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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55화 (55/150)
  • 055화 지분 양도

    카이저가 뿜어낸 기세는 단순히 카이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7성에 오른 육체 강화자가 전장을 전전하며 갈고 닦았을 기세와 살의가 상대를 지정하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그 말은 엘토르 국왕과 엘디아에게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왕궁에 어떤 존재를 들인 것인지를.

    엘토르 국왕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고, 엘디아의 얼굴은 어째서인지 붉어져 있었다.

    카이는 기세까지는 봐줄 수 있었다.

    엘디아를 마음에 두고 거두려고 한다면 그가 앞으로 볼 것은 지옥일 테니. 먼저 그 지옥에 다녀온 처지이기에 어지간하면 그를 봐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가 선을 넘었다.

    기세가 살의로 넘어간 순간.

    카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이가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카이저가 허리에 찬 롱소드를 뽑았다. 카이저는 못 다루는 무기가 없었다.

    전장에서 무기를 가리면서 싸우는 것은 용병으로서 한계가 정해진 것이라 여겼으니까.

    그리고 항상 자신의 무장을 고스란히 착용하고 움직일 수 없어서 그는 검술도 상당한 수준까지 익혔다.

    롱소드가 뽑히는 것과 동시에 카이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확실히 엘폰토와는 그 수준이 다르다. 카이도 7성급 육체 강화자와 싸우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의 전신에 휘도는 마력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느끼며 카이는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오는 검을 인지했다.

    분명 놀라울 정도로 빠른 검이었다. 게다가 마력을 담고 있어 단번에 마력 보호막 따위는 찢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위력.

    새삼 깨닫는다.

    바헬이 대륙을 무인지경으로 휘젓고 다닐 수 있는 이유를.

    테오르가 자신을 상대할 때 그만큼이나 방심했던 이유를.

    마법과 육체 강화자가 가는 길이 다르다고 하나 이만큼이나 여유가 있다면 그럴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카이는 시공간에 대한 간섭만으로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여기서 압도적으로 놈을 죽여서 8성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바헬을 다시 만났을 때 훨씬 더 힘들어질 것을 알았기 때문에 딱 7성 정도의 수준으로 상대할 생각이었다.

    카이가 만든 것은 빙옥.

    그러나 완전히 카이를 감싸는 것이 아니라 검이 날아드는 방향에 나타나 두 겹으로 겹쳐지며 검을 받아낸다.

    쩌엉.

    카이저는 검이 막히자 살짝 놀랐지만, 그래도 자신의 우세를 떠올렸다. 마법의 발현 속도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빨랐지만, 7성 대마법사라면 저 정도는 가능할 터.

    하지만 주변을 인식하는 것과 반응할 수 있는 속도에 한계가 있으니 그 이점을 이용해 승부를 낼 생각이었다.

    검이 휘어지며 카이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렇게 세 번의 공격을 날리는 동안 카이저는 자신의 검이 점점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카이저의 검은 아티펙트는 아니었다. 그저 프레야 대장간의 최고등급의 무기를 쓸 뿐이었다. 잡스러운 아티펙트 보다는 오직 검의 성능에 충실한 프레야 대장간의 무기가 가장 그에게 어울렸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마법사와의 싸움을 생각해서 항마의 성분이 강한 진금을 섞은 검이었는데 어째서인지 검이 새하얗게 얼어버렸다.

    검의 크기가 세 배는 되었고, 그 냉기가 검을 따라 팔을 타고 올라오려 했다.

    마력으로 올라오는 냉기를 막아내면서 찌르기를 펼쳤다.

    검이 약간 느려졌다고는 해도 카이가 피할 정도는 아니다. 이번에도 빙옥으로 막으면 흘려내기로 흘려내며 팔이나 다리를 잘라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카이가 순간 앞으로 마주쳐왔다.

    그 움직임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그렇게 간격 안으로 들어온 카이가 손을 슬며시 올렸고, 카이저의 팔꿈치에 닿았다.

    쩌정.

    마력으로 감싸고 있으면 괜찮을 거라 여겼다. 마법사와 싸움에서 육체 강화자가 승리하려면 마력으로 몸을 보호하는 것부터 배우니까.

    그런데 카이의 마력이 어찌나 치밀한지 카이저의 팔뚝에 둥근 얼음 구체가 생겼다. 빙옥의 축소판.

    카이저가 뒤로 물러나며 전력을 다해서 마력을 일으켜 저항하려 했다. 하지만 빙옥이 뿜어내는 냉기는 그 마력까지 잡아 먹으며 빠르게 솟구쳤다.

    카이저는 이를 뿌득 갈고는 왼손을 들어서 자신의 어깨를 내리쳤다.

    서걱.

    수도에 마력을 둘러서 칼날처럼 날카롭게 벼려 스스로 어깨를 베어내야만 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어깨를 넘어서 폐나, 심장으로 냉기가 스며들어서 생명이 위태로웠으리라.

    카이저의 얼어붙은 팔이 떨어지며 산산이 조각났다. 카이저가 뒤로 물러나면서 손을 내밀 때 카이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카이저와 붙어보니 알겠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어째서 8성 대마법사나 8성 육체 강화자들이 인간의 한계라 불리는지 새삼 깨달았다.

    한 시대에 한 명 나오기도 힘든 강자들.

    그중 한 자리를 차지했음을 알 수 있었다.

    7성 따위는 무슨 수를 써도 자신의 상대가 아님을.

    바헬을 생각해서 이쯤에서 손을 거두기로 했다.

    “계속할까?”

    카이의 물음에 카이저가 고개를 내저었다. 붙어보니 알겠다. 6성일 때도 무결의 마법사라 불리던 자였다. 야만인의 침공을 홀로 막아냈다고 하더니 전투 경험이 놀라울 정도로 많은 것이 눈에 보였다.

    그러니 그렇게 무모하게 목숨을 걸고 승부수를 던질 수 있겠지.

    그런 자가 7성에 올라서 돌아왔다.

    팔을 잃은 지금은 절대로 그를 상대로 이길 수 없다. 적어도 저자를 죽이려면 자신과 수하들을 모두 끌어와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쯤에서 멈추자고 말하니 카이저에게는 구명줄이 내려온 셈이었다.

    카이는 카이저가 물러나자 엘디아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져 깨진 카이저의 팔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카이저를 바라보았다. 그가 어금니를 깨물고 버티고 있는 것을 보고 엘디아는 시선을 돌려 카이를 바라보았다.

    카이가 야만인의 침공을 홀로 막아냈다는 것은 말로만 전해 들었다. 그래서 그가 얼마나 싸움에 능한지는 알지 못했다.

    그가 싸우는 것을 처음 본 것은 바헬과 싸울 때였으니까.

    너무도 힘없이 패하는 그 모습을 보고 소문은 소문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랬던 그가 봉인을 풀었다고 돌아와서 국왕을 알현할 때만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나벨 성녀가 바헬이 직접 풀어주지 않는다면 풀 수 없을 거라고 하던 봉인을 푼 것이 신기하기는 했지만, 7성에 올랐는 줄도 몰랐다.

    그저 봉인을 풀었으니 유작을 풀 수 없게 됐다고만 여겼다.

    그런데 대뜸 자신에게 지금까지 벌어서 악착같이 모았던 엘더의 돈의 절반에 달하는 돈을 내놓으라고 했다.

    그 돈은 이제 단순한 돈이 아니었다.

    카이저와 함께하면서 대륙 서부를 집어삼킬 군자금이었다. 그런데 그 돈 중 절반을 내놓으라고 하기에 카이저에게 맡겼더니 그가 팔을 하나 잃었다.

    둘이 싸우는 장면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카이저가 롱소드를 휘두르는가 싶다가 뒤로 훌쩍 물러났고, 스스로 팔을 자르는 모습을 보았으니까.

    그러나 카이와 카이저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카이저가 카이를 절대로 이길 수 없음을.

    엘디아는 주먹을 꼭 쥔 채 답했다.

    “그만한 돈을 일시불로 내줄 수는 없어.”

    카이는 가만히 그녀의 말을 들어 주었다. 어차피 자신도 그 돈을 한 번에 받아갈 마음으로 얘기를 꺼낸 것은 아니었다.

    “사실 당신의 유작을 내걸고 대대적으로 아티펙트를 판매할 생각이었어. 그렇게만 하면 큰돈을 만들 수 있으니까.”

    카이가 가만히 바라보는 중에 그녀가 빠르게 눈을 굴렸다.

    “차라리 잠깐 죽은 척하는 건 어때? 그러면 말한 돈에 이번에 벌어들이는 돈에서도 배당금을 줄게.”

    “내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나를 알아본 이들이 몇이나 되는지 알고 하는 말인가?”

    “그래. 당신이 오는 동안 본 이들이 있겠지. 그들의 입을 막는 것은 어렵지 않아.”

    카이는 이 여자의 머릿속이 심히 궁금했다. 자신의 유작을 공개하는 순간 엘더가 끝난다는 것은 알까?

    그리고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그 평판은 어쩔 셈인가?

    설마 지금부터 죽은척하고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라는 건가?

    대륙 전체를 상대로 사기를 칠 테니 도와달라는 이야기다. 돈은 넉넉히 챙겨주겠다고 하면서.

    카이저마저 포션으로 잘린 팔을 치료하면서 당황스럽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그녀는 그런 여인이다.

    어째서인지 지금은 엘더보다 더 큰 뭔가를 노리고 있는 것 같았다. 엘더마저 포기할 생각까지 한 채로 사기를 칠 생각인 것을 보면.

    자신이 만들어준 유작이 7성급 대마법사 정도 되어야 그것이 잘못 됐음을 알아볼 수 있게 했음을 모르기에 이런 기획을 했겠지.

    들어보니 대량 생산을 했나 본데 그렇다면 그녀가 만든 디자인도 아니라는 얘기다.

    “나는 내 이름을 버릴 생각도, 죽은 척해줄 생각도 없다.”

    “천문학적인 돈을 벌 기회인데도?”

    “당연하지. 나는 지금까지 내 명성을 깎아 먹을 짓은 하지 않고 살아왔으니까.”

    “그깟 이름이 뭐라고···.”

    그저 태어나기를 공주로 태어나 떠받들어져 살아온 그녀는 스스로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

    엘더를 만들면서 그 디자이너로 자신의 이름값이 오른 줄 알았다가 ‘플레이트’에서 현실을 직시해서 그런가?

    “그만한 돈을 줄 수 없다면 지분으로 내놔도 좋아.”

    카이의 말을 들은 엘디아가 인상을 굳혔다.

    “엘더는 내 거야.”

    카이가 코웃음을 치면서 내려다보자 엘디아가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그레이스’의 등장으로 떨어지고 있을 엘더의 가치를 1천억 프랑으로 잡아주지. 235억 프랑 대신 지분 21%를 내놓는다면 군말 없이 떠나줄 마음도 있어.”

    “지금 만들어 놓은 아티펙트들을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었는 줄 알아?”

    “그래봐야 25억 프랑이상 들지는 않았겠지.”

    당연히 그만큼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엘더를 빼앗긴다는 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

    “아니면 순순히 배당금을 내놓고,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아티펙트를 대량으로 풀면서 번 돈에서도 배당금을 내놓아야 되겠지. 시간을 끌면 이자는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날 거야.”

    엘디아는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은 엘더보다 군자금이 더 필요한 때였다. 자신의 모든 것이라 여겼던 엘더였지만, ‘그레이스’의 등장 이후로 가치는 하염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레이스’가 고작 세 개의 물건을 팔고 벌어간 돈이 엘더가 지금까지 번 돈을 아득히 넘었으니까. 엘더의 수익을 생각하면 수십 년을 벌어야 할 돈이었다.

    “지분을 넘기면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물건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그건 마음대로 해. 엘더의 이름으로는 팔지 못하게 되겠지만.”

    엘디아는 그 말에 고민하며 엘토르 국왕을 돌아보았다. 엘토르 국왕은 카이와 엘디아의 사이가 자신이 생각한 것과 판이한 것을 보았다.

    카이가 당한 바헬의 봉인은 성녀도 풀어주지 못한다고 했었기에 죽기 전에 자신의 일생을 정리하기 위해서 이혼을 해달라고 한 것이라 여겼는데 둘의 대화는 혀에 칼날을 달아 놓은 것처럼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있었다.

    엘토르 국왕은 사실 엘더에게 관심이 없었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였지만, 지금까지 번 돈만으로 충분했다.

    ‘그레이스’라는 곳이 새로이 나타나 명품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다. 그들이 대량 생산이라도 하게 된다면 엘더는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까지 벌어들인 천문학적인 돈을 아낄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왕가가 보유한 30%의 지분을 모두 주겠네. 그러면 배당금을 받지 않을 건가?”

    “물론입니다.”

    카이는 두말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만들어 두었던 아티펙트도 왕가의 재산으로 둘 생각인가?”

    “물론입니다.”

    그런 쓰레기들에게는 관심도 없다. 엘더의 이름으로 팔지도 못하니 왕가에서 새로운 판로를 열어야 할 물건이었으니까.

    카이의 확답을 들은 엘토르 국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왕가의 지분을 모두 양도하겠네.”

    엘디아는 분기를 참지 못하겠는지 눈에 눈물을 글썽였지만, 카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

    엘더보다 더 좋은 뭔가를 찾아서 자신이 생각한 것만큼 크게 상처 입은 표정은 아니었지만, 상관없었다. 더 귀한 것을 찾았다면 그것도 부숴주면 되니까.

    적어도 그녀가 생각하는 모든 것은 이뤄지지 않으리라.

    돌싱 후 대마법사-권리 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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