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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91화 (91/150)
  • 091화 아군

    카이는 테오르를 보내고 나서 다시 바헬이 만든 불꽃을 다시 연구하기 시작했다.

    테오르는 오랜 시간 8성에 올라있었던 이. 그만한 대마법사가 팔을 하나 잃었어도 놈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를 안 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답을 찾지 못했다.

    카이는 직접 싸워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뱀의 악령은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하긴 검성의 검으로도 베지 못했던 존재였다.

    퀸까지 가세해서 간신히 비늘 몇 개를 얻은 것이 전부.

    수면에 비친 달의 그림자처럼 마법이 고작 1할 정도밖에 통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어지간한 마법은 통하지 않는다. 같은 마법사로서 카이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카이는 이 불꽃에 집중하는 중이었다. 이 불꽃을 잘만 다룰 수 있게 된다면 놈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았다.

    홀로 타오르는 불꽃은 마법의 지식을 넘어선 것이었다. 그리고 뱀의 악령도 마법의 지식을 넘어선 존재.

    그러니 이 불꽃의 비밀을 파헤친다면 놈에게 닿을 수 있다는 직관이 들었다.

    미치광이가 죽기 직전에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인지 만들어낸 이 불꽃.

    게다가 이 불꽃은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어떤 영감을 조금씩 자극한다.

    카이는 손을 들어 얼음 결정을 만들어 보았다. 무결의 대마법사라고 불리지만, 카이가 가장 잘하는 것은 빙결 마법이었다.

    그러니 얼음 결정을 만들어서 그것을 살펴보았다. 마력 주입을 멈추면 얼음 결정이 사라졌다.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얼음 결정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카이는 고개를 휘휘 내젓다가 마력 감지에 걸리는 것을 느끼고 밖으로 나왔다.

    카이는 저 멀리 다가오는 비공정을 바라보았다. 비공정이 천천히 속도를 줄이더니 연병장에 내렸다. 그리고 메르샤가 아나벨 성녀와 함께 내렸다.

    그 뒤로 비공정에서 성기사들이 상자를 들고 내리기 시작했다. 연병장에 차곡차곡 쌓이는 상자는 모두 60개나 되었다.

    “한 상자에 100억 프랑씩 들어있어요.”

    아나벨 성녀의 말에 카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100만 프랑짜리 금화가 들어있는 상자들이라 현금성도 좋았다.

    “확실해서 좋네요.”

    카이는 아나벨 성녀의 서명이 들어간 채권을 돌려줬다. 아나벨 성녀가 눈짓하자 성기사 하나가 작은 상자 하나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건 이자 대신에 보이는 성의에요.”

    카이는 성기사가 건네주는 상자를 열어서 확인해 보았다. 상자 안에 든 것은 푸른색의 포션이었다. 포션을 확인한 카이는 열 개의 포션을 확인하고 아나벨 성녀를 바라보았다.

    “이거 최상급 포션 아닙니까? 한 달에 세 개밖에 만들지 못한다고 하는?”

    “맞아요. ‘성녀의 기도’라는 포션이죠. 제가 기도해서 만드는 포션이에요.”

    “이거 하나 가격이 천만 프랑 아닙니까?”

    한 달에 고작 세 개. 성녀가 직접 기도해서 만든다고 알려진 포션으로 눈이 튀어나올 만한 가격도 가격이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팔이 잘려도 빨리 붙이고, 뿌리기만 하면 나을 수 있는 포션. 꾸준히 복용할 수만 있다면 무병장수가 가능하다고 한 포션이다.

    여분의 목숨이라고 불릴 정도의 포션이니 그 가격이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비싸도 없어서 못 사는 물건이었다. 그런 포션을 열 개나 줄 줄은 몰랐다.

    1억 프랑의 가치를 지닌 포션을 이자 대신 가져왔다. 단순히 숫자 이상의 가치를 지닌 포션이었다.

    웃돈을 얹어서 파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이자까지 생각한 건 아니었는데요.”

    아나벨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이게 끝이 아니에요.”

    그녀의 말처럼 상자를 내린 후에도 성기사는 계속 비공정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쌓이는 상자에 다가간 카이가 그것을 열어보고는 감탄했다.

    그 안에 든 것은 최상급 마정석과 트리달리움 주괴들이었다. 그것의 가격만 해도 족히 10억 프랑은 되어 보일 양이었다.

    “시장님이 말하기를 이런 물건들을 구한다고 들었어요.”

    헬리움을 만들어서 연구하기 위해서라도 트리달리움은 필요했다. 지금 만들고 있는 기사단원들의 장비를 만드는 데도 필요했고.

    게다가 최상급 마정석은 충전해서 사용할 수 있는 만큼 항상 필요했다. 다만 최상급 마정석은 돈이 있다고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구할 수야 있지만, 항상 여분만 파는 것이라 제국의 도움을 얻거나 해야 구할 수 있었는데 신성 교국에서도 이렇게 내준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자로 치기에는 그 양이 많았다.

    “부탁하고 싶은 것이라도 있습니까?”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 위한 선물이라고 생각해주셔도 돼요.”

    제국이 섣불리 신성 교국을 건드리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저력은 신도들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신성 교국과 척을 진다는 것은 포션을 포기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그들을 건드리지 않는 중이었다.

    그러나 신성 교국에서도 8성 대마법사와의 친분을 유지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고작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서 이만한 물건을 내줄 수 있는 신성 교국이 얼마나 강대국인지 새삼 깨닫는다.

    “선물은 잘 받았습니다.”

    카이가 미소를 지은 채 답하자 테오가 데리고 온 인형들이 물건을 옮기기 시작했다.

    “바로 돌아갈 생각이 아니시라면 함께 저녁 식사를 하시죠.”

    테오는 신성 교국에서 대금을 가지고 올 거라는 소식을 듣기 무섭게 성녀를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언제든 그녀가 온다면 최고의 대접을 할 준비를 했기에 카이도 이번에는 그녀를 식사에 초대했다.

    “그럼 실례해도 될까요?”

    “실례라니 별 말씀을.”

    카이가 아나벨 성녀를 안내하는 모습에 옆에서 메르샤가 투덜거렸다.

    “난 보이지도 않아?”

    카이는 픽 웃음을 흘렸다.

    “무슨 소리야? 우린 친구잖아. 들어가자.”

    친구라는 말에 메르샤가 히죽 웃으며 따라왔다.

    식사가 끝나고 차를 마시는 시간에 카이는 아나벨에게 물었다.

    “혹시 신령족에 대해 아십니까?”

    제국보다는 대수림에 가까운 데다가 역사를 따진다면 신성 교국이 더욱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하늘 신 시엘은 과연 신령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물었더니 아나벨 성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답했다.

    “신령족이라고 동물의 정령들을 모시는 이들이 대수림 안에 있다는 얘기는 글로 읽은 적이 있어요. 그들을 전도하러 갔던 전도사의 일기도 있고요. 하지만 깊이는 알지 못해요.”

    뱀의 신령이 악령이 된 지금 놈을 막는 데 도움을 줄 만한 이들을 추리는 중이었다. 일단 제국에서야 테오르의 팔을 뜯어 먹었으니 도움을 주려고 할 터였다.

    검성이나 테오르 둘 중 하나는 도움을 줄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만의 도움으로 놈을 잡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신령들도 도움을 준다고 했지만, 그것도 큰 기대를 할 수 없었다.

    뱀의 악령이 바헬을 구해가면서 대수림을 벗어나 뭔가 일을 벌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챈 이상 도움을 최대한 구할 생각이었다.

    “단순히 정령이라고 보기에는 그들의 격이 굉장히 높습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대수림을 벗어나기도 했고요.”

    카이의 말에 아나벨이 인상을 굳힌 채 물었다.

    “그게 ‘뱀’인가요?”

    테오르를 직접 치료했기에 ‘뱀’에 대해 들었나 보다. 그렇다면 신성 교국도 그들에 대해서 짐작은 하고 있었으리라.

    그때 이야기를 듣고 있던 메르샤가 쿠키를 집어 먹으며 말했다.

    “8성 대마법사가 뭘 그런 걸 걱정하고 그래?”

    카이는 메르샤의 말에 쓴웃음을 짓고는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안타르시아의 시장이자 정령 마법사인 그녀는 어쩌면 정령을 상대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여겼으니까.

    “수몰의 대마법사의 팔을 뜯어 먹고 검성의 공격에서 고작 비늘 몇 개를 떨어트리고 내뺀 존재야. 그걸 고작 정령이라고 깎아내릴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메르샤는 쿠키를 씹던 것을 멈추고 카이를 바라보았다. 카이는 그녀의 시선에 담담히 말을 이었다.

    “대수림을 벗어난 만큼 ‘뱀’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기에 미리 그것에 대한 경고를 남기는 거야.”

    메르샤가 당황해서 소리쳤다.

    “수몰의 대마법사 팔을 뜯어 먹을 정도의 괴물이면 말해줘도 대응할 수 없잖아!”

    당연히 대응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만한 힘을 가진 존재가 작정하고 움직인다면 대륙에서 ‘뱀’을 막아낼 수 있는 존재는 없다.

    그걸 보면 분명 ‘뱀’도 제약이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모두 경각심을 가지고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그 정도야?”

    “그래. 게다가 일단은 그 근본은 뱀의 정령일 수도 있으니 정령 마법사인 너라면 뭔가를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얘기를 꺼낸 거야. 이만한 존재가 있다는 것은 알려지는 것만으로 대륙에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까.”

    “그렇기는 하네. 알겠어. 나도 정령들에게 물어보도록 할게.”

    대륙에 전해지는 정령 마법은 자연 속성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물, 불, 바람, 대지의 정령들이었는데 그 정령은 신령족이 모시는 신령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하지만 대륙 최고의 정령 마법사인 그녀가 정령들에게 묻는다면 뭔가를 알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알아내는 것이 있으면 알려줘.”

    “부탁하는 거야?”

    카이는 멀뚱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대꾸했다.

    “친구 사이에 부탁은 무슨···.”

    “호호호. 그럼. 친구 사이에 부탁은 무슨. 내가 잘 알아보고 알려줄게.”

    카이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런데 그건 지금도 물을 수 있는 것 아니야?”

    “쯧! 뭘 모르면 가만히 있어. 정령은 그 속성에 가장 어울리는 곳이 있어. 바람의 협곡으로 가서 물어봐야 하니까 그렇게 알아.”

    “데려다 줘?”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는 카이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메르샤는 고개를 내저었다.

    “안 돼.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해야 하거든. 자연의 상태로 돌아가서 물어야 하는데 나한테 관심 없다고 했잖아.”

    알몸으로 대화해야 하는 줄은 몰랐던 카이가 순순히 물러나자 메르샤가 키득거리고는 아나벨 성녀를 돌아보았다.

    “교국에서는 어떻게 할 거야?”

    아나벨 성녀는 솔직한 심정으로 답했다.

    “교국에서 인정하는 것은 자연계 정령뿐이에요. 동물 정령을 우상으로 삼는 것은 그 자체가 교리에 어긋나는 일이니 저희도 조사하고 대응하도록 할게요.”

    아나벨 성녀나 메이어 성기사나 모두 7성 정도에 머물고 있지만, 이들은 신성력이라는 전혀 다른 힘을 다루는 이들이니 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여겼다.

    “그리고 잠깐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시간이 괜찮을까?”

    “물론이지. 뭔데? 물어 봐.”

    카이는 급히 떠나려는 메르샤를 데리고 자신의 연구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카이가 보존한 바헬이 만든 홀로 타오르는 불꽃을 보여주자 메르샤의 눈이 커졌다.

    “이거 뭐야?”

    메르샤가 비록 정령 마법사라고 하지만 마법사였다. 그녀의 상식을 벗어난 불꽃을 보니 자연스레 물을 수밖에 없었던 것.

    카이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고, 메르샤는 자신을 시험한다고 여겼는지 집중해서 불꽃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한참을 불꽃을 바라보던 메르샤가 손을 내밀었다.

    “조심해.”

    메르샤는 그 말에 홀린 듯 내뻗던 손을 멈추고는 가만히 불의 온기를 느껴보더니 말했다.

    “태초의 불꽃인 것 같은데.”

    “그건 또 뭐야?”

    “모든 속성 마법은 태초에 존재하던 존재들로부터 그 개념을 전해 받아 만들어진 것이라는 거 알아?”

    마법에 대해서 덴다르트가 가르쳐 줄 때 했던 말이었다. 전설 같은 이야기고 증명된 것 하나 없는 이야기이기도 했따.

    “그래서 그게 태초의 불꽃 같다는 건가?”

    메르샤는 팔짱을 낀 채 그 불꽃을 바라보며 답했다.

    “우연의 산물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태초의 불꽃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싶어.”

    메르샤가 뒤돌아 카이를 보며 물었다.

    “이건 누가 만든 거야?”

    “바헬.”

    메르샤는 그 말에 흠칫 몸을 떨었다.

    “미치광이 바헬? 그 불꽃을 왜 네가 가지고 있어?”

    카이는 담담히 대꾸했다.

    “내가 죽였으니까.”

    메르샤는 새삼 카이가 무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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