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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53화 (53/150)
  • 053화 왕궁으로

    테오르는 욱신거리는 턱의 통증에 손을 올려서 만져 보았다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느끼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떴다. 그의 눈에 옆에 앉아서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는 클란드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멍하니 그녀를 올려다보던 테오르가 몸을 일으켜 그녀 옆의 의자에 앉았다. 클란드라가 말없이 그의 찻잔에 차를 따라줬다.

    테오르는 차를 마시면서 자기도 모르게 턱을 매만졌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기억을 곰곰이 되짚어 보던 테오르의 인상이 와락 일그러졌다.

    “기억이 나세요?”

    “어처구니가 없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테오르는 자신의 턱을 만지며 답했다.

    “저번에는 분명, 아니지. 이번에도 분명 7성 정도로만 보였으니 언제부터 8성에 올라있었는지는 모르겠네.”

    “정말 8성에 오른 건가요?”

    “그래. 놈은 시간에 간섭하고 공간을 절단했다. 8성에 오른 자에게만 허락된 영역이지.”

    클란드라는 찻잔을 내려놓고 테오르를 빤히 바라보았다.

    “놈이 비전 마법을 쓰지 않아서 그 진짜 실력까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8성에 들었어.”

    테오르는 턱을 만지며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자신이 방심한 탓도 있었지만, 놈은 노련했다. 무엇보다 놈은 단순히 8성에 오른 것이 아니다.

    8성에 오른 이는 시간과 공간에 간섭할 수 있게 된다. 세계가 허락해주는 것. 비전 마법과는 다르게 그런 권능을 손에 얻을 수 있다.

    그것만으로 완전히 격에 다른 힘을 손에 넣는다.

    비전 마법의 위력도 전과는 수준이 달라진다. 부릴 수 있는 마력이 늘어난 만큼 마법의 위력도 늘어나 도시를 파괴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오른다.

    그렇지만 공간 이동의 술식이 막힌 것을 보면 놈은 이미 한 번 시공간에 관련된 술식을 마주했던 놈이다. 그러니 그것이 가능했던 것.

    테오르도 실제로 8성에 오르고 나서야 시공간에 간섭할 수 있게 되었음을 알았는데 대체 어떻게 놈은 자신의 술식을 방해할 수 있었던 걸까?

    보자마자 그걸 해냈다면 그게 더 무서운 일이었다.

    테오르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놈을 만나봐야겠다.”

    “이미 떠났어요.”

    “떠나? 어딜? 여기를?”

    “예.”

    “날 이렇게 기절시켜 놓고?”

    “예.”

    “그걸 그냥 보내줬어?”

    클란드라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태사를 쓰러트린 사람을 누가 막아요?”

    테오르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가 자신을 죽이지 않은 이유는 알겠다. 아무리 8성에 오른 대마법사라고 해도 자신을 죽이게 되면 제국과 완전히 척을 지게 된다.

    제국에서 척살령을 내릴 것이고 모든 전력을 다해서 그를 죽이려 할 테니까.

    ‘그레이스’는 무너질 것이고, 끝내 그는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자신을 죽이지 않고 제압만 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8성 대마법사 수준이 되면 가히 무적이라고 할 만하지만 실제로 온전한 무적은 아니었으니까.

    미치광이 바헬처럼 하고 다닌다면야 상관이 없겠지만, 그래도 제국을 건드릴 수는 없었다.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라고 했어요. 제품을 내놓는다고 해도 이렇게 만날 일은 없을 거라고도 했죠.”

    테오르는 그 말에 머리를 감쌌다.

    “방심의 대가가 크군.”

    그저 조합 마법진이라는 것을 만든 7성 대마법사라고만 여겼다. 잡아다가 그가 가진 것을 뽑아먹으면 된다고 여겼으니까.

    7성에 오를 때만 해도 비교할 만한 수준의 마법사가 없었다. 가히 독보적인 재능을 지녔기에 황궁에 들고 나서도 수많은 마법사를 가르쳤지만, 누구도 자신의 재능에 미치지 못함을 알았다.

    그렇게 8성에 오르고 나서는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이 제 뜻대로 된다고 여겼다.

    그래서 이번 일도 간단히 생각했다. 자신이 원하면 모든 것이 될 거라고 여겼는데 놈은 자신과 같은 수준에 올라있었다. 실제로 마법을 펼쳤다면 또 모르겠지만, 8성에 오른 권능만을 가지고 싸우다가 떡이 되도록 맞고 실신했다.

    “어린놈의 자식이. 노인을 공격해?”

    마법사로서의 기량까지는 모르겠지만, 방심의 대가는 컸다.

    “꽁꽁 숨을 텐데. 찾아도 쉽게 건드리지 못하고.”

    8성 대마법사를 상대하는 일이라면 그가 어떤 비전 마법을 가졌는지 모르는 이상 상대하는 것이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나선다고 해도 승산이 확실하지 않다. 확실히 잡으려면 검성과 같이 나서야 하는데 둘 모두 황궁을 비울 수는 없다.

    이미 테오르가 수많은 마법진을 둘러놓은 황궁이니 둘이 자리를 비운다고 해도 위험할 일은 없을 듯하지만, 둘이 자리를 비웠을 때 미치광이나 투신, 또는 오늘 상대한 놈이 습격한다면 위험할 수 있었다.

    둘 중 하나는 황궁을 지켜야 하니 놈이 몸을 숨겼다면 잡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놈의 위치를 알아냈다고 해도 공간 이동이 가능해진 놈을 잡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진 상황.

    어쩌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의 기회였을 지도 모른다.

    “젠장.”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에요.”

    전혀 위로되지 않았다.

    신성 교국으로 돌아가는 비공정 안에서 목에 걸고 있던 성물을 잡고 기도하던 아나벨이 천천히 눈을 떴다.

    “왜 그러십니까?”

    성기사 메이어의 물음에 아나벨이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 마법사 말이에요.”

    “‘그레이스’의 주인 아벨 말입니까?”

    “예. 그 마법사.”

    “왜 그러시죠?”

    아나벨은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확실히 그를 처음 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낯이 익었다.

    마법사들은 마력 패턴으로 사람을 기억하고 알아보지만, 아나벨은 다르다. 그 사람의 영혼의 향을 기억하는데 그 마법사에게서 맡은 영혼의 향은 뭔가 익숙했다.

    아나벨은 성녀가 되고 나서 만난 이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녀가 기억할만한 이들이라고 해봐야 그 수가 몇백 명 수준. 그중에서 인상적인 영혼이 누가 있나 싶은데 마치 안개에 둘러싸인 것처럼 또렷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 기억에 있었다.

    “다음에는 꼭 만날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렇게 될 겁니다. 제국이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연달아 계속 ‘그레이스’의 제품을 살 수는 없을 테니까요.”

    아나벨은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1,500억 프랑을 제시하고도 경매에서 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다. 하지만 제국이라고 해도 연달아 그렇게 큰돈을 쓸 수는 없다.

    진금화를 제국에서 만들 수 있다고 마구 뿌리게 되면 오히려 제국의 발목을 잡게 된다.

    진금화 1,600개.

    시세가 1억 프랑이 1억1천만 프랑으로 계산되니 조금 더 쳐줘서 진금화를 회수하면 제국의 경제를 쥐고 흔들 수도 있다.

    아나벨은 이번에 있었던 일을 베르너 대주교에게 알리고 대응책에 대해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곰곰이 그 영혼의 향을 떠올려 보았다.

    카이는 비공정에서 짐을 내려 마차에 싣고 별장으로 이동하면서 테오르를 상대할 때를 떠올렸다.

    테오르는 시공간을 다루는 데 익숙했지만, 시공간을 방해받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하는 것 같았다. 하긴 8성을 직접 만나보지 못했다면 당연하다고 할 일이었다.

    시공간을 간섭할 수 있는 또 다른 존재와의 싸움이 익숙지 않은 상대를 제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에게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 상대의 공간계 술식을 방해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번에 확인했으니 바헬과의 싸움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변수는 자신만 있는 것이 아니다.

    퀸이라는 변수.

    어떤 마법도 통하지 않는 퀸이 그려낼 변수까지 생각하면 바헬도 더는 두렵지 않았다.

    카이는 자신의 무릎 위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별장에 도착한 카이는 일행에게 퀸을 소개하고는 돌아가기로 했다.

    재미있는 것은 나이트와 룩이 퀸을 보고는 그녀를 떠받든다는 점이었다.

    마치 여왕을 떠받들 듯 받드는 모습은 인공 영혼에 대해서 조금 더 연구해 볼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백작성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테오가 그간에 있었던 일에 대해 보고했다.

    “왕궁에서 사람이 왔었는데 마법 결계를 뚫지 못해서 그냥 돌아가서 조사단이 다시 나온다고 합니다.”

    “조사단?”

    “조사단은 왕명을 전할 거고, 아무런 반응도 없다면 뚫고 들어가려 하겠죠.”

    카이는 그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 조사단이 뭘 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카이는 궁정 마법사이자 왕국 내에서 가장 뛰어난 마법사였다. 그랬던 마법사가 죽었다면 그가 남긴 것을 얻기 위해서 왕궁에서 사람을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유산을 확인하려 할 테니까.

    그의 죽음을 확인하러 온 이들은 이런 상황을 몰랐을 테니 왕명을 받아오지 않았을 터. 이번에 오는 조사단은 왕명을 가지고 와서 그래도 결계에서 들여 보내주지 않으면 대동한 마법사들을 이용해 결계를 뚫을 생각이었다.

    지금 왕궁에 남아있는 마법사들이 못 뚫으면 그걸 뚫을 수 있는 이를 데리고 올 테지만, 그리되면 그에게도 유산을 나눠줘야 하니 아마도 왕궁의 마법사들만 이용해서 뚫으려 할 터.

    엘더에 남아있는 마법사들은 5성급 마법사가 둘이 있으니까.

    그러나 그들만으로는 절대로 뚫을 수 없다.

    웃기는 건 죽었어도 카이만 죽었을 테고, 테오가 남아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점이다. 카이가 죽었다면 테오만 남아있었으니 분명 그들을 맞이했을 것을 알면서도 왕명과 함께 조사단을 파견한다는 점이다.

    괘씸했다.

    카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영지에 도착하기 전에 조사단이 도착하겠네.”

    “아마도 그럴 겁니다.”

    “그럴 거면 바로 왕궁으로 가야겠군.”

    비공정으로 바로 왕도로 향했을 엘디아와 카이저는 이미 도착했을 터.

    더는 숨길 필요가 없다.

    자신이 죽을 줄만 알고 기다리고 있을 그녀에게 자신이 멀쩡함을 알려주러 가야겠다.

    그것만 해도 그녀가 받을 충격은 크겠지.

    7성에 올랐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속이 쓰릴까?

    카이저와 함께 온 것을 보면 아무래도 둘이 잘 해보려는 것 같으니 자신이 살아난 것을 안다고 해도 어쩌면 아쉬워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왕국에 자신이 건재함을 알리고, 왕궁을 떠날 것을 알릴 생각이었다.

    미망인과 이혼녀가 받는 대우는 다르다. 그것도 카이가 7성에 올랐다는 것과 함께 소문이 나는 것만으로 그녀의 평판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런 상황에서 카이저가 그녀를 원할지 모르겠지만, 원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지금 당장은 7성에 올라 봉인을 풀었다고만 알릴 생각이지만, 바헬을 죽이고 나면 그때는 8성임을 당당히 밝힐 테니까. 바헬을 방심시킬 생각이 아니었다면 더는 8성임을 숨길 필요도 없었으리라.

    “알겠습니다. 그런데 퀸도 데리고 가실 겁니까?”

    카이는 그 말에 퀸을 돌아보았다. 자신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녀는 아직 숨겨야 했다. 그녀 또한 바헬을 상대할 때까지는 비밀을 유지해야 했으니까.

    “왕궁에는 혼자 다녀올게. 퀸. 먼저 우리 집으로 돌아가 기다려줄 수 있지?”

    퀸은 그 말에 입을 비죽 내밀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알겠어요라고 해야지.”

    “···알겠어요.”

    카이는 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테오를 돌아보았다.

    “먼저 성으로 돌아가 있어. 왕궁에 들렀다가 갈 테니까.”

    공간 이동 마법을 이용하면 도착하는 시기는 비슷할지도 모른다. 일행과 갈라진 카이는 왕궁을 향해 말을 달렸다.

    돌싱 후 대마법사-배당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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