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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42화 (42/150)
  • 042화 신령족

    야만인이 어떤 놈들인지 빤히 알았기에 카이는 곧장 마력 감지를 펼쳤다. 단번에 성벽을 넘어 영지 전체로 퍼져나간 마력 감지에 잡히는 것이 있었다.

    야만인 중 사내는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감탄했다.

    “대단한데?”

    카이는 야만인 사내가 자신의 마력 감지를 인지하는 것을 보고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마력 감지로 영지를 살핀 카이는 이곳을 지켜보던 리퍼들이 죽었음을 알았다.

    그들 외에는 죽은 이들이 없었다.

    리퍼들이 지켜보도록 놔뒀었는데 그들이 죽었으니 확인하러 오게 될 터.

    귀찮은 일을 만든 자들이었다.

    카이가 마력 감지를 줄이고는 앞에 선 사내와 여인에게 시선을 주었다.

    야만인은 말보다 무기가 먼저 나오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이 자들이 하는 행색을 보니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다.

    사내가 로브를 벗어던지니 그 안에 모습이 드러났다. 탄탄한 근육질의 사내가 늑대 가죽을 둘러쓰고 있었다.

    그런데 이 자 카이가 상대했던 야만인 대전사와는 수준이 다르다. 훨씬 젊은데 그 이상의 기량이 느껴졌다.

    보통 강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카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 또한 그때의 그가 아니었으니까.

    “네가 무결의 마법사냐?”

    “그래. 내가 무결의 마법사다.”

    카이가 순순히 응하자 사내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우리 추방자 무리를 처단했다지?”

    “추방자?”

    “신령의 숲에서 쫓겨난 일족의 추방자 말이다.”

    카이는 그 말에 대수림 안쪽이 생각보다 위험한 곳임을 알 수 있었다. 고작 추방자가 6성급 육체 강화자였으니까.

    그자를 죽이려고 얼마나 고생했던가?

    그런데 그런 자가 고작 추방자였다니?

    하긴 저 앞에 선 사내라면 충분히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었다. 뿜어내는 마력만 해도 7성에 오른 자 같았으니.

    육체 강화 능력자라고 해도 7성에 오른 자는 대륙에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저만한 자가 이런 곳까지 온 것을 보면 그보다 더 대단한 자가 대수림 안에 있다는 것이 아닐까?

    어찌 되었든 잘된 일이다. 바헬을 만나기 전에 워 메이지로서의 감각을 확인하기에 저만한 상대를 만나는 것도 어려우니. 게다가 부담도 없는 자들이다.

    카이가 앞으로 나서려고 할 때 여인도 로브를 벗었다. 여우 가죽을 머리에 둘러쓰고 있던 여인은 손에 초록색 안광을 번뜩이는 해골을 하나 들고 있었는데 그녀는 사내의 앞을 막아서더니 입을 열었다.

    “잠깐. 우리는 싸우러 온 게 아니야.”

    카이는 여인과 사내를 돌아보았다. 사내는 7성급에 오른 자로 보였지만, 여인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마력이 아닌 뭔가 다른 것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사내보다 더 까다로울지도 모를 변수가 될 여인.

    둘의 합공이라면 쉽지 않아 보였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감각이 깨어난다.

    카이가 만반의 태세로 지켜보는 사이에 사내가 여인을 돌아보며 말했다.

    “세렌티. 물러나. 저 녀석은 싸울 생각이다.”

    세렌티가 그 말에 인상을 굳힌 채 사내를 돌아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타베시.”

    움찔한 타베시가 멈칫하는 사이에 세렌티는 카이를 향해 돌아섰다. 그녀는 해골을 품에 넣고는 카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신령을 모시는 신령족의 주술사 세렌티야. 숲에서 8성급 마법의 흔적을 찾아 쫓아왔어. 네가 한 일이야?”

    카이는 대수림에서 벌였던 실험이 문제가 된 건가 싶어서 그 둘을 바라보았다. 세렌티의 반응을 보니 확실히 싸울 생각은 없어 보였다.

    야만인답지 않았다.

    약탈하고 사람을 찢어 죽이며 엘도 왕국 서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그자보다 훨씬 강하면서도 대화가 통한다.

    카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고작 그런 걸 물으려고 날 찾아왔나?”

    타베시가 히죽 웃으며 팔짱을 끼고 근육을 자랑했다. 언제라도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은 모습. 카이는 그를 향해 마력 감지를 일으킨 채로 세렌티를 바라보았다.

    세렌티는 가만히 카이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신령께서 관심을 보이셨거든.”

    “신령?”

    신령족이라고 하더니 숲의 정령 같은 건가?

    “그래. 그런데 네가 썼다고 믿기는 힘든데? 확인해 봐야 하는 거 아냐?”

    카이가 타베시를 읽었듯이 그도 카이를 읽었다. 서로의 경지를 대충 가늠해 보았으니 알아보았던 것.

    카이는 타베시를 돌아보며 손을 내뻗었다.

    “궁금하면 보여줘?”

    이곳에서 지옥의 불꽃을 쓸 생각은 없었다. 가지고 온 최상급 영혼석도 다 쓴 마당이라 인공 영혼 폰을 다시 만들 수도 없으니 지금 쓴다면 아티펙트로 만든 공격을 퍼부을 생각이었다.

    위력 자체는 7성급이지만 공간을 뛰어넘기에 바헬에게 쓰려고 준비하던 마법이다. 7성급 육체 강화자가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타베시는 그 모습에 이를 씨익 드러내 보이더니 어느새 도끼 두 자루를 꺼내서 손에 들었다.

    뻐억!

    세렌티의 팔꿈치가 타베시의 복부를 파고들지 않았다면 타베시는 그대로 튀어나왔을 것 같았다.

    카이는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세렌티에게 자연히 시선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타베시보다 상관으로 보였으니까.

    세렌티는 카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확인은 끝났어. 단지 경고 하나 할게.”

    “경고?”

    “그래. 함부로 숲으로 들어오지 마.”

    대수림에 자주 들어갈 마음은 없었지만, 가지 말라고 하면 더 가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게다가 야만인치고 대화가 되는 상대들이라고 해도 저들은, 추방자라고 말하던 야만인 대전사와 같은 존재들.

    순순히 들어 줄 마음은 없었다.

    “왜?”

    세렌티는 그 물음에 미소를 지었다. 언제든 달려들 준비를 하는 타베시보다 그 미소가 어째 더 위험해 보였다. 카이의 눈썹이 꿈틀거릴 때 세렌티가 고개를 기이할 정도로 꺾었다.

    “살고 싶으면 들어오지 마.”

    어딘가 광기가 느껴지는 말투였다. 타베시와는 전혀 다른 뭔가 꺼림칙한 여인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둘러쓰고 있던 여우 가죽의 눈이 움직여 카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것들이 지금 사람 무시하는 건가?

    하긴 둘을 상대로 승산이 높진 않지만, 저런 말을 들으니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카이가 마력을 일으킬 때 도끼가 날아들었다.

    카앙!

    마력 보호막으로 도끼를 튕겨내는 사이에 타베시가 세렌티를 안고 도망치고 있었다. 이미 성벽을 넘어서 전력을 다해서 내빼는 모습에 카이는 인상을 굳혔다.

    카이는 그대로 날아올라 멀어지는 놈의 위치를 파악하고는 아티펙트를 발동했다. 7성급 비전 마법 ‘폭환’이 멀어지는 타베시와 세렌티의 지척에서 폭발했다.

    꾸왕!

    폭발의 굉음이 들렸을 때 카이는 그곳을 지켜보았다. 국소 부위에 일어난 폭발의 먼지가 사라지기도 전에 도끼가 날아들었다.

    카앙!

    카이의 마력 보호막에 도끼가 튕기는가 싶더니 타베시와 세렌티가 먼지를 뚫고는 그대로 멀어졌다. 카이는 그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진 것을 보았지만, 당장은 아티펙트를 이용해서 공간을 격하고 마법을 날릴 수 없는 상황.

    그들을 보내주기로 했다. 무엇보다 느려지기는 했지만, 카이가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는 아니었으니까.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폭환을 견뎌낸 것을 보니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공간 지정 마법을 사용하느라 마력의 소모도 컸는데 무리해서 쫓아봐야 얻을 것이 없어 보였다.

    저들을 적으로 상정하고 준비하지 않았기에 이번에는 놓쳤지만, 다음에는 그러지 않을 생각이다.

    마법사란 준비하는 자. 제대로 준비만 할 수 있다면 다시 만났을 때 이리 허망하게 놓치는 일은 없을 거다.

    카이는 타베시가 날린 두 자루 도끼를 회수한 채로 지하로 내려갔다.

    대수림. 신령의 숲이라 부르는 저 신령족. 야만인의 근간이 되는 자들인 것 같은데 그들의 전력은 상상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저 실험을 위한 장소로 택했을 뿐인데 신령이라는 것이 관심을 보이고 그들을 모시는 신령족이 움직였나 보다.

    어찌 되었든 저들에 대한 것도 준비해야 하게 생겼다.

    신령의 숲에 들어선 타베시가 바닥에 쓰러졌고 세렌티가 품에서 꺼낸 약을 먹였다.

    “어떻게 한 거지? 마법이 날아오는 걸 못 봤는데?”

    “갑자기 터졌어. 그보다 말하지 마.”

    세렌티가 낮게 주문을 외우며 손을 올리자 여우 가죽이 그녀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타베시가 손을 들어 그런 세렌티의 손목을 잡았다.

    “함부로 신령의 힘을 빌리지 마.”

    “닥쳐.”

    세렌티가 인상을 굳힌 채 주문을 외웠고, 타베시의 상처가 빠르게 아물기 시작했다. 타베시가 두르고 있던 늑대 가죽은 이미 반쯤 타서 없어졌다.

    “8성 마법치고는 위력이 약한데?”

    “너 죽을 뻔했거든?”

    타베시는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저 경고만 하고 몸을 빼내는 중이었는데 거리가 멀어져서 안심하고 있다가 당했다. 그 거리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피할 자신이 있었는데 갑자기 가슴 앞에서 폭발이 일었다.

    순간적으로 마력을 일으켜 몸을 보호했는데 오히려 그것이 독이 됐다. 그 마력이 함께 휩쓸려 폭발했다.

    만약 신령의 가죽이 알아서 보호하지 않았다면 죽을 수도 있었다. 느껴지는 것 이상의 실력을 숨기고 있는 자인가 보다.

    “8성 마법이었다면 죽었어.”

    “크흐흐. 그렇기는 하지.”

    타베시가 몸을 일으키자 세렌티의 몸을 감싸고 있던 여우 가죽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세렌티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 모습을 보고 타베시가 한숨을 내쉬었다.

    “···함부로 쓰지 말라니까.”

    “됐어. 그보다 얼른 돌아가자. 보고는 해야지.”

    “가서 복수 안 하고?”

    타베시의 눈은 오히려 더욱 위험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런 타베시의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친 세렌티가 말했다.

    “느껴지는 것 이상이야. 숲에 흔적을 남긴 8성 마법은 쓰지도 않았는데 죽을 뻔했어. 허튼소리 하지 말고 돌아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강한 마법사야.”

    타베시는 자신의 가슴에 남은 상처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대로 당하고 끝낼 마음은 없었다. 자신의 도끼도 두 자루나 두고 왔으니 모두 되찾을 생각이었다.

    일단 보고부터 하고 신령의 가죽을 다시 받아와야 했다. 만전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마법사. 하지만 그렇기에 피가 끓는다.

    보고하고 다시 돌아온다. 그때까지 기다려라. 마법사.

    테오가 돌아왔다.

    왕국 내에 있는 정보 조직 세 개를 모두 사들이고 돌아온 테오는 1억 5천만 프랑이 들었다고 했다. 급하게 사들이느라 돈이 많이 들기는 했지만, 덴다르트와 나이트, 룩이 함께해서 쉽게 정리가 됐다고 했다.

    “그럼 이제 엘도 왕국의 정보통은 손에 넣은 건가?”

    “예. 뭐든 요청하시면 됩니다.”

    카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우선은 왕궁을 주시하라고 해. 용병왕 카이저가 이유없이 왕궁에 자리를 틀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고생 많았다.”

    카이의 말에 테오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원래 집사장이 하는 일입니다. 이제야 제 몫을 다하는 것 같아 오히려 기쁜데요?”

    “그리고 엘더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귀족들의 명단을 구해 와. 그들의 약점도.”

    “그들의 명단은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약점은 곧 준비해 오겠습니다.”

    카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테오의 옆에서 라이트닝 웹 스태프를 연신 손으로 쓰다듬고 있는 덴다르트를 바라보았다.

    “써보기는 하셨습니까?”

    “아니. 이걸 쓸만한 일은 없었다. 그리고 이런 건 원래 가지고만 있고, 절대로 함부로 쓰는 게 아니야.”

    외형은 바꿔서 메르샤가 봐도 저게 라이트닝 웹 스태프인 것을 알아볼 수는 없다. 그리고 덴다르트의 말처럼 비장의 무기일수록 숨기는 것이 좋다.

    빤히 손에 들고 다니니 숨기는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그게 어떤 마법을 품고 있는지 알려지지 않았으니 허를 찌를 수 있다.

    구명줄이 될 수 있으니 함부로 쓰지 않는 것.

    카이도 그 말에는 동의했다.

    “혹시 신령족에 대해서 아십니까?”

    “신령족? 저 대수림에 사는 야만인들?”

    “알고 계셨습니까?”

    덴다르트는 어깨를 으쓱이고 가슴을 내밀었다.

    “방랑 마법사들은 대륙을 떠도는 이들. 본단에는 온갖 것들이 모여있다. 그 방대함은 저 제국의 황실 서고보다도 넓지. 깊이야 부족하지만.”

    덴다르트는 덤덤히 말을 이었다.

    “그런데 신령족은 왜?”

    “저를 찾아왔었습니다.”

    덴다르트의 인상이 굳어져서 카이의 어깨를 잡았다.

    “제 입으로 신령족이라고 했냐?”

    “예. 신령족에서 나온 남녀 한 쌍이었습니다. 남자는 7성급 육체 강화자였고, 여자는 이상한 힘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신령의 숲에서 나올 수 없다고 했는데? 복장은 어땠는데?”

    “늑대 가죽을 두른 자와 여우 가죽을 두른 여자요.”

    덴다르트의 표정이 더욱 딱딱하게 굳었다.

    “신령의 가죽을 둘렀다면 보통 놈들이 아닌데? 아무나 두르고 다닐 물건이 아니라고 했거든. 그래서 어떻게 했어?”

    카이는 오른팔에 차고 있는 완갑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번에 만든 아티펙트로 폭환 한 방 먹여줬죠.”

    덴다르트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서, 설마 죽인 건 아니지?”

    카이는 입맛을 다셨다.

    “안 죽더라고요. 다음에 만나면 확실히 죽여야죠.”

    “야, 이 제자 놈아! 뭔 적을 계속 만들어!”

    카이는 그 말에 마력으로 도끼를 잡아당겨 보여주며 말했다.

    “제가 먼저 공격당했거든요?”

    당황하던 덴다르트의 눈빛이 변하고는 카이의 어깨를 팡팡 두드려줬다.

    “아, 그랬으면 죽여버렸어야지. 다음에 만나면 확실히 죽이자. 내가 도와주마.”

    돌싱 후 대마법사-바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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