금이라면 충분히 도움이 될 것들이었다.

    바헬이 뱀 비늘 로브를 걸치고 송곳니를 품에 넣고는 미소 지었다.

    “좋아. 원하는 게 뭐냐?”

    돌싱 후 대마법사-아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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