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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64화 (64/150)
  • 064화 주문

    타메아 왕국과 엘도 왕국의 국경 가까이에 있는 만드리안 협곡 안쪽에는 개미굴을 연상케 할 정도로 복잡한 동굴이 있었다. 자연적인 동굴이었는데 그 동굴에 언제부터인지 사람의 발길이 끊어졌다.

    근처로 간 이들이 모두 실종되어서 왕국에 보고했지만, 왕궁에서는 그곳의 출입을 금한다는 명령이 내려왔다.

    왕궁에서 지정한 금지였는데 왕궁에서 직접 군대를 보내 그곳에 망루와 목책을 짓고는 입구를 틀어막았다. 영주에게 어떻게 손을 썼는지 그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기에 만드리안 협곡은 조용히 금지(禁地)가 되었다.

    그런 만드리안 협곡의 깊은 곳에 있는 동굴의 심처에는 검은 로브를 두른 이들이 모여 앉아있었다.

    다섯 명이 둥근 원탁에 둘러앉아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이단심문관들이 물러났다는 소문이 있어요.”

    새하얀 안색에 비쩍 마른 여인은 해골을 떠올리게 했는데 그녀의 말에 반대편에 앉아있던 몸을 움직일 수는 있을지 의심이 갈 정도로 뚱뚱한 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도착한 형제가 말하기를 이단심문관을 만났음에도 그가 먼저 피하는 인상을 받았다더군.”

    흑마법사의 천적이라면 역시나 신성 교국의 이단심문관들이다. 오로지 흑마법사를 죽이기 위해서 신성 교국에서 기르고 기른 정예들.

    사람들은 신성 교국에서 성기사 메이어를 가장 강한 자로 알고 있지만, 흑마법사들은 이단심문관들을 더욱 증오하고 두려워했다.

    이단심문관들은 귀신같이 흑마법사들을 알아보는데 만났음에도 죽이지 않고 보내줬다는 것은 믿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단심문관들이 실제로 물러나고 있었다.

    타메아 왕국의 국왕과 만나 협약을 맺었던 악몽의 대마법사 콜린스는 지금 자리에 모인 흑마법사들의 얘기에 석탁을 검지로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왜 그러는 것 같나?”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모두 흑마법의 정점에 있는 6성급 흑마법사들이었다. 그중에는 콜린스보다 선배인 이도 있었으나 마법사보다도 위계에 영향을 더 많이 받는 흑마법사들은 콜린스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모여들었다.

    여기 있는 이들은 신성 교국의 이단심문관들도 어쩌지 못하는 이들이었으니까.

    그런 거물들인 만큼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것도 기적적인 일이었다.

    해골처럼 마른 여인. 매혹의 흑마법사 엘리슨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내저었다.

    “이단심문관들을 물릴 수 있는 곳은 교황청뿐이에요.”

    “그들이라면 우리의 움직임을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죠.”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대륙 전역의 흑마법사들이 한곳으로 모이는 것을 그들이 파악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곳까지 살아서 도달하는 자는 그 능력과 운 모두를 인정 받을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단심문관들이 물러나면서 이곳까지 오는 길이 수월해졌다.

    흑마법사에도 여러 학파가 있어서 우선은 그들을 모아서 패밀리로라도 만들 생각이었는데 흑마법사들이 많이 살아서 온다면 마탑을 세워도 된다.

    마탑 연합에게 인정받는 것은 다른 일이지만, 그것만 가능하다면 더는 억압을 받지 않아도 된다.

    모든 흑마법사가 꿈꾸는 세상이 도래한다.

    제물이나 필요한 것들이야 타메아 왕국에서 노예를 사들이면 된다. 타메아 왕국으로 자리를 잡은 것도 타메아 왕국은 노예가 합법인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교황이나 총대주교가 미치지 않고서야 흑마법사들을 죽이지 않을 리가 없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황청의 이단심문관들이 총출동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검문검색이 강화되었었다. 그런데 그들이 물러났다.

    콜린스는 이것이 함정인가 싶었다. 한곳에 모아놓고 잡아 죽이겠다는 뜻일까?

    그러나 흑마법사들이 한곳에 모이면 쉽게 상대할 수 없다. 지금까지 흑마법사들이 신성 교국에 사냥당한 것은 하나로 뭉치지 못했기 때문이 가장 컸으니까.

    콜린스가 그렇게 고민할 때 뚱뚱한 흑마법사, 탐욕의 마법사 제이머스가 입을 열었다.

    “저 하늘 신 시엘도 우리가 하나로 모이기를 바라나 본데 그렇게 합시다. 그보다 전쟁은 언제 벌어지는 거요?”

    타메아 왕국에서 이들을 구해온 것은 엘도 왕국과의 전쟁을 염두에 두고 벌인 오랜 공작이었다. 흑마법사들이 전쟁터에서 공식적으로 등장한 적은 없었지만, 타메아 왕국에서는 공식적으로 그들을 전쟁터에 초빙했다.

    지금까지 신성 교국의 눈치를 봐서 흑마법사들을 전쟁터에서 고용한 적은 없었다. 영지전에서 초청했던 이들도 이단심문관의 방문을 받고 사라진 영주들이 있다 보니 그런 것이었는데 이번 타메아 왕국의 국왕은 겁이 없는 것인지 그들을 정식으로 전쟁에서 고용한다고 했다.

    어쩌면 엘도 왕국에서 용병왕 카이저를 고용했기 때문일 수도 있었는데 만약 전쟁에서 공식적으로 공을 세운다면 마탑 연합과도 이야기가 잘 될 수 있었다.

    왕국이 적극적으로 비호 하는 세력을 무시할 수는 없을 테니까.

    “국왕은 결심을 굳혔더군. 아마도 카이저의 결혼식에 맞춰서 전쟁을 벌일 것 같더군.”

    “아하. 그거 좋은 생각이군.”

    용병왕 카이저는 7성급 육체 강화자로 상대하기 여간 까다로운 자가 아니다. 게다가 그 밑의 수하들 역시 만만치 않은 자들인데 지금 국경 인근에는 용병왕 카이저의 부단장 중 둘이 나와 있었다.

    결혼식이라고 그들이 자리를 비울 수는 없다. 그리고 카이저의 비호가 없는 동안 그들을 죽여 재료로 쓸 수만 있다면 흑마법사의 전력은 크게 상승한다.

    5성급 이상의 육체 강화자는 흑마법의 재료로 최상에 들어가는 것이었으니까.

    콜린스는 그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만약 출전해야 한다면 확실히 그 힘을 보여줘서 우리가 얼마나 가치 있는 이들인지 알려야만 마탑 연합에 들기에 편해질 수 있어.”

    그 말에 지금까지 말이 없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되겠나?”

    “하지만 너무 혐오스럽지 않아야겠지. 공포는 좋지만, 혐오는 안 돼.”

    음욕의 마법사 브레넨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래야겠지.”

    콜린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흑마법사들의 마탑. 우리의 대계는 이번 일이 첫걸음이니 그만큼 중요한 일이야.”

    모두 고개를 끄덕이자 콜린스가 다른 것을 물었다.

    “최상급 영혼석 제조 상황은 어때?”

    “곧 스무 개를 채울 수 있을 거야.”

    “좋아. 스무 개가 차면 안타르시아에 다녀오도록 하지.”

    탐욕의 마법사 제이머스가 두툼한 턱살을 흔들며 물었다.

    “그런데 대체 흑마법사도 아닌 자가 왜 최상급 영혼석이 필요한 거지?”

    콜린스는 그 부분을 잠깐 고민하다가 답했다.

    “솔직히 우리에게는 지금 최상급 영혼석보다 돈이 더 필요해. 그리고 그는 어째서인지 제값을 치르고 최상급 영혼석을 사주니 서로의 필요가 맞아떨어진 상황이야. 다른 건 생각하지 말자고.”

    제이머스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흑마법사들의 마탑 설립이라는 대계를 진행하는 것에만 집중하기에도 벅찬 상황이었다. 굳이 7성급 대마법사 고객을 적으로 돌릴 필요는 없었다.

    흑마법사들을 내보낸 콜린스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카이저를 상대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 해야 할 일. 다행이라면 그자가 무결의 대마법사에게 팔이 잘렸다는 점이었다.

    전력이 전성기에 비하면 최소 2할 이상 떨어졌을 터. 그걸 회복하기 전에 놈을 끝장내야 했다. 7성급 육체 강화자를 재료로 손에 넣게 된다면 7성급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콜린스는 오랜만에 느끼는 흥분에 주먹을 꼭 쥐었다.

    요즘 메르샤는 심심했다.

    ‘정령왕의 눈물’을 얻어서 정령력이 크게 상승해서 전보다 훨씬 강해진 것을 알았지만, 이렇다할 이벤트가 없어서 그랬다.

    ‘플레이트’는 아직도 반년 가까이 남았고, ‘그레이스’에서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최상급 마정석과 트리달리움을 한도 없이 구하기에 여기저기서 많이 구해 놨는데 정작 그걸 사가야 할 인간은 나타나지도 않고 있었으니까.

    창밖을 바라보던 메르샤는 저 아래에 보이는 ‘그레이스’의 간판을 보며 그를 떠올렸다. 어딘가 냉막해 보이는 인상의 사내.

    “보고 싶다.”

    “누가 보고 싶은데?”

    “있어. 아벨이라고···.”

    별생각 없이 답하던 메르샤가 기겁하며 상급 바람의 정령 프란퀴스를 소환하며 뒤돌아섰을 때 뒤에 선 이를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아벨?”

    카이는 메르샤를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날 왜 보고 싶어 했는데?”

    메르샤가 얼굴을 붉히며 답했다.

    “무슨 헛소리야? 내가 언제 널 보고 싶어 했다고 그래? 그보다 너 비공정도 보내달란 말도 하지 않고 어떻게 여기 왔···.”

    말을 하던 중에 메르샤는 그가 8성에 올랐음을 깨달았다. 8성 대마법사들이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떠올린 메르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는 숨기지도 않는 거야?”

    “내가 숨겨야 해?”

    “···아니.”

    메르샤는 8성 대마법사들이 얼마나 미친놈들인지 잘 알고 있었다. 특히나 상대는 어디 소속인지도 모르는 인간. ‘그레이스’의 공방이 어디인지도 확인되지 않은 그는 미치광이 바헬 만큼이나 위험한 종자였다.

    언제 눈이 돌아가 사고를 쳐도 그를 찾을 방법도 없는 상황.

    “주문한 물건들 들어왔나 보러 왔어.”

    “들어왔지. 그렇지 않아도 언제 올지 몰라서 그 생각하고 있었어.”

    어째서인지 실실 웃는 메르샤를 바라보던 카이가 돌아서며 말했다.

    “그럼 물건 보러 갈까?”

    “뭐하러. 기다려. 금방 보낼 거야.”

    메르샤가 하급 바람의 정령을 소환해서 날려 보내고는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리고는 직접 차를 끓여 내주고는 그의 앞에 앉아서 물었다.

    “물건만 보러 온 거야? ‘그레이스’의 신제품이나 뭐 그런 거 없어?”

    “···신제품이 없으면 오지도 못해?”

    “그건 아니지.”

    메르샤가 미소를 짓더니 말을 돌렸다.

    “그보다 엘더는 엘디아 공주에게서 무결의 대마법사에게로 완전히 지분이 넘어갔는데 어떻게 계속 죽이기 할 생각이야?”

    카이는 메르샤를 빤히 바라보다가 답했다.

    “신경 쓰지 않아.”

    메르샤의 눈이 빠르게 돌아가는 것을 보고 카이는 속으로 웃음을 참고는 말했다.

    “무결의 대마법사의 편을 드는 건가?”

    “응? 무슨 말이야? 나야 최대 고객인 아벨 편이지.”

    중립을 지키고 무역을 해서 그런가? 말은 잘한다.

    차를 마시는 중에 베이트가 접객원 다섯과 카트를 밀고 올라왔다. 카이는 그가 가지고 온 트리달리움 주괴들과 그 위에 올린 최상급 마정석들을 바라보았다.

    그 수량이 카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제법 많은데?”

    “그렇지? 이번에 힘 좀 썼지.”

    메르샤가 이런 물건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제국의 도움이 컸다. 아무래도 최상급 마정석이나 트리달리움을 구하는 데는 그들만 한 곳이 없었으니까.

    카이 백작성을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넌지시 얘기를 꺼내니 클란드라 황녀가 흔쾌히 내주었다. 물량을 구하고 싶어도 구하기 힘든 것들이었는데 이리 구했으니 메르샤가 뿌듯해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모두 얼마야?”

    “10억 프랑.”

    눈이 튀어나올 가격이지만, 남기는 것이 별로 없는 가격이기도 했다.

    저 정도 트리달리움이면 적어도 열 개 이상의 헬리움 구슬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퀸이 얼마나 강해질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렇기에 카이는 주머니에서 진금화 열 개를 꺼내 건넸다.

    “아홉 개만 줘도 돼.”

    “받아둬. 그리고 최상급 영혼석 나오면 미리 사두고.”

    베이트가 물러나고 둘만 남았을 때 카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가방에 가지고 온 물건들을 싣기 시작했다. 메르샤는 진금화를 챙기다가 카이가 하는 짓을 보고는 기겁했다.

    “그, 그거 뭐야?”

    카이는 거의 사람 열 명 크기의 트리달리움을 가방에 집어넣고는 태연하게 돌아섰다.

    “가방.”

    “아니! 지금 들어간 양이··· 설마 공간 확장 마법 가방이야?”

    “맞아.”

    어차피 메르샤에게는 8성인 것을 숨길 생각이 아니니 이렇게 미끼를 던지는 것도 좋다. 이것의 가치를 파악한 메르샤가 어떻게 나올까?

    “그, 그거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어?”

    공간 확장 마법 가방은 지금까지 나온 물건이 없다.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것.

    저것이야말로 실용성과 과시욕 모두를 채울 수 있는 물건이었다. 돈을 주고 살 수 있다면 안타르시아를 팔아서라도 사고 싶은 물건.

    “활성화하는 데만 여기 있는 최상급 마정석의 세 배가 들어. 그리고 인건비까지 생각하면 천억 프랑은 받아야 하지 않겠어?”

    놀릴 생각으로 한 말인데 메르샤가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물었다.

    “외형은 내가 골라도 돼?”

    잊고 있었다. 그녀가 안타르시아의 시장으로 지금까지 상상도 못 한 부를 쌓아왔다는 것을.

    돌싱 후 대마법사-너 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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