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싱 후 대마법사-74화 (74/150)
  • 074화 죽음

    다시 만난 바헬.

    솔직히 아직 회복하지 못했을 거라 여겼다. 헬리움을 손으로 쥐는 것도 아니고 뼈를 부수고 몸에 박혔으니 헬리움의 성질이 그의 마력 회로를 망가트렸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인다.

    이미 헬리움을 겪어보았기에 헬리움에 대한 준비도 했을 터.

    그래서 이곳을 찾아오는 동안 만약을 위해 마력을 제어하는 아티펙트를 착용하고 있었다.

    덕분에 7성으로 보이는 수준.

    카이는 바헬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다 죽어가고 있을 줄 알았는데?”

    바헬은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아! 오래 요양해야 할 정도로 다쳤지. 그렇지 않아도 곧 찾아가려고 했었다.”

    바헬은 몸을 회복하고 가장 먼저 카이를 찾아갈 생각이었다. 저번에는 방심했기에 당했지만, 이번에는 놈을 잡아오고 기이한 금속도 빼앗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먼저 찾아올 줄은 몰랐다.

    “결계는 어떻게 뚫은 거냐?”

    “7성급 결계던데 어려울 것도 없지.”

    카이의 담담한 대답에 낮게 웃은 바헬이 키득거렸다.

    “그래도 제법이기는 하네.”

    바헬은 그리 말하고는 가볍게 발을 굴렀다. 순간 연못 바닥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거대한 마법진이 작동하는 것.

    바헬의 마력을 주입해서 들어간 마법진으로 그게 주위에 펼쳐지는 것을 보고는 카이가 감탄했다.

    “이거 공간 좌표를 흩트리는 거군.”

    마법진은 다른 기능은 하나도 없었다. 다만 이곳의 공간 좌표를 흩어 놓아서 공간 이동이 불가능해졌다.

    하긴 1대1에서 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을 테니 그가 걱정하는 것은 오직 하나. 공간 이동을 막는 것이었나 보다.

    카이가 시공간에 술식에 간섭할 수 있는 술식을 만든 것처럼 이 자도 공간 이동을 방해하는 술식은 만들어 놓았다.

    세 개의 은신처를 모두 급습하면 될 줄 알았지만, 바헬은 8성 대마법사를 상대할 준비를 해 놓은 상황이었다. 다른 쪽에서 바헬을 만났다면 그 상대가 누구든 혼자서 그와 싸워야 했다.

    미치광이 사냥 작전은 처음부터 잘못된 가정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하긴 100년을 넘게 8성에 오른 채 살아온 그가 그 정도 준비도 안 되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잘못 된 것 아닐까?

    그러나 카이에게는 오히려 다행이었다.

    자신이 만났고, 퀸과 함께 있었으니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묻고 싶은 것?”

    카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헬은 그 말에 재미있다는 듯 카이를 바라보다가 손짓하자 그의 마력이 주위의 바위를 끌어다 놓았다.

    카이는 말없이 바위 위에 앉았고, 퀸은 그런 카이의 뒤에 섰다. 바헬도 바위를 하나 가져다가 그 위에 앉아서는 카이를 바라보았다.

    “그래. 궁금한 것이 있다면 풀어줘야지.”

    바헬을 바라보던 카이가 물었다.

    “왜 날 죽이지 않고 마력 봉인을 한 거지?”

    바헬은 신기하다는 듯 카이를 바라보았다. 카이는 분명 뛰어난 마법사다. 고작 7성에 오른 주제에 자신의 마력 봉인을 풀었으니까.

    게다가 자신의 은신처에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의 재능은 7성에 머물지 않으리라는 것을.

    하지만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은 그에게 1년이라는 시간을 주고 압박을 가해서 혹시라도 8성에 오르려나 싶었지만, 그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사이 8성에 올랐을 가능성은 희미했다. 그리고 8성에 올랐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이곳은 자신의 은신처. 마법사의 거처다.

    단순히 공간 좌표만 흐린 게 아니라 온갖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그러니 이렇게 여유를 가지고 질문에 답해준다.

    자신도 물어볼 것이 있었으니까.

    “너 혹시 미래가 보이나?”

    카이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난 미래의 편린이기는 하지만 미래를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리고 사람을 보면 그 미래를 대충이나마 읽을 수 있지. 그런데 넌 아니었다.”

    “난 아니다?”

    “그래. 네 미래는 읽을 수 없었지. 처음이었다.”

    카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래서?”

    “하지만 네 재능은 읽을 수 있었지. 그래서 확인해 보고자 벌인 일이다.”

    괜히 미치광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다.

    “확인해서 어쩌려고?”

    “네가 8성에 올랐다면 함께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그 정도는 되어야 도움이 되거든.”

    “뭐? 도움?”

    “그래.”

    “무슨 도움인데?”

    바헬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 대답을 듣고 싶다면 마나의 맹약을 맺어야 한다. 어때? 듣고 싶나?”

    카이는 코웃음을 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든 네 마음대로 날 재단하고 마력 봉인을 했다는 거잖아. 어떤 도움이 필요해서 그러는 건지 몰라도 더는 들을 것도 없다.”

    카이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바헬은 씨익 웃었다.

    “왜 8성에라도 올랐나?”

    그렇다고 해도 이 안에서 바헬은 승리를 자신했다.

    마법사와 싸우는데 상대가 마법을 발현하게 하면 이미 패배한 거다. 모든 변수를 제하고 상대를 제압해야 했다.

    카이가 몸을 날리기도 전에 바헬이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집에서 떠오르는 것들이 있었다.

    역시나 이 정도 준비는 해 놓았을 줄 알았다. 떠오른 것은 처음 보는 아티펙트들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이 마력을 보충해주는 물건들이다.

    바헬이 먼저 손을 썼다.

    카이는 시간이 느려지는 것을 느꼈다. 역시나 8성 대마법사들 하는 생각이 다 똑같았다.

    카이는 느려지는 시간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바헬은 시간을 느리게 만들고도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처럼 방심하지 않으려고 그런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마법이 발현될 일은 없었다.

    카이가 시간을 되돌리며 반대로 바헬의 시간을 구속했다. 바헬도 이상현상을 바로 깨닫고는 눈을 크게 떴다.

    “너! 8성에 도달했구나!”

    카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바헬이 마법을 발현했다. 바헬의 뒤에 떠 있던 아티펙트들이 동시에 발동했다. 가공할 마력을 전해주며 아티펙트들이 깨져나갈 때 바헬이 손을 들었다.

    바헬의 손에서 불길이 일어난다. 도시 파괴자라 불리는 바헬은 불 속성 마법사였다.

    카이가 시간에 간섭했음에도 전혀 긴장하지 않는 것을 보면 불길을 다루는 비전 마법에 그만한 자신이 있다는 것이겠지. 아니면 카이가 동시에 몇 가지 마법을 쓰지 못할 거라고 여긴 건가?

    시간과 공간을 이용하지 못하는 마법사에게는 카이가 손을 쓸 필요가 없었다.

    “퀸!”

    카이의 외침에 기다렸다는 듯 퀸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7성급 육체 강화자만큼이나 빠른 그녀가 몸을 날리자 바헬이 그녀를 향해 불길을 날렸다.

    바헬이 쏘아낸 불길은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날아드는 불길은 8성급 비전 마법.

    카이는 그걸 보면서 불 속성 비전 마법이 어느 수준까지도 올라갈 수 있는지 알아볼 수 있었다. 다만 저건 카이도 당장은 훔쳐 배울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마법이었다.

    바헬이 평생을 갈고 닦았을 비전 마법. 그 위력은 놀라울 정도였으나 퀸은 그대로 달려가며 검으로 마법을 베어냈다.

    촤아악!

    살아있는 것처럼 날아들던 불길이 갈라지며 흩어졌다. 바헬의 눈이 커지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당황한 것으로 보였는데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도망치려 했다.

    공간 이동으로 몸을 빼내려는 그를 보고 카이는 훼방을 놓았다. 미안하지만 도망치지 못한다.

    바헬은 공간 이동이 불가능한 것을 깨닫고는 연달아 마법을 사용했다. 흩어지던 불길이 다시 퀸을 향해 덮쳤다.

    퀸이 연달아 베어내니 불길이 빠르게 흩어졌지만, 여전히 불길이 사방에서 퀸은 물론이고 카이까지 덮쳐왔다.

    그걸 보고 카이는 새삼 놀랐다.

    순수한 마나는 마력으로 치환되고, 그 후에 속성을 띄는데 마력 치환 과정이 생략된 채 흩어지는 마나를 그대로 불길로 치환해서 퀸을 노렸다.

    고열에 퀸의 옷가지가 모두 탔지만, 이미 퀸은 거리를 좁힌 채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바헬은 자신의 모든 마법이 그녀의 검에 베이고 흩어지는 것을 보면서 깨달았다.

    저 검.

    자신의 몸에 박혔던 그 구슬로 만든 검이 확실했다. 어떤 마법도 통하지 않는 처음 나타난 마법사의 천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극상성의 금속.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그냥 당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주변의 마나를 불길로 변화하고 태워버리면 열기도 열기지만, 숨을 쉬지 못한다.

    숨을 쉴 때 그 열기가 폐를 태워버리기 때문인데 이건 성급이 오른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움직임은 7성급 정도. 자신의 불길에 몸이 타버리지 않는 것을 보면 마력을 다루는 것에 능숙한 것 같지만, 시간만 끌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

    그런데 이 거리를 좁혀오는 그녀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자신의 옷이 타고 몸이 타버리는 것도 무시하고 달려드는 것이 오싹할 지경이다.

    어떻게 한 것인지 몰라도 공간 이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단숨에 거리를 좁혀오니 위험하다.

    그러니 시간에 간섭해야 했다. 상대의 시간을 느리게, 자신의 시간을 빠르게, 사고 가속까지 이뤄지는 술식이 단숨에 이뤄지는데 카이가 손을 썼다.

    퀸의 시간은 느려지지 않았고, 자신의 시간도 빨라지지 않았다.

    남은 것은 오직 사고 가속뿐.

    8성급 대마법사가 7성급과 확연히 구분되는 것 중 하나가 이 사고 가속이다. 시공간에 간섭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사고를 가속하기 때문에 마법 영창이 거의 무영창에 가까워진다.

    다만 이 순간을 타개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연달아 만들어내는 모든 불길을 뚫고 들어오는 여인의 눈이 일곱 가지 색깔로 빛나는 것을 본 순간 본능적으로 불길을 만들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가 만들어냈던 어떤 불길보다 뜨거운 불길이었는데 그 작은 불꽃은 헬리움에 베이지 않았다.

    쾌재를 부르던 바헬은 순간 놀라운 기예를 볼 수 있었다. 퀸의 검이 그 불꽃을 검 끝에 매달고 크게 원을 그려 불꽃을 옆으로 날려버린 후에 휘두른 검격이 날아 들었다.

    황급히 고개를 뒤로 젖힌 순간 가슴이 쩍 벌어졌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날아든 검이 팔과 다리를 차례로 날려버렸다.

    그리고 사선으로 날아든 검이 정확히 바헬의 심장을 뚫었다.

    “크하악!”

    왈칵 핏물을 토하는 바헬은 하나 남은 손을 뻗었다. 그 손이 퀸의 뺨에 닿았다.

    퀸은 검을 뽑으며 하나 남은 팔마저 잘라버리고는 그를 걷어 차버렸다.

    바헬은 뒤로 날아가 바닥을 벌레처럼 구른 채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가 쏘아낸 작은 불꽃. 퀸이 날려버린 불꽃이 그의 은신처를 태우고 있었다.

    크기는 작았지만, 그 위력은 결코 작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그 불길은 아직도 자신의 의지로 통제할 수 있다는 걸까?

    바헬이 정신을 집중하자 단숨에 불길이 은신처를 휘감았다. 자신이 죽는다고 해도 이대로 혼자 죽어줄 마음은 없었다.

    자신의 은신처와 함께 잿더미가 돼라!

    카이는 바헬이 일으킨 불길을 보고는 발을 굴렀다. 카이의 발이 땅에 닿는 순간 그를 중심으로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카이의 비전 마법이 단숨에 모든 불길을 집어삼켰고, 은신처는 얼음 동굴이 되었다.

    카이는 바헬에게 다가가 그의 앞에 섰다.

    “무슨 도움을 원한 거지?”

    바헬은 숨이 넘어가는 와중에도 카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게 궁금하다면 나중에 알려주지.”

    “너에게 나중은 없어.”

    바헬은 꿍꿍이가 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고, 카이는 그런 바헬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퀸. 쪼개버려.”

    기다렸다는 듯 퀸이 내리친 검이 바헬의 머리를 반으로 쪼갰다. 심장에 헬리움 검이 박히면서 마력이 갈가리 흩어지고 있을 텐데도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모르겠지만, 이제야 온전히 죽었다.

    8성 대마법사가 원하는 도움이 뭔지 모르겠지만, 놈은 끝났다.

    자신의 마력을 봉인하고, 죽이려고 했던 바헬의 마지막이었다.

    “후아.”

    복수를 마쳤다. 그리고 더는 자신을 위협할 자도 없어졌다.

    잠시 고개를 들어 은신처의 천장을 바라보던 카이는 아직도 느껴지는 열기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바헬이 만들었던 마지막 불꽃이 있었다.

    그 작은 불꽃. 그러나 카이가 비전 마법으로 주위를 얼려버렸음에도 아직 꺼지지 않은 채 남았다.

    무엇보다 그 불꽃을 만들었던 바헬이 죽었는데도 불꽃이 살아남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건 헬리움으로 만든 검으로도 베지 못했다.

    뭔가?

    카이는 그 불꽃에 다가갔다. 처음 나타났을 때만큼은 아니나 아직도 열기를 내뿜고 있는 불꽃.

    카이는 빙옥으로 불꽃을 가둬봤다.

    화륵.

    그런데 카이가 만든 빙옥을 녹여버리고 불꽃이 모습을 드러냈다. 카이는 그 불꽃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가만히 그걸 바라보았다.

    바헬이 죽기 전에 만든 불꽃.

    그가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는 불꽃을 가만히 바라보며 카이는 중얼거렸다.

    “마지막 가는 길에 주고 간 선물인가?”

    돌싱 후 대마법사-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