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6화 결심
흑마법사 바키는 지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흑마법사들이 하나로 모여 마탑을 세웠다. 아직 내부적으로만 얘기가 오는 것이었지만, 그렇게 모인 마탑은 이름까지 지었다.
에빌 마탑.
그래서 마탑의 전령으로 바키가 직접 나왔다. 무려 5성급 인재로 마탑에서도 요직에 있는 인물이었다.
마탑의 탑주인 콜린스와 그 밑에 있는 네 명의 6성급 흑마법사들은 장로들이니 그 바로 밑의 인물.
에빌 마탑의 대표로 일을 벌이기 전에 무결의 대마법사에게 의향을 물어보기 위해서 찾아왔다. 흑마법사의 특성상 은밀하게 움직여서 성으로 다가가던 중에 갑자기 얼음 속에 갇혔다.
그리고 얼음에 갇힌 채로 성에 끌려왔다.
무결의 대마법사에 대한 소문은 들었다. 그래도 첫 만남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게다가 이 얼음. 보통 얼음이 아니었다.
피가, 마력이 얼어붙는 느낌이다. 이러다 죽겠다 싶었다.
흑마법사는 일인전승으로 사사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자를 많이 키운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위험에 노출된다는 뜻이다 보니 그 제자가 홀로 설 때까지 흑마법사들은 제자를 또 두지 않는다.
스승의 밑에서 열심히 배우다가 그의 모든 것을 전수받았고, 스승은 이단심문관 손에 걸려 죽었다. 그 뒤로 차근차근 쌓아 올려 5성에 이르고 나서 이제 좀 살만해졌다.
그러던 중에 흑마법사들이 모여 더는 위험하지 않게 살 수 있겠다고 했다. 그곳에서 한 자리 차지했더니 이대로 죽는 건가?
고생 끝에 낙이 오려고 하는 지금?
그런 바키의 앞으로 불쑥 얼굴이 나타났다.
“너 누구니?”
입을 열어 말하고 싶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마탑의 사절로 와서 입도 뻥긋 못 해보고 죽나?
정신이 아득해질 때 얼굴 부위만 얼음이 녹아내렸다.
“하악! 하악!”
“이름이 하악이야?”
이 인간이 나를 놀리나?
그런데 눈빛을 보니 전혀 아니다. 게다가 그 눈빛이 허튼수작 부리면 죽을 눈빛이다.
무결의 대마법사가 엘더의 주인으로 유명해서 그렇지 시작은 워 메이지였다고 하더니 이거 사람 하나 죽이는데 눈 하나 깜짝할 인간이 아니다.
그걸 깨닫자 서둘러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키입니다! 에빌 마탑에서 나왔습니다.”
카이는 바키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흑마법사가 마탑에서 나와? 장난하냐?”
“악몽의 대마법사 콜린스님이 흑마법사들을 모아서 세운 마탑입니다!”
카이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아나벨 성녀에게 조언하기는 했지만, 그걸 교황청에서 듣고 따르는 것은 다른 얘기였다.
일단 성직자라는 것들도 마법사만큼 미친놈들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들의 교리에 어긋나면 제가 죽어도 죽이고 죽어야 마음이 편한 놈들이니까.
그런 꽉 막힌 인간들이 어쩐 일로 흑마법사들이 마탑을 설립하는 것을 묵인한 걸까?
의문이 들었지만, 어차피 자신이랑은 상관없는 일이기도 했다.
카이는 팔짱을 낀 채 바키를 바라보다가 마력으로 의자를 끌어와 자리에 앉았다. 카이가 빤히 바라보는 동안 얼음이 녹아내리자 바키는 그제야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헉헉 숨을 몰아쉴 때 카이가 마력으로 의자를 끌어다 앞에 가져다줬다.
바키가 눈치를 보며 슬쩍 의자에 앉았다.
카이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마탑의 대표로 왔다 이건가?”
“예.”
카이는 잠시 콜린스를 떠올려 보다가 그와 자신이 전혀 접점이 없을 알고는 물었다.
“그래서? 에빌 마탑이 날 보러 올 이유가 있나?”
카이의 물음에 바키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예. 여기.”
바키가 품에서 편지 하나를 꺼내서 건넸다. 악마의 문양으로 봉인된 편지를 건네는 바키의 손에 있던 편지가 카이에게 떠올라 날아갔다.
카이는 편지를 뜯어서 읽어보고는 손에서 일으킨 불길로 태워버렸다. 그리고는 바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너희가 타메아 왕국 편에 서 있고, 본국과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 어찌할 거냐? 참전하지만 않아도 1억 프랑을 주겠다?”
“예. 그리 전해 들었습니다.”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내가 비록 이혼했어도 왕가의 사람이었고, 내 아들이 버젓이 왕궁에 있는데 1억 프랑에 얌전히 있어라? 내가 엘더의 주인이었던 건 알고 하는 말인가?”
바키가 식은땀을 흘렸다. 생각해 보니 엘더가 지금까지 벌어들인 돈이 얼마인데 1억 프랑 정도에 이번 일을 눈감아 줄 거라 여긴 건가?
이거 괜히 신경 건드렸다가 여기서 뒈지는 거 아닌가?
카이는 의자의 팔걸이를 톡톡 두드리며 바키를 바라보았다.
타메아 왕국이 국경에 병력을 집결한 건 알았는데 용병왕 카이저가 엘도 왕국에 오고 나서도 물리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었다.
7성급 육체 강화자는 전쟁의 판도를 바꿀 만큼 강한 자다. 그러나 7성급 마법사, 또는 흑마법사라면 대규모 전장에서 압도적인 화력을 보인다.
에빌 마탑이 지원한다면 엘도 왕국군이 패할 수밖에 없다. 카이저가 나선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가 콜린스를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고 해도 콜린스가 그와 직접 부딪칠 일은 없다. 그러지 않고도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 테니까.
게다가 지금 카이저는 팔이 하나 잘린 상태. 콜린스가 승부를 볼 수도 있었다.
7성급들은 어지간하면 붙지 않았다. 붙으면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것에 목숨을 걸기에는 그들이 쌓아온 업적이 아쉬워서.
제국이 전쟁을 멈추고 대륙 동부도 잠잠한 지금 대륙 서부에서 7성급들이 붙게 생겼다.
엘디아와 결혼하는 새신랑이 전쟁에 휘말리게 생겼다. 그리고 죽을 수도 있겠다.
괜찮은데?
카이는 결정을 내리고는 손을 뻗었고, 그의 손에 날아와 잡힌 펜으로 허공에 띄운 양피지에 슥슥 글을 쓰고 서명을 남겼다. 그리고 둘둘 말아 봉인하고는 바키에게 돌려줬다.
“돈은 필요 없어. 그저 이 전쟁에 관심이 없어서 나서지 않을 뿐이야. 그리 전해.”
“알겠습니다.”
바키가 넙죽 고개를 숙이고 카이가 날려 보낸 봉인서를 받아서 품에 넣었다.
“감사합니다.”
“말했듯 감사할 일 없다고 그래. 단 내 영지로 오면 다 죽는 줄 알아.”
“물론입니다.”
바키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지금 저렇게 웃고 있지만, 상대는 놀라울 정도로 강했다. 저자가 전쟁에 개입하면 정말 다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다음에 올 생각이면 먼저 연락부터 해. 연락 없이 영지 안으로 들어오면 죽는다?”
“꼭 전하고 오겠습니다.”
바키가 도망치듯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카이는 지붕으로 공간 이동해서 멀어지는 그의 모습을 눈에 담다가 북동쪽을 돌아보았다.
저 멀리 왕궁이 있는 곳. 타메아 왕국이 북쪽에 있으니 전쟁이 벌어져도 영향을 받을 일은 없다.
왕국에서 불러도 무시할 생각이다.
지들 전쟁은 지들이 알아서 하겠지.
클란드라는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조용히 그림자처럼 서 있는 사내를 바라보던 클란드라가 물었다.
“그림자?”
“그냥 그렇게 부르시면 됩니다.”
클란드라는 황궁에 돌아와 보고 했고, 황제가 보내준다는 사람을 기다렸다. 그리고 나타난 것이 이 남자.
“그림자가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일이야.”
“죄송합니다. 현재 각 왕국에 파견 나가 있는 그림자와 황명을 받은 그림자들은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 외에 가용한 전력은 그림자 다섯 개 팀이 가용합니다.”
“그게 최선인가?”
“예.”
대답하는 데 있어서 주저함이 없다. 황제에게 도우라는 말을 듣고도 저리 말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허락된 것이 그 정도라는 것.
“미치광이 바헬을 추적하는 팀이 있다고 들었다.”
“예. 세 곳을 감시하고 있는 팀이 있습니다.”
“정확히 어디에 있는 것인지 확인이 불가한 건가?”
“저희가 감히 들어갈 수 없는 결계가 대륙에 세 곳 정도 확인이 되었는데 보고를 들으신 테오르님의 말로는 8성급 대마법사가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아직도 유지되는 것으로 보아 그 세 곳이 미치광이 바헬이 머무는 곳일 거로 생각하는 중입니다.”
클란드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은 세 곳 어디에든 있을 수 있고, 어디에도 없을 수 있다는 말이군.”
“예.”
테오르가 있기에 공간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공간 이동이 가능한 자가 지금까지 만든 보금자리가 세 개. 그중 어디에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다고 결계 안으로 들어가자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러고도 바헬이 공간 이동으로 몸을 피해버리면 헛수고가 된다. 아니면 다른 곳에 있다가 찾아와 죽일 수도 있는 노릇.
카이가 원한 것은 정확한 위치였다. 세 개의 위치를 파악했다고 알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 그렇게 말할 거라면 다른 수를 둬야 했다.
클란드라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그럼 그 세 곳에 대한 정확한 위치를 넘기게. 나는 일단 폐하를 뵙고 오지.”
“그리하겠습니다.”
그림자가 사라지자 클란드라는 채비를 마치고 곧장 클레바논 황제를 찾아갔다. 그는 집무실에서 체스를 두고 있었다.
클란드라가 왔다는 보고를 받고도 그는 무심히 체스판을 보고 있었다.
“와서 앉겠느냐?”
클란드라는 그 말에 클레바논 황제의 맞은편에 앉아서 체스판을 바라보았다. 한번 훑어보는 것만으로 알 수 있었다. 다섯 수 안에 백의 킹이 눕는다.
클란드라가 앉은 자리가 백의 자리였기에 그녀는 다섯 수 안에 죽을 운명을 헤쳐나가야 했다.
클란드라가 과감하게 비숍으로 흑의 폰을 잡아먹었다. 클레바논은 그 모습에 감탄하며 다시 장기판을 바라보았다.
“흐음.”
판을 깨는 수에 클레바논이 나이트로 비숍을 잡아먹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클란드라가 룩을 움직여 나이트를 잡아먹으며 체크를 뒀다.
자연히 퀸이 올라와 룩을 처리하자 클란드라의 퀸이 킹의 옆에 있던 비숍을 잡아먹었다.
킹을 움직여 퀸을 처리하니 나이트가 와서 체크 메이트를 뒀다.
클레바논은 잠시 체스판을 바라보았다. 흑이 다 이겼다고 생각했는데 판을 깨는 비숍과 퀸마저 희생하는 과감한 공략에 어어 하다가 패했다.
“역시 넌 너무 과감하구나.”
“그렇게라도 해야 자리를 지킬 수 있으니까요.”
클레바논이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체스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클란드라가 도와 금세 판이 정리되자 그제야 클레바논이 물었다.
“그래. 무슨 일이더냐?”
“바헬의 거처가 셋이라는 것은 알고 계셨죠?”
“물론이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바헬을 잡죠.”
클레바논이 고개를 들어 클란드라를 바라보았다. 바헬은 미치광이라 손톱 밑의 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제국에 8성 강자가 둘이나 있음에도 둘 중 하나는 황궁을 지켜야 했다.
그만한 전력에 문제가 있었던 것.
그런데 바헬은 쉬운 상대가 아니다. 백수십 년 동안 살아남아 여전히 미친 짓을 벌이고 다니는 강자.
죽일 수 있다면 당연히 죽이겠으나 그것이 쉽지 않은 상대이기에 이러는 것이 아니겠나?
“무슨 수로?”
“세 곳을 동시에 습격하면 될 거예요.”
카이가 만약 바헬을 잡는데 손을 거들겠다면 가능은 한 이야기다. 그러나 공간 이동이 가능한 8성 대마법사인 바헬을 놓치게 되면 그때부터는 꿈자리가 뒤숭숭해질 터였다.
“무엇보다 테오르와 검성 둘 다 혼자서 바헬을 감당할 수 있다고 볼 수 없다. 그건 무결의 대마법사 또한 마찬가지.”
혼자서 바헬을 잡는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려주자 클란드라가 말을 이었다.
“셋 중 둘이 공간 이동이 가능한 패에요. 바헬이 어디를 가든 최소 둘에서 셋이 그를 동시에 공격할 수 있어요. 그리고 태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무결의 대마법사는 공간 이동을 억제할 수 있어요.”
클레바논은 그 말에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는 체스판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퀸까지 미끼로 던지면서 승리를 얻었던 것은 자신에게 이 말을 하고자 함이었나?
지금도 앞으로도 제국의, 나아가서 모든 왕국의 골칫거리인 바헬을 죽이기 위해서 위험을 무릅써라?
황제인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검성이라는 패가 놀고 있다. 그러나 그까지 나선다면 황궁이 빈다. 테오르가 심혈을 기울여 온갖 방어를 했음에도 미치광이나 투신이 난입한다면 방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들 중 하나가 황궁을 지키고 있지 않는 한.
그것이 8성. 인간의 한계에 도달한 자들이 가진 힘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막을 수는 있어도 그 외에는 아무리 공을 들여도 막을 수 없다고 했다. 그렇기에 조합 마법진이 필요했다.
아무리 돈이 많이 든다고 해도 조합 마법진으로 8성에게서 안전을 얻을 수만 있다면 억만금도 아깝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 조합 마법진을 얻기 위해서 지금 자신을 위험에 던지라는 것을 암시했다.
클레바논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검성과 태사를 불러와라.”
결정은 내렸다.
손톱 밑의 가시. 이제 뽑을 때다.
돌싱 후 대마법사-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