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싱 후 대마법사-49화 (49/150)

049화 거래

메르샤는 카이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흑마법사? 흑마법사는 왜?”

“흑마법에 잠깐 관심이 생겨서.”

“네가? 왜?”

메르샤는 카이의 경지를 안다. 7성급 화염계 대마법사. 그만한 경지에 이른 이라면 굳이 흑마법 같이 대륙의 공적이 될만한 마법을 익힐 필요가 없다.

대륙의 공적이라고 해도 급이 높은 흑마법사들은 그들끼리 서로 돕고 끌어주는 성격이 강해서 쉽사리 잡아 죽이지 못하지만, 그래도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다.

“그것까지 내가 알려줘야 하나?”

“그건 아니지. 그러고 보니 최상급 영혼석도 사갔었지?”

카이가 아무런 답도 하지 않고 바라만 보자 메르샤는 팔짱을 낀 채 가만히 그를 마주 바라보았다. 한참을 바라보던 메르샤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널 만나고 싶어 하는 흑마법사가 있기는 해.”

“날 만나고 싶어 한다고?”

“그래. 네가 최상급 영혼석들을 구매해줘서 그들도 숨통이 트였거든. 덕분에 그들도 뭔가 조직을 만들려고 하는 것 같았는데 투자를 받으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지.”

카이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흑마법에 관심을 가진 것은 가성비가 뛰어나다는 것도 있었지만, 쓸모가 있어 보여서였을 뿐이다.

그래도 자신을 만나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이야기가 수월할 것 같았다.

서로 원하는 것이 있다면 주고받으면 되니까.

“그럼 소개해 줘.”

“너라면 괜찮겠지.”

카이는 그 말에 호기심이 동했다.

“날 보고 싶어 하는 자가 누군데?”

“악몽의 대마법사.”

흑마법사 중 7성에 오른 유일한 이이며 대륙 공적 1위에 오른 자다.

“그자와도 아는 사이야?”

“그럼. 우리 VIP중 하나야.”

흑마법사들이 아무리 돈이 궁하다고 해도 7성에 오른 이는 또 다르다.

카이도 잔챙이보다는 그런 거물을 만나는 것이 좋았다.

“약속 잡아 줘. 가능하면 경매 전에.”

“어차피 경매 일정 광고하면 한 달은 걸리니까 그 전에 볼 수 있을 거야.”

카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연락 기다리지.”

“같이 밥이라도 먹지?”

“할 일 있어.”

카이가 그리 말하고 돌아서는데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메르샤가 뭔가를 생각해내고는 물었다.

“그런데 너 스태프는 어쨌어?”

카이는 그 말에 픽 웃었다.

“누구 줬어.”

“누구! 날 줘야지!”

카이는 피식 웃고는 손을 슥슥 휘두르고는 떠났다. 그 모습에 메르샤가 볼을 부풀리고는 투덜거렸다.

“7성급 아티펙트를 남 준다고? 사랑하는 여자라도 되는 건가?”

메르샤는 거울에 자신의 얼굴과 몸매를 비춰보며 말했다.

“나 정도면 어디 안 빠지는데.”

대륙의 최북단.

만년설이 쌓여 있는 이오르 산맥에는 방랑 마법사의 본단이 있다. 대륙에서 관심이 있는 이들은 이곳에 방랑 마법사의 본단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곳에 함부로 들어갈 수 있는 이들은 없었다.

방랑 마법사단의 단장이 7성 대마법사인 풍륜의 대마법사 카메룬이었으니까.

천혜의 요새에 그간 방랑 마법사단이 하나둘 보강한 덕분에 이곳은 대륙에서 잠입하기 가장 어려운 곳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소속된 이들이 모두 마법사들이니 그 위험함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 본단의 도서관에서 책을 살피던 덴다르트가 재채기를 하고는 귀를 후비적거렸다. 옆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던 프릴이 그를 흘끔 보고는 물었다.

“왜 그러세요?”

“누가 내 욕을 하나? 귀가 간지러워서.”

프릴은 혹시 자신이 속으로 욕한 걸 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카이가 엄포를 놓기는 했지만, 정말로 그를 따라 이곳까지 오는 길에 배운 것들은 정말이지 끔찍한 기억들이었다.

먹어서 되는 것과 안 되는 것부터 시작해서 전투 훈련까지 뭐 하나 욕이 안 나오는 것이 없을 지경이었다.

아무리 배움의 기회에 목말라 있었다지만, 태연하게 독초를 먹이고 응급처치 방법 및 해독 마법을 사용하는 법을 가르칠 때는 멱살을 쥐고 싶었다.

게다가 전투 훈련은 어떤가? 정말 개처럼 구르고 구르며 배웠다.

그 끔찍한 훈련이 멈춘 것은 이곳 본단에 도착한 후였다. 이곳에 도착하고 나서 프릴은 일상에 감사했다. 방랑 마법사단의 도서관에서 신령족에 대한 것들을 조사하며 이게 진짜 마법사가 하는 일이라고 여길 정도였다.

연구.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워 메이지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신령족에 대한 것은 방랑 마법사 중 대수림에 호기심을 가지고 다녀온 이들이 연구한 일지를 통해서 조사할 수 있었다. 그곳에 들어간 이들은 모두 못 돌아왔다고 했는데 돌아온 이들의 수가 꽤 되었다.

덕분에 정보 수집에 문제는 없었다. 다만 그들의 생활상이나 그들이 모시는 신령에 대한 것들이라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덴다르트는 읽던 책을 펼친 채 밀어주며 말했다.

“그 부분 필사해.”

“예.”

프릴은 덴다르트가 보여주는 곳에 나온 신령족이 모시는 신령들에 대해 적힌 부분을 필사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모시는 신령은 늑대, 여우, 곰, 매, 뱀등 동물에 관련된 신령이 있었고, 그 가장 상위에는 나무가 있다고 했다. 프릴은 그걸 옮겨 적으며 문득 카이를 떠올렸다.

자신이 스스로 일어나게 해주었던 스승 카이는 뭐 하고 있을까?

그가 보고 싶어졌다.

카이는 VIP 매장을 통해서 원하는 물건들을 계속 구매해 나갔다. 원하는 물건들을 구매하는데 카이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이곳에 와서 쓴 돈만 해도 10억 프랑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카이는 사들이는 물건 중에 그 용도를 짐작하기 힘든 물건들도 끼워 넣고 있었다.

메르샤의 영업 방침을 잘 알고 있지만, 모든 것을 내보일 필요는 없었다.

카이는 공간에 간섭할 수 있게 된 이후로 자신에게 필요한 아티펙트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건 공간 확장 마법 가방이었다.

공간에 간섭하는 것부터가 일단 8성에 달한 것이지만, 실제 8성급 비전 마법을 아티펙트에 담아 활성화하는 것보다는 훨씬 적은 비용이 들었다.

다만 그 마법진을 아티펙트에 담아내는 것이 문제였는데 그 부분이 이번에 해결되었다.

조합 마법진과 결합 마법진을 이용한다면 공간 확장이 가능했던 것.

그래도 최상급 마정석이 상당히 많이 필요했다. 그래도 최상급 마정석은 7성급 아티펙트 제조할 때 들어가는 정도만 있으면 되었기에 부담이 되지 않았다.

의심도 사지 않았고.

그렇게 공간 확장 마법 가방에 들어갈 마법진을 모두 계획했을 때 메르샤가 불렀다.

그녀의 호출에 찾아간 그녀의 방에는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진갈색 슈트를 입고 외눈 안경을 낀 미남자는 카이가 방으로 들어가자 다가와서는 인사를 건넸다.

“반갑소. 악몽이라고 불리는 콜린스라고 하오.”

“아벨이오.”

간단히 서로 인사를 한 후에 메르샤가 둘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녀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둘을 돌아보았는데 카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자리 좀 비켜주지.”

메르샤가 그 말에 상처받은 표정으로 카이를 바라보았다.

“여기 내 방인데?”

카이가 말없이 돌아보자 메르샤는 입을 비죽 내밀고는 말했다.

“여기 부수면 진금화 하나로는 안 된다. 여기 있는 예술품들은 돈 주고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니까.”

“그럴 일 없어.”

카이가 간단히 말을 자르자 메르샤는 투덜거리면서도 순순히 방에서 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콜린스가 감탄했다.

“신령의 대마법사가 저리 말을 잘 듣는 모습은 처음인데?”

신령의 대마법사이자 안타르시아의 시장인 그녀는 대륙에서도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녀가 새운 안타르시아는 치외법권으로 대륙 공적인 흑마법사들도 오갈 수 있었다. 물론 여기서 지내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마음 편히 오갈 수 있는 것이 어딘가?

그런 그녀가 저리 고분고분 누군가의 말을 듣는 것은 오랜 시간 그녀와 거래해 온 콜린스에게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콜린스는 앞에 앉은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레이스’의 주인인 아벨이라는 사내.

반년도 안 되어 대륙에서 가장 유명해진 사내. 개인이 가진 돈으로는 아마 대륙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의 부자가 아닐까 싶다는 말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천문학적인 부를 손에 쥔 자였다.

하지만 단순히 돈만 많았다면 콜린스가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는 최상급 영혼석의 최대 구매자였다.

최상급 영혼석은 만들기도 어렵지만, 쓸 수 있는 이들이 흑마법사들 뿐이다 보니 쉬이 거래가 되지 않는 물건들이었다. 그런데 그걸 가리지 않고 마구 사간 인물이었다.

덕분에 큰돈을 만질 수 있었고, 오랜 염원에 한발 다가갈 수 있었다.

그래서 만나보고 싶다 했더니 메르샤가 자리를 주선해 줬다.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전조도 없이 7성급 대마법사가 나올 줄은 몰랐소.”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그만한 재능을 가진 이였다면 세상에 알려졌을 거라는 말에 카이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우리가 친분을 나눌 사이는 아닌 것 같고. 본론만 합시다.”

콜린스는 그 말에 진한 미소를 지었다.

악몽의 대마법사. 흑마법사들의 정점에 선 그에게 이리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하는 이는 또 오랜만이었다.

하긴 메르샤에게도 대하는 것을 보면 자신의 능력에 그만한 자신이 있는 것일 터. 얼핏 보이는 기파만 해도 만만치 않은 자였으니 그의 말대로 본론을 꺼내기로 했다.

“최상급 영혼석을 구매해준 것에 감사드리오. 그리고 원한다면 최상급 영혼석을 주기적으로 공급할 의향도 있소.”

최상급 영혼석 외에는 다른 흑마법에 관련된 물건은 하나도 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상급 영혼석의 소모량이 상당했다. 어지간한 흑마법사들은 줘도 소화하지 못할 정도의 영혼석을 사들이는 중이니 주기적으로 공급하겠다는 카드를 꺼낼 수 있었다.

카이는 콜린스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카이는 인공 영혼의 가치를 알아봤다. 적어도 한 분야로만 키운다면 그들은 충분히 쓸만한 전력이 될 수 있다.

어지간한 왕국에서도 들어가는 자본을 생각하면 가성비가 맞지 않아서 만들지 않겠지만, 카이는 가성비보다는 자신이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그러니 최상급 영혼석은 지속해서 공급받으면 좋았다.

“최상급 영혼석만을 매입하겠소. 물량이 얼마가 됐든 사들일 테니 안타르시아 VIP 매장에 올리기만 하시오.”

콜린스는 그 말에 표정이 밝아졌다. 최상급 영혼석은 만들기도 어렵지만 팔기도 어려운 물건인데 그 물건을 주기적으로 사줄 곳이 있다면 염원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었다.

“그렇게 해주신다니 고맙소. 흑마법에 대해서 편견이 없는 것 같아 뭐 하나 물어도 되겠소?”

카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콜린스가 물었다.

“혹시 우리에게 투자할 의향이 있으시오?”

“투자?”

“흑마법사들은 지금까지 끝없이 핍박받아왔소. 마탑에서도 우리를 인정하지 않았지. 아직 마탑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패밀리를 만들려고 하고 있소. 다만 그러자면 돈이 많이 필요해서 그렇소.”

카이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해보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안타르시아를 통해서 거래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그렇게 대놓고 투자를 하는 것은 평판에 좋지 않을 것 같소.”

콜린스는 카이의 거절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이스’는 지금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명품 브랜드인데 흑마법사들과 엮여서 좋을 것은 없었다.

최상급 영혼석을 거래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되는 일이었으니까.

“청을 들어줘서 고맙소.”

앞으로 최상급 영혼석은 만들기만 하면 사준다고 하니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었다.

“투자는 못 하겠지만, 거래라면 응할 생각이 있소.”

“최상급 영혼석 말고 거래할 것이 있소? 뭐든 말해보시오.”

흑마법의 정점에 서 있는 콜린스였기에 어떤 것이든 내줄 용의가 있었다.

카이는 그런 콜린스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제안을 했다.

“영혼석을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소.”

콜린스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7성에 이른 화염계 속성의 대마법사가 흑마법을 배우겠다는 건가?

“진심이오?”

카이는 품에서 진금화를 꺼내서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1억 프랑.

콜린스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영혼석을 만드는 것은 흑마법사들에게는 비전이라고 할 만한 것도 아니었다. 흑마법사라고 어디 가서 말하고 다닐 정도만 되어도 영혼석 정도는 만들 수 있으니까.

고작 그런 것에 1억 프랑이나 되는 돈을 내놓을 리 없었다.

그 말은 최상급 영혼석의 제조법을 원하는 것인가?

최상급 영혼석의 제조법이라고 해도 1억 프랑의 가치가 있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었다. 다만 흑마법은 일반적인 마법과 궤를 달리하고 그 재능 또한 다른바 뭐라고 설명해줘야 하나 고민할 때 그가 또 하나의 진금화를 내려놓았다.

콜린스는 두 개의 진금화를 보고는 품에서 양피지 하나를 꺼내서 내밀었다. 그리고 진금화를 챙긴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상급 영혼석 제조법이오.”

콜린스가 도망가듯 자리를 비우는 사이에 카이는 양피지를 품에 넣었다. 그저 영혼석을 만드는 법을 배우려고 했을 뿐인데 최상급 영혼석 제조법이 손에 들어왔다.

돌싱 후 대마법사-퀸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