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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73화 (73/150)
  • 073화 조우

    플레닌 왕국.

    대륙 서부에서 남쪽에 있는 곳으로 바다를 끼고 있어 해산물이 많은 곳이었다.

    처음 바다를 본 퀸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긴 오랜만에 본 바다에 카이도 심상이 꿈틀거렸으니까.

    확실히 전과 다르다. 전에 비해 월등한 경지에 올라서 그런지 몰라도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 수 속성의 비전 마법에 대한 영감이 떠오른다.

    카이는 슬쩍 고개를 돌려 퀸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갈까?”

    퀸이 고개를 끄덕이기에 카이는 가방에서 짐을 꺼내서 야영 준비를 마쳤다. 간단히 텐트를 치는 동안 퀸이 장작을 구해왔다. 장작에 불을 붙이고 있으려니 퀸이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퀸이 옆에서 검을 수련하는 동안 카이도 놀고 있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부족하다고 여긴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퀸과 함께 하니 앞으로 더 성장할 기회가 있음을 알았다.

    카이는 퀸 앞에서도 마법을 쓸 수 있도록 훈련하는 중이었다.

    헬리움이 모든 마력을 흩어내지만, 그조차 이겨낼 생각이었다.

    속성 마법은 발현해 낼 수 없다. 마력을 한 번 가공할 정도의 여력은 없었으니까.

    오직 순수한 마력만을 만들 수 있었는데 이걸 훈련하는 것만으로 마력 지배력이 쑥쑥 성장하는 느낌이다. 아직 헬리움 앞에서 모을 수 있는 마력은 한 줌도 되지 않지만, 전보다 확실히 성장하는 중이었다.

    아직도 성장할 구석이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인간의 한계라는 8성 그 너머도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을리 없을 테니까.

    카이는 조금씩 마력 지배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더는 오를 곳이 없다고 여겼지만, 아니다. 아직 더 오를 곳이 있다. 더 성장할 구석이 있다.

    더 강해져서 무엇을 할까 싶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흩어지려던 마력이 다시 뭉치며 단단하게 모이기 시작했다. 카이는 그 마력을 손에 쥐고는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은 건지도 몰랐다.

    “아빠?”

    퀸이 돌아보는 모습에 카이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훈련해.”

    퀸이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뒤돌아 다시 검을 휘두를 때 카이는 자신의 손에 모인 마력을 바라다보았다. 이건 늑대의 신령을 만났을 때 최상급 마정석에 채워진 마나처럼 응축된 마력이었다.

    교황청의 심처에서 모인 셋이 차를 마시는 중에 아론 라이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엘도 왕국과 타메아 왕국의 국경에서 흑마법이 사용되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대주교들이 따져 묻는 중인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베르너는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에빌 마탑은 이미 용인해주기로 최종 결정이 난 상황이기도 하고 그들이 마탑 연합에 들기 위해서라도 흑마법사들의 효용을 보여주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신에 타메아 왕국에서 협조도 확실히 받기로 했고요.”

    “국교로 정하고 대신전을 짓는다고 했던가?”

    “예. 왕도에 이미 터를 닦고 공사 시작했습니다.”

    타메아 왕국의 국교는 하늘 신 교단이 아니었다. 그랬던 것이 이번에 에빌 마탑을 손에 넣기 위해서인지 몰라도 하늘 신 교단을 국교로 삼고 대신전까지 짓기로 했다.

    처음 아나벨 성녀가 마법사들의 사고방식에 대해 말하면 흑마법사들이 마탑을 설립할 수 있도록 드러나지 않게 도우면 어떻겠냐는 말을 들었을 때는 아론 라이드와 베르너 모두 황당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듣다 보니 설득력이 있었다.

    아론 라이드도 베르너도 광신에 가까운 이들이 아니라 교단을 확장하는 것에 집중하는 실리적인 성격이 강해서였기에 그녀의 이야기를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그래서 이단심문관들을 뒤로 물렸다.

    그때쯤 타메아 왕국의 사신이 도착했다. 그들이 전한 소식을 듣고 결정을 내렸던 일.

    그런데 엘도 왕국도 이번 일로 신성 교국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아마도 용병왕 카이저의 센츄리온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았기에 지금은 지켜만 보는 중이었다.

    “그들의 승산은 얼마나 보고 있나?”

    베르너는 아론 라이드의 물음에 미소로 답했다.

    “용병왕과 센츄리온이 가세했지만, 그의 결혼식에 맞춰 공격하면서 센츄리온의 부단장 둘을 먼저 처리한 것이 큽니다. 센츄리온의 사기는 올랐지만, 전력은 반감된 데다가 에빌 마탑에는 지금 대륙의 흑마법사들이 모두 모인 상황입니다.”

    흑마법사들이 그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설령 흑마법사들이 스스로 관리하게 시키는 계획이 실패한다고 해도 한곳에 모은 그들을 처리할 수 있으니 이 계획은 실행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승산은 7할 정도 보고 있습니다.”

    “그럼 그 뒤에 타메아 왕국이 엘도 왕국을 집어삼키려고 하지 않겠나?”

    “그건 무리일 겁니다. 무결의 대마법사가 있으니까요.”

    “그렇군.”

    이미 아나벨 성녀가 그의 존재에 대해 밝혔다. 조합 마법진을 다룰 수 있는 ‘그레이스’의 마법사라는 것을 알아낸 그들은 무결의 대마법사가 원하기만 한다면 신령의 대마법사가 지원을 나올 수도 있을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제국에서도 그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도움의 손길을 뻗을 수도 있는 일.

    그러니 그가 있는 한 엘도 왕국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터였다.

    “그럼 일단 우리는 언제나처럼 중립을 지키도록 하지.”

    이번 전쟁. 신성 교국은 한 걸음 물러나서 지켜보기로 했다.

    플레닌 왕국의 남쪽에 위치한 알제나 폭포.

    알제나 폭포는 대륙에서도 손에 꼽히는 거대한 폭포로 쏟아지는 물줄기가 일으킨 물보라 때문에 사시사철 안개가 끼어 있는 곳이었다.

    카이는 퀸과 함께 알제나 폭포로 다가가는 길이었다. 그곳에 도착하니 마력 감지에 걸리는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카이와 퀸을 향해 다가왔다. 카이는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기다렸다.

    그들은 카이와 퀸을 만나고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제국의 그림자입니다.”

    “여기서 대기 중이었나?”

    제국의 그림자는 엘도 왕국의 리퍼와 같은 존재들. 그들이 총력을 기울여서 찾아낸 것이 미치광이 바헬의 은신처로 보이는 곳이었다.

    그런 곳을 세 곳을 찾아놓은 상태에서 살펴보고 있다가 카이와 퀸이 오자 그들을 마중 나왔다.

    “어디지?”

    “모시겠습니다.”

    카이는 퀸과 함께 그들의 뒤를 따라서 이동했다. 그들은 이곳에서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 안개 속에서도 길을 찾는 것이 능숙했다.

    그들을 따라 이동한 곳은 알제나 폭포와 가까운 곳이었다. 쏟아지는 물줄기가 일으키는 굉음 때문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이동한 끝에 그들의 은신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알제나 폭포를 내려다볼 수 있는 나무 위에 지어놓은 집이었다. 어떤 마법적인 능력 하나 없이 밖에서 보았을 때는 그곳에 집이 있는지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절묘하게 지어놓은 곳이었다.

    카이는 퀸과 함께 집으로 들어가서는 바닥에 앉았다.

    “작전 시행일은 이틀 뒤입니다.”

    오는 동안 시간을 많이 까먹었다. 그래도 이곳에서 몸을 회복하고 들어갈 기회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어차피 미치광이 바헬의 은신처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곳의 결계가 어떤 것인지 파악하고 파고 들어야 했으니까.

    카이는 마력 감지를 펼친 채 주변을 훑고는 그 결계를 인지할 수 있었다. 알제나 폭포가 쏟아지는 물줄기 근방에서 느껴지는 결계였다.

    “위치는 폭포의 물줄기 뒤쪽인가?”

    “예. 동굴이 있는 것 같습니다.”

    폭포 뒤 동굴. 그 안에 은신처를 만들었다면 아무나 쉽게 접근하지는 못했으리라.

    “내일 확인해 보도록 하지. 황궁에 연락을 취할 건가?”

    “예.”

    “그럼 연락하게. 우리가 무사히 도착했다고.”

    고개를 숙여 보인 그림자가 밖으로 나간 사이에 카이는 나무로 만든 집의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았다. 뿌연 안개 속에서 들리는 굉음.

    미치광이 바헬의 은신처 중 하나.

    이곳에서 그를 만날 수 있을까? 그를 만난다면 다른 이들을 불러내지 않고 몇 가지 궁금한 것을 물어볼 생각이었다.

    자신이 발견하면 굳이 수몰의 대마법사나 검성을 부를 필요가 없었으니까.

    퀸은 카이의 어깨에 턱을 괸 채 창밖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언제 가?”

    “이틀 있다가. 동시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니까.”

    카이는 그리 말하고는 편한 자세로 앉아서 퀸의 옆에서 마력 지배를 훈련하기 시작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얻은 것이 있어 지금은 퀸 옆에서도 제법 마력을 다룰 수 있게 됐다.

    미치광이 바헬의 은신처는 알제나 폭포 뒤쪽의 동굴에 있는 것으로 보였고 그 결계는 폭포 전체를 아우르고 있었다.

    카이는 무리해서 결계를 뚫으려고 하기보다는 그 결계가 어떤 형태인지 확인하는 것에 집중했다.

    축소 마법진과 조합 마법진, 결합 마법진은 그 크기를 줄이기 위해서이지 크기를 상관하지 않아도 되는 은신처의 결계는 7성급 마법진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8성급 마법진은 아무리 크기가 커진다고 해도 활성화하는데 최상급 마정석이 광산 단위로 들어가니 8성 대마법사도 쉬이 활성화할 수 없는 수준.

    그러니 7성급 마법진이 활성화되어 있는 것도 당연했다. 다만 7성급 마법진이라고 해도 몇 가지가 중첩되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일종의 보호 마법과 이것이 깨지면 울릴 알람 마법.

    그 결계 안으로 펼쳐진 것은 마법 트랩이었다.

    이걸 깨려면 최소 7성급 이상의 능력자가 와야 하는 데다가 마법 트랩도 7성급 마법 트랩들. 자칫 잘못하면 안으로 들어갔다가 생매장당할 수도 있다.

    대충 결계를 깰 방법을 파악한 카이는 다시 그림자들이 준비한 집으로 이동했다. 그림자들이 이미 연락을 취했다고 하니 내일 동시에 급습하면 될 일.

    카이는 편하게 앉아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내일이면 미치광이 바헬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를 만나서 7성에 올랐고, 8성에 올라설 수 있었다.

    엘디아 공주의 진면목을 볼 수 있게 해준 것도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바헬 덕분에 얻은 것이 많았지만, 그를 죽이겠다는 결심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자신을 죽이려던 자를 용서할 만큼 카이는 무른 성격이 아니었다.

    날이 밝고, 약속했던 시간이 왔다.

    카이는 그림자가 건네주는 통신 구슬을 받아들었다. 통신 구슬에 마력을 주입하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비는 끝났나?

    테오르의 목소리에 카이도 답했다.

    “이제 곧 진입할 생각이다.”

    -흐흐흐. 찾거든 연락하라고.

    카이는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미치광이 바헬의 은신처로 들어가는 길. 과연 그 안에서 통신이 될지도 의문이지만, 적어도 이 통신 구슬은 마킹이 되어 있으니 이곳으로 공간 이동은 가능하리라.

    그리고 저들이 찾았다는 보고를 하면 카이도 그들에게 공간 이동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통신 구슬에 마킹된 위치는 확인이 되었으니까.

    -조심하게.

    묵직한 목소리. 그 단단함이 목소리에서도 느껴지는 검성이었다.

    “그럼 이따가 연락하지.”

    카이는 퀸과 단둘이 폭포로 다가갔다. 쏟아지는 폭포의 굉음이 가까워질수록 귀를 울렸다.

    미리 확인해 두었던 대로 폭포 앞에 선 카이는 결계를 바라보다가 손을 가져다 댔다.

    위이이잉.

    7성급 결계니 검성이나 수몰의 대마법사가 이걸 못 뚫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카이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결계에 접근했다.

    고작 7성급 마법. 카이는 결계를 역순으로 풀어서 결계를 열어버렸다.

    폭포 뒤쪽 동굴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는 카이의 뒤를 따라 퀸이 움직였다. 그렇게 걸어간 카이는 폭포 뒤쪽에 있는 동굴을 따라 걸었다.

    몇 개의 마법 트랩들이 보였지만, 카이는 그것들을 이미 마력 감지로 확인했던 바.

    피하고, 해제하며 태연히 걷는다.

    그렇게 긴 동굴을 지나 도착한 곳은 신비로운 곳이었다. 어디서 빛이 들어오는지 몰라도 빛줄기들이 들어와 비추는 곳은 폭포 안쪽에 위치한 작은 연못 위의 섬.

    카이는 물 위를 걸어 그 섬에 도달했다. 그런 카이의 뒤로 퀸이 훌쩍 연못을 뛰어넘어 섬에 도달했을 때 섬의 중앙에 있는 집의 문이 열리고 낯익은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딘가 창백해 보이는 얼굴.

    그러나 그가 뿜어내는 기운만 보면 8성이라는 것을 의심할 필요가 없는 자.

    미치광이 바헬이었다.

    “먼저 날 찾아올 줄은 몰랐군.”

    돌싱 후 대마법사-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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