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싱 후 대마법사-61화 (61/150)
  • 061화 왜 이래?

    메르샤.

    신령의 대마법사이자 안타르시아의 시장인 그녀는 제국이 벌인 횡포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신성 교국에 알려주면 좋다고 달려들어 제국의 횡포를 물어뜯었을 터인데도 입을 다물었다. 그건 지금까지 중립을 지켜왔던 그녀의 성향과는 조금 다른 선택이었다.

    그래서 클란드라는 우선 안타르시아로 향했다. 독대하는 자리에서 클란드라가 먼저 운을 띄웠다.

    “저번 일은 미안해요.”

    “괜찮아. 황녀의 잘못도 아니니까.”

    클란드라는 가만히 메르샤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밝히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약점은 쥐고 휘두르기 전까지가 무기이다. 지금 당장은 당시의 일을 덮어서 제국에 빚을 지워두고 만약 그걸 휘둘러야 할 일이 생기면 거침없이 휘두를 터였다.

    신령의 대마법사인 그녀를 죽이는 것은 수몰의 대마법사나 검성이 나서지 않으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안타르시아에 자리를 깔고 앉아있을 때는 더욱 죽이기 어렵다.

    그런 그녀가 제국의 약점을 쥐고 있으니 제국도 그녀를 대함에 있어 함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뭔가 하려고 할 때 눈치를 한 번 더 보게 될 테니까.

    “부탁이 있어서 왔어요.”

    클란드라의 말에 메르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탁?”

    “비공정 하나를 비공식 항로로 이동했으면 해요.”

    메르샤는 그 말에 잠시 고민했다. 비공식 항로로 이동하는 것은 그녀가 가본 곳이 아니라면 직접 운항해야만 했다. 한마디로 잠깐이지만 7성 대마법사인 자신을 고용하겠다는 말이었으니까.

    “목적지가 어딘데?”

    “엘도 왕국 카이 백작성이요.”

    메르샤는 그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결의 대마법사?”

    클란드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메르샤는 잠시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클란드라가 월광 기사단만 대동한 채 이곳에 왔을 때는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갑자기 무결의 대마법사를 만나러 가겠다고 했다.

    무결의 대마법사에 대한 소문은 들었다. 듣기로는 용병왕 카이저의 팔을 자르고 엘더에 귀속되어 있던 지적 재산권 권리를 이양했다고 했던가?

    이혼남이라는 것만 아니라면 7성 대마법사이자 젊은 그는 확실히 제국에서 탐을 낼만 한 인재였다.

    그런데 촉은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비공식 항로라면 내가 직접 가야 하는 건 알고 있지?”

    “알아요. 그래서 준비해 왔어요.”

    클란드라가 꺼내 놓은 것을 보고 메르샤의 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그거 혹시 ‘정령왕의 눈물’이야?”

    주먹만 한 에메랄드를 연상케 하는 구슬이었다. 다만 그 안에 휘도는 것이 바람의 정령력이다.

    대륙에 알려진 정령석 중 가장 특별한 것이었다. 클로젠 제국의 황궁 금고 안에 있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 메르샤도 구경조차 못 해본 물건이었다.

    정령 마법을 다루는 이들의 수는 극소수이고 그중에서 7성에 오르는 이는 더욱 드물다.

    그런 정령 마법사들에게 있어 저건 돈으로 구할 수 없는 무가지보였다. 게다가 속성도 같은 바람의 정령력이 깃든 것이었다.

    정말로 정령왕의 눈물인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저 정령석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정령력이 늘어나고, 정령 마법을 사용했을 때 그 위력을 끌어올려 준다.

    메르샤를 8성에 오르게 해줄 물건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떤 아티펙트보다 그녀에게 효용성이 뛰어난 물건이기도 했다.

    이번에 입을 닫고 있었던 것에 대한 선물이기도 했다. 이만한 물건을 꿀꺽하고 그 말을 떠벌리고 다니면 검성이 이곳을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건 받으면 영원히 입을 다물어야 하는 일이었다.

    메르샤가 그 일을 떠벌리지 않은 것은 떠벌려봐야 신성 교국만 좋아할 일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자신 혼자만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일에 대한 지분은 자신보다 아벨에게 더 많았기에 알리지 않았던 것.

    그런데 이걸 받아도 될까?

    고민하는 메르샤를 보고 클란드라가 미소를 지은 채 물었다.

    “이거로 부족할까요?”

    클란드라가 부담을 줄여주니 메르샤는 한숨을 내쉬었다. 안타르시아가 대륙 양대 거인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중간에서 줄을 잘 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줄이 약간 제국 쪽으로 기울어지지만, 이 정도라면 아벨도 이해해 줄 것 같았다. 아직 아티펙트 만들어준다는 말은 하지 않았으니까.

    “좋아 가자.”

    메르샤는 ‘정령왕의 눈물’을 가지고 개인 비공정에 올랐다. 어디든 가고 싶을 때 이용하는 개인 비공정에 클란드라와 그녀의 호위 기사단인 월광 기사단을 데리고 엘도 왕국으로 향했다.

    상급 바람의 정령 프란퀴스 넷을 소환하고도 여유가 있을 정도로 ‘정령왕의 눈물’은 뛰어났다.

    그래서 메르샤의 개인 비공정은 지금까지 운용하던 그 어떤 비공정보다 빠르게 하늘을 가를 수 있었다. 그렇게 하늘을 날아서 도착한 카이 백작성 아래에서 낯익은 마력 패턴을 감지한 메르샤가 창문을 열고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무결의 마법사는 안타르시아에 왔을 때 만나보았다. 평상시에는 사람 순해 보이던 사내가 제 여자가 무시당하면 눈이 돌아갔었지.

    듣자 하니 이혼하고, 지적 재산권도 찾아온 것을 보면 제대로 돌아선 것일지도 몰랐다.

    그런 다재다능한 녀석이 7성에 올랐다고 하니 슬쩍 간을 볼 마음으로 왔다. 그런데 비공정 아래로 보이는 광경에 메르샤는 순간 당황했다.

    “뭐야? 아나벨 성녀? 성기사 메이어?”

    신성 교국 서열 2위인 아나벨 성녀가 여기 왜 와 있단 말인가?

    “아나벨 성녀가 와 있어요?”

    비공정 안에서 클란드라가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 메르샤가 비공정을 백작성의 연무장에 착륙시켰다.

    메르샤가 먼저 내리자 클란드라가 월광 기사단과 함께 비공정에서 내렸다.

    그런 그들의 등장에 성문 쪽에 신경을 쓰고 있던 테오가 먼저 달려왔다.

    “시종장 테오라고 합니다. 신령의 대마법사님과 클란드라 황녀님을 뵙습니다.”

    신령의 대마법사야 비공정을 본 순간 그녀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고, 클란드라 황녀는 목에 ‘부활’을 걸고 있기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메르샤는 테오를 흘끔 보고는 물었다.

    “여기 세워 놓을 것 아니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안으로 드시죠.”

    아나벨 성녀보다 먼저 성에 들어왔으니 일단 응접실로 안내해야 했다. 테오가 메르샤와 클란드라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메르샤는 뒷짐을 진 채 걸음을 옮기며 성을 구경했다.

    “와. 진짜 삭막하네.”

    무결의 마법사, 이제는 대마법사가 된 이의 백작성이라고 보기에는 정말이지 장식품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사람의 온기도 잘 느껴지지 않는 곳.

    무릇 가진 자가 돈을 써야 시장 경제가 돈다. 그런데 무결의 대마법사 정도 되는 자가 이렇게 돈을 안 쓰다니.

    예술가들은 굶어 죽으라는 건가?

    메르샤의 방만해도 방안을 꾸민 것들이 진금화 하나로 해결이 안 될 정도로 고가의 물건들이 있는 곳이었으니까.

    메르샤와 클란드라가 응접실에 자리하자 테오가 곧 차를 내왔다.

    “곧 백작님이 오실 겁니다.”

    “천천히 와도 돼.”

    메르샤는 더 말하지 않고 차를 마시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래도 응접실은 뭔가 꾸민 태가 났다. 그렇다고 뛰어난 장식품을 가져다 놓은 정도는 아니고, 꽃을 가져다 놓고 새단장한 느낌이 나는 정도였다.

    “으흠. 아나벨 성녀가 오기로 했었나 보네.”

    응접실 한쪽에 하늘 교단의 성물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중얼거리던 메르샤는 슬쩍 클란드라를 바라보았다.

    제국의 황녀인 클란드라와 신성 교국의 아나벨 성녀가 무결의 대마법사를 찾아왔다.

    그가 가진 축소 마법진만 해도 이만한 거물들이 움직일 일이었지만,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어쩐지 따라오기를 잘한 느낌이었다.

    그때 카이가 아나벨 성녀와 성기사 메이어를 안내하며 응접실로 들어왔다.

    클란드라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카이가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추며 예를 표했다. 클란드라는 잠시 카이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연락도 없이 찾아와 결례를 범했네요.”

    카이는 클란드라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는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었다. 설마 테오르가 자신을 아벨이라고 넘겨짚어서 그거 확인해 보러 온 건가?

    “이런 누추한 곳에 귀한 분들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일단 자리에들 앉으시죠.”

    카이가 자리를 권하자 클란드라도 자리에 앉았고, 그녀의 옆에 메르샤가 앉았다. 그 뒤로 월광 기사단장만이 서 있었고, 나머지 기사단원들은 밖을 지키고 있었다.

    그건 신성 교국 측도 마찬가지였다. 아나벨 성녀가 앉고, 성기사 메이어가 뒤로 가서 섰다. 제 2 성기사단도 월광 기사단원들처럼 밖으로 나가서 대기 중이었다.

    테오가 살짝 긴장한 채 직접 나서서 그들의 다과를 준비했다. 집사 후보생들조차 데리고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면 테오도 시종장으로서 오늘은 힘을 주는 날인가 보다.

    카이는 그가 준비해 준 차를 앞에 두고 모인 이들을 돌아보았다. 이들이 오늘 무슨 목적으로 찾아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운은 자신이 띄우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아나벨 성녀님께서 이곳에 오신다는 전갈을 받고 준비하기는 했습니다만 준비가 미흡한 것 같아 송구합니다.”

    아나벨 성녀는 그 말에 미소를 지은 채 답했다.

    “준비가 미흡하다니요. 저기 걸려 있는 성물만 봐도 얼마나 준비하셨는지 알겠는 걸요.”

    아나벨 성녀의 말에 카이는 벽에 걸린 성물을 바라보았다. 테오가 준비한 성물이었는데 저게 뭔가 특별한 건가 싶었다. 아나벨 성녀는 그 성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성자 안칼로님이 평생 지고 다녔다고 하시던 성물을 여기서 볼 줄은 몰랐네요.”

    성자 안칼로라면 카이도 기억에 있는 인물이었다. 엘도 왕국에서 온갖 선행을 하고 다닌 이였다. 성물을 등에 지고 다니는 것이 특이했기에 그를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평생을 선행하면서 높은 직위를 내리겠다는 신성 교국 교황청의 전언에 가장 낮은 곳에 임하겠다고 하면서 엘도 왕국의 사람들을 구하고 다녔다고 했다.

    오십여 년 전에 있었던 야만인의 침공 때 야만인의 손에 죽었다고 들었다.

    그런 성자의 성물이라면 구하기도 어려웠을 텐데 테오가 용케도 구했다 싶었다. 덕분에 아나벨 성녀에게 높은 점수를 땄다.

    아나벨 성녀의 시선이 카이를 향했다.

    “뭐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주박을 어떻게 푸셨죠?”

    카이는 아나벨 성녀가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짐작했다. 하긴 직접 풀어주려고 했지만, 풀지 못했던 주박이었다. 그걸 풀고 7성에 올랐다고 하니 궁금하기도 했나 보다.

    “운이 좋았습니다.”

    아나벨 성녀는 카이를 보면서 확실히 알았다. 얼굴도, 느낌도 모두 ‘그레이스’의 아벨과는 달랐다. 그러나 그가 풍기는 영혼의 향은 둘이 동일인임을 알려줬다.

    그걸 알아냈다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그러나 굳이 그걸 클란드라 앞에서 드러낼 필요는 없는 법.

    아나벨 성녀는 조용히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녀가 즐겨 마시는 레데이안 잎을 일곱 번 찌고 말린 차였다. 그 깊은 향을 보니 그녀가 마시는 브랜드의 찻잎이었다.

    이런 준비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어서 눈웃음을 지으며 아나벨 성녀는 앞에 앉은 클란드라를 바라보았다.

    클란드라가 왜 이곳에 왔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클란드라는 아나벨 성녀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보고는 태연히 카이를 돌아보았다.

    “독대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대륙 서부라고 해도 클로젠 제국의 황녀가 제안하는 독대를 무시할 수 있을까? 게다가 신령의 대마법사 메르샤를 데리고 왔다.

    저 엉덩이 무거운 여인을 어떻게 움직였는지 모르겠지만, 카이는 거절하기보다 궁금증을 풀고자 했다.

    “그렇게 하시죠.”

    클란드라야 개인 비공정을 타고 날아왔지만, 아나벨 성녀는 마차를 타고 이곳까지 이동했으니 아무래도 여독이 쌓였을 터였다.

    카이가 아나벨 성녀를 돌아볼 때 그녀가 카이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독대한다면 저와 먼저 하는 것이 순서 아닐까요?”

    카이는 순간 클란드라와 아나벨 성녀가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 둘의 눈에서 불꽃이 튀고 있었다.

    이 아가씨들이 남의 집에 와서 왜 이래?

    돌싱 후 대마법사-가장 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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