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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45화 (45/150)
  • 045화 약속

    “쿨럭!”

    왈칵 쏟아지는 핏물에 바헬은 품을 뒤적여 포션을 꺼내 들었다. 전대 성녀가 만들었던 포션을 마신 바헬의 몸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회복되었다.

    파손된 장기가 회복되고, 부서진 갈비뼈와 손이 아물었다.

    “크흐흐. 믿기지가 않는군.”

    육체가 회복되었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생겼다. 모든 마력을 흩어내던 그 구체가 몸에 박힌 순간 지금까지 쌓아왔던 강대한 마력 중 일부를 흩어낸 것은 물론이고, 마력 회로가 망가졌다.

    이건 못해도 1년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부상이었다.

    그의 인생에 있어서 1년이라는 시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꼼짝도 못 할 판이었다.

    “그건 대체 뭐였지?”

    엘도 왕국에게 빚을 지우고 초대 국왕의 핏줄을 격세 유전으로 가장 강하게 이은 아이를 받기로 했던 그가 그날 자신의 앞을 막아선 카이를 본 순간 계획을 바꾼 것은 즉흥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하늘에 닿은 재능을 가진 카이를 탐냈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력 봉인을 풀어 8성에 이른다면 중히 쓸 것이었고, 만약 8성에 이르지 못하고 좌절하고 무너져 내렸다면 그것대로 쓸모가 있음을 알았다.

    엘도 왕국의 왕가의 핏줄보다 훨씬 쓸모가 많음이 있음을 알았기에 마력 봉인을 걸고 떠났었다. 그리고 1년이 되어 찾아갔던 그자는 마력 봉인은 풀었지만 7성에 오른 반쪽짜리였을 뿐이다.

    실망한 그에게 이것저것 수작을 부릴 때까지만 해도 8성의 벽을 느끼게 해주었는데 그자는 어떤 마법의 도움도 들어가지 않은 장치를 꺼냈다.

    그게 또 호기심이 동했다.

    흑마법에도 일가견이 있는 바헬이었기에 카이가 여덟 기의 인형을 통해서 만든 마법이 무엇인지 알았다. 8성급 비전 마법. 대가로 영혼을 바치니 그 또한 흑마법의 갈래라고 해도 될 마법이었는데 위력만 8성일 뿐 제대로 8성 대마법사를 해할 정도의 마법은 아니었다.

    그렇게 자신의 성급을 뛰어넘는 마법을 구현한 자가 아무런 마법이 가미되지 않은 장치를 꺼내 들었으니 호기심이 동한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날아온 주먹만 한 구체.

    날아드는 구체를 보고 단순히 물리력으로 승부를 보려는 건가 싶어 그 구체를 마력을 멈추려고 할 때 그 마력이 흩어지고, 마력 보호막이 깨졌다.

    공간 절단 조차 통하지 않았고, 그걸 손에 쥔 채로는 공간 이동조차 할 수 없었다.

    모든 마법을 잡아먹는 금속.

    자신이 방심했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입고 있는 옷부터 로브까지 아티펙트 아닌 것이 없다. 마력만 충분하다면 7성급 기사들이 뿜어내는 오러에도 베이지 않을 정도의 아티펙트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무용했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고 했던가? 마법사의 호기심이 얼마나 큰지는 마법사만 알 수 있다. 그렇기에 그런 무기를 만들어서 자신에게 쓴 것이겠지.

    “크흐흐. 미치겠군.”

    대체 무슨 수로 얻은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어떻게든 존재하는 것이었다면 역사 속에 그 실마리가 조금이라도 남아있었을 터.

    신물질의 발견이라면 더욱 궁금하다.

    지금의 신물질 발견은 마탑에서도 가끔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단 신물질이라는 것이 우연의 산물로 얻어지는 경우가 태반인데 그냥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그래도 그렇지 이번에 자신이 당한 그 구체는 미치도록 탐이 나는 것이었다.

    마법사에게 상극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탐이 나는 것.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바헬은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기나긴 삶에서 8성을 이룬 이후에 이렇게 가슴이 뛰어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

    바헬을 물리친 후에 카이는 일행 모두를 불러 모았다. 바헬이 쉽게 죽지는 않았을 거라 여겼지만, 적어도 시간은 벌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다시 준비에 들어가야 했다.

    그 전에 해결해야 할 것들을 해결할 생각이었다.

    카이의 시선이 다비드와 에르케를 향했다.

    “다음 작품은 생각해 둔 것이 있으십니까?”

    다비드가 에르케를 돌아보자 그녀가 준비해 온 디자인을 꺼내 보였다. 카이는 한 쌍의 반지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는 물었다.

    “‘약속’인 겁니까?”

    “예. 두 개가 한 쌍으로 이뤄진 반지에요. 다이아 안에 루비와 다이아 안에 사파이어, 듀얼 잼으로 만든 반지에요.”

    두 개가 하나로 이뤄진 반지. 커플링.

    결혼 예물로는 이만한 물건이 없을 터였다.

    이것도 돈이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다면 여기에 어울리는 마법은 뭘까?

    카이가 고민할 때 옆에서 구경하던 덴다르트가 입을 열었다.

    “둘이 함께하면 새로운 마법을 쓸 수 있게 만들면 되겠네.”

    카이는 그 말에 잠시 고민했다. 8성의 실마리를 잡은 지금은 조합 마법진에 대한 이해도가 훨씬 깊어졌다. 반지라는 크기 때문에 조합 마법진을 많이 넣을 수는 없지만, 잘만 이용하면 6성급 보호막에 더해 둘이 합쳤을 때 사용할 수 있는 1회용 마법까지는 때려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자면 보석 결합 부위에 들어가는 마법진부터 결합 부위 안쪽에도 마법진을 그려야 했다. 그래도 확실히 특별한 반지가 될 터였다.

    “보석은 결합하지 않은 채로 세공 가능하지?”

    에르케에게 물으니 그녀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 가능해요.”

    “그럼 일단 반지 형태부터 만들어 줘. 보석 결합부 안쪽에도 마법진을 그려야 간신히 가능할 것 같으니까.”

    ‘그레이스’의 제품은 단 하나라는 인식을 심어줄 생각이다. ‘그레이스’에서 만든 유일무이한 커플링. 결혼식에 사용될 예물로 이보다 좋은 것이 있을까?

    황제의 50세 생신 연회에 쓰일 선물만큼은 아니어도 ‘부활’ 정도의 값은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카이는 ‘그레이스’의 다음 제품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그가 직접 가야 하니 자신의 연구가 끝난 다음에나 갈 수 있을 터.

    그리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대륙의 큰손들은 ‘그레이스’에 목말라 할 터였다.

    카이는 반지에 대한 건을 해결하고는 테오를 돌아보았다.

    “귀족들의 약점 파악은 어떻게 되가는 중이야?”

    “지분을 양도할 만한 약점을 찾아낸 것은 대략 열두 명입니다.”

    왕국의 귀족 중 대귀족 열아홉 명이 각기 엘더의 지분 1%씩을 챙겼었다. 그들에게서 얻은 것이 많았기에 왕권이 크게 강화된 상황.

    엘도 왕국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는데 그들의 약점을 털어도 엘더의 지분 51%를 채울 수 없다.

    “아무래도 왕가의 지분을 가져와야 할 것 같습니다.”

    테오의 말에 카이는 잠시 고민했다. 확실히 왕가에서 가지고 있는 지분이 크다. 30%로 2대 주주였으니.

    그중에서 일정 부분을 가지고 올 수만 있다면 엘더가 가진 지적 재산권을 빼앗아 올 수 있었다.

    “그건 기회가 올 수도 있으니 조금 더 지켜보도록 하자. 카이저는 어때?”

    테오는 인상을 굳힌 채 답했다.

    “왕궁에서 나오지 않고 매일 같이 술을 퍼마시고 있다고 합니다. 특이 사항이라면 엘디아 공주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카이는 그 말에 픽 웃음을 흘렸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빤히 보였다.

    “잘 지켜보고 무슨 일이 생기면 내게 말해.”

    “알겠습니다.”

    카이의 시선이 덴다르트를 향했다.

    “스승님. 부탁드린 것 잊지 않으셨죠?”

    덴다르트가 입맛을 다시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약속한 것도 있으니까.”

    바헬이 오기 전 덴다르트와 했던 약속이었다. 바헬을 처리하고 나서 신령족에 대한 정보를 알아봐 주기로.

    “그런데 너 연구에 들어가면 내가 여기 있는 게 좋지 않겠냐?”

    카이는 그 말에 미소를 지은 채 답했다.

    “나이트와 룩도 있고, 적어도 제가 나올 때까지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방비할 생각입니다. 그러니 편히 다녀와 주세요. 신령족에 대한 조사도 시급한 일이니까요.”

    “신령족에 대한 정보는 별로 없어. 말했듯이 방대하지만 깊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아예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것이 좋겠죠.”

    “좋아. 다녀오마.”

    “그리고 가시는 길에 프릴 좀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프릴?”

    카이는 입맛을 다시고는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연구 중에는 그녀를 가르치지 못할 테니 부탁드리려고요.”

    “괜찮겠냐? 내 방식 잘 알 텐데.”

    “아무래도 저보다 잘 가르쳐주실 것 같아서요.”

    덴다르트가 고개를 돌리니 프릴은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

    “못 할 것 같으면 말해. 남아서도 할 일은 있으니.”

    카이가 말하자 프릴은 고개를 내저었다. 저 카이를 키운 덴다르트에게 배움을 받을 기회였다. 마탑에서는 아무리 애타게 바라도 얻을 수 없던 기회.

    당연히 잡을 생각이었다.

    “할게요!”

    카이는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단순히 워 메이지의 방식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덴다르트에게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니 그녀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었다.

    덴다르트와 프릴을 먼저 보내고, 만들어진 반지에 마법진을 그리고 에르케에게 넘겼다.

    일들을 모두 정리한 카이는 그들을 보내고 연구실에 들어섰다.

    이번에 얻은 실마리를 추적하는 것은 물론이고 바헬의 술식을 방해할 술식을 짤 계획이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그가 시간을 늘리는 것을 방해하고, 공간에 간섭하지 못하게 한다면 다시 한번 허를 찌를 수 있다.

    헬리움은 8성 마법으로도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으니 뭔가 다른 방식으로 제련할 방법도 찾아봐야 했다.

    8성. 역사적으로도 다섯 명밖에 없었던 대마법사의 경지가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신성 교국.

    하늘 신 시엘을 모시는 신성 교국의 교황청의 심처에는 세 명의 남녀가 모였다.

    대륙 전역에 퍼져 하늘 신 시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 대륙민 중 절반을 넘어가는 만큼 그 영향력만 따지고 본다면 클로젠 제국보다도 영향력이 큰 신성 교국의 정점에 있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인자함이 가득 묻어나는 얼굴의 현 교황 아론 라이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곧 클레바논 황제의 생신 연회가 벌어질 예정인데 누가 갔으면 좋겠소?”

    아론 라이드의 물음에 그의 좌측에 앉아있던 총대주교 베르너가 입을 열었다.

    “교황 성하가 움직이는 것은 그들의 기세를 살려주는 것이니 아무래도 성녀께서 가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베르너와 아론 라이드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 자리에 참석한 성녀 아나벨은 둘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는 게 좋겠네요. 다녀올게요.”

    베르너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움직이면 경계할 것이 빤해서.”

    아나벨은 그 말에 동의했다. 베르너는 일신의 무력이 뛰어나지 못하고 상징성도 높지 않다. 그러나 신성 교국의 지낭이라고 불리는 그는 신성 교국의 교세를 늘리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이였다.

    어쩌면 대대로 내려오는 성녀인 자신보다 그가 더 중요했다. 아마도 그가 움직인다면 제국에서 어떻게든 그를 보내주지 않으려고 할 터였다.

    핑곗거리야 만들면 그만이고 그를 억류하는 것만으로 신성 교국의 성장세는 멈출 터.

    그럴 바에는 그녀가 직접 움직이는 것이 좋았다. 그녀는 상징성이 있어서 아무리 제국이라고 해도 함부로 억류할 수 없으니까.

    아론 라이드는 그 부분이 일단락되자 베르너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들의 움직임은 어떻소?”

    베르너는 그 말에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연합하려는 움직임이 보입니다.”

    “그 전에 그들을 처리해야 하는 것 아니오?”

    “그게 쉽지가 않게 됐습니다. 위탁 판매하던 최상급 영혼석이 대거 판매되면서 그들에게 자금이 유입되었으니까요.”

    “위탁 판매라면 안타르시아 말이오?”

    베르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안타르시아가 문제였죠.”

    안타르시아는 신령의 대마법사 메르샤의 도시다. 그 도시에는 모든 것이 거래된다. 흑마법사들도 그곳과 거래할 수 있었는데 흑마법사의 물건은 흑마법사들이 아닌 이상 사지 않으니 돈이 잘 돌지 않았다.

    아무리 뛰어난 흑마법사라고 해도 대륙의 모든 왕국과 신성 교국에서 눈에 불을 켜고 수배를 내린 상황이라 경제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들 간에 거래하는 정도이니 돈이 넉넉하지 않았다.

    크게 위험부담이 없는 물건은 안타르시아에 위탁 판매를 했는데 이번에 최상급 영혼석이 대거 팔리면서 그 돈이 흑마법사들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었다.

    지금까지 음지에서 활동하던 자들이 돈이 생기니 연합을 하려는 움직임이 보였다. 흑마법사 중에도 7성급 흑마법사 악몽의 대마법사가 있는데 그를 중심으로 연합하게 된다면 신성 교국에서도 쉬이 상대할 수 없게 된다.

    “대체 최상급 영혼석을 사간 자가 누구요?”

    최상급 영혼석은 높은 가격 때문에 쉬이 사 가는 이도 없었다. 흑마법사들도 자신이 직접 만든 영혼석을 쓰지 다른 이의 영혼석을 잘 쓰지 않았는데 그런 것을 따지지 않고 사간 자 때문에 사달이 나게 생겼다.

    “‘그레이스’의 주인인 아벨이라는 자라고 합니다.”

    ‘그레이스’의 이름은 이 자리에 있는 이들 모두가 들었다. 단기간에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인 자였으니까.

    그자가 돈을 버는 것은 상관없었지만, 그 돈이 흑마법사들에게 흘러갔다면 문제가 된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제가 한 번 만나볼게요.”

    베르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이스’의 물건을 낙찰받으면 그와 대면을 할 수 있다고 하니 한 번 만나서 그의 의중을 들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신성 교국은 돈이 많다. 낙찰 못 받을 거라는 것은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돌싱 후 대마법사-황제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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