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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93화 (93/150)

093화 뱀

룬드그린에게 물건을 받으러 공간 이동한 카이는 어딘가 끈적한 기운이 감도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룬드그린의 앞에 선 콜린스와 그의 뒤에 서 있는 자를 보고 카이도 마력을 일으켰다.

룬드그린이 뒤를 돌아보았지만,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만큼 지금 앞에 있는 저 존재.

카이저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뱀의 눈깔을 한 자를 보니 깨닫는 것이 있었다.

“너 ‘뱀’이구나.”

“너는 그때 바헬의 은신처에서 보았던 마법사구나.”

카이는 뱀을 만난 것도 의외였지만, 그게 카이저의 몸에 들어있는 것은 더 뜻밖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만남이었지만, 놈이 확실한 이상 일단 죽이고 본다.

카이가 곧장 마력을 뿜어내며 방사형으로 냉기를 뿜어냈다. 카이의 냉기가 전방을 휩쓸자 콜린스가 황급히 뼈의 벽을 만들어 방어하려 했다.

콰자작!

뼈의 벽이 단숨에 얼어붙는 사이에 카이저는 오히려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확실히 전에 보여줬던 카이저와는 다른 속도였다.

급격하게 좁혀진 거리.

확실히 움직임이 전과 비할 수 없이 빨라졌지만, 사고 가속을 통해 그 움직임을 정확하게 읽은 카이는 눈앞에 얼음 결정을 만들었다.

예전이었다면 빙옥을 만들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위력적인 얼음 결정을 만들 수 있었다. 태초의 불꽃은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이 얼음 결정을 만들어서 닿는 순간 그 위력을 조절할 수 있게 된 것도 이점이라면 이점이었다.

카이저가 내뻗은 주먹이 얼음 결정을 지나면서 그대로 얼음 덩어리가 되었고, 균열이 갔다.

쩌저적!

팔이 떨어져 나가지만 눈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거리를 좁히는 것을 보고 카이는 인상을 굳혔다. 카이저의 몸 안에 들어가 있는 저것이 ‘뱀’이라면 껍데기일 뿐이라는 얘기였으니까.

나쁜 마음을 먹고 엘토르 국왕을 암살했던 놈은 죽어서도 영면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껍데기만 이용할 뿐이라면 완전히 박살 내버리지 않는다면 죽일 수 없다는 말과도 같았다.

거리를 좁힌 놈의 왼팔에서 튀어나온 것은 검은 뱀이었다. 시간 가속으로 지켜보는 순간 검은 뱀의 눈이 번뜩이며 같은 시간 속에서 움직였다.

육체는 7성이었지만, 순간적으로 8성이 다루는 영역에 발을 들인 것.

껍데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혼의 격이 중요한 걸까?

그러나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카이는 칠채마력을 일으켜 그걸 압축해 하나의 구슬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입을 쩍 벌리는 검은 뱀의 시간을 비틀었다.

시간이 덜컥 멈춰버린 뱀의 눈이 휘둥그레질 때 카이는 칠채마력으로 만든 환을 던졌다. 그 작은 구슬은 범위를 좁혔지만, 그 위력만큼은 확실한 마법이었다.

제대로 피하지도 못한 뱀의 입속에서 구슬이 폭발했다.

콰앙!

전력으로 펼치면 도시 하나를 파괴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마법. 그러나 그 폭발의 범위를 좁히고, 위력은 오히려 더 강화됐다.

폭발에 휩쓸린 검은 뱀의 머리는 물론이고, 카이저의 육신마저 상반신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다리뿐이었는데 다리가 털썩 뒤로 넘어갔다.

아무리 범위를 줄였다고 해도 그 폭발에 휩쓸린 룬드그린의 집무실은 한쪽 벽면이 통째로 사라져있었다.

카이는 그제야 숨을 고르고는 주위를 살폈다.

콜린스가 카이를 보고는 인상을 굳혔다.

“무, 무슨 짓을 한 거냐!”

벌떡 일어나 외치는 콜린스를 카이는 빤히 바라보았다. 설마 자신의 소유였던 카이저가 죽어서 그런 걸까? 하지만 그 안에 깃들어 있던 존재를 생각하면 콜린스가 종이 되면 종이 되었지, 종으로 부릴 수는 없었을 터였다.

카이의 시선을 받은 콜린스가 얼굴을 붉히며 로브를 벗어 보였다. 콜린스의 목에 난 두 개의 구멍. 그 주위로 검은색 실핏줄이 일어난 것을 보니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놈의 해독약이 없다면 일주일도 살 수 없다고 했다! 어떤 해독 주문도 통하지 않았어!”

예상대로 콜린스는 놈의 노예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가 죽을 판이라 억울함이 가득해 보였지만, 조금 전 카이가 카이저를 죽이는 것을 본 후라 감히 그에게 대들지는 못했다.

카이는 콜린스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려 룬드그린을 보았다. 그도 조금 전 카이가 싸우는 것을 봤기에 잔뜩 긴장했다. 괴도 카네기를 태워버리는 것을 보았을 때와 지금 보여준 것은 확실히 달랐다.

칠채마력으로 터트린 마법의 위력은 그걸 보았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터지는 것을 보니 오싹했다.

범위를 좁혀서 그렇지 그냥 그 자리에서 폭발했다면 집무실은 물론이고 마탑이 사라졌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뭐 대화를 더 나눌 것이 있습니까?”

룬드그린은 그 말에 콜린스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마음 같아서는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이었다. 흑마법사들의 수장이라고 하지만 자신이 독에 중독되어 노예가 된 상태에서 룬드그린마저 노예로 만들려고 그 원흉이 될 놈을 데리고 온 자였으니까.

“뭘 할 생각이오?”

카이는 콜린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일단 몇 가지 실험해 볼 생각이라서요.”

“실험이오?”

마법사들의 실험. 인체 실험의 대상으로 7성급 흑마법사를 둔다는 것만 보아도 새삼 8성 대마법사의 위치를 깨닫는다.

“예. 필요한 게 아니라면 제가 데리고 가도 되겠습니까?”

솔직히 카이저가 사라졌지만, 자신이 제압하려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할지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카이가 데리고 간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이번 일에 대해서는 교국에 알리고 의논해봐야 했다.

“물론이오.”

카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콜린스를 돌아보았다.

“치료 받아 볼 생각이 있냐?”

“미친놈. 누가 날 치료한단 말이냐? 해독 마법도 통하지 않는 지금.”

카이는 콜린스의 대꾸에 씨익 웃었다. 생각해 보니 콜린스는 자신이 어떤 이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뭘 말로 설명하나?

카이는 그를 향해 성큼 다가가며 주먹을 휘둘렀다. 사람을 패는 것이라면 카이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콜린스가 황급히 마력을 일으키지만, 시간 가속을 한 카이의 주먹을 피할 수는 없었다.

뻑!

턱이 돌아가면서 눈이 풀린 콜린스가 쓰러지자 카이가 그를 발로 밟은 채 룬드그린을 돌아보았다.

“혹시 부탁드렸던 것은 준비 되었습니까?”

“무, 물론이오.”

룬드그린은 7성 대마법사가 누군가에게 주먹을 맞아서 쓰러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에 잠시 당황했지만, 곧 준비한 논문과 이번에 함께 준비한 것까지 카이에게 건넸다.

카이는 논문들을 가방에 넣고는 미소를 지었다.

“집무실을 부순 것은 죄송합니다.”

“아니오. 내 목숨을 구해줬으니 기회가 된다면 꼭 보답하겠소.”

카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대로 공간 이동했다.

교황청으로 공간 이동한 카이가 잠시 기다리니 성기사들이 몰려와 주변을 포위했다. 예전에는 검성과 테오르를 던져놓고 갔었지만, 지금은 자신이 볼 일이 있었다.

“성녀를 만나 뵙고 싶소.”

모인 이들의 시선이 한 명을 향했다. 카이도 그 시선을 따라가니 성기사 하나가 서 있었다. 수염이 성성한 것을 보니 티투스와 비슷한 연배로 보였지만, 그 실력만큼은 그보다 월등해 보이는 노인이었다.

6성은 되어 보이던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무결의 대마법사 되시오?”

카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노인이 미소를 지은 채 답했다.

“난 제 2성기사단장 바우어라고 하오. 얼마전에 돌아오셨으니 안내하겠소.”

바우어는 거기까지 말하고 카이의 발밑에 밟혀있는 콜린스를 보고는 물었다.

“그런데 그 밟고 있는 자는 누구요? 아무래도 흑마법사로 보이는데?”

“악몽의 대마법사 콜린스입니다.”

그 말에 주위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그들이 당황하는 것과 다르게 바우어는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

“그자가 콜린스라면 성녀를 뵐 수 없소.”

카이는 그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손을 들어 올렸다. 카이의 손끝에서 휘몰아치는 기운에 성기사들이 물러날 때 카이는 콜린스의 등에 손을 올리고 천천히 돌렸다.

바헬이 자신에게 했던 마력 봉인.

콜린스의 마력을 봉인한 카이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 자의 마력은 봉인되었으니 걱정할 일은 없을 겁니다.”

“흠흠. 그럼 내가 안내하겠소.”

카이는 그 대답을 듣고는 콜린스의 몸을 마력으로 집어 들었다. 카이의 뒤에 시체처럼 꼿꼿하게 펼쳐진 채 누워서 따라오는 그를 보고 성기사들은 뭐라고 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악몽의 대마법사 콜린스라고 한다면 신성 교국의 현상금 최상위에 있는 존재였으니까.

카이는 콜린스를 들어 올린 채 바우어를 따라 걸음을 옮겼고, 교황청의 모든 시선을 받으면서 성녀의 방으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아나벨은 카이가 데리고 온 콜린스를 보고는 물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카이는 콜린스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말했다.

“‘뱀’에게 당했습니다.”

“우리가 얘기한 그 ‘뱀’이요?”

카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나벨은 콜린스에게 다가가 그의 로브를 벗기고 안을 살펴보다가 인상을 굳혔다.

“이건가 보네요.”

목에 뚫린 구멍 주위로 검게 실핏줄이 일어나 있는 것을 바라보던 아나벨이 카이를 돌아보았다.

“‘뱀’을 만났나요?”

“정확히는 ‘뱀’이 깃들어 있던 시체를 만났죠.”

카이는 쓰러진 콜린스를 내려다보며 설명했다.

“독의 해독약을 받지 못해 그 노예가 됐다고 하더군요.”

“노예요?”

“해독 주문이 통하지 않는다더군요.”

아나벨은 그 말에 콜린스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대고 해독 주문을 사용했다.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그녀의 손이 닿자 검은 실핏줄의 범위가 줄어들었지만, 온전히 치료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차도가 보인다는 것이 어딘가?

아나벨은 잠시 콜린스의 목을 살피다가 답했다.

“완치는 장담하지 못해도 관리할 수 있는 수준까지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카이는 잠시 콜린스를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일단 마력을 봉인시켜놓았으니 해가 될 일은 없을 겁니다. 치료를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아나벨이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혹시 이 자를 어떻게 할 생각이 있으신가요? 에빌 마탑의 탑주가 되어서 흑마법사들의 관리를 맡길 생각이기는 했는데요.”

“마탑 연합에 들 수 있을 지는 모르겠군요. 마탑 연합의 마스터가 크게 반감을 품은 것 같으니 말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마스터 룬드그린을 팔아넘겼으니까요.”

아나벨은 그 말에 콜린스의 목을 바라보았다. 노예가 된 콜린스는 ‘뱀’의 수족이 되었었다는 말이다.

에빌 마탑의 탑주인 콜린스보다는 마탑 연합의 마스터 룬드그린이 훨씬 더 가진 영향력이 강하니 그를 노예로 삼으려고 했던 모양.

그를 손에 넣어 무슨 짓을 하려고 했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회복되면 ‘뱀’과의 싸움에 쓸 생각입니다. 어차피 ‘뱀’ 때문에 죽을 뻔했던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부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렇다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치료해 놓을게요.”

아나벨은 콜린스의 상처를 보더니 말했다.

“완치는 못해도 관리가 될 정도로 치료하는 데는 보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카이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시체에 들어가 있던 ‘뱀’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둬야 할 필요가 있어 보였으니까.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공간 이동으로 성으로 돌아온 카이는 곧장 연무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기사들이 있었는데 카이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퀸을 불렀다.

“퀸!”

펜리르를 타고 달려온 퀸이 카이 앞에 멈췄다. 그녀의 뒤에 거리를 두고 다가와 선 기사단을 보니 삼엄한 기세가 느껴졌다.

“어디 다녀와?”

카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같이 갈 곳이 있어.”

“어디?”

“신령족을 만나러 가자.”

단순히 세렌티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신령족의 족장이나 제사장을 만나서 정확한 얘기를 들어봐야 할 것 같았다.

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그려졌다.

“좋아. 타.”

혼자 가지 않는 것은 신령족의 전사장이나 뛰어난 이들을 만나 퀸이 깨달음을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카이가 펜리르의 뒤에 올라 퀸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퀸이 씨익 웃더니 펜리르에게 소리쳤다.

“가자! 대수림으로!”

펜리르가 그대로 달려 성벽을 뛰어넘더니 곧장 내달렸다. 늑대의 신령이 깃들지도 않은 상태로도 이 정도라니 새삼 놀라웠다. 카이는 퀸의 허리를 꼭 안은 채 신령족을 찾아갈 생각에 살짝 기대했다.

7성에 이른 이들을 전령으로 쓸 정도의 전력을 지닌 그들과의 만남은 어떤 식으로든 그에게 도움이 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돌싱 후 대마법사-신령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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