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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80화 (80/150)
  • 080화 늑대의 화신

    타베시가 인상을 찌푸리고는 카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전에도 보통이 아니라고 여겼지만, 지금 보니 이거 전과는 또 달랐다.

    일족의 제사장에게나 느껴지던 격이 느껴졌다.

    한숨을 내쉰 타베시가 시선을 돌리다가 카이의 뒤에 선 퀸을 보았다. 말없이 서 있는 여인. 그런데 그 눈빛이 매서웠다.

    검을 차고 있는 것으로 보아 검을 다루는 이 같은데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흥미가 동하는 상대였다.

    시선을 돌린 타베시는 덴다르트를 보고는 고개를 휘 내저었다. 저 인간도 만만해 보이지 않았다.

    하긴 이 정도나 되니 신령들이 화신까지 보내 만나보고자 한 것이겠지.

    타베시는 입맛을 다셨다. 몸을 회복하고 한 번 붙으러 오려고 했는데 그 전에 늑대의 신령이 화신을 보냈다. 그래서 대족장과 제사장, 전사장이 모두 동의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니 대뜸 하는 말이 뱀의 신령에 대해 묻는 것일 줄은 몰랐다.

    뱀의 신령은 이미 신령이 아니라 악령으로 치부됐다. 그런데 어떻게 그에 대한 것을 알게 된 걸까?

    세렌티가 그 물음에 입을 열었다.

    “자세한 설명을 들으시려면 저희 일족의 땅으로 모셔야 해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카이는 자신의 능력에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퀸과 함께라면 바헬도 잡아 죽일 자신도 있었고.

    그렇기에 저들이 하는 말에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하지만 뱀의 신령을 보았더니 지금 이 전력만으로 저들의 일족을 찾아가는 것은 무리라는 것도 알았다.

    대수림은 공간 이동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곳이었으니.

    “그럼 간략한 설명을 듣도록 하지. 아직 우리가 그만한 신뢰를 쌓지는 않았으니까.”

    타베시가 이죽거렸다.

    “왜? 쫄리시나?”

    카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퀸이 튀어나갔다. 그리고 타베시는 기다렸다는 듯 도끼를 뽑아 마주 달려들었다.

    쯔걱.

    그러나 타베시의 도끼는 퀸의 일검을 받아내지 못했다. 퀸은 공간을 가르지 않아도 그 검에 담긴 힘이 예사롭지 않아졌다. 검성의 검을 잠깐 본 것만으로 그녀의 검은 또 다른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타베시가 뒤로 훌쩍 물러나는데 퀸이 뒤를 쫓지는 않았다. 대신 검을 비스듬히 내린 채 그를 빤히 바라만 보았다.

    타베시는 단 일격을 교환하면서 깨달았다. 이건 단순히 무기의 성능 차이가 아니었다. 그녀가 펼친 검은 전사장을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카이는 퀸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리고는 타베시를 바라보았다.

    “말을 가려서 해. 미치광이의 시체를 뱀의 신령이 가지고 갔기에 그에 대해 물으러 온 것일 뿐이니까.”

    “뭐? 미치광이가 죽었다는 거냐?”

    타베시가 놀라서 묻는 말에 카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뭘 들은 거냐? 뱀의 신령이 그 시체를 가지고 갔다고. 그게 문제가 될 것인가 물어보기 위해 이 자리까지 온 거다.”

    세렌티가 늑대에게 다가가 가만히 손을 올리고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러자 그녀의 눈이 잿빛으로 변했다. 그리고 목소리가 일변했다.

    <뱀의 신령은 현세에 미련이 있는 자로 미치광이를 이용해 신지(神地)를 구성하는 일곱 보옥 중 하나를 탈취했네. 그래서 화신의 한계를 반쯤 벗어난 상태지.>

    뱀의 신령은 영체와 실체를 반쯤 걸친 존재라고 했었다. 직접 싸워본 퀸에게 들었다.

    “확실히 상대하기 어려운 놈이긴 하다고 들었다. 8성 대마법사와 검성이 함께 하고도 죽이지 못하고 놓쳤으니 인세에 그만한 상대가 없다는 것도 인정할 일이지. 그런데 그건 신령족의 문제이니 그대들이 해결했어야 할 일이 아닌가?”

    카이가 인상을 찌푸린 채 나무라자 세렌티가 말을 이었다.

    <우리가 뱀의 신령을 찾아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 맞으나 신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은 보옥을 지켜야만 하네. 만약 보옥을 더 빼앗긴다면 뱀의 신령은 오롯이 신령의 힘을 되찾게 될 것이고 그리된다면 인세에 끔찍한 지옥이 벌어지겠지. 그건 신령의 숲만이 아니라 대륙 전체에 겁화가 일어날 것이네.>

    “그래서?”

    <그래서 부탁하네. 뱀의 신령에게서 보옥을 빼앗고, 화신을 죽여주게.>

    “내가 왜?”

    카이는 피해자다. 미치광이에게 마력 봉인을 당해 죽어가던 중에 깨달음을 얻어 간신히 벗어났고, 이제야 8성에 올랐다.

    그런데 신령의 숲에서 신령 하나가 악령이 되어 날뛰는 것을 왜 자신이 책임져야 한단 말인가?

    <당연히 책임은 없네. 책임은 우리에게 있는 것. 하지만 그 피해는 우리만이 아니라 대륙 전체에 미칠 것인즉 뱀의 신령을 막는 것에 도움을 청하네.>

    카이는 인상을 구긴 채 가만히 세렌티를 바라보았다. 세렌티의 몸을 빌려 나타난 늑대의 정령을 바라보던 카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원하는 것이 있다면 들어줄 수 있는 것은 모두 들어주겠네. 그만큼 이번 일이 위험하니 부탁하는 바이네.>

    미치광이 바헬의 시체를 가져갔다는 것은 뱀의 신령이 뭔가 필요했기에 그랬던 것일 터.

    8성급 대마법사의 시체를 가지고 뭘 할지 모르겠지만, 뭐가 됐든 카이에게 이로울 것은 없었다.

    카이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좋아. 앞으로 추방자는 만들지 말 것. 추방해야 할 자가 생긴다면 그건 신령족이 알아서 해결해. 괜히 영지로 넘어와 민폐 끼치지 않도록.”

    <그리하지.>

    “그리고 앞으로 이곳에서 최상급 마정석을 충전할 거야. 전처럼 해줄 수 있나?”

    <그런 거라면 용맥을 알려주지. 그곳에서 충전한다면 전보다 더 뛰어난 마정석을 얻을 수 있을 걸세.>

    용맥이 분출되는 곳에 마정석 광산이 생기는 법. 그러나 용맥과 마주한 곳이라면 최상급 마정석을 전처럼 충전할 수 있을 테고 그리되면 8성급 아티펙트를 만들 수 있게 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닌 상황.

    카이의 시선이 늑대의 화신을 향했다.

    “그쪽에서도 도움을 줘야지. 늑대의 화신이 나와 함께 갔으면 싶은데.”

    그 말에 타베시가 인상을 굳혔다.

    “미친 거냐? 감히 신령님의 화신을!”

    “뱀의 신령과 싸우는 데 도움을 줘야지. 나 혼자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카이의 대답에도 타베시가 이를 뿌득 갈 때 세렌티가 입을 열었다.

    <당연히 도움을 줘야지. 하지만 신령의 숲을 나서면 나와의 연결은 끊어지네. 그래도 영성을 품은 화신이니 말도 통하고 도움은 될 걸세.>

    카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그런데 왜 너만 나온 거지? 신령은 여럿이 있다고 들었는데?”

    세렌티가 한숨을 내쉬고는 답했다.

    <다른 신령들은 뱀의 신령이 보옥을 빼간 탓에 힘을 아끼기 위해 잠에 들었네. 화신조차 두지 못할 정도로 위험했고, 나만이 깨어나 그에 대적하고자 하는 거지. 하지만 때가 된다면 그들도 깨어날 수 있을 것이네.>

    카이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다면 늑대의 화신은 우리와 함께 가고. 다음에는 신령의 숲으로 오는 공간 이동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할 거야.”

    <그리하지.>

    그 말을 끝으로 세렌티가 코피를 쏟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타베시가 황급히 달려와 그녀를 부축하자 그녀가 숨을 몰아쉬며 입을 열었다.

    “하아. 죄송해요. 더는 뜻을 전할 수 없었어요.”

    카이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했다. 뱀의 신령이라는 것을 처리할 때까지는 한편이 되도록 하지.”

    늑대의 신령 화신이 다가와 카이의 앞에 섰다. 카이가 화신의 미간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런데 이름이 뭐지? 화신이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

    “펜리르라고 부르면 됩니다.”

    카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펜리르를 바라보고 있는데 퀸이 불쑥 다가왔다. 그녀가 펜리르의 털을 만지다가 카이를 돌아보았다.

    “이거 나 가져도 돼?”

    “가지고 말고 할 건 아닌데?”

    퀸이 펜리르에 훌쩍 올라탔다.

    “안 내려와!”

    타베시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펜리르는 그녀를 태우고도 얌전했다. 그 모습에 퀸이 씨익 웃고는 그 위에 자리를 잡았다.

    카이는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퀸은 헬리움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탈 것을 만드는 것도 어려웠는데 펜리르를 타면 그 모든 것이 해결된다.

    인공 영혼만큼 잘 따르지는 않을지 몰라도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늑대의 신령의 힘이 닿지 않는다고 해도 영물 수준은 된다고 했으니 그 능력은 확인해 보면 될 일이다.

    카이는 고개를 돌려 타베시와 세렌티를 보았다.

    “너희도 일족에게 돌아가면 전해. 뱀의 신령이 신령의 숲 밖에서 무슨 짓을 하는 것은 내가 막겠지만, 너희도 언제든 뱀의 신령을 상대할 준비는 해둬야 할 거야. 나 혼자 싸운다고 이길 수 있는 놈도 아닌 것 같으니까.”

    타베시가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세렌티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 전하도록 하죠. 저희도 준비하겠습니다.”

    “용맥이 어딘지는 알고 있나?”

    “위치는 알지만, 이곳에서 상당히 멀어요. 지금 가실 생각이신가요?”

    카이는 그 물음에 고개를 내저었다. 일단 지금 가지고 있는 최상급 마정석을 털어서 하나 만들고 그 뒤에 충전할 생각이었다. 이번에 가방을 만들겠다고 받아온 것이 많아서 시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에. 뱀의 신령에 대해 알았으니 그에 대해 대비해야지.”

    카이는 그리 말하고 일행과 함께 대수림을 벗어났다.

    뱀의 신령이 나타났고, 바헬의 시체를 수거한 순간 일이 틀어진 것을 알았다. 어차피 신령들이 나서지 않는다고 해도 싸워야만 했는데 그들이 도움을 준다고 하니 마다할 생각이 없었다.

    이제 돌아가 놈을 상대할 준비를 해야 했다.

    그렇게 대수림을 나왔을 때 퀸이 카이를 돌아보았다.

    “아빠. 먼저 달려도 돼?”

    “그래.”

    사실 늑대 화신 펜리르의 능력이 궁금하기는 했다. 카이의 대답을 들은 퀸이 자세를 낮추고 목을 끌어안자 펜리르가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움직임이 상식을 초월했다. 6성급 육체 능력자가 전력을 다하면 저리 빨리 움직이지 않을까?

    삽시간에 점이 되어 사라지는 펜리르를 보며 카이의 옆에서 덴다르트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나도 한 마리 주면 안 되냐?”

    “이러다 사라지겠어요. 따라가죠.”

    카이와 덴다르트도 영지를 향해 말을 달렸다.

    눈을 뜨니 처음 보는 천장이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는데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독한 두통이었다. 마치 머리가 쪼개지는 것 같은 고통에 이를 악물었을 때 듣는 것만으로 피가 얼어붙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쯧. 그러게 진즉 나를 받아들이라고 하지 않았더냐?>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 뱀이 한 마리 있었다. 영체와 실체를 반씩 가진 존재.

    뱀의 신령의 화신 우로보로스가 그곳에 있었다.

    “어떻게 된 거냐?”

    <기억이 안 나는 건가?>

    그 말에 문득 기억이 떠올랐다. 그건 끔찍한 기억이었다. 머리에 손을 올리고 만지니 흉측한 흉터가 만져졌다. 흉터를 따라 손을 내리니 정수리부터 턱까지 내려오는 흉터였다.

    “난 죽었던 건가?”

    <그래. 급한 대로 영혼이 빠져나가기 전에 수습했다. 대신 넌 내게 종속되었지.>

    화신 우로보로스의 입가가 말려 올라가며 송곳니가 드러났다. 그 모습을 보고 바헬은 헛웃음을 흘렸다.

    “영생에 관심은 있었지만, 이런 꼴로 되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건가?”

    <어떻게 되긴. 내 힘의 일부를 얻었고, 너의 것 중 일부를 잃었지. 너 정도 되는 자라면 아마 그걸 온전히 얻게 되면 전보다는 강해지겠지.>

    바헬은 확실히 자신의 몸에 휘도는 기이한 힘을 읽었다. 마력이 아니라 기이한 힘이 깃든 것. 확실히 마력과는 다른 힘이었다.

    이 힘을 제대로 읽고 이용할 줄 알게 되면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전화위복인 건가?”

    <힘을 회복하는 데 집중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

    바헬은 쓴웃음을 지었다. 뱀의 신령과 협조하면서 얻었던 것보다 죽다 살아나니 얻은 것이 더 많았다. 자유를 잃었지만, 큰 힘을 손에 얻었으니 다행인 걸까?

    바헬은 자리에 앉으며 자신을 관조하기 전에 선언했다.

    “해야 할 일이 많아도 내 복수가 먼저다.”

    우로보로스는 가만히 바헬을 바라보다가 점점 흐릿해지더니 사라졌다. 어차피 부릴 패는 바헬 하나가 아니니 당분간 다른 패들을 살펴보러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패이자 애를 먹이던 바헬이 손에 들어왔으니 그것으로 일단은 만족하기로 했다.

    돌싱 후 대마법사-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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