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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54화 (54/150)
  • 054화 배당금

    엘도 왕국의 왕도.

    오랜만이라고 느끼면서 말을 몰아가던 카이는 오랜만에 본 얼굴을 드러낸 채였다.

    8성에 오르면서 피부가 맑아지고, 전신 골격도 새로 잡혀서 이제는 어디 가도 미남이라고 보일 정도로 변했다. 그렇게 말을 몰던 카이는 왕도의 성문에서 자신을 막아선 병사들을 향해 자신의 인장을 보여주었다.

    인장을 확인한 병사들이 경례를 붙였다.

    왕도의 병사들은 야만인의 침공에 가족을 잃지 않았지만, 그래도 당시의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알기에 카이가 구국의 영웅임을 안다.

    그가 요양을 위해 성으로 돌아갔다는 것은 병사들도 알고 있었다. 그랬던 그가 홀로 돌아왔다.

    안에 알리겠다는 병사의 말에 카이는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당당히 돌아가는 길이다.

    카이가 말을 타고 왕도의 중앙 도로를 따라 걸어가는 사이에 왕궁에 연락이 취해졌는지 마중을 나오는 이들이 있었다.

    왕궁의 시종장과 근위기사단이 그를 마중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카이 백작님. 국왕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랜만이군. 안테로 시종장. 안내해주게.”

    안테로 시종장을 따라서 말을 몰아가던 카이는 왕궁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는 것을 느꼈다.

    카이는 그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말을 몰아 왕궁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걷는 왕궁이었다. 카이는 그 길을 따라 걸어가며 과거를 회상했다. 다시 돌아보니 새삼 엘디아가 자신을 얼마나 차별하고 무시했는지 깨닫는다.

    그녀가 아름답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시골에서 올라와 공주와 결혼한다는 것은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여겼으니까.

    그 미혹에서 깨어난 것이 모두 바헬의 등장과 함께 벌어진 일이다.

    그에 대해 궁금한 것은 다음에 만났을 때 들어봐야 할 일이었다. 다음에는 자신 앞에서 도망치지도 못하리라.

    카이는 복도를 지나 국왕이 기다리고 있는 대전에 들었다. 카이는 대전의 중앙에 있는 의자에 앉아있는 엘토르 국왕은 반갑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의 옆에 앉아있는 엘디아 공주는 언제나처럼 오연하게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귀족적인 도도함과 아름다움에 눈이 멀었었으나 지금 다시 보니 그저 오만할 따름인 여인이었다. 충분히 바닥을 봤다고 여겼지만, 아직도 확신은 들지 않는 여인.

    그녀는 카이의 등장에 얼굴에 노기가 서려 있었다. 하긴 이번에 카이는 약에 취한 듯 변장도 하지 않았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 왔으니 그렇게 볼만도 했다.

    엘디아 공주 옆에서 환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엘티온을 보니 가슴 한구석이 아파 왔다. 불쌍한 녀석.

    카이는 시선을 돌려 엘디아의 옆에 앉아있는 사내를 보았다.

    용병왕 카이저.

    7성 육체 강화자로 용병으로서 닳고 닳은 그는 전장의 지배자로 불린다.

    분명 대단한 일이나 동급 이상의 강자가 있는 곳은 전장으로 삼지 않으니 과연 그것이 대단하다고 할 일인가 싶기도 했다.

    카이는 손바닥을 뒤집어 명치 어림에 대고 천천히 한쪽 무릎을 굽혔다.

    “전하를 뵈옵니다.”

    “일어나게. 카이 백작.”

    카이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엘토르 국왕은 직접 계단을 내려와 그의 손을 잡았다.

    “몸은 어떤가?”

    “간신히 봉인을 풀었습니다.”

    “그런가? 보기 좋군.”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엘토르 국왕은 카이의 손을 잡고 자신의 옆자리로 안내해주었다. 카이를 먼저 자리에 앉힌 엘토르 국왕이 자신의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그럼 이제 다시 궁으로 돌아오는 건가?”

    카이는 그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저는 제 영지에 남겠습니다. 몸이 회복되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제 건강을 염려하여 조사단을 보내셨다는 말을 듣고 직접 찾아온 것입니다.”

    엘토르 국왕이 엘디아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엘토르 국왕의 시선에 담담히 답했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어서 걱정돼서 사람을 보냈었어요. 그리고 결계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한다는 말을 듣고 왕명을 가진 조사단을 파견한 거고요.”

    유작을 발표하려면 카이가 확실히 죽었어야만 가능했다. 그런데 그의 죽음을 확인할 수 없으니 왕명을 든 조사단을 보냈던 것.

    엘토르 국왕은 카이를 돌아보며 답했다.

    “자네가 직접 왔으니 왕명은 회수하겠네. 그보다 왜 왕궁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건가?”

    “엘디아 공주가 불편할 텐데 제가 궁정 마법사의 자리를 차지해서야 되겠습니까?”

    엘토르 국왕은 다시 엘디아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인상을 굳힌 채 답했다.

    “당신이 궁정 마법사로 남는 것과 제가 불편할 것에 상관이 있을까요? 마주칠 일도 없을 텐데?”

    그 말에 카이는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답했다.

    “그러시다면 다행이군요. 그러나 저는 제 영지에서 대수림을 막는 방패가 되겠습니다.”

    야만인의 침공에 왕궁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 뒤로 엘더로 막대한 부를 쌓았음에도 카이의 영지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을 일절하지 않았으니 카이가 자기 영지를 지키겠다고 하는 데 할 말이 없었다.

    “알겠네. 자네의 뜻이 그렇다면 그곳에서 여생을 살아도 되네.”

    “감사합니다. 전하.”

    엘토르 국왕은 미소를 지은 채 물었다.

    “그럼 얼마나 머물다 갈 건가?”

    “오래 머물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보다 잠시 엘더의 주주총회를 열기를 청해도 되겠습니까?”

    “주주총회?”

    “예.”

    카이의 시선이 엘디아를 향했다. 그녀의 미간이 찌푸려질 때 카이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엘디아 공주님.”

    “···좋아요.”

    카이의 시선이 그의 옆에 앉아있는 카이저를 향했다.

    “그렇다면 자리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카이저가 그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엘더는 자신도 탐을 내고 있는데 다 죽어간다던 놈이 말쑥한 모습으로 돌아와 수작질을 하는 것을 그냥 지켜보고 있을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왕궁. 게다가 어째서인지 그의 감이 손을 쓰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상대가 7성 대마법사라는 것은 어렴풋이 알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감이 이렇게 강력하게 경고한 적은 없었다. 같은 7성급이라고 해도 붙어보기 전에는 모르는데 자신을 지금까지 수많은 전장에서 살려줬던 감이 경고하니 자리에서 일어나고자 했다.

    그런 카이저의 손을 엘디아가 살며시 잡았다.

    “공주?”

    “이곳에 있으세요. 제 지분 중 10%의 의사 결정권을 드릴 테니까요.”

    카이저가 카이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신다는군.”

    카이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카이는 근위기사단장 프레드에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

    “엘티온을 데리고 잠시 자리를 비켜주시오.”

    “전하를 지켜야 합니다.”

    카이가 빤히 바라보자 엘토르 국왕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리를 옮기세. 회의에 적당한 밀실이 있으니. 밀실의 입구를 프레드 경이 지켜주면 되지 않겠나?”

    프레드는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엘토르 국왕에게 불만이 쌓였지만, 표현할 수는 없었다.

    엘토르 국왕이 저리 말하는 것은 주주들만의 비밀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으니 그냥 밀실의 밖을 지키기로 했다. 어차피 그 안에는 봉인을 푼 카이나 카이저가 알아서 지킬 테니.

    엘토르 국왕을 따라 이동한 그들은 대전의 뒤편으로 계단을 내려가서 나온 작은 방에 들어갔다. 마법등을 설치한 곳으로 사방이 막혀 있었지만, 공기의 흐름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뒤를 따라온 엘티온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카이는 안으로 들어가서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밀실의 문이 닫혔다.

    원탁에 놓인 의자에 각기 자리에 앉았는데 카이저는 엘디아의 옆으로 의자를 옮겨서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카이를 바라보았다.

    카이는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

    “제 지분에 해당하는 정당한 배당금을 받고자 이 자리에 왔습니다.”

    엘디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카이는 그 시선을 받으며 담담히 이야기를 이었다.

    “지금까지 엘더의 수익을 보수적으로 잡는다고 해도 최소 600억 프랑은 되더군요. 그리고 제가 받은 보수는 2억 프랑 정도가 됩니다.”

    카이의 말에 카이저가 옆에서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에 엘디아가 쏘아보자 카이저가 손을 휘휘 내젓고는 몸을 앞으로 숙여 원탁에 팔을 기대고 카이를 바라보았다.

    “그간 자신의 지분에 대한 배당금도 제대로 받지 않았다면 그대가 병신 짓을 한 것 아닌가?”

    카이는 카이저의 조롱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병신 짓을 했지.”

    순순히 인정하자 카이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신의 조롱에 발끈해 한다면 밀실 안에서 처리해버릴 생각이었다. 놈이 7성 대마법사로 보였지만, 자신의 간격 안인 이 안에 들어온 이상 감이 경고한다고 해도 절대로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너무 간단히 인정해 버리니 할 말이 없어졌다.

    카이는 엘디아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이제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공주님.”

    “그건···.”

    “용병왕이 말한 것처럼 제 권리를 찾고자 하는 것일 뿐이니 제게 지급해야 할 매년 30억씩 6년 치의 배당금에 6년간의 왕국 법상 이자 20%를 계산한다면 제가 받아야 할 돈이 297억8,976만 프랑이 되겠군요. 2억 프랑을 먼저 썼으니 깔끔하게 295억 프랑만 받겠습니다.”

    엘디아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그게 무슨 날강도 같은 소리야!”

    카이는 태연하게 그녀를 바라보다가 카이저를 돌아보았다.

    “내 계산이 틀렸나?”

    카이저는 카이의 셈이 틀리지 않았음을 잘 알았다. 대충 계산해 보니 그 정도 나왔는데 2억 프랑을 썼다고 8,976만 프랑을 더 받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다.

    “아니. 왕국간 이자는 복리로 불어나는 거니 사실상 계산은 틀린 것이 없군.”

    카이의 시선이 엘디아를 향했다.

    “최저 이자로 계산한 겁니다.”

    왕국간에 돈이 오갈 때는 채권으로 대체하고 최저 이자로 계산한 거지 제국이나 신성 교국 같은 곳은 이자가 30%에 달한다. 그렇게 계산하면 카이가 받아야 할 돈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엘디아는 카이저가 자신의 편을 들어줄 거라 여기고 의사 결정권까지 주면서 데리고 왔는데 오히려 카이의 편을 들어주니 갑갑한 마음이 들었다.

    엘디아가 카이저를 돌아보자 그는 씨익 웃고는 답했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10%의 의사 결정권이 있는 처지고 보니 이 말은 해야겠군. 스스로 인정했듯 병신처럼 자신의 몫을 받지 못했다가 인제 와서 그 몫을 주장하는 건 조금 웃기지 않나?”

    카이는 그 말에 엘디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당시에 나는 부마였고, 내 재산이 곧 부인의 재산이라고 여겼거든. 그런데 그녀는 그렇게 여기지 않았지. 그리고 이혼할 때 재산 분할이라도 했다면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지.”

    카이의 말에 엘디아는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하지만 지금 기댈 곳은 카이저밖에 없다고 여겼다.

    카이저는 그녀의 시선에 이번에 빚을 지워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그래서 전신의 마력을 몸에 두르며 카이를 향해 기세를 일으켰다.

    이쯤에서 적당히 타협안을 내놓으라는 의지를 표명했다.

    “10% 의사 결정권을 가진 나는 자네 의견에 반대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이 거리에서라면 자신이 우세하다는 생각에 감이 울리는 경종을 무시한 채 말을 건넸을 때 카이가 천천히 카이저에게 고개를 돌려 시선을 고정했다.

    대륙 공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지분에 대해 올바른 행사를 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러니 지분이 적은 자가 자신의 무력을 바탕으로 강짜를 부릴 수도 있는 법이었다. 주식회사에 대한 지분을 마탑 연합에서 공증해주지만, 그 배당금과 관련된 모든 것까지 나서지는 않는다.

    마탑 연합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인간들의 도움을 받으면 그만큼 많은 것을 빼앗긴다.

    그래서 그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최후의 최후에 벌이는 일.

    게다가 마탑 연합이 두렵지 않은 자들은 고작 저만큼의 지분을 가지고 강짜를 부리기도 한다.

    “진심인가? 공주에게 마음이 있는 것처럼 보여서 이 자리에 참석하게 해주었지만, 목숨까지 걸 정도인가?”

    카이저는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이 정도 일에 목숨을 건다고?”

    카이저가 몸을 일으켜서 카이를 내려다보며 기세를 더욱 일으켰다. 그는 지금 심각하게 갈등했다.

    어째서인지 아직도 감은 도망치라고 하고 있었고, 이 자리에서 동급의 마법사를 상대하지 못할 거라 주장하는 자신의 감에 대해 처음으로 믿음을 줄 수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 이 왕국을 집어삼키는 데 있어서 공포를 새겨주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일 것 같았다.

    단순히 엘더가 아니라 왕국 자체를 손에 넣기 위한 밑 작업으로 이만한 일이 없다고 여겼다.

    기세가 살의로 변하는 순간.

    “그래. 법보다 주먹이 가깝지.”

    카이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싱 후 대마법사-지분 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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