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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48화 (48/150)

048화 흑마법

날이 밝은 후에야 카이는 마력으로 그리던 것을 멈추고 멍하니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던 카이는 몸을 일으켜 저 멀리 보이는 대수림을 보았다.

백작성에서 가장 높은 지붕 위였기에 보이는 대수림이었는데 지평선의 끝까지 초록의 물결을 그리고 있었다.

그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짐작도 못 할 정도로 넓은 곳.

신령족이라는 이들이 산다고 했다. 대수림 안에서만 살아가는 자들. 그 안에서 자기들끼리 사는 자들.

대륙에서도 그들에 관한 관심은 없었고, 그들도 대륙에 관심이 없었다. 완전히 다른 세계에 속한 자들.

하지만 저들의 추방자는 대륙에, 엘도 왕국에 큰 상처들을 남겼다. 한 번도 아니고 잊을만 하면 내쫓는 추방자들.

웃기는 놈들이다. 그만한 힘을 지닌 자들이라면 추방할 필요도 없다.

카이를 찾아왔던 자만 해도 충분히 추방자들을 때려죽일 수 있는 놈들이었으니. 그러나 그들이 가진 힘이 흥미로운 것도 사실이다.

분명 비전 마법 폭환을 맞고도 그들은 살아남았으니.

7성 육체 강화자가 맞고 살아날 정도로 호락호락한 마법이 아니었다. 바헬을 상대로 쓰려고 했던 마법이었으니까.

바헬에게 통하지 않았지만, 놈에게도 통하지 않았을 리는 없다. 뭔가 이상한 힘이 그를 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이라면 상관없다. 무엇이 그들을 돕든지 죽일 자신이 생겼다.

카이가 손을 내려다보자 그의 손바닥 위로 일곱 가지 빛깔이 뒤섞인 마력이 넘실거렸다.

칠채마력.

그 하나하나도 모두 8성에 올랐고, 이 일곱 가지 기운을 하나로 엮었을 때의 위력이라면 수몰의 대마법사나 미치광이 바헬과도 싸울 자신이 생겼다.

카이는 자신의 주먹에서 흩어졌다가 다시 뭉치는 마력을 보며 확실히 깨달았다. 이제 일곱 가지 마력은 모두 자신의 마음대로 부릴 수 있게 되었음을.

게다가 조합 마법진에 이어 결합 마법진까지 깨달았다. 작정하고 만들면 펜던트 정도의 크기에 7성까지도 때려 박을 수 있었다.

활성화도 가능하고.

다만 8성 마법을 담은 아티펙트를 만드는 것은 활성화할 자신이 없었다. 다른 8성 마법사들의 마력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카이가 만약 8성급 아티펙트를 만들고 그걸 활성화 시키려면 적어도 마정석 광산 하나는 바쳐야 되지 않을까?

“꼭 그런 건 아니었지.”

인공 영혼 폰을 이용한 지옥의 불꽃 마법 또한 어떻게 보면 8성급 아티펙트다. 그 대가로 바치는 것이 영혼이기는 한데 인공 영혼을 이용하면 1회용 아티펙트는 만들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흑마법이라···.”

지금까지는 관심도 없던 것이었지만, 조금 관심이 생겼다. 흑마법사들은 대륙의 공적이나 다름없는 이들이었다.

그들이 재료를 구하는 행위 자체가 수많은 이의 죽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잠시 고민하던 카이는 지붕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카이는 지하로 내려가 다비드와 에르케를 만났다. 그들은 ‘약속’을 완성하고도 또 다음 작품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둘의 얼굴이 새하얗다.

몇 개월 동안 제대로 빛도 못 보고 살아서 그런 것.

카이는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7성 대마법사라고 해도 절대적이지는 않다.

게다가 바닥을 보기 위해서 엘더를 무너트릴 계획까지 세웠었으니 이들이 같은 뜻을 가지고 따라왔다.

지금 당장 나가도 어디서든 부자 소리를 들을 수 있음에도 이렇게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고생하고 있는 것이겠지.

지금까지 보석 디자인을 못 했던 것에 대한 반사 작용인지 몰라도 그들은 벌써 몇 개나 되는 디자인들을 내놓고 있었다.

아직 작업에 들어가지 않고 쌓여만 가는 디자인들의 수만 해도 열 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제대로 해준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게 자신의 욕심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이는 ‘약속’에 그려진 조합 마법진을 수정하며 말했다.

“혹시 가보고 싶으신 곳 있으십니까?”

다비드는 카이가 뭔가 달라진 것 같다고 느꼈다. 갑자기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도 그렇고.

“저는 솔직히 마음껏 보석을 만질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카이는 그 말에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제대로 휴식을 못 취하고, 햇빛도 제대로 못 보고 계시니 하는 말입니다.”

몇 가지 보조 아티펙트를 만들기는 해야겠지만, 이제 카이는 원한다면 공간 이동 마법도 쓸 수 있게 되었다. 목적지를 정확하게 정해 놓는다면 훨씬 적은 비용으로도 움직일 수 있게 된 것.

아직 죽은 리퍼들의 후임이 오지 않았지만, 굳이 이곳에 지낼 필요가 없게 됐다.

게다가 인공 영혼이 훈련을 통해서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된 지금 저들을 지킬만한 인공 영혼을 만드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 이렇게 하죠.”

어차피 그 모든 것을 준비하려면 카이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니 이번에 자신이 ‘약속’을 팔러 가는 동안 휴가를 내줄 생각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예술가라고 해도 영감은 쥐어짜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잠시 쉬어주는 것이 더 좋은 아이디어를 뽑아낼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거야···.”

“신성 교국에 있는 벨트리안 호수가 풍광이 그리 좋다고 하니 근처에 별장 하나를 사서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도록 하죠. 어차피 ‘약속’을 팔러 안타르시아에 가면 한 달은 걸릴 테니 그동안 휴식을 취하시며 기다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다비드는 에르케를 돌아보았다. 어딘가 기뻐하는 손녀의 모습을 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편히 쉬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테오가 함께 갈 테니 불편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번 기회에 테오에게도 휴식을 취하게 해줄 생각이었다. 카이는 ‘약속’의 조합 마법진을 수정한 채로 손에 쥐고 활성화했다. 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반지를 활성화한 카이는 준비된 보석함에 끼워 놓으며 말했다.

“목걸이와 반지를 했으니 다음에는 목걸이와 귀걸이 세트도 좋겠군요. 이번 커플링처럼 모두 착용하고 있을 때는 또 다른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준비해 보겠습니다.”

“천천히 하세요. 출발은 사흘 후에 할 테니 그동안 여행 준비들 하시고요.”

카이는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신의 연구실로 향했다. 몇 가지 준비해야 할 것이 있었다.

우선은 자신의 경지를 숨길 수 있는 것이 필요했다. 아벨이 7성이라고 알고 있으니 괜히 경각심을 일깨울 필요는 없었다. 상대가 방심해야 조금 더 쉽게 상대할 수 있으니까.

아벨로서도 그렇지만 카이로서도 자신이 살아있음을 밝혀야 했다.

자신이 7성에 올라 이제 죽을 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엘디아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걸 보는 즐거움도 있으니 8성 대마법사도 속일 정도로 마력을 감추는 아티펙트를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걸 만드는 데는 사흘이면 족했다.

간단히 청소만 계속 유지하도록 인형들에게 시키고 모두 여행을 떠났다.

신성 교국까지 가는 길은 한가로웠다.

두 대의 마차를 이용해서 이동하고 있었는데 카이는 그 안에서 이번에 얻었던 깨달음을 갈무리했다. 무아지경으로 얻었던 것도 있었고, 수많은 깨달음이 넘치도록 생긴 터라 그것을 정리할 시간도 필요했다.

마차로만 이동하면 신성 교국까지 가는 길이 한 달이 넘게 걸린다. 그곳에서부터 다시 벨트리안 호수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보름.

하지만 가는 길조차 여행이었다. 가는 길에 들르는 도시나 마을에서는 맛있는 것을 사 먹고 야영을 한다고 해도 능숙한 시종장인 테오와 그를 돕는 시종 교육생들 덕분에 불편함이 없었다.

인형은 요리할 수 없었는데 인공 영혼은 하나씩 배우는 것이 가능해서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요리하고 있었다. 그들이 해주는 요리 덕분에 야영도 즐거웠다.

가는 길에 만난 도적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나이트와 룩에게 도살당했다. 나이트와 룩의 전투는 기사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상대의 빈틈만 보이면 쑤시는 것이 용병답다고 해야 했다.

새삼 제대로 된 스승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은 했다.

가지고 있는 장비들이 워낙 고가의 아티펙트들이라 그런지 몰라도 그들에게 도적단 정도는 식후 간식거리도 되지 않았다.

덴다르트가 저들을 얼마나 혹독하게 가르쳤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여행을 즐기며 벨트리안 호수에 도착했다. 벨트리안 호수 가까이에 있는 별장들은 대부호들이나 가질 수 있는 물건들.

카이는 그 근처를 돌면서 그들이 지내기 적당한 별장을 찾고는 테오를 통해 계약했다. 처음에는 팔지 않겠다고 했지만, 원래 가격보다 20% 더쳐준다는 말에 주인이 직접 찾아와 팔았다.

1,200만 프랑.

신성 교국에서도 최고의 휴양지로 알려진 곳답게 가격이 꽤 나갔지만, 돈은 넘치도록 있었기에 주저하지 않고 구매했다.

카이는 일단 그곳에 들어가서 주변에 마법진들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마법진에 대한 이해가 전과는 비할 수 없이 올랐기에 별장을 요새화 하는 데는 사흘이면 족했다.

그리고 카이는 지하에 공간 이동을 보조할 마법진을 준비했다. 좌표는 물론이고 카이의 마력에 반응하게 만든 곳으로 위기 시에 이곳으로 탈출할 수 있게 했다.

일종의 보험으로 만들어 둔 곳.

그래서 이곳에는 포션들도 구비했다. 이곳까지 내몰리게 됐을 때 사용하기 위한 것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는 동안 테오는 배를 하나 구해왔다. 잔잔한 호수에서 쓸 배라고 가져왔기에 카이는 몇 가지를 손봐줬다.

마정석만 갈아 끼워 주면 자동으로 노를 젓는 배로 키만 잡고 움직이면 되도록 만들어 줬다. 속도도 조절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라 호수를 구경하고, 낚시하는 데는 차고도 넘칠 정도의 배가 되었다.

그 모든 것을 마친 카이는 일행을 돌아보았다.

“테오. 이곳을 지키는 데는 문제 없겠지?”

“나이트와 룩만으로도 충분히 적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경험 많은 워 메이지인 덴다르트에게 전투라는 것이 뭔지 배운 데다가 두르고 있는 장비의 수준이 범상치 않다. 인공 영혼을 제하고 그 둘이 두르고 있는 장비만 해도 억대의 프랑이 들었다.

그만큼 최고급 장비로 맞춰놓은 덕분에 둘이 힘을 합치면 5성급 이하의 적이라면 충분히 죽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 이상 되는 자들과 엮일 일이 별로 없을 테니 믿고 맡기기로 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에게 연락하라는 말도 남겨 두었다.

별장으로 공간 이동 후에 찾아가면 별문제는 없을 테니까.

“그럼 믿고 맡긴다.”

“저도 편히 쉬고 있을 테니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시종 교육생들의 수준이 높아졌기에 테오도 충분히 쉴 수 있게 되었으니 테오도 편히 쉴 수 있으리라.

“좋아. 다녀오마.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벨트리안 호수는 대륙 서부에서는 알아주는 휴양지다 보니 안타르시아로 가는 비공정 정류장이 하나 있었다. 카이는 그곳에 올라 안타르시아로 연락했고, 비공정 하나가 날아왔다.

카이가 요청하면 상급 바람의 정령 프란퀴스를 이용한 개인 비공정을 하나 보내준다. 다른 이들과 부딪칠 일 없이 편하게 갈 수 있었기에 카이는 비공정에 올라 안타르시아로 향했다.

몇 배나 빠른 비공정으로 편안히 여행한 카이는 곧장 메르샤의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카이를 본 메르샤는 눈을 반짝이며 다가왔다.

“다음 제품이 나온 거야?”

“그래.”

“이번에는 뭐야?”

지금까지 나온 것들이 모두 파격적이었기에 메르샤는 기대했다. 이번에는 대체 어떤 방식의 아티펙트일까? 과연 이번에도 파격적일까?

모든 것이 궁금했다.

카이는 그런 그녀의 관심을 풀어줬다.

보석함을 열어주니 그걸 본 메르샤가 물었다.

“프로포즈하는 거야?”

“미쳤어?”

메르샤는 입을 비죽 내밀고는 반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것도 ‘영광’ 같은 거야?”

“아니.”

6성급 비전 마법. 그것도 공격 마법을 내재한 것이 이번에 황제의 손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런 비슷한 물건이 또 나온다면 황제의 기분이 어떨까?

앞으로 대인 공격 마법을 사용하는 반지는 만들지 않을 생각이다.

단 하나이기에 그걸 사는데 아무리 많은 돈이 들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게 할 생각이었으니까.

“이건 충전식 6성급 보호 마법과 둘이 함께 있을 때 사용 가능한 1회용 마법이 들어있어.”

“1회용?”

“그래. 어떤 마법인지는 내가 직접 보여줘야겠지만, 그 마법이 들어있다는 것은 ‘그레이스’의 이름으로 보증하도록 하지.”

메르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두 작품이 나왔지만, ‘그레이스’는 그 가치를 확실히 증명했으니까. 그가 보증한다고 하면 모두가 믿을 터였다.

못 믿겠다면 낙찰자가 써보면 될 일이니까.

“이건 이름이 뭐야?”

“‘약속’.”

메르샤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레이스’에서는 같은 제품을 내지 않는다는 것을. 그런 만큼 이건 단 하나밖에 없을 결혼 예물이 될 터였다.

큰손들의 주머니가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메르샤의 눈이 몽롱하게 변할 때 카이가 보석함의 뚜껑을 탁 닫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아는 흑마법사 있어?”

돌싱 후 대마법사-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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