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싱 후 대마법사-85화 (85/150)

085화 착각

메르샤의 전용 비공정에 처음 탄 엘디아는 그 고급스러움에 감탄했다. 왕궁의 창고까지 싹싹 긁어가서 사치라고는 할 수도 없었다.

그나마 옷은 다른 곳에 팔 수가 없어서 전에 사놓은 옷을 입을 수 있어 그나마 가장 깨끗하고 예쁜 옷을 입었다. 장신구도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착용했다.

화려한 엘더의 제품들을 착용한 엘디아에게 메르샤가 와인을 따라 건네줬다.

하늘을 나는 비공정인데도 흔들림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바람의 정령을 이용하니 근처의 모든 바람을 이용할 수 있는 덕분이었다.

“이번 제품은 어떤 건가요?”

메르샤는 그 물음에 잠깐 고민하다가 피식 웃었다.

“나도 몰라. 나도 보지 못했거든.”

“그런데도 초대장을 보냈다고요?”

보통은 메르샤가 물건을 검수하고 그 물건을 보증하기에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것조차 없었다.

“아벨이 자신했거든. 그리고 이번에는 대륙에 내로라하는 이들이 모두 모일 거야.”

“지금까지도 그랬잖아요.”

“아니. 그 정도가 아닐 거야. 이번 장신구는 7성급 아티펙트라고 했으니까.”

엘디아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엘더를 만들 때 카이에게 설명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축소 마법진으로 아무리 설계해도 6성에 올라설 수 없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그레이스’의 아벨이라는 자는 조합 마법진이라는 것을 들고나와서 6성급 장신구를 만들어냈다. 그 순간 엘더는 경쟁력을 잃었다.

그래서 명품 브랜드에서 대륙의 누구나 돈만 있다면 구할 수 있을 정도로 등급을 낮추고 저변을 확대하려고 했더니 카이가 지분을 회수하고는 축소 마법진 설계의 지적 재산권을 가지고 갔다.

덕분에 더는 엘더의 제품을 팔 수도 없게 되었다. 마탑의 지적 재산권 관리국은 엄중하게 마법사들 모두에게 마나의 맹약을 맺게 했으니까.

그런데 7성급 아티펙트? 그것도 장신구로?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죠? 그가 7성급 대마법사라고 해도 그걸 활성화 하려면 막대한 최상급 마정석이 필요할 텐데요?”

“그렇기는 하지. 아무튼 그 소식을 듣고 안타르시아로 올 수 있는 모든 정류장에서 호출이 왔어. 비공정이 부족해서 우선 순위를 정해야 했을 정도라니까.”

엘디아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대륙의 내로라하는 이들도 순번을 기다리고 있는데 자신은 메르샤가 직접 와서 데리고 갔다.

아벨이 직접 요청했다고 하니 새삼 옷매무시를 가다듬어야 했다. 옷을 갈아입고 화장하면서 얼마나 속이 상했던가? 여왕의 자리에서 내려오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아서 그런지 눈가에 주름이 보였다.

그래도 최대한 아름답게 꾸몄다. 카이저와 결혼할 때만큼 힘을 줬으니 자신의 외모가 통하기를 바랐다.

메르샤는 그런 엘디아를 보며 와인을 마셨다.

아벨이 자신에게 이런 부탁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엘도 왕국이 타메아 왕국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정전 협정을 맺으면서 거지가 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야 1,100억 프랑이 조금만 무리하면 구할 수 있는 돈이지만, 어지간한 왕국에서는 그만한 돈을 일시불로 내면 왕국이 망할 수도 있다.

왕가가 지급할 능력이 없을 때 귀족들이 그 돈을 대신 물어줄 이유가 없으니까. 왕가가 바뀌고, 정복 당한다고 해도 귀족들은 알아서 줄 서면 죽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왕이라고 해도 왕국의 귀족들을 모조리 죽이고 절대적인 왕권을 유지할 수는 없으니까.

그 정도가 가능하려면 제국의 황제 정도는 되어야 한다.

검성과 수몰의 대마법사를 데리고 있다면야 말을 안 듣는 귀족들을 잡아 찢어 죽이는 것이 가능한 그런 이들이나 가능한 일.

그런 엘디아를 왜 데리고 오라고 한 걸까?

혹시 미망인을 좋아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던 메르샤가 불쑥 물었다.

“나 뭐 하나 물어도 될까?”

“시장님의 질문이라면 얼마든지요.”

“무결의 대마법사와는 왜 이혼한 거야?”

엘디아는 그 물음에 메르샤의 시선을 피해 창밖을 보았다.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보며 답했다.

“성격이 안 맞았어요.”

메르샤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직감했다. 무결의 대마법사가 안타르시아에 왔을 때 그녀를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 자신이 직접 봤다.

깜냥도 안 되면서 그녀를 위해 분노할 줄 아는 그는 괜찮은 남자였다. 그런 자가 지금은 7성급 대마법사가 되었다고 했다.

갈아탄 카이저의 팔을 날려버릴 정도의 대마법사.

워 메이지로 시작한 그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 무결의 대마법사가 성격 차이로 이혼을 청했을 리 없었다. 아마도 귀책사유도 엘디아에게 있으리라.

그러나 남의 결혼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메르샤는 와인잔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어려운 질문이었을 텐데도 답해줘서 고마워.”

엘디아도 잔을 들어 보였고, 둘은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안타르시아에 들어선 엘디아는 걸음을 옮기며 격세지감을 느꼈다. 카이저와 결혼하고 다음에 이곳을 찾을 때는 대륙 서부를 제패한 패자가 되어 클란드라조차 눈 아래로 볼 거라 여겼는데 지금 그녀는 미망인에 허수아비 여왕이었다.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아벨이 자신을 찾았다는 말에 그를 만나기를 바라는 것일 뿐이었다.

“아벨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미안. 직접 데려와 달라고 했지만, 제품을 공개하는 날 전까지는 누구도 만나지 않겠다고 해서.”

“그랬나요? 아쉽네요.”

엘디아가 입맛을 다실 때 메르샤가 담담히 답했다.

“VIP로 초대되어 왔으니 편하게 즐겨. 오 일 정도 남았으니까.”

“알겠어요.”

엘디아는 걸음을 옮기며 안타르시아에 돌아다니는 이들을 보았다. 하나하나 얼굴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이들.

실력으로든 돈으로든 대륙에서 이름을 날리는 이들은 발에 차이도록 많았다.

국왕이 직접 못 온 경우도 있는지 각 왕국의 왕자나 공주들도 모두 와 있는 것 같았다. 특히나 공주들은 정말이지 얼마나 공을 들여 꾸몄는지 딱 봐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그것도 나이가 18에서 20대 초반 정도로 가장 아름다울 시기의 공주들이었다.

‘그레이스’의 제품을 살 수 있다면 다행이고 그게 아니라고 해도 어떻게든 아벨을 만나 꼬셔보려고 작정한 것 같았다.

하긴 지금 아벨은 대륙 최고의 신랑감이라고 할만했다. 나이도 어렸고, 7성급 대마법사로 알려진 데다가 가진 부가 어지간한 왕국도 감히 비벼보지 못할 정도의 돈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새삼 그가 대단해 보이기도 했고, 그만한 돈을 내고도 휘청거리지 않는 제국의 저력도 놀라웠다.

고개를 내젓고 걸음을 옮기던 엘디아의 앞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오랜만이에요.”

클란드라 황녀였다. 그녀의 뒤로는 월광 기사단이 함께하고 있었다.

“오랜만이군요.”

엘디아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그녀였다.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목에는 ‘그레이스’의 부활을 걸고 그에 어울리게 바다를 연상시키는 푸른 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아버지와 남편 얘기는 들었어요. 조의를 표해요.”

“고마워요.”

엘디아는 대답하면서도 그녀가 왜 자신에게 이런 말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언제부터 그녀가 자신에게 아는 척을 했다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누구의 초대를 받고 왔는지를 떠올렸다. 아마도 ‘그레이스’의 아벨이 자신을 메르샤에게 부탁해서 초대한 것을 알고 이러는 것이 아닐까?

새삼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클란드라가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고 멀어지자 엘디아는 자신이 배정받은 방으로 갔다.

안타르시아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안타르시아의 가장 중심가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번쩍이고 있는 ‘그레이스’의 간판을 보니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카이는 영지에 돌아와 있었다. 메르샤에게 엘디아를 초대해서 데리고 오라고 말한 후에 굳이 안타르시아에 대기할 필요가 없었기에 그곳에서 샀던 물건들을 가지고 돌아와서 지금은 인공 영혼 폰을 만들고 그에 어울리는 육체를 만들고 있었다.

인공 영혼 폰과 전투마에 들어갈 인공 영혼 홀스도 만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여덟 기의 기사들. 전투마는 헤이스트 마법과 무게 증가 마법을 걸어 놓았다.

무게 증가 마법은 돌진할 때 쓰기 위한 것. 아마도 이것들이 돌진한다면 적군은 산산이 부서지리라.

지금까지 기사단장으로서의 교육을 받고 있었던 퀸은 카이가 데리고 온 여덟 기의 인공 영혼 폰의 기사단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아빠. 이게 내 기사단이야?”

“그래. 집단전에 능숙할 텐데 아직 기본기도 배우지 못한 이들이라 티투스 경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지만 널 위한 기사단이다.”

온통 붉은 적색의 갑옷에 망토까지 두른 이들. 안이 텅텅 빈 깡통들이지만, 이들의 갑옷을 누가 벗기려고 할 일도 없을 테니 상관없었다.

“그래도 만지고 하면 안 돼. 마법진에 문제 생기니까. 너와의 거리는 2미터 이상 떨어져 있어야 돼.”

퀸은 가만히 자신의 기사단을 바라보다가 카이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다가와 카이의 허리를 살포시 안았다. 헬리움으로 만든 그녀가 안으니 마력이 흩어졌지만, 이제 이 정도는 능숙하게 되찾을 수 있었다.

매일 밤 같이 잔 덕분에 마력 지배력이 전과는 비할 수 없이 높아졌다.

카이는 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말을 이었다.

“네 명령에는 절대적으로 따르게 해놨으니 티투스 경에게 데리고 가도록 해.”

“응.”

퀸이 미소를 짓고는 펜리르에 올라서는 손짓했다.

“따라와.”

퀸을 따라 마갑을 입은 것처럼 보이는 전투마를 탄 폰들이 따라 움직였다.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는 그들은 어떻게 보면 기괴해 보이기도 했지만, 이 정도는 되어야 했다.

카이는 퀸을 달래주고는 비행정으로 향했다. 퍼스트의 마법진 앞에서 덴다르트와 프릴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연구 중이었다.

카이는 그들의 뒤에 가서 지금 그들이 뭘 하나 살펴봤다.

“이 룬 문자를 바꾸는 게 어떨까?”

“예? 그러다 큰 일 나는 거 아니에요?”

“원래 모든 마법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나오는 거다.”

카이는 그들의 말을 듣다가 픽 웃고는 답해 줬다.

“그거 바꾸려면 그것과 연결된 조합 마법진부터 시작해서 싹 뜯어 고쳐야 해요. 가능하겠습니까?”

덴다르트는 그 말에 몸이 굳었다가 천천히 돌아섰다.

“언제 왔냐?”

“조금 전에 퀸즈 나이트 완성돼서 주고 오는 길입니다.”

“크흐흐. 아빠 노릇하기 힘들지?”

카이는 그 말에 씨익 웃었다. 퀸즈 나이트를 만들기 위해 들어간 돈을 생각하면 확실히 돈은 엄청나게 쏟아붓고 있었다. 그러나 ‘그레이스’의 마지막 작품인 진실은 아마도 역대 최고가를 갈아치우고도 남을 물건이다.

‘그레이스’의 주주들에게도 은퇴 자금으로 충분한 돈이 가리라.

“언제 가는 거냐?”

“오늘요.”

덴다르트가 그 말을 듣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 나는 언제 8성 가냐?”

카이가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아무리 8성 마법에 대해서 말해줘도 덴다르트가 그걸 깨닫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오죽하면 대륙에 지금까지 8성 마법사가 카이를 포함해서 6명 밖에 되지 않겠는가?

가르쳐 준다고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성 좀 잘 부탁할게요. 그리고 룬 문자 바꿔도 될지 안 될지는 손대기 전에 미리 먼저 물어보시고요.”

폭발까지는 안 해도 수리비가 더 나오지 않을 수준 정도로만 손을 봤으면 좋겠다. 그래도 퍼스트의 마법진을 이리저리 뜯어보고 맛보면서 덴다르트와 프릴의 마법진에 대한 이해도가 놀라울 정도로 성장하고 있으니 뭐라고 말도 못하겠다.

“그래. 잘 다녀와라.”

얼른 보내고 손 볼 생각인 것 같아 카이는 피식 웃고는 공간 이동을 했다. 그리고는 못 볼 꼴을 봤다는 듯 인상을 굳혔다.

“그렇게 물에 오래 들어가 있으면 몸이 뿔겠다.”

저번에도 그러더니 메르샤는 욕조에 몸을 담근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언제 올지 알고 올 때마다 저러고 있다는 건가?

카이가 없을 때는 거의 물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메르샤는 그 말에 웃음을 터트리고는 답했다.

“바람의 정령만큼은 아니지만, 물의 정령도 다루는 내가 몸이 뿔지는 않아.”

카이가 고개를 휘휘 내젓고는 말했다.

“준비는 잘 했어?”

“하기는 했는데 내게 엘디아 여왕을 챙겨주라고 하는 이유가 뭐야?”

“오늘 알게 될 거야.”

메르샤는 눈을 가늘게 뜨고 검지로 카이를 가리켰다.

“설마 미망인이라고 끌리는 건 아니지?”

“정신 차려.”

메르샤가 씨익 웃고는 욕조에서 몸을 일으키기에 카이는 그대로 공간 이동으로 사라졌다. 메르샤는 그 모습을 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군살 하나 없구만.”

이 나이 먹고, 이 몸매 유지하기가 쉬운 줄 아나?

보여준 데도 안 보고 그래.

“그래. 대체 뭘 보여주려고 하는지 한번 보자.”

메르샤가 옷을 입으며 말했다.

“엘디아 여왕에게 준비하라고 전해. 곧 간다고.”

접객원장 베이트의 대답을 들으며 메르샤는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그레이스’의 간판을 보며 메르샤는 입맛을 다셨다.

오늘 나올 제품은 7성급 아티펙트.

자신도 단단히 준비했지만, 워낙 쟁쟁한 자들이 많아서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돌싱 후 대마법사-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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