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싱 후 대마법사-70화 (70/150)
  • 070화 거래

    뜨거운 열락의 밤.

    카이저는 날이 새도록 괴롭혔던 엘디아가 잠든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여인이다.

    그리고 돈이 많은 여인이다.

    이제 그 돈으로 대륙 서부를 통일해야 할 때였다.

    카이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불을 덮어 주고는 밖으로 나왔다.

    센츄리온의 지낭이라 불리는 리드가 앞에 서 있다가 고개를 숙여 보였다.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카이저는 7성급 육체 강화자다. 당연히 다른 이들에 비해 월등한 감각을 가졌고, 그런 그에게 엘디아 모르게 보고가 올라왔다.

    타메아 왕국이 국경을 넘어 공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첫날밤을 그냥 보낼 생각이 없었기에 무시했다. 엘디아를 만족시키고, 또 만족시킨 카이저는 이제 자신의 일을 볼 차례였다.

    카이저는 곧장 왕궁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갑옷을 챙겨 입으며 카이저가 물었다.

    “상황은 어때?”

    “마지막 보고에 타메아 왕국이 흑마법사들을 고용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흑마법사?”

    카이저가 인상을 찌푸렸다.

    “신성 교국에 연락을 취할까요?”

    “아니.”

    신성 교국이 개입하게 되면 통일 전쟁을 멈출 수밖에 없다. 타메아 왕국이 먼저 국경을 넘었고, 흑마법사까지 사용한 것이 알려진다면 얼마든지 그들에게 죄를 물을 수 있었다.

    정복 전쟁의 당위성을 주었는데 신성 교국이 개입하면 일이 꼬인다.

    “그럼 일단 덮겠습니다.”

    “좋아.”

    카이저는 갑옷을 다 갖춰 입고는 왕궁의 대회의실로 향했다. 그곳에 대기 중이던 센츄리온의 부단장들이 기다렸다는 듯 그의 뒤로 따라붙었다.

    카이저가 대회의실 앞에 서자 문을 지키고 있던 근위기사들이 그를 보고는 예를 표했다.

    카이저는 이제 외부인이 아니라 엘도 왕국의 부마였다.

    카이저가 대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회의를 진행하던 엘토르 국왕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카이저는 엘토르 국왕에게 예를 표하고는 입을 열었다.

    “센츄리온을 이끌고 국경으로 가겠습니다.”

    “자네가 직접 말인가?”

    어제 결혼한 부마의 발언에 대회의실에 모여 있던 군부의 장관들이 모두 엘토르 국왕을 돌아보았다. 그도 지금 살짝 놀란 상황이었다.

    어제 국경을 넘어 국경에 위치한 요새를 빼앗겼다는 보고를 들었다. 그런데 부마가 곧장 움직이겠다니?

    “예.”

    “하지만 고작 하루 지났네.”

    카이저는 담담히 대꾸했다.

    “충만한 하루였습니다. 그리고 타메아 왕국과의 전쟁. 이번에 완전히 종지부를 찍도록 하죠.”

    “종전을 이루겠다는 건가?”

    “예. 밀고 들어가 타메아 왕국의 국왕 목을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카이저의 말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엘토르 국왕은 그 말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엘도 왕국와 타메아 왕국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전쟁을 벌여왔던 곳. 그러니 그곳을 무너트릴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부탁하네.”

    카이저는 미소를 지은 채 답했다.

    “보급만 밀리지 않게 해주시면 됩니다.”

    “그건 걱정하지 말게.”

    엘더 덕분에 엘도 왕국의 예산은 크게 늘었다. 엘더가 사실상 폐업했기에 전처럼 많은 예산을 집행할 수는 없겠지만, 종전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돈을 쓸 수 있었다.

    그간 꾸준히 군비를 확충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출전하겠습니다.”

    카이저가 뒤돌아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엘토르는 창가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전쟁 용병인 센츄리온은 이미 모두 장비를 착용한 채 대기 중이었다.

    마치 카이저를 기다렸다는 것처럼.

    그들이 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엘토르가 뒤를 돌아보았다.

    “보급에 특별히 신경쓰도록 하게.”

    “그리하겠습니다. 용병왕의 참전이 확실하니 정말로 오랜 숙원이 해결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게 말일세.”

    엘토르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대기 중이던 센츄리온의 가장 선두에 준비되어 있던 자신의 애마에 올라탄 카이저가 말을 몰아 앞으로 가기 시작하자 센츄리온이 발맞춰 그를 따라 움직였다.

    해가 뜨기도 전에 왕국을 벗어난 카이저가 자신의 지낭인 리드를 돌아보았다.

    “사흘 후에 집행해.”

    “준비는 끝났습니다.”

    “좋아. 너만 믿지.”

    구실도 좋았다. 왕국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전장으로 떠난 부마를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테니까.

    엘디아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이해할 거다.

    이제는 멈출 수 없다.

    메르샤는 궁금증이 치솟았지만, 물을 수 없었다.

    카이는 입을 다물고 창밖만 보고 있었고, 클란드라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으니까.

    “진짜 영지로 돌아갈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생각이야?”

    카이는 그 말에 메르샤에게 시선을 주었다.

    “클란드라 황녀께서 내게 의뢰한 것이 있고, 조건을 달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 조건의 답을 가져왔다고 하니 우리 둘만의 일이지.”

    메르샤가 눈을 가늘게 뜨고 카이와 클란드라를 돌아보았다.

    “으흥. 둘만의 일이다?”

    카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신경을 쓰지 말려고 하자 메르샤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클란드라는 황녀야. 이혼남이랑 이어질 일은 없으니 괜히 추근대지 마.”

    “그럴 일 없어.”

    카이가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그 말을 들은 클란드라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구름 위를 나는 비공정은 빠른 속도로 카이의 영지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서쪽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대수림.

    지금까지 대륙의 누구도 손을 대지 못했던 곳.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음은 종종 나타나는 야만족들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대수림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곧 카이의 영지에 도착한다는 얘기였다. 잠시 기다리니 비공정이 카이 백작성 영지 위에 떠올랐다.

    카이가 함께 있어서 영지로 내려서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영지의 연무장에 도착하니 그곳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모여 있었다.

    메르샤는 저 아래를 보다가 물었다.

    “그런데 저 여자아이는 누구야? 친척?”

    카이는 메르샤가 본 것이 퀸이라는 것을 알았다. 덴다르트와 함께 마중 나와 있는 퀸을 보고 묻는 질문에 카이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내 딸이야.”

    “딸?”

    메르샤의 눈이 커질 때 카이는 검지를 들어 입에 가져다 댔다. 저만한 딸이 있다는 것을 믿기 힘들다는 듯 뭐라고 하려던 그녀는 곧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황녀한테 관심 끊어야겠다.”

    “그럴 일 없다고 했어.”

    메르샤가 키득거리더니 말했다.

    “난 괜찮아. 이 나이에 아이를 낳는 것도 웃기고. 내 딸처럼 아끼고 사랑할 수 있어.”

    그 말에 카이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퀸이 들으면 대뜸 검부터 들고 달려들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다니.

    비공정이 내렸고, 카이가 먼저 내리자 퀸이 달려와서 품에 안겼다. 카이는 퀸을 품에 안은 채 함께 온 이들을 돌아보았다.

    메르샤는 카이의 뒤를 따라 내리다가 카이를 마중 나온 덴다르트를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너···?”

    “반갑소.”

    “덴다르트! 너, 너 어떻게 7성에 오른 거야?”

    “여기 터가 좋아서.”

    메르샤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단장도 알아?”

    “아, 난 영지 마법사가 되기로 했거든.”

    “뭐?”

    “제자 영지에 빌붙기로 했다고.”

    “7성에 올랐는데?”

    덴다르트가 오히려 눈을 부라렸다.

    “너 지금 내 제자 무시하냐?”

    메르샤는 덴다르트의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게 지금 막 7성에 오른 주제에 대드는 건가?

    메르샤의 로브가 펄럭일 때 카이가 퀸을 안은 채 그녀를 돌아보았다.

    “내 영지에서 싸우게?”

    메르샤는 카이와 덴다르트를 돌아보았다. 두 사제가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한숨이 푹 나왔다.

    혼자서 둘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

    “후. 내가 참는다.”

    메르샤는 카이의 품에 안긴 퀸이 자신을 쏘아보는 것을 보고는 두 손을 들어 보이고 뒤로 물러났다.

    “퀸. 가서 수련해. 곧 너와 함께 움직여야 할 일이 있으니까.”

    퀸은 그 말에 눈을 반짝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퀸이 물러나자 카이는 덴다르트를 돌아보며 말했다.

    “메르샤 시장과 얘기 나누시죠.”

    “그러마.”

    카이는 그들을 돌려보내고 클란드라 황녀와 집무실로 갔다. 독대를 위해 집무실로 간 카이는 클란드라 황녀에게 직접 차를 끓여줬다.

    차를 받아서 한 모금 마신 클란드라 황녀가 카이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의 은신처로 예상되는 곳 세 곳을 찾았어요. 모두 8성급 결계가 쳐져 있는 곳이에요. 세 곳 모두 가동 중이고요.”

    “세 곳 모두 미치광이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군요.”

    “맞아요.”

    카이는 인상을 굳혔다. 공간 이동이 가능한 미치광이 바헬이라면 어디를 급습하든 몸을 빼낼 수 있을 터였다.

    준비된 대마법사의 영역.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바헬은 얼마든지 몸을 빼낼 수 있고, 그동안 준비했던 수를 쓸 수 있다.

    아직 몸을 다 회복하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 최대한 빨리 그를 덮쳐야 했다. 그런데 세 곳이라면 아무리 카이라고 해도 그를 공략할 방법이 없다.

    셋 중 하나를 잘 골라서 갔을 때 바헬이 그곳에 있기를 바라야 하는 도박을 해야 하나?

    카이의 머릿속이 복잡할 때 클란드라가 입을 열었다.

    “제국에서는 검성과 수몰의 대마법사를 지원할 예정이에요.”

    카이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클란드라가 말을 이었다.

    “제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바헬이 그 세 곳 중 하나에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하지만 그를 죽일 방법이 없었죠. 검성과 수몰의 대마법사가 나선다고 해도 놈을 죽일 방법이 없어 놔뒀던 거예요.”

    카이가 관심을 보이자 클란드라가 미소를 지었다.

    “이번 작전의 이름은 미치광이 사냥 작전이에요.”

    “검성과 수몰의 대마법사를 지원해서 다른 두 곳을 노린다는 건가요?”

    “그래요. 셋 중 어느 곳에 있든 공간 이동으로 찾아가면 되니까요. 그러면 최소 둘에서 셋까지 동시에 바헬을 상대할 수 있어요.”

    카이는 그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만나기만 하면 이길 자신은 있었다.

    그런데 둘이나 셋이서 합공을 취한다?

    확실히 미치광이를 잡을 수 있다. 그런데 셋이 한자리에 모인다면? 자신의 안전은 확보될 것인가?

    미치광이를 죽이고 나서 저들과 싸우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수몰의 대마법사라면 혼자서도 죽일 자신이 있지만, 검성은 모르겠다.

    8성에 오른 대마법사는 시공간에 간섭하는 방법을 확인했지만, 8성급 육체 강화자들은 어떤 식으로 시공간에 간섭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검성을 만나는 것은 수몰의 대마법사보다 더 주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미치광이 바헬을 확실히 죽일 기회니까.

    카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좋은 작전이군요.”

    “당신이 동의한다면 언제든 시행될 수 있어요.”

    “검성은 공간 이동으로 이동할 생각입니까?”

    “예.”

    “세 개의 장소 중 제가 갈 곳을 선택할 것과 공격 시간을 제가 정할 수 있다면 이번 작전에 동의하죠.”

    “좋아요.”

    클란드라가 품에서 봉인된 서류를 건넸다.

    “세 곳의 위치는 여기 적혀 있어요.”

    카이는 그녀가 건네준 서류를 받아서는 대륙 전도를 활짝 펼쳤다. 그리고 봉인을 깨고 위치를 확인하고는 하나씩 그려 넣었다.

    엘도 왕국의 남쪽에 위치 한 플레닌 왕국에 하나가 있었고 나머지 둘은 모두 대륙 동쪽에 있었다.

    바헬은 플레닌 왕국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

    이곳이라면 그리 멀지도 않은 곳이었다. 국경을 넘어야 하지만 마차를 타고 가도 한 달이면 가능한 거리였다.

    비공정을 타고 간다면 이틀 안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비공정?

    생각해 보니 바람의 정령을 이용한 비공정. 카이도 바람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니 비공정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곧 고개를 내저어야만 했다. 퀸과 이동하면 어떤 마법도 쓸 수 없다.

    제대로 된 검술을 배운 퀸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하다. 마법사에게 있어 천적이나 다름없는 그녀와 함께 이번 일을 행할 생각이었다.

    그러자면 마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카이는 플레닌 왕국에 있는 곳을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이곳을 제가 공략하죠. 공략일은 한 달 뒤.”

    클란드라는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 작전이 끝나고 나면 조합 마법진을 알려주실 건가요?”

    미치광이 바헬의 영역 중 하나를 공략하겠다고 했으니 8성이라는 것을 스스로 시인한 꼴이다. 그러니 클란드라도 저렇게 직접 묻는 것일 테고.

    “약속하죠. 미치광이가 죽으면 조합 마법진에 대해서 알려주죠. 단 테오르에게만 알려줄 것이고, 그만 저를 만나러 올 수 있습니다.”

    클란드라는 그 말에 카이가 아직 제국을 신뢰하지 않음을 알았다. 그러나 조합 마법진만 얻으면 된다.

    그게 공국을 받는 조건이었으니까.

    “고마워요.”

    돌싱 후 대마법사-역시 내 딸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