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화 제안
팔레스는 가족을 데리고 돌아왔다. 처음 영주성에 출근한 팔레스는 테오가 건넨 서류들을 보다가 의문점을 물었다.
“영지 상단을 설립했소?”
“예. 이번에 영지 개발부에서 개발한 충전식 광구의 재료 수급 및 판매를 위해 설립했습니다.”
“그런데 영지 상단 설립 비용이 제대로 기재된 것이 맞소?”
“예. 1억 프랑 들었습니다.”
1억 프랑이라는 숫자를 보고 기재가 잘못된 줄 알았다. 무슨 영지 상단을 만드는데 초기 투자금이 이렇게 많이 들어간단 말인가?
“영지 수입으로 감당이 되겠소?”
영지 상단이 수익을 내기 시작하면 모를까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영지 상단이었다. 그런데도 그만한 돈을 투자한다고 하니 잠시 어이가 없었다.
“영주님이 지금까지 영지에 투자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후회하며 영지 발전 기금으로 내놓은 돈이 100억 프랑입니다. 그 돈으로 영지를 개발하고 영지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계획해주시면 됩니다. 우선은 도로 공사를 명하셨습니다.”
팔레스는 자신의 월급으로 20만을 주겠다고 했을 때부터 대단하다고 여겼지만, 인제 보니 그의 재산이 상상 이상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엘더는 대륙을 뒤흔들었던 명품 브랜드였으니까.
“정말 영지 발전 기금으로 100억 프랑을 내놓으신 것이오?”
“부정만 저지르지 않으시고 합당한 개발 계획이라면 얼마든지 돈을 쓰셔도 좋다고 했습니다.”
“알겠소. 그런데 영주님을 뵙지 못했는데 바쁘십니까?”
테오는 그 말에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답했다.
“뭐에 꽂히셨는지 연병장을 비우고 작업 중인데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이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제게 미리 언질을 주셨으니 그리 진행하시면 됩니다.”
“알겠소. 일단 도로 공사부터 진행하도록 하겠소.”
“혹시 필요한 인선이 있으면 재량껏 구해서 쓰라고 하셨습니다.”
팔레스는 데리고 올 이들은 넘쳤다.
“사람을 데려오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들 월급은 어찌 해야 하는 건가?”
“재량껏이라고 하셨습니다.”
팔레스는 재량껏이라는 말이 살짝 두려워졌다.
100억 프랑을 주고 재량껏 하라니 손이 살짝 떨려왔다.
카이는 한걸음 물러나서 눈앞에 있는 물건을 바라보았다. 크기만 따진다면 마차 열 대를 더한 정도의 크기밖에 안 되지만, 그 안은 공간 확장 마법으로 몇 배는 더 넓었다.
비행정이라고 이름 지은 이건 준비는 모두 마쳤지만, 아직 띄워보지는 않았다. 거의 보름 정도 잠을 아껴가며 만든 것 치고는 완성도가 높았다.
“제자야. 이거 정말 나도 조종할 수 있는 거냐?”
“모르죠. 아직 시범 비행은 해보지 않았으니까요.”
“되면 이거 나 주면 안 되냐?”
카이는 덴다르트를 빤히 바라보았다. 덴다르트는 눈을 초롱초롱 뜬 채로 말했다.
“퀸에게는 펜리르를 줬으니 나도 이거 하나 다오.”
카이는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시험작인데 차라리 다음 것을 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아니. 최초라서 중요한 거야!”
카이는 쓴웃음을 짓고는 손짓했다.
“그럼 타보죠.”
시험 비행이라 이걸 만드는 데 함께한 이들만이 올랐다. 카이, 덴다르트, 프릴만 비행정에 올랐다.
“그럼 시험 비행 해보시죠.”
덴다르트는 그 말에 씨익 웃더니 조종간에 손을 올렸다. 처음에 만들 때부터 여기 오를 수 있는 이들은 정해 놓았다. 등록되지 않은 자들은 타지도 못하도록 각인해 놓은 비행정이 덴다르트의 마력을 받아 떠올랐다.
적어도 시동을 거는 데는 마력이 필요했다.
우우우웅.
비행정이 떠오르기 시작하자 덴다르트가 감탄성을 터트렸다.
“오오오!”
점점 위로 올라간 비행정의 창밖으로 성이 점점 작아지더니 영지가 한눈에 보이다가 더 높이 오르니 대수림이 보이기 시작했다.
카이는 그 모습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출력을 줄이시죠. 이대로 계속 올라가다가 무슨 문제가 생길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문제를 확인하려면 올라가야지.”
카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자신이 막을 자신이 있었다. 점점 고도가 올라가고 대수림이 눈 아래로 보이는데 카이는 그제야 대수림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대수림을 보니 이거 왕국 크기는 넘어 보였다.
프릴은 이미 창문에 얼굴을 바짝 대고 감탄하는 중이었다.
그그그긍.
비행정의 기체가 바람에 흔들리고 끼익거리기 시작했다. 카이는 그 모습을 보고는 출력을 고정했다. 단순히 플라이 마법을 걸어 놓은 것이 아니라 비행정 하단부에 그려 놓은 마법진을 따라 바람이 뿜어져 나와 올라왔던 것.
출력을 조금 낮춰서 비행정을 아래로 내리자 떨리는 소음이 줄어들었다.
카이는 이번에 비행정 후면에 있는 마법진을 가동했다.
슈아앙!
비행정이 날아가기 시작했는데 덴다르트가 옆에서 신나 소리를 질렀다.
“속도 더 높이자!”
어차피 비행정의 한계를 확인해 봐야 했기에 비행정의 속도를 한계까지 확인해 보았다. 카이가 총력을 다해 만든 마법진은 최대 7성 바람 마법까지 펼칠 수 있었다.
덕분에 비행정이 비공정보다도 무서운 속도로 날았다. 비공정에 네 마리 프란퀴스를 붙여도 이만큼의 속도는 나오지 않았다. 최고속도로 난다면 비공정의 몇 배에 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대수림의 상공까지 날았다가 돌아온 후에 카이는 몇 가지 문제점을 찾아냈다.
조종할 때 마력이 필요한 데다가 최상급 마정석으로만 이용했을 때는 속도와 시간에 한계가 있었다. 마법진마다 최상급 마정석이 여섯 개씩 들어갔다.
최상급 마정석이야 다시 충전해서 쓸 수 있지만, 그렇게 많은 최상급 마정석을 넣고도 유지 시간이 두 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카이가 마력을 넣는다면 무한히 유지할 수 있지만, 덴다르트는 자신의 마력으로 운용하면 대충 계산해 보니 최고 속도로 한 시간 정도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험 비행을 마치고 돌아온 카이는 훈련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퀸을 볼 수 있었다. 펜리르와 함께 기다리고 있던 그녀는 비행정이 내리자 인상을 굳힌 채 말했다.
“아빠. 나는?”
카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미안. 널 태우면 비행정의 마법진이 가동하지 않아서.”
퀸은 뭔가 불만이 있어 보였지만, 덴다르트가 웃으며 말했다.
“크하하하. 너에게는 펜리르가 있고, 나에게는 이 퍼스트가 있다!”
“퍼스트?”
“그래. 첫 번째 비행정에게 붙은 이름이지. 어떠냐?”
퀸이 뭔가 불만 있는 표정을 짓자 펜리르가 그녀의 뺨에 얼굴을 비볐다. 퀸은 펜리르의 털을 쓰다듬으며 기분을 풀었다.
“흥.”
가볍게 코웃음을 친 퀸이 훌쩍 펜리르에 올라타더니 카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네 선물도 준비해 줄게.”
“···기대할게.”
퀸이 펜리르를 타고 훌쩍 떠나자 덴다르트가 어깨를 으쓱였다. 애나 어른이나 이게 뭐하는 건가 싶었지만, 카이는 고개를 휘휘 내젓고는 말했다.
“몇 가지 보강하면 안전성은 높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스승님과 제가 아니면 운전하는 것은 무리가 있겠네요.”
“최상급 마정석만으로 움직이기에는 확실히 한계가 있지.”
카이가 덴다르트와 프릴을 데리고 다시 이것에 대해 말하려고 할 때 테오가 찾아왔다.
“백작님. 군부대신 윌리스 백작이 찾아왔습니다.”
카이는 그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이 찾아와서 할 말이야 뻔했으니까.
그렇다고 만나주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들도 비행정을 보았을 테니까.
“응접실로 모셔라.”
“예.”
카이는 덴다르트와 프릴을 돌아보며 말했다.
“괜히 먼저 손대지 마시고, 기다리세요. 저 금방 옵니다.”
“어, 어. 잘 다녀와라.”
덴다르트는 이미 퍼스트라고 이름 지은 비행정의 마법진을 살펴보고 있었다. 카이는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무슨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으리라 여긴 카이는 응접실로 먼저 갔다.
응접실에서 기다리니 그곳으로 테오가 윌리스를 데리고 들어왔다.
“윌리스 백작 오랜만이오.”
윌리스는 카이를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오. 카이 백작.”
카이가 자리를 권하자 윌리스가 자리에 앉았고, 테오가 차를 준비해 왔다.
“조금 전에 비공정을 보았소. 안타르시아에서 왕도만이 아니라 이곳에도 비공정을 보내주기로 한 것이오?”
카이는 슬쩍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윌리스는 기쁜 마음으로 말을 꺼냈다.
“그렇다면 비공정을 이용해서 왕도로 와주시면 안 되겠소. 타메아 왕국군이 국경을 넘어 파죽지세로 진격해 오고 있소. 벌써 넘어간 성이 일곱 개고 이대로 간다면 곧 왕도에 그들이 도착할 것이오.”
카이는 윌리스를 빤히 바라보았다. 군부대신이라고 하지만 왕도가 위험할 때나 움직이는 자다.
야만인의 침공 때도 그가 같은 마음이었다면 분명 군을 움직였을 테니까.
그러니 카이가 그의 편을 들어줄 이유는 없었다.
“이곳까지 왔기에 만나준 것이지 이번 전쟁은 나와는 하등 상관없는 일이니 그만 돌아가시오.”
“백작!”
윌리스는 카이가 이렇게 단번에 거절할 줄 몰랐기에 당황해서 그를 불렀다. 카이는 그런 윌리스를 보며 말을 이었다.
“야만인의 침공 때도 그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였다면 모를까. 그때는 가만히 있고, 지금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은 일이니 그만 돌아가시오.”
“백작! 왕국이 무너지면 결국 백작의 영지도 무사할 수 없소.”
카이는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것 같소? 타메아 왕국에서 날 죽이러 올 것 같소?”
윌리스는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곧 입을 다물었다. 7성급 대마법사라면 타메아 왕국에서도 쌍수를 들고 환영할 터였다. 그러니 카이가 저리 말할 수 있었던 것.
윌리스는 결국 입을 다물어야 했다.
“얼마나 많은 백성이 죽을 줄 알고 있는 것이오?”
카이는 한숨을 내쉬고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기세가 그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이미 죽은 병사가 오만인데 그들은 왜 죽어야 했소? 여왕과 국서가 그들을 이끌고 타메아 왕국의 국경을 넘지 않았다면 과연 이런 일이 벌어졌겠소? 그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질 것이오?”
“그···.”
“잘못은 그대들이 저질러 놓고 다른 이들에게 수습을 바라지 마시오. 나는 그곳에 갈 마음이 없으니.”
카이가 단호하게 말을 자르자 윌리스도 더는 그를 말릴 수 없음을 알았다.
“알겠소. 그럼 이만 돌아가리다.”
윌리스가 돌아서 나가는 모습에 카이가 그의 등에 대고 말했다.
“테오. 배웅해 드려.”
“예.”
카이는 문을 닫고는 창문으로 가서 섰다. 윌리스가 호위병들과 함께 말을 타고 떠나는 모습을 보고 있던 카이는 테오가 돌아오자 물었다.
“지금 타메아 왕국군이 어디까지 왔지?”
“왕도까지는 열흘이면 도착할 겁니다.”
“열흘?”
카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타메아 왕국의 레인 국왕은 지금 어디 있지?”
“레인 국왕은 이번에 친정했다고 합니다.”
“그래?”
카이저가 죽고 나서 직접 군을 데리고 움직인 건가?
친정에 나섰다면 간단히 끝낼 일은 아니었다.
카이가 손짓하자 테오가 물러났다.
영지 개발부에서 만들어 온 충전식 광구에 자극받아 비행정을 만드느라 외부 소식을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
왕국의 국경이 뚫리고 타메아 왕국군이 진격해 온다는 말을 들었을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엘도 왕국이 이대로 무너지게 둘 마음은 없었다. 엘디아가 남의 손에 죽는 꼴을 볼 수도 없었고.
거대한 천막. 그 중심에 놓인 테이블 위에는 엘도 왕국의 지형도가 만들어져 있었다.
붉은색의 깃발들이 엘도 왕국의 중심을 가로질러 왕도로 향하고 있었다. 보통 전쟁이 벌어진다면 국경부터 야금야금 먹어들어가는 형식인데 타메아 왕국군의 깃발은 그 형식을 깨고 있었다.
용병왕 카이저를 죽이고 엘도 왕국의 왕국군을 무너트린 덕이다.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가는 중이었고, 왕국을 정복하는데 이제 고작 성 두 개가 남았을 뿐이다.
성 두 개를 지나면 곧 왕도다.
왕도에 세워져 있는 깃발을 보며 레인 국왕이 미소를 지을 때 불쑥 목소리가 들렸다.
“그대가 레인 국왕인가?”
레인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자신의 앞에 선 사내를 보았다. 광채가 나는 피부에 로브를 걸치고 있는 자.
이곳은 타메아 왕국군의 심처. 그곳에 마법사 하나가 아무렇지 않게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이곳을 지키고 있는 근위 기사단장과 근위 기사단은 뭐하고? 에빌 마탑에서 지원 나온 장로 둘도 6성급 마법사인데 아무도 모른다?
레인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사내에게 물었다.
“그대는 누군가?”
“그건 알 필요 없고, 거부할 수 없는 제안 하나 하려고.”
카이가 미소를 지은 채 레인에게 말을 꺼냈다.
돌싱 후 대마법사-전쟁 배상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