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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63화 (63/150)
  • 063화 돌싱 후 대마법사-아티펙트

    아티펙트

    귀족들의 화법에는 그럴 때가 있다.

    서로 사실을 알지만, 묻어두고 일을 진행해야 할 때가.

    카이가 스스로 8성에 오른 대마법사라고 밝히지 않았지만, 조합 마법진을 연구해서 알려준다고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조합 마법진은 테오르조차 아직 풀지 못한 것.

    그런데도 그걸 연구하고 연구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제국을 상대로 선불을 요구하는 배짱.

    그리고 찾는 것이 미치광이 바헬이다. 미치광이 바헬은 8성 대마법사로 제국에서도 요주의 인물로 삼았지만, 그의 높은 마력 감지 능력 때문에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인물이다.

    그래도 그림자 중에 그의 행적만을 좇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제국이 이번 일에 자신에게 전권을 준 만큼 그 전권을 휘두른다면 바헬의 행적을 찾을 가능성이 있었다.

    “바헬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는 대로 연락드리죠.”

    카이가 이 정도로 얘기한 것은 그가 8성에 오른 것을 안다면 제국에서 무력으로 해결하려 들지 못함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이 제국에 갔을 때라면 무슨 수를 쓸 수 있겠지만, 외부로는 8성 이상의 전력을 둘 이상 내보낼 수 없으니까.

    대륙에서 무엇이든 최고라고 청할 수 있는 곳은 제국뿐이다. 그러니 그곳의 정보력을 빌려서 바헬의 행적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조합 마법진을 알려준다고 해도 그걸 연구하고 테오르의 비전 마법을 담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카이가 주는 조합 마법진으로 8성급 비전 마법을 담으려면 몇 번이나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거 한 번 활성화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천문학적이다. 최상급 마정석을 광산 단위로 쏟아부어야 하니 제국이 그걸 만들려고 하다가 오히려 휘청일 수도 있었다.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카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배웅해주기 위해 밖으로 나오니 메르샤가 다가왔다.

    “나도! 나도 독대해줘!”

    카이는 그 말에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메르샤는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이는 한숨을 내쉬고 클란드라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카이는 메르샤와도 독대하게 됐다.

    메르샤에게 차를 내주니 그녀가 히죽 웃으며 물었다.

    “축소 마법진 가지고 왔다며?”

    “내 거니까.”

    “그래. 그게 마법사지!”

    메르샤가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그거 알아?”

    “뭐?”

    “엘더를 죽이려고 하는 자가 있어. 소문은 들었지? ‘그레이스’라고.”

    “엘더 죽이기?”

    “그래. 조합 마법진이라고 새로운 마법진을 들고 나온 대마법사 하나 있거든? 아직 소문이 나지는 않았는데 8성에 오른 대마법사야.”

    “8성 대마법사가 엘더를 왜 죽여?”

    메르샤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답했다.

    “모르지.”

    카이는 고개를 살짝 꺾고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메르샤는 ‘그레이스’ 편?”

    카이의 질책 섞인 시선에 메르샤가 헛기침했다.

    “크흐흠. ‘그레이스’가 많이 벌어주기는 했는데, 내가 편든 건 아니고. 그래서 말인데 엘더는 이제 신제품 나오나? ‘그레이스’가 워낙 고성능의 아티펙트를 만들기는 하지만 약점도 있거든. 물건이 너무 안 나와. 그러니까 엘더도 충분히 시장을 점유할 수 있을 거야.”

    카이는 메르샤가 하는 말에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7성에 이른 정령 마법의 대가.

    7성에 오른 후로 십 년간 스스로 도시 하나를 만드는 정신 나간 짓을 하고, 그 도시를 중립 지대로 선포. 중계무역으로 떼돈을 벌고 있는 여인.

    나이는 절대로 비밀이라고 하니 알 수 없었지만, 그녀가 이룬 업적만 본다면 그녀가 알려진 것보다 나이가 더 많을 수도 있는데 어째서인지 그녀는 자신이 30대인 척을 한다.

    외모야 그렇게 보이지만, 어쨌든 그녀는 왜 아직도 저렇게 돈을 벌고 싶어 하는 걸까?

    카이는 전에는 엘디아가 주는 돈만으로 풍족하게 살았고, 지금은 ‘그레이스’로 평생 벌 돈을 다 벌었더니 돈에 대한 욕심이 없어졌다.

    돈은 이미 돈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뭔가를 하는 데 있어서 그 수단이 될 뿐이었다.

    지금이야 퀸을 위해서 쓰고, 바헬을 상대할 준비를 위해서만 돈을 쓰고 있었으니까.

    “하나 물어도 될까?”

    메르샤는 마법사라는 것들이 호기심을 감추지 못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런데 자신에게 뭔가 묻고 싶은 게 생겼다는 건 자신에게 관심이 생겼다는 뜻.

    카이는 이혼하고 삶이 폈는지 얼굴이 환해져서인지 잘 생겨 보였다. 이혼남이기는 한데 뭐 능력 있다는 것은 알겠다.

    워낙 눈이 높아서 마음에 차는 남자가 없었는데 무결의 대마법사 정도라면.

    메르샤가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뭘까? 나한테 궁금한 게?”

    카이는 솔직하게 물었다.

    “왜 그렇게 돈을 벌고 싶어 해? 충분히 벌고도 남았을 텐데.”

    메르샤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뭐야? 나 속물 같다고 뭐라고 하는 거야?”

    “아니. 그냥 궁금해서.”

    메르샤는 개인의 부로 어지간한 왕국조차 넘어설 정도의 부를 쌓았다. 그런 그녀가 아직도 돈을 좇는 삶을 산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메르샤는 카이의 눈에 순수한 호기심만 남아있음을 보고는 진심으로 그게 궁금한 것을 깨닫고는 품에서 술병을 꺼냈다. 위스키를 담은 술을 한 모금 마신 메르샤가 답했다.

    “그냥. 마음이 허해서.”

    카이는 뭔가 사연 있어 보이는 메르샤의 대답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응?”

    카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엘더의 신제품을 내놓을지는 조금 더 고민해 보겠지만, 내놓게 된다면 ‘플레이트’를 이용하도록 하죠.”

    “잠깐! 여기서 더 물어봐야 하는 거 아냐?”

    카이는 관심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메르샤는 뭔가 배신당했다는 듯 억울한 감정이 가득했지만, 카이는 더는 이야기를 들은 마음이 없었다.

    “클란드라 황녀가 기다릴 겁니다.”

    “이익!”

    워낙에 귀한 것을 받았기에 적어도 돌아가는 길까지 안전히 모셔야 했다.

    메르샤는 카이에게 바짝 다가와서는 턱 밑에서 올려다보며 말했다.

    “꼭 안타르시아에 한 번 와라. 못다 한 얘기 나누게.”

    뭔가 으르렁거리는 모습이 강아지가 생각나 속으로 웃음을 참은 카이는 그녀를 클란드라 황녀의 월광 기사단과 함께 비공정에 태워버렸다.

    메르샤는 비공정에서 카이를 향해 작은 구슬 하나를 던져줬다. 카이는 그게 비공정 정류장에 있는 비공정 호출 구슬임을 알아보았다.

    여기서 호출하면 이곳으로 비공정을 보내주겠다는 건가?

    “꼭이다! 꼭!”

    카이는 시끄럽게 구는 메르샤의 비공정을 바람 마법으로 밀어 올려 버렸다. 멀리 사라지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카이는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뒤돌아선 카이의 앞에는 테오가 울적한 얼굴로 서 있었다.

    “왜?”

    “대체 어떻게 하셨기에 손님들이 다 그냥 가신 겁니까? 식사 준비부터 며칠 묵을 방까지 꾸미는데 들어간 돈이 얼마인데!”

    카이는 테오의 말에 그제야 성을 돌아보았다. 아나벨 성녀를 맞이하기 위해 테오는 돈도 돈이지만, 많은 것을 쏟아부었다. 그런데 와서 꼴랑 차 한잔하고 떠났으니 테오가 저리 실망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카이도 그렇지만, 성에 머무는 이들은 지하에서 나오지도 않아서 집사장으로서 테오가 하는 일은 밥과 차나 준비하는 정도였다. 요즘에야 정보 집단을 관리한다고 심심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집사장으로서 힘을 빡 주고 준비했는데 다들 밥도 안 먹고 돌아간 모습을 보니 힘이 쭉 빠졌다.

    “손님들 초대 좀 할까?”

    테오는 그 말에 카이를 째려봤다.

    “백작님. 그런 얘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카이는 피식 웃고는 테오의 어깨를 두드려준 후에 연구소로 내려갔다.

    연구소의 한쪽 벽면에 걸린 것은 넓게 펼쳐 놓은 로브.

    그곳에 그려 놓은 수많은 마법진.

    축소 마법진에 조합 마법진, 결합 마법진까지 더해서 두 겹으로 만들어 놓은 로브였다.

    활성화만 시키면 8성 아티펙트가 될 수 있다.

    카이는 8성급 아티펙트로 비전 마법을 담지 않았다. 이것은 비전 마법이 아니라 술식 방어 용 아티펙트였다.

    시간과 공간에 간섭하는 것이 8성에 이른 대마법사의 능력. 그 능력을 방해하고 보니 그들이 그것에 얼마나 기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보통은 한 세대에 한 명 나오기 힘든 것이 대마법사이다 보니 그 능력이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하지만 같은 8성급끼리의 싸움은 다르다.

    테오르의 술식을 방해하고 그를 두들겨 팼지만, 반대의 상황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었다. 게다가 상대가 8성 육체 강화 능력자라면 어떨까?

    그들이 어떤 권능에 가까운 힘을 얻는지 알지 못하니 술식 방해를 막을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고안한 마법. 시공간 동결 마법을 언제든 발동할 수 있게 만들었다. 자신의 주위에 시공간 동결 마법을 펼치면 그 안에서는 시간이 멈추고, 공간 이동도 불가능했다.

    그 범위는 고작 반경 3미터.

    펼칠 수 있는 시간도 고작 3초. 그러나 그 정도면 상대를 격살하기에는 충분했다. 다만 이 마법에 들어가는 마력이 막대해서 충전식으로 쓸 수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래서 그 부분은 카이의 마력을 사용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카이의 마력중 3할이나 되는 마력이 필요했지만, 이건 비장의 한 수가 될 터였다.

    여유가 남는 부분은 언제든 색을 변환할 수 있는 마법과 체온 유지와 방수, 방풍 기능이 있는 아티펙트였다.

    카이는 그런 로브의 앞에서 마력을 끌어올리며 최상급 마정석들을 허공에 띄웠다. 최상급 마정석들이 로브의 주위에서 떠올라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대수림에서 늑대의 신령을 만나고 얻었던 기이할 정도로 농축된 마나. 그 마나를 카이의 칠채 마력이 그러 모은다.

    우우우우웅.

    공간 확장 마법을 만들었지만, 그것과는 들어간 마법진의 수부터가 다른 아티펙트였다.

    빠지직.

    최상급 마정석은 마나를 모두 사용해도 그 형태를 유지했는데 이번에는 어찌된 것인지 견디지 못하고 균열이 일어나더니 산산이 조각나서 가루가 되어 버린다.

    카이는 그렇게 뿜어져 나온 마나를 모두 그러 모아 로브에 밀어 넣었다.

    카이가 가진 마력이 바닥이 날 정도가 되어서야 아티펙트가 활성화되며 모든 마법진이 빛을 냈다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카이는 그제야 긴숨을 토해냈다.

    가방은 8성에 올라 공간에 간섭하게 되어서 그걸 가방에 집어넣은 것이었지만, 시공간을 동결하는 이 로브는 오직 8성급 강자들을 상대하기 위한 비전 마법으로 분류된 것인지 활성화 하는데 막대한 양의 마력을 필요로 했다.

    테오르가 조합 마법진을 성공적으로 만든다고 해도 그걸 활성화 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칠채마력을 가진 카이도 이렇게 고전하는 것을 보면 테오르의 마력이 부족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거야 알아서 해결하겠지.”

    제국에 소속된 마법사를 끌어다 쓰면 부족한 마력은 얼마든지 채울 수 있으리라.

    카이는 가루가 되어 사라진 최상급 마정석을 흘끔 보고는 픽 웃었다.

    설마 마법사들의 마력을 끌어다 쓰면 마법사들이 저렇게 고갈되어 죽지는 않겠지?

    카이는 손을 뻗어 마력으로 자신의 로브를 끌어와 몸에 둘렀다. ‘동결의 로브’라고 이름 지은 대륙 최초의 8성급 아티펙트가 완성되었다.

    이제는 바헬도 두렵지 않았다. 퀸이 없어도 그를 죽일 자신이 생겼으니까.

    “준비는 끝났다.”

    제국이 찾든, 테오가 찾든. 그도 아니면 바헬이 자신을 찾아오든 그를 상대할 준비는 끝났다.

    돌싱 후 대마법사-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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