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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72화 (72/150)
  • 072화 장례식

    엘토르는 앞에 앉은 엘디아를 바라보았다. 카이저와 센츄리온이 국경으로 떠난 이후로 엘디아는 오히려 여유로워 보였다.

    “괜찮으냐?”

    “괜찮죠.”

    새로운 제국의 첫발을 내디뎠다. 카이저와의 잠자리도 마음에 들었고, 일어나니 그는 없고 타메아 왕국과 종전하겠다고 떠났다.

    그의 야망이 살아서 움직이는 중이다. 어찌 괜찮지 않을 수가 있을까?

    엘디아는 차를 호록 마시고는 엘토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라면 정말로 종전을 이끌어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보다 전장에서 흑마법사를 보았다는 보고가 있었다. 시체를 일으켜 세우지는 않았지만, 공포를 조장하는 통에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하는구나. 게다가 센츄리온의 부단장 둘도 당했다는 말이 있고.”

    엘디아는 그 말에 살짝 인상을 굳혔지만, 곧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잘됐네요. 센츄리온의 사기가 높아졌을 테니까.”

    “그렇기는 하겠지. 그보다 흑마법이 사용됐으니 신성 교국에 연락을 취해야 하나 고민이구나.”

    “그러지 마세요.”

    “응?”

    신성 교국이 함께 한다면 어려울 것이 없다. 흑마법사가 전장에 나타났다면 신성 교국이 알아서 처리해 줄 테니까. 사실 흑마법만 아니면 놈을 상대하는 것이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들이 끼어들 빌미를 주지 마세요.”

    엘토르는 그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저를 그만큼이나 믿는구나.”

    “예. 타메아 왕국은 온전히 손에 들어올 거예요.”

    엘토르는 엘디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야심이 큰 아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엘더가 대륙 제일이 되었을 때는 그거에 만족하는 것 같았는데 엘더가 무너지자 더 큰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엘디아는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떠났다.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엘토르가 한숨을 내쉬었을 때 시종 하나가 다가왔다.

    “여기 드시던 탕약입니다.”

    엘토르는 시종이 앞에서 시음하는 것을 보고는 남은 탕약을 단숨에 비웠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난 엘토르는 잠시 북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을 두 눈에 담았던 엘토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오랜 시간 타메아 왕국과 엘도 왕국은 앙숙으로 지냈다. 특히 오 년 전에 새로운 국왕이 올라서고 나서는 국경이 더 시끄러워졌다.

    덕분에 엘더에서 받은 배당금으로 열심히 군비를 늘려왔다. 엘도 왕국 최고의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복 전쟁은 제국도 멈춘 일.

    카이저와 엘디아가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깨닫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심장이 너무 빨리 뛴다. 엘토르가 심장을 움켜쥐었을 때 근위기사단장 프레드가 황급히 달려왔다.

    “전하! 왜 그러십니까?”

    “시, 심장이···.”

    “신관을 불러와라! 어서!”

    프레드가 다급하게 외칠 때 엘토르가 왈칵 피를 토하더니 풀썩 쓰러졌다.

    “전하!”

    미치광이 바헬을 죽이러 가는 길이니 긴장이 되어야 했지만, 어째서인지 즐거운 여행길이었다.

    어려운 것도 없었다.

    퀸이 잠을 자지 않기에 불침번을 교대로 설 필요도 없었고, 알람 마법을 설치해 놓아서 누군가 다가올 일도 없었다.

    타메아 왕국군과 엘도 왕국군이 전쟁이 벌어진 상황. 엘디아와 카이저는 자신에게 전쟁에 참여해달라고 말할 이유가 없었다. 전쟁이 벌어졌는데 자신이 참전하게 되면 그 지분이 커질 것을 알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카이는 그들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들이 대륙 서부를 통일하려는 전쟁을 벌인다고 해도 관심없었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니까.

    카이저가 콜린스를 이길 확률은 상당히 낮았다. 그래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테오에게서 연락이 왔다.

    급보로 온 연락을 받은 카이의 표정이 굳어졌다.

    “엘토르 국왕이 서거하셨다고?”

    -예.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고 하십니다. 아직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설마 카이저가 그런 건가?”

    -센츄리온은 사흘 전에 전장으로 떠났습니다. 의심하는 이들은 없는 분위기입니다.

    “왕위는 누가 물려받지?”

    -엘디아 공주가 왕위계승 순위 1순위입니다. 그녀가 왕위를 물려받게 될 겁니다.

    카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례식은 언제지?”

    -10일 후입니다.

    “알겠어. 일단 그때는 참석하도록 하지.”

    공간 이동을 다녀오면 된다. 퀸을 잠시 혼자둬야 하지만 그녀를 위험하게 할 자는 거의 없으니 큰 문제는 없으리라.

    카이는 통신을 마치고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빠. 왜 그래?”

    엘토르는 유능하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무능한 이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나마 왕궁에서 자신을 대접해주었던 이이기도 했고.

    그랬던 이가 죽었다. 그것도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컸다.

    적어도 전에 만났을 때만 해도 그는 멀쩡했으니까.

    “국왕 전하가 서거하셨다는구나.”

    “그래서 슬퍼?”

    카이는 그 물음에 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호기심, 걱정이런 것이 어려 있었다.

    아직 인공 영혼에 대한 연구는 하나도 끝나지 않은 상황. 카이는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는 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렇게 손이 닿으면 느껴진다.

    이 아이가 인공 영혼이라는 것이.

    보기에는 찰랑이는 머리칼이지만 만져 보면 금속의 차가움이 느껴지니까.

    하지만 이 아이는 자신의 딸이다. 온전한 자신의 아이.

    “나이트나 룩이 사라지면 어떨 것 같아?”

    퀸은 잠시 고민해보다가 입을 열었다.

    “내 부하 건드린 놈은 죽어.”

    나이트와 룩이 퀸의 부하가 됐군. 이건 기억해둬야겠다.

    “기분이 어떨까?”

    “···속상할 것 같아.”

    아직 겪어보지 않았음에도 그 감정을 유추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이 아이는 정말 인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빠도 지금 딱 그 정도다. 그래서 장례식에는 참석해야 할 것 같아.”

    “혼자 가겠네?”

    카이는 퀸과 함께 공간 이동을 못 한다는 것을 알았다.

    “잠깐 참석하고 오는 거라 반나절이면 될 거야. 그동안은 기다릴 수 있지?”

    “응. 당연하지.”

    카이는 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다시 말을 몰았다.

    결혼식이 있던 다음 날 새 남편은 전장으로 떠났다. 그리고 사흘 만에 아버지가 죽었다.

    그녀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

    엘도 왕국의 왕궁에는 온통 검은색 물결이 가득했다. 그곳에 카이도 로브를 검정 색으로 바꾼 채 들어갔다. 카이의 등장에 귀족들이 모두 수군거리는 것이 들렸지만, 카이는 묵묵히 걸음을 옮겨 엘토르 국왕의 관 앞에 섰다.

    손에 들고 온 국화 한 송이를 내려놓고 가만히 그를 내려다보던 카이는 잠시 묵념하고 돌아섰다.

    가장 앞에는 검은 상복을 입고 있는 엘디아 공주와 엘티온이 눈에 들어왔다. 엘티온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카이는 그런 엘티온에게 다가가서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고는 대전을 벗어났다.

    장례식 과정을 모두 지켜볼 이유는 없었으니까.

    카이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엘디아가 따라 나왔다. 카이는 잠시 멈춰서 그녀를 돌아보았다.

    눈이 붉게 물든 것을 보면 그녀도 엘토르의 죽음을 슬퍼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여기는 왜 왔어?”

    카이는 엘디아의 물음에 그녀가 뭘 걱정하는지 알 수 있었다.

    카이저가 자리를 비운 지금 엘디아가 왕위를 물려받은 후에 가장 눈치를 봐야 할 사람이 누구일까?

    그녀가 왕위를 계승하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귀족들이 그녀와 카이저를 견제하기 위해서 누구에게 줄을 설지는 빤한 일이었다.

    대수림을 틀어막고 있는 무늬만 백작이었던 전 부마인 카이에게 줄을 서려고 할 터였다.

    그러니 그녀가 먼저 나와서 이렇게 날을 세우는 것이겠지.

    그래. 그녀는 이런 여자였다.

    “가시는 길에 인사 정도는 해야 한다 여겼다.”

    엘디아가 입술을 앙 다무는 모습을 보고 카이는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돌아섰다.

    “자리 지켜. 이만 가볼 테니까.”

    “이대로 간다고?”

    “그럼 여기 남아서 뭐 내가 해야 할 일이라도 있어?”

    얼른 고개를 내저은 엘디아가 말했다.

    “아니. 어서 가. 사람들에게는 내가 말할 테니까.”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지만, 관심도 없다. 왕국 내 정치판에 관심도 없었으니까.

    카이가 먼저 물러나겠다고 하자 엘디아는 이대로 사라지라고 했다. 슬쩍 안에서 귀족들이 수군거리는 것이 들렸는데 카이는 신경 쓰지 않고 대전에서 나와 걸음을 옮겼다.

    엘디아가 다시 대전으로 돌아갈 때 그녀는 밖으로 나가려는 이들을 보고는 그 앞을 막아섰다.

    “엘제토 후작. 어디를 가는 거죠?”

    “급한 일이 생각나서 나오는 길입니다.”

    엘디아는 속이 빤히 보이는 엘제토 후작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왕위를 물려받으면 가장 속을 썩일 존재가 엘제토 후작이었다. 그리고 이 자는 어떻게든 카이에게 줄을 서려고 하겠지.

    “카이 백작은 볼일이 있다고 먼저 떠났어요.”

    엘제토 후작은 그 말에 미소를 지은 채 답했다.

    “카이 백작과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럼 다녀오세요.”

    엘제토 후작이 서둘러 달려나가는 것을 보고 엘디아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엘디아는 옆에 선 엘티온의 어깨를 살며시 감싸안았다.

    엘티온은 그 손길에 묵묵히 고개만을 숙이고 있었다.

    엘제토 후작은 엘디아 공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둘러 나와서 밖을 돌아보았는데 카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성문을 지키고 있는 병사에게 다가가 물었음에도 그들은 카이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한참을 찾았지만, 그를 찾아내지 못했다.

    “허,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카이가 아무리 서둘렀다고 해도 어떻게든 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를 보지 못했다. 한숨을 푹 내쉰 엘제토 후작은 장례가 끝나는 대로 카이 백작성을 찾아가 봐야겠다고 여겼다.

    미치광이 사냥 작전에 대한 회의는 단 네 명만이 알고 있는 일이었다.

    수몰의 대마법사 테오르는 장거리 공간 이동을 해야 하기에 그것을 위한 준비로 최상급 마정석을 따로 빼놓기는 했지만, 실제로 이번 작전이 수립되고 진행되는 것을 아는 것은 오직 황제와 황녀, 그리고 검성과 수몰의 대마법사 뿐이었다.

    검성 맥클렌은 테오르가 준비하는 것을 지켜보며 물었다.

    “그런데 정말 무결의 대마법사가 그리 위험한 자요?”

    테오르는 마법진을 준비하다가 잠시 허리를 펴고는 맥클렌을 돌아보았다.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접어둬.”

    “그만큼 위험한 자라면 기회가 왔을 때 잘라내야 하는 것 아니겠소?”

    “쯧! 조합 마법진을 내주기로 했다는 말 못 들었나? 만약 그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해도 그건 조합 마법진을 모두 넘겨받은 후의 일이야!”

    맥클렌은 황제도 그렇고 조합 마법진에 목을 매는 이들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었다. 시공간에 간섭할 수 있는 권능을 막을 수 있는 8성급 마법사.

    그가 얼마나 위험한 자인지 모르는 건가?

    그자의 나이 이제 27이다. 그런 자가 8성에 올랐다고 하는데 그런 위험한 자를 그냥 두겠다는 건가?

    운이 좋다면 이번에 셋이 한자리에 모일 기회가 있다. 미치광이를 죽이고 나서 둘이서 그를 제압할 방법을 모색할 수 있지 않나?

    맥클렌이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에 테오르가 다가와서는 그의 앞에 서서 빤히 바라보았다.

    “명심하게. 절대로 그자는 건드려서는 안 돼.”

    맥클렌은 테오르가 진심으로 자신을 쏘아보며 하는 말에 고민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테오르는 조합 마법진을 손에 넣고자 하는 욕망에 휩싸였다. 그가 돕지 않는다면 무결의 대마법사를 혼자서 상대해 죽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니 그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황녀와도 아직 관계를 개선할 여지가 있으니 괜히 방해하지 말고.”

    맥클렌은 그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합 마법진도 조합 마법진이지만 만약 무결의 대마법사를 제국이 품을 수 있게 되면 더는 두려울 것이 없다.

    미치광이만이 아니라 투신도 잡아 죽일 수 있고, 대륙의 모든 8성을 제국이 품고 있다면 그때는 대륙 통일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테오르도 황제 폐하도 자신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황녀와 잘 될 것 같소?”

    테오르는 그 말에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몇 번 튕기고 있는 것 같지만, 세상 누가 황녀를 마다할 수 있겠나?”

    맥클렌도 그 말에는 동의하고 자신의 계획을 접기로 했다.

    돌싱 후 대마법사-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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