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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87화 (87/150)

087화 밝히다

갑작스러운 난입과 함께 물건을 훔쳐가려는 자의 실력은 상당했다. 그 움직임만으로 따진다면 7성급 중에서도 최고속을 자랑한다고 여길 정도였다.

오죽하면 그의 웃음과 함께 들리는 말이 좌중에게 들리기도 전에 그는 이미 몸을 내빼고 있었으니까.

메르샤의 눈이 커지고 관객석에서 모두 몸을 반쯤 일으킬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7성에 오른 이들이었기에 그 변화를 눈치챌 수 있었다.

그들이 반응하면서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홀로 다른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자를 볼 수 있었다.

카이의 손에서 날아간 하나의 불꽃이 상대의 양팔과 두 다리를 태워버렸다.

순식간에 소각되어 사라져 버린 팔과 다리에 뛰어내렸던 자는 몸통만 남아 바닥에 떨어졌다.

그자의 움직임은 분명 7성의 경지에 이른 자였기에 그가 누군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괴도 카네기.

7성급에 이른 육체 강화자이면서 그 빠르기는 다른 7성급 육체 강화자들도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고속으로 움직이는 것이 가능한 자였다.

항상 주인이 있는 자리에서만 훔치기에 괴도라고 불렸는데 누구도 그를 잡은 이가 없었다. 그만큼이나 빠르게 움직이는 자였다.

그런데 그자가 보석함을 낚아채고 솟구치는 그 짧은 순간에 팔과 다리를 태워버렸다. 7성급 육체 강화자의 항마력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들이 몸을 일으키는 그 짧은 사이에 팔과 다리가 타서 사라졌으니까.

그건 마치 다른 시간 속에서 벌어진 일 같았다.

“끄아아악!”

카네기가 비명을 지를 때 카이는 마력으로 붙들었던 마력함을 손으로 받았다. 그리고는 버둥거리는 카네기를 내려다보았다.

7성급 육체 강화자. 게다가 그 움직임은 카이도 감탄할 정도로 빨랐다.

다만 시간 가속과 사고 가속이 가능한 8성 대마법사 앞에서는 의미가 없는 속도였다는 것이 문제였을 뿐이다.

대륙에서 7성급 이상의 강자 대부분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이 물건을 훔쳐냈다면 그는 분명 역사에 남을 업적을 세웠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이가 있는 곳에서 훔치려 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카이는 고민하지 않고 상대를 태워버렸다.

화르륵!

눈앞에서 7성급 육체 강화자로 수십 년간 이름을 날리던 괴도 카네기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관객석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재가 되어 사라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모두 마른침을 삼켰다.

그때 상석에 앉아있던 마탑 연합의 마스터 룬드그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방금 시간에 간섭한 것이오?”

절로 정중해지는 어투.

카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경매가 끝난 후에 밝힐 생각이었는데 불청객의 방문으로 알려졌군요. 맞습니다. 저는 8성에 올랐습니다.”

다들 당황했다. 어렴풋이 짐작하던 것이 사실로 드러났을 때 그들은 이걸 믿어야 하는지 고민이 될 정도였다.

8성에 오른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대륙의 모두가 꿈꾸는 것이지만 실제로 그 경지에 이르는 이는 한 세대에 하나만 나와도 잘 나왔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그들이 반신반의하는 것을 보고 무대 위에 있던 카이가 사라졌다. 갑자기 사라진 그의 목소리가 메르샤의 자리. 엘디아의 옆에서 들려왔다.

“이 정도면 믿겠습니까?”

공간 이동. 공간에 간섭하는 것도 8성에 오른 이들이 얻을 수 있는 권능이라고 알려져 있었고, 이들은 모두 그것에 대해 알 정도의 인물들이었다.

카이는 엘디아가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흘끔 보고는 슬쩍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다시 공간 이동으로 무대로 올라갔다.

눈앞에서 시간에 간섭하고 공간 이동을 두 번이나 선보인 카이였다. 그가 만약 다른 방법으로 움직였다면 이곳에 있는 이들 중 알아채지 못할 이는 없었다.

그런 만큼 카이가 8성에 올랐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룬드그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에 이게 마지막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던 것이었군.”

7성 대마법사 정도만 되어도 어지간하면 그를 압박할 수 없다. 보통 소속 왕국이나 마탑을 생각하면 건드릴 수 없으니까. 그러나 제국이 마음을 먹으면 얼마든지 간섭할 수 있었다.

그런데 8성에 올랐다면 얘기가 다르다.

뭐든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된다.

그게 미치광이 바헬이 100년이 넘도록 자기 마음대로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였으니까.

카이는 보석함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럼 경매를 시작해 볼까요?”

태연한 그의 어투에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어떻게든 저 물건을 사게 되면 8성 대마법사와 어떤 식으로든 만날 수 있을 수도 있다는 계산이 깔렸다.

단순히 아티펙트의 성능만으로도 사활을 걸고 도전해야 했는데 그 주인이 8성 대마법사라는 것을 알게 되니 더 의욕이 타올랐다.

카이는 메르샤에게 경매를 맡기고 한 걸음 물러나 경매장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괴도 카네기에 대해서는 들었지만, 그의 침투는 카이의 마력 감지를 속일 정도였다. 일단 마력을 숨기는 것 자체가 다른 이들과는 수준이 다른 자였다.

카이도 천장에 구멍이 뚫릴 때까지 몰랐으니까.

그러나 그가 웃음을 터트리면서 보석함을 낚아챘을 때는 이미 그에 대한 대응책을 모두 준비한 후였다.

그래서 그는 도망도 못치고 눈앞에서 잿더미가 되었다.

그게 여기 모인 이들에게 강력한 경고가 되었으리라. 7성급 육체 강화자라고 해도 걸리면 죽는다.

8성 대마법사라는 것이 그런 존재라는 것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1,000억 프랑부터 시작하죠. 호가는 100억 프랑입니다.”

역사에 남을만한 아티펙트였다. 여인이 착용할 물건이라 그런지 7성에 오른 여성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가격은 삽시간에 3,000억 프랑을 넘어가고 있었다.

3,000억 프랑을 넘기면서 소국들은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마탑도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남은 것은 마탑 연합의 마스터 룬드그린과 클란드라, 아나벨 성녀였다.

룬드그린은 이것만큼은 꼭 자신이 가져야 한다고 여겼다. 장비의 성능도 성능이지만 대체 무슨 수로 저만한 장신구에 7성 마법을 집어넣었는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싶었다.

8성 대마법사가 만든 아티펙트.

눈이 뒤집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탑 연합의 마스터임에도 돈이 마른다. 마탑 연합의 돈이라고 해도 자신이 무한정 끌어다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8성 대마법사와의 연을 이을 생각까지 한다면 포기할 수 없었다.

그때 옆에서 클란드라가 담담히 말했다.

“4,000억.”

“4,100억.”

룬드그린이 가슴을 쥐어짜며 말했을 때 아나벨 성녀가 말했다.

“5,000억.”

그 말에는 클란드라조차 표정이 굳어졌다. 제국에서는 조합 마법진을 배우기로 했지만, 그래도 7성급 아티펙트 장신구에 대해서는 욕심이 났다.

지금까지 ‘그레이스’의 모든 제품을 구매했고, 마지막 작품이라고 하니 더 가지고 싶었다.

게다가 저 듀얼 잼은 구하기도 어려운 것인데 절묘하게 세공까지 해서 그 자체로의 예술적 가치도 대단했으니까.

“5,500억.”

클란드라도 한계까지 질러 보았다. 클란드라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보니 아나벨 성녀는 그녀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말없이 손을 들었다.

“6,000억.”

신성 교국이 돈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게다가 성녀라는 지위는 신성 교국의 최상위 지위로 그 위치는 황녀인 클란드라보다도 높았다.

클란드라도 더는 손을 들 수 없었다.

그녀가 입술을 살며시 깨물 때 아나벨 성녀는 미소도 짓지 않은 채 기다렸다.

“6,000억. 더 없습니까?”

이미 1,000억 프랑을 넘는 순간 국가 예산을 아득히 뛰어넘었기에 경쟁이 치열해질 수 없었다. 제국에서도 황제가 직접 왔다면 달랐겠지만, 클란드라가 허락받아온 돈은 5,000억 프랑이 전부였다.

자신의 사재까지 털어서 5,500억 프랑까지 질러 보았지만, 이게 한계였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나벨 성녀님이 6,000억 프랑에 ‘그레이스’의 마지막 작품 ‘진실’을 낙찰 받으셨습니다.”

모두가 아쉬워했지만, 납득할 수 있는 가격이었다. 돈 많기로 유명한 대륙 3대 상단도 2,000억 프랑 즈음에서 떨어져 나갔었으니까.

마탑 연합이나 되니까 제국, 신성 교국과 경합을 벌일 수 있었을 뿐이다.

“나오시죠.”

아나벨 성녀가 무대 위로 올라섰다. 카이가 보석함을 건네주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직접 걸어주시겠어요?”

카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뒤돌아선 그녀의 목에 ‘진실’의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목걸이를 걸어주자 그녀는 직접 귀걸이까지 착용하고 메르샤를 돌아보았다.

“오늘 저녁은 아벨 님과 함께할 수 있는 건가요?”

“물론이죠. 제가 힘써 준비하죠.”

메르샤가 자신 있게 하는 말에 아나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무대를 내려갔다.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유일무이한 아티펙트. ‘그레이스’가 마지막 작품이라고 한 만큼 더는 나오지 않을 아티펙트였다.

그 주인이 8성 대마법사이니 압박도 가할 수 없다.

룬드그린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레이스’의 주인이라고만 불렸지 제대로 된 이명도 없었는데 혹 이명을 지어드려도 되겠소?”

8성 대마법사는 보통 그 정도 수준까지 올라가기 전에 이미 이명을 얻는다. 수몰의 대마법사도 7성에서 얻었던 이명을 그대로 가지고 간 것이었으니까.

룬드그린이 이런 식으로라도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 말을 꺼냈을 때 카이는 미소를 지은 채 무대 중앙에 섰다.

“‘그레이스’의 마지막 작품의 이름이 왜 ‘진실’인지에 대해서 알려드리죠.”

그리 말한 카이가 메르샤를 돌아보았다.

“메르샤. 지금까지 속여서 미안해.”

메르샤는 그가 8성에 올랐다는 것은 테오르를 재웠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자신에게 왜 미안하단 말인가?

8성 대마법사는 미안해 할 필요가 없는 존재다.

테오르가 자신에게 어찌 대하는지 보지 않았던가?

“괜찮아.”

카이는 메르샤의 대답을 듣고는 시선을 돌려 엘디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마법을 일으켰다.

카이의 머리 위로 불꽃이 나타났다. 그 불꽃을 보고 사람들이 뭘 밝히려는 건지 궁금해했다. 그때 불꽃 옆으로 상반되는 얼음 결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바람이 일고, 대지의 기운이 뭉쳤다.

그게 뭘 의미하는지 깨달은 이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할 때 전격이 일어났고, 순수 마력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물방울이 나타나 회전하는 것을 보고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 명의 마법사가 여러 속성을 다루는 것은 지금까지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같은 수준으로는 다룰 수 없다고 알려진 것이 정설이었다.

카이는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고, 그의 머리 위에 떠돌던 일곱 가지 기운이 회전하다가 하나로 뭉쳐서 커다란 구체를 만들었다.

그걸 보는 순간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 모두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일곱 가지 속성을 다루고 그걸 하나로 뭉친 순간 구체가 뿜어내는 가공할 위력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저게 이곳에 떨어진다면 안타르시아는 사라진다.

도시 하나를 파괴할 수 있는 힘.

도시 하나와 전장 하나를 수몰시켰던 테오르와는 다른 카이의 마법을 보면서 모두 마른침을 삼켰다.

카이는 두 손으로 자신이 만든 구체를 흩어내고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카이는 엘디아를 빤히 바라보면서 본색을 드러냈다.

“내 이름은 카이. 무결의 대마법사다.”

일곱 가지 속성을 다룰 수 있는 것을 보여주었을 때부터 모든 사람이 수군거리면서도 확신을 가지지 못했던 것은 무결의 대마법사가 얼마 전에 7성에 올랐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성급이라는 것이 그렇게 쑥쑥 올라가는 것이 아니었기에 여러 가지 속성을 다루는 모습을 보고도 믿지 못했다.

카이는 엘디아에게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축소 마법진과 조합 마법진을 함께 사용했기에 7성급 아티펙트를 만들 수 있었지.”

엘디아는 카이가 ‘진실’을 밝힌다고 하며 마법을 일으킬 때만 해도 저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눈앞에서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모든 마법을 하나로 모아서 보여준 그가 자신의 얼굴을 드러냈다.

무결의 대마법사 카이.

천한 평민이었던 그였다.

자신이 버렸던 남자.

그제야 카이가 왜 자신을 메르샤까지 동원해서 이곳으로 초대했는지 알 수 있었다.

가장 찬란한 순간.

대륙의 정점에 선 이들의 찬양을 받는 지금.

그가 가장 높은 곳에서 빛날 때.

자신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걸 착각하고 희망에 부풀었던 가슴은 높이 올랐던 만큼 까마득하게 추락했다.

그 충격에 엘디아는 그대로 혼절했다.

돌싱 후 대마법사-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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