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싱 후 대마법사-90화 (90/150)
  • 090화 노예

    대관식을 준비하던 중에 엘제토 후작은 들려온 소식에 황급히 귀족 연합 회의를 열었다. 그곳에서 모인 이들은 아직 소식을 듣지 못했는지 엘제토 후작이 소집한 긴급 회의에 다들 의문을 품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인데 이런 늦은 밤에 회의를 소집한 것이오?”

    엘제토 후작은 그들의 물음에 숨을 고르고 이야기를 꺼냈다.

    “아직 소식 못 들었소?”

    “뭘 말이오?”

    하긴 이야기를 들었다면 아마도 저렇게 태연하게 대꾸할 리가 없겠지.

    한숨을 내쉰 엘제토 후작이 자신이 들은 소식을 알려줬다.

    “안타르시아의 ‘그레이스’ 경매가 열렸다는 것은 알고 있소?”

    “그곳에 초청받아 간 엘디아 여왕이 그대로 내뺐는데 모를 리가 있겠소?”

    귀족들은 그녀가 왕위를 계승한 일이 사실은 허수아비 여왕이 되고 싶지 않아 왕궁을 벗어났을 때 몸을 내뺀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 진심이 고스란히 드러난 귀족들을 보며 엘제토 후작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 날 새로운 8성 대마법사가 나타났소.”

    귀족들은 그 말에 모두 정신을 집중했다. 그들이 자세를 바로하자 엘제토 후작이 입술을 깨문 채 말을 이었다.

    “그는 엘티온 왕자의 아버지. 카이 백작이오.”

    “말도 안 되는 소리요! 7성에 오른 지 얼마나 됐다고 8성에 오른다는 말이오!”

    귀족 하나가 외치는 소리에 엘제토 후작도 공감했다. 그도 처음에는 그리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생각해 보면 무결의 대마법사의 재능은 놀라울 정도였다. 언제고 7성에 오를 남자라고 여겼는데 8성까지 올라 버렸다.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지금까지 대륙의 역사에 남은 8성 대마법사들 조차 눈 아래로 봐야 할 정도의 재능이었다.

    “그곳에는 대륙의 7성급 능력자들이 모여 있었소. 그들이 모두 인정했소. 특히 마탑 연합의 마스터 룬드그린이 공인했소.”

    룬드그린은 7성급이지만 적어도 마법사로서 그가 공인했다는 것은 그 말이 가지는 무게가 다르다는 이야기였다.

    귀족들이 모두 입을 다물자 엘제토 후작이 말을 이었다.

    “문제는 그게 아니오. 카이 백작이 참전하지 않았기에 그가 왕가와의 이별이 좋지 않았다고 여겼소. 그러나 그가 엘티온 왕자를 아꼈던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오.”

    그제야 귀족들도 긴장했다.

    7성급 대마법사였을 때도 그의 눈치를 봐야했지만, 8성급 대마법사라면 얘기가 다르다.

    미치광이 바헬이 무슨 짓을 벌이고 다녔는지를 빤히 아는 이들이었다. 그가 100년이 넘게 대륙을 돌아다니면서 행패를 부림에도 어떤 왕국도 그를 제지하지 못했던 것은 8성은 8성이 아니면 막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허수아비 왕을 세우고 자신들 마음대로 왕국을 좌지우지할 생각이었다. 왕가에서 빚을 갚는 동안 왕가가 가진 이권을 하나둘 빼먹을 생각이었는데 이제 엘티온의 눈치를 봐야 하게 생겼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

    “일단 카이 백작의 의중을 알아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왕가와 사이가 그리 좋지 않으니 돈으로 성의를 표시하면 우리 편을 들어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타앙!

    엘제토 후작이 회의실 탁자를 강하게 내리치고는 지금 말한 귀족을 돌아보았다.

    “카이 백작이 ‘그레이스’의 주인이오. 그가 마음먹으면 돈으로 왕국을 살 수 있을 정도의 부를 쥐고 있단 말이오!”

    모두가 숨을 죽일 때 적막만이 내려앉았을 때 창가에서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아네.”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을 때 그곳에는 지금까지 회의의 주제로 올라와 있던 사내가 서 있었다.

    카이는 그들이 회의 중인 탁자에 놓인 쿠키를 집어서 입에 넣으며 말했다.

    “뭐 당신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빤히 알겠어. 엘티온을 왕위에 올려놓고는 빚을 다 갚을 때까지 이것저것 왕가의 것을 빼먹을 생각이겠지.”

    모인 이들이 모두 숨을 죽일 때 카이가 옆에 놓인 아직 입을 대지 않은 찻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그러지 마.”

    가벼운 말 한마디였지만, 누구도 그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8성 대마법사라고 듣기 무섭게 그가 이곳에 나타났다. 그의 영지와의 거리를 생각하면 그가 이곳에 나타났다는 것 자체가 공간 이동의 영역에 발을 들였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 긴급 회의가 있었는데 어떻게 알고 이곳을 찾아왔다는 건가?

    그 말은 카이의 눈이 수도에 닿아있다는 얘기였다. 그것도 실시간으로.

    그들의 상식을 넘어선 그의 행동에 모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카이는 찻잔을 내려놓고 가방을 꺼내 우루루 쏟아냈다. 가방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것은 100만짜리 금화였다.

    “귀족 연합이 냈다는 300억 프랑. 이걸로 다 갚았다?”

    엘제토 후작은 감히 이자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감히 8성 대마법사 앞에서 이자 얘기를 꺼낼 정도로 간이 크지는 않았으니까.

    카이는 탁자에 손을 올리고 귀족 연합에 모인 고위 귀족들을 훑어보았다. 다들 엘도 왕국에서 한가락 하는 이들이었지만 모두 카이의 시선이 닿자 고개를 숙였다.

    “난 왕국의 운영에 관심 없어. 그런데 시끄러운 건 질색이거든. 그러니 잡음 없이, 엘티온이 날 찾아오는 일 없게 해.”

    그 말을 끝으로 카이가 사라졌다.

    그곳에 남은 귀족들은 그가 사라졌음에도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다.

    조합 마법진의 개념에 대해 배우고, 그곳에 사용되는 룬어와 마법진을 배우는 데 걸린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만 조합 마법진이라는 것이 원하는 마법에 맞게 조합을 해야 하는 것이었기에 테오르가 사용하는 비전 마법에 맞는 조합을 찾는 것은 스스로 해야 할 일이었다.

    그 일은 카이에게 의뢰할 수도 없었다. 자신이 가진 비전 마법에 대해서 그렇게 소상하게 알려줄 수도 없었으니까.

    제국 최고의 무기를 다른 이의 손에 맡길 수는 없었다. 그러니 그건 자신이 해야 할 일. 하지만 그 길이 얼마나 험난할지 벌써 짐작이 갔다.

    어떤 룬어와 어떤 마법진을 조합하느냐에 따라서 마법의 완성도가 달라진다. 간단한 3성, 4성 마법 정도로 카이가 예를 들어 줬는데 그걸 통해서 8성 마법을 다루는 것은 다른 얘기였다.

    얼마나 많은 실패가 예견되어 있는지 빤히 보였다. 그래도 이제 배울 것은 다 배운 상황.

    이제 슬슬 제국으로 돌아갈 때가 됐다. 그렇게 밖으로 나온 테오르는 오랜만에 보는 하늘을 눈이 부시다는 듯 바라보았다.

    눈살을 찌푸린 채 하늘을 올려다보던 테오르는 문득 고개를 돌렸다.

    연구실 외에는 개방하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유독 그의 시선이 닿지 않도록 신경 쓰는 곳이 있었다.

    “흐음. 뭔데 이리 숨기는 걸까?”

    원래 마법사라는 종족이 호기심을 참지 못한다. 그간 카이의 성정을 미루어 보기에 이 정도 일로 자신을 죽이려고 난리 칠 일은 없을 테니까.

    마법사치고 상당히 합리적인 인간이었다.

    테오르는 그래서 단거리 공간 이동으로 연무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성벽에 올랐다. 그리고 그곳에서 볼 수 있었다.

    24기의 기사가 움직이는 것을.

    고작 24기. 그런데 그 움직임은 바람보다 빨랐고, 그들의 진퇴는 마치 한 몸이라는 듯 움직이는데 황궁의 기사단은 물론이고, 저 검성이 가르치는 기사단조차 저리 완벽한 움직임은 보이지 못했다.

    게다가 저 마갑과 기사가 입고 있는 갑옷 모두 트리달리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감탄이 절로 이는 움직임이었다. 집단 전투에서 저들을 막아낼 이들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지. 8성 대마법사가 저런 기사단은 왜 필요한 거야?”

    게다가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들 사이에서 날뛰는 늑대를 탄 여인이었다.

    “저 늑대는 또 뭐야?”

    늑대라기보다는 몬스터에 가까웠다. 저만한 덩치의 늑대를 늑대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위에서 달리는 데만 집중하는 여인. 처음 보는 여인이었는데 뭔가 익숙했다.

    “흐음.”

    그때 여인이 늑대를 멈추고는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마주친 테오르가 뭔가 머쓱해서 손을 들어 올릴 때 그녀가 훌쩍 늑대 등에서 뛰어올라 그의 앞에 내려섰다.

    “커헉!”

    그냥 단순히 앞에 내려섰을 뿐인데 마력이 뒤틀린다. 아니, 마력이 밀려난다.

    평상시였다면 이 정도까지 피해를 입을 일은 아니었는데 지금은 마력이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그래서인지 마력이 밀려나는 움직임만으로 치명적이었다.

    “많이 좋아졌나 봐?”

    적당히 거리를 벌리자 테오르는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제야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여인이 자신의 마력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그런데 어째서인지 태연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마치 자신이 무슨 일을 벌였는지 모르겠다는 듯.

    테오르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날 아나?”

    “뱀한테 죽을 뻔한 거 구해줬더니 뭔 소리야? 노망났어?”

    “응?”

    퀸은 한심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보다 검성? 그 아저씨는 왜 같이 안 왔어?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테오르는 그제야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았다.

    “네가 그때 그 꼬마라고?”

    퀸은 그 말에 씨익 웃었다.

    “그때는 내가 좀 어렸지?”

    “아니. 그게 얼마나 지났다고.”

    퀸은 키득거리며 답했다.

    “폭풍 성장했지.”

    이렇게 갑자기 성장하는 것이 가능한가?

    몇 년은 지났다고 해도 믿을 만큼 컸는데?

    그것보다 당혹스러운 것은 그녀 곁에 있기만 해도 마력이 밀려난다는 점이었다. 체내의 마력이 이렇게 흔들리는 것은 지금은 상당히 위험한 일.

    “여긴 왜 오신 겁니까?”

    “응?”

    테오르가 돌아보니 카이가 그의 뒤에 서 있었다. 카이는 퀸을 흘끔 보고는 말했다.

    “그만 돌아가.”

    “응. 아빠.”

    퀸이 환하게 웃으며 물러나는 것을 보고 카이는 테오르를 돌아보았다.

    “괜찮으십니까?”

    “그렇기는 한데 저 아이는 뭔가?”

    “제 딸입니다.”

    “그걸 말하는 게 아니잖나? 마력에 영향을 끼치는 걸 말하는 거지.”

    거기까지 말하던 테오르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지? 자네 이제 스물일곱인데 무슨 저만한 딸이 있다는 건가? 뭐? 여섯 살에 낳았다고 할 건가?”

    카이는 그 말에 쓴웃음을 짓고는 물었다.

    “그보다 조합 마법진은 더 배우실 것 없으신 거죠?”

    “뭐 배울 건 다 배웠지. 나머지는 내가 알아가야 할 일이니까.”

    “그럼 가시죠.”

    “어딜?”

    카이가 그의 손목을 잡고는 그대로 공간 이동했다. 테오르는 갑자기 바뀐 주위를 둘러보다가 카이에게 시선을 줬다.

    “뭔 공간 이동을 이리 쉽게 해?”

    “이렇게 못하십니까?”

    “아니. 나도 멀쩡할 때는 했지. 그런데···.”

    어째서인지 말하면 말할수록 짜증 나고 구차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렇지. 대륙을 가로질러 황도의 중앙 분수까지 단번에 공간 이동을 하는데 아무런 준비도, 전조도 없이 이동한단 말인가?

    얼굴을 보아하니 별로 어려워 보이지도 않았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싶었다.

    “여기서라면 돌아가는 데 문제는 없겠죠?”

    “그렇기는 한데···.”

    “그럼 저 갑니다.”

    카이가 말과 함께 공간 이동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테오르는 뭔가 말을 꺼내려다가 팔을 내렸다.

    제국까지 데려다준 것은 고마웠는데 너무 뜬금없이 돌아왔다.

    “어? 내 가방!”

    지금 자신의 몸 상태로는 카이의 영지까지 가려면 못해도 열흘은 걸린다. 장거리 공간 이동을 할 만한 상황이 아니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때 갑자기 옆에서 카이가 불쑥 나타났다.

    “깜빡하고 짐을 두고 왔더라고요.”

    카이가 내미는 자신의 가방을 받아들자 그가 다시 사라졌다. 그 모습에 테오르의 인상이 와락 일그러졌다.

    “연달아 네 번?”

    대륙을 가로지르는 공간 이동을 연달아 네 번이나 하다니 이건 자신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건 무엇보다 마력 양이 문제였다.

    이제 고작 8성에 오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녀석이 무슨 마력을 저리 많이 가지고 있단 말인가?

    “뭔가 이상한데?”

    마치 뭔가를 숨기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자신을 제국으로 서둘러 보낸 것도 의심스러웠다.

    “젠장. 그보다 한참 요양해야겠네.”

    카이의 딸이 다가왔을 때 마력이 밀리는 바람에 회복하는데 한참은 더 걸리게 생겼다.

    악몽의 대마법사 콜린스는 앞에 선 자신의 노획물을 바라보았다. 팔이 하나 없었지만, 온갖 흑마법으로 그를 강화하는 중이었다.

    용병왕 카이저.

    이 시신을 온전히 다룰 수 있게 된다면 적어도 대륙에서 무서울 것이 없으리라.

    콜린스가 흡족한 얼굴로 바라볼 때 카이저의 눈이 떠졌다. 그런데 그 눈의 모양이 마치 뱀의 눈 같았다.

    콜린스가 뒤로 물러나며 마법을 준비하는 사이에 카이저의 잘린 팔에서 뭔가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검은 비늘을 지닌 뱀이었다.

    “무슨···?”

    카이저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급한 대로 쓰기에는 적합하군.”

    카이저는 그리 말하고는 성큼 콜린스를 향해 다가왔다. 콜린스가 황급히 뼈의 벽을 만들었지만, 검은 뱀이 단숨에 벽을 뚫고 길게 늘어나 콜린스의 목을 틀어쥐었다.

    콜린스는 자신의 목에 박힌 송곳니의 통증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런 콜린스를 향해 다가온 카이저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너 내 노예가 돼야겠다.”

    돌싱 후 대마법사-아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