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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68화 (68/150)
  • 068화 결혼식

    왕궁의 복도. 엘디아 공주의 방에서 나와 걷던 카이저는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엘티온을 보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엘티온 왕손!”

    엘티온은 그의 말이 들리지 않은 것처럼 빠르게 지나가려고 했다. 그런 엘티온의 앞을 막아선 카이저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뭘 또 그리 몸을 빼나?”

    “비키시오.”

    카이저는 그런 엘티온을 귀엽다는 듯 바라보았다.

    “마법사보다는 내 아들이 되는 것이 배울 것도, 얻을 것도 많을 테니 그만 받아들이는 것이 어때?”

    엘티온이 어금니를 빠득 깨무는 소리가 들렸지만, 카이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았다. 마법사는 변수라도 만들지만, 육체 강화자끼리 붙었을 때는 성급이 승패를 확정 짓는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눈 감고 싸워도 엘티온을 이길 자신이 있으니 이렇게 굴었던 것.

    “내 아버지는 카이 백작님뿐이다.”

    “푸하하. 역시 지조가 있군.”

    엘티온의 어깨를 팡팡 소리가 나게 두드린 카이저가 시원하게 웃으며 복도를 지나갔다. 그런 그의 등을 쏘아보던 엘티온은 고개를 팩 돌리고는 엘디아의 방을 바라보았다.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되냐는 말을 물으러 왔는데 그들은 식을 올리기 전부터 이렇게 왕래하는 사이가 됐다.

    어른들의 사정에 자신이 끼어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렇다고 이 정도로 카이를 찾아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적어도 그를 찾아가려면 자신도 뭔가를 이뤄야겠다고 여겼다.

    7성 대마법사인 그의 아들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엘티온이 돌아서자 뒤를 따르던 시종이 물었다.

    “공주님을 뵙지 않으실 겁니까?”

    “어머니는 다음에 뵙도록 하지.”

    다가올 결혼식. 듣자 하니 아버지에게도 초대장이 갔다고 했다. 오지 않으실 것 같지만, 혹시라도 온다면 그를 보았을 때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엘티온은 연무장으로 가서 검을 집어 들었다. 검을 휘두르기 시작한 엘티온의 눈 저 깊은 곳에서 푸른 안광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엘디아는 쌓이는 선물을 보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아닌 척하지만, 귀족들도 카이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엘더를 잃었지만, 오히려 얻은 것이 더 많았다. 카이가 무결의 대마법사가 되었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태생이 평민인 그와 다르게 카이저는 몰락했다고 하나 왕족이었고, 그의 작위는 엘도 왕국의 작위로 따진다면 공작에 버금가는 이였다.

    게다가 그의 용병단은 어떤 기사단보다 강력하니 그들이 함께한다면 타메아 왕국을 무너트리는 것을 넘어 서대륙 통일도 멀지 않았다.

    귀족들이 선물을 이렇게 보내는 것을 보면 그들도 대충 흘러가는 상황을 읽었나 보다. 그러면 병력을 동원하는 것도 어렵지 않으리라.

    그때가 되면 자신은 황후가 될 수 있었다.

    내일이 결혼식.

    올 선물들은 다 온 것 같았다.

    그중 카이 백작의 것은 없었다.

    그가 카이저의 팔을 잘랐으나 그에게도 청첩장을 보낸 것은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자랑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선물이 없는 것을 보니 차마 자신의 결혼식까지 올 정도로 뻔뻔하지는 않은가 보다.

    개인의 무력은 카이저를 앞섰을지 모르나 그는 개인일 뿐이다. 제국이 되고 자신이 황후가 된다면 가장 먼저 쳐낼 가지가 그였다.

    엘디아는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 입은 드레스만 해도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디자인한 목걸이까지 찼다.

    카이의 유작이 될 뻔했던 목걸이.

    “선물은 이걸로 받았다고 치지 뭐.”

    생각해 보니 괘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와 맺었던 맹약은 아직도 유지 중이다. 지금 당장은 그가 죽지 않아도 그가 죽으면 모든 유산은 엘티온이 받는다.

    그리고 엘티온은 서대륙에 만들어질 제국의 황제가 되리라.

    모든 것은 그녀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가장 화려한 결혼식.

    누군가는 재혼이라고 뒤로 욕할지도 몰랐지만, 성대하기로 따지자면 이만큼 성대한 결혼식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화려한 결혼식이었다.

    게다가 귀족들도 이번에 대거 결혼식에 참여하기로 했는데 그건 답례품이 장신구형 아티펙트라는 소문이 돌아서이기도 했다.

    엘더의 제품이라는 말에 모두 혹해서 결혼식에 참여했다. 그리고 그들은 용병왕의 정예 용병들을 보고는 모두 숨을 죽여야 했다.

    보통 동대륙에서 활동하는 용병왕 휘하의 용병들을 만날 기회는 대륙 서쪽에서는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전장을 누비며 단련된 정예 용병들이 뿜어내는 거친 살기는 마주하는 이들의 오금이 저리게 했다.

    이번에 귀족들이 참여한 이유 중 하나가 엘더의 지분이 종이쪼가리로 변한 것을 따지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오고 보니 새로이 부마가 될 카이저의 수하들이 보통 사나워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괜히 엘더에 대해 따지다가는 저들의 칼이 자신들을 향할 것을 깨달았다.

    귀족들을 모아서 슬쩍 압박하려고 했던 엘제토 후작은 왕궁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 또한 엘디아의 수작일 가능성이 컸다.

    카이저의 정예 용병들이 왕궁에 주둔하고 있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들이 아무리 정예라고 하나 작위 하나 없는 용병들이었으니까.

    그런데도 그들이 왕궁 안에 주둔하여 귀족들이 지켜보게 한 것은 모두 위력을 과시하려는 거다.

    엘제토 후작이 뒷짐을 지고 바라보는 중에 그의 곁으로 다가온 이가 있었다.

    “오셨습니까?”

    “자네도 오셨는가?”

    다리우스 백작은 엘제토 후작 계파를 지지하는 이 중 하나였으나 왕가의 힘이 점점 강해지는 것을 보면 저쪽으로 줄을 설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에게 와서 인사하는 것을 보면 아직은 자신 쪽 사람인 것 같았다.

    다리우스 백작이 조용히 물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엘제토 후작은 쓴웃음을 지었다.

    “듣기로 카이 백작에게도 청첩장을 보냈다는 말을 들어서 혹시나 그가 왔다면 얘기를 해보려고 했는데 오지 않을 생각인가 보네.”

    다리우스 백작이 낮게 웃었다.

    “아무리 그라도 오겠습니까? 전부인 결혼식에 새신랑 팔을 잘라버렸는데.”

    “그건 그렇겠지?”

    오히려 그렇기에 한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여겼다. 왕가의 힘은 엘더 덕분에 절정에 올랐고, 거기에 더해서 카이저와의 결혼은 부족했던 무력도 손에 넣었다.

    왕국 내에 딱 하나 저들에 대항할 힘이라면 무결의 대마법사 뿐이다.

    그가 왔다면 좋았겠으나 그가 오지 않으면 결혼식이 끝나는 대로 찾아가 볼 생각이었다.

    “곧 시작하겠군.”

    세기의 결혼식이라고 할 만큼 성대하게 치러지는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결혼식이 열리는 정원으로 이동하던 엘제토 후작은 뒤에서 소란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화려한 마차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마차를 향해 시선이 몰리던 그들은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모두 고개를 들었다.

    그들의 머리 위로 비공정이 떠 있었다.

    카이는 화려한 마차를 준비해서 테오와 함께 오는 길이었다.

    덴다르트가 7성에 올랐기에 성을 맡기고 오는데 부담이 없었다. 그래서 테오와 함께 오는 길이었다.

    오늘은 결혼식에 참여 했다가 안타르시아로 가서 기사단에 쓸 최상급 영혼석과 트리달리움을 구할 생각이었다.

    카이가 창밖을 바라보니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의 마차에 꽂혀 있는 것을 보았다.

    따로 기사단을 대동하지 않고 마차 한 대만 가지고 왔으니 밖에서 봤을 때는 아무리 화려한 마차를 몰아도 초라해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마차에는 카이의 깃발이 걸려 있었다. 백작위를 받으면서 만들었던 깃발로 육망성이 그려진 깃발이었다.

    다른 이들과는 생긴 것부터가 다른 깃발이었기에 그걸 보면 누구나 자신을 알아볼 수 있을 거라 여기기는 했다만 이 정도로 많은 이들이 자신의 마차를 보고 있을 줄은 몰랐다.

    어차피 오늘 결혼식에 참여하고 선물을 전해주는 것은 그녀에게 잠깐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일 뿐이었다. 조금이라도 높은 곳에 올라야 추락할 때 더 아플 테니까.

    그리 생각하고 마차의 창문을 닫으려던 카이는 사람들의 고개가 하나둘 올라가는 것을 보고는 마력 감지를 넓혔다. 그러자 머리 위에 마력이 감지됐다.

    카이는 마차의 창밖으로 고개를 빼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비공정이 한 대 떠 있었다.

    그런데 익숙한 비공정이다.

    “메르샤?”

    메르샤의 전용 비공정이 왕궁 위에 떠 있었다. 저 아줌마가 미쳤나?

    아무리 카이가 궁정 마법사에서 내려왔다고 하나 남의 왕궁 위에 저렇게 비공정을 띄우는 것은 허가받지 않는 이상 굉장히 실례가 되는 행위다.

    요격당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

    그런데 비공정이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그것도 카이의 마차 앞으로.

    근처에 있던 귀족들이 분분히 물러나고 안쪽에서 카이저가 튀어나왔다. 그의 수하로 보이는 자들까지 속속 그의 뒤에 섰고, 카이저는 수하에게 도끼를 받아든 채 이쪽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런 카이저의 뒤편으로 눈부신 드레스를 입은 엘디아 공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캐를 들고 있는 그녀를 잠깐 바라보던 카이가 고개를 들어 비공정에 시선을 주었다.

    비공정은 마치 모두의 시선을 잡아끌려고 작정이라도 한 것인지 천천히 내려서고 있었다. 비공정이 내려오는 곳에 있던 이들이 분분히 물러나 자리가 마련되었을 때 비공정이 완전히 내려섰다.

    비공정에서 내린 것은 메르샤였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품에서 청첩장을 꺼내 들어 보였다.

    “왜? 초대받아서 왔는데?”

    카이저는 그 말에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비공정은 오직 메르샤만이 운용할 수 있었다. 그러니 비공정에서 그녀가 내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음에도 모두의 시선을 잡아끌어서 과하게 반응했었다.

    카이저가 도끼를 치우며 말했다.

    “결혼에 참석해 줘서 고맙군.”

    “뭘. 우리 고객님이기도 한데. 게다가 엘디아 공주는 우리 VIP기도 하고.”

    엘디아의 표정이 살짝 굳어진 것을 보고 카이는 어째서인지 속이 후련했다.

    오늘은 그녀가 주인공이었다.

    하객의 시선을 끌어당기기 위해서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빤히 보였으니까.

    그런데 비공정의 등장과 메르샤의 등장은 모든 이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대륙 서쪽인 이런 곳에 7성 대마법사이자 안타르시아의 시장인 신령의 대마법사가 등장한 것은 모인 귀족들이 관심을 보일 일이었다.

    메르샤는 멀찍이 떨어진 엘디아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엘디아 공주! 결혼 축하해!”

    “고마워요.”

    엘디아가 미소를 지어 보였는데 입가만 웃는 것이 보여 카이가 속으로 웃을 때 비공정에서 내리는 이가 또 있었다. 이번에 내린 것은 클란드라 황녀였다.

    그녀의 뒤로 월광 기사단까지 내리는데 그녀를 알아본 몇몇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엘디아는 ‘부활’을 목에 걸고 나타난 클란드라를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메르샤만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몰리는 중에 클란드라 황녀까지 나타났다. 그녀를 알아본 이들이 옆에 있는 귀족들에게 전하며 점점 술렁임이 커졌을 때 클란드라가 엘디아 공주를 돌아보았다.

    “엘디아 공주. 결혼 축하해요.”

    엘디아 공주는 이걸 기뻐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여겼다. 지금까지 그녀가 자신에게 먼저 말을 건 경우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왕국의 모든 귀족이 보는 자리였다. 살며시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고마워요. 클란드라 황녀님.”

    메르샤만으로도 모두의 시선이 빼앗겼는데 클란드라 황녀가 나타나면서 마치 오늘의 주인공이 그녀가 된 것처럼 보였다.

    그때 클란드라 황녀가 걸어서 카이에게 다가갔다. 카이는 다가온 그녀의 손등에 살짝 입을 맞추고 일어났다. 그렇게 손을 놓아주려고 할 때 클란드라 황녀가 카이의 손을 놓지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카이는 살짝 당황했다. 귀족의 예법상 이런 상황에서는 에스코트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건 파트너나 가능한 일.

    그런데 지금 그녀는 살짝 턱을 든 채로 걸음을 옮겼고, 카이는 그녀를 에스코트 한 채로 식장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메르샤가 달려와 카이의 반대쪽 팔에 팔짱을 꼈다.

    사방에서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카이는 이 사람들이 왜 이러냐고 한마디 하려고 하다가 저 앞에서 어금니를 꼭 깨물고 있는 엘디아 공주를 보자 그 장단에 놀아주기로 했다.

    엘디아 공주의 속이 뒤집히고 있는 것이 빤히 보이는데 판을 엎을 필요는 없었으니까.

    돌싱 후 대마법사-행복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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