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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41화 (41/150)
  • 041화 침입자

    클로젠 황국의 그림자 중 대륙 서부 지부장을 지내고 있는 제프는 갑작스러운 황궁의 명령에 수하를 데리고 무결의 마법사의 영지로 들어섰다.

    7년 전 야만인의 침공으로 쑥대밭이 되었다고 하더니 이제는 제법 영지가 구색을 갖췄다. 세금을 낮추고 영지를 유지하는 것에 집중했다고 하는데 사실 그것만으로 쥐어짜는 다른 귀족들보다 훨씬 더 영지민이 살기 편했다.

    그때 제프가 우뚝 멈춰섰다.

    “왜 그러십니까?”

    또 다른 그림자 베가의 물음에 제프는 고개를 뒤로 돌려 대수림 쪽을 바라봤다.

    뭔가 흉악한 마력의 움직임을 느꼈다고 여겼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대수림 방향에서 이만한 마력의 움직임이 읽힐 리는 없었다.

    대수림은 금지라고 여겨지는 곳이었다. 들어간 자는 있어도 나온 자는 없는 곳. 야만인들이 아주 드물게 엘도 왕국을 침략하지만, 엘도 왕국이 세워지기 전에는 야만인들의 습격 때문에 거의 버려진 땅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엘도 왕국이 건국될 때 주변 왕국들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그런 금지인 대수림에서 느껴진 흉악한 마력의 움직임은 마치 허깨비였던 것처럼 다시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니 이상했다. 야만인이 다시 침공하려는 건가?

    그냥 지나가려고 하니 마음에 걸린다. 그렇다고 임무보다 우선할 수는 없었다. 지금도 긴가민가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일단 영지를 확인하고 대수림에 잠깐 들렀다 가자.”

    약간의 의심이라도 생긴다면 확인해야 하는 것이 그들이 하는 일이다. 괜히 그냥 넘어갔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뒷수습에 품이 더 든다.

    제프는 우선 카이 백작의 영지로 들어갔다. 마법사가 영주로 있는 성에는 쉬이 들어갈 수 없다. 소문을 들으니 성안에는 살아있는 인간이 얼마 없다고 했다.

    게다가 방랑 마법사 덴다르트까지 있다고 하니 그곳에는 들어갈 수 없다. 주변에서 염탐하고 지금까지 매수해 놓은 귀족을 만나 정보를 캐내는 것이 그들이 할 일이다.

    그렇게 제프는 베가와 함께 카이 백작의 영지를 걷다가 베가를 슬쩍 옆으로 밀어서 골목으로 들어갔다. 너무 자연스러웠는데 베가도 순순히 그를 따랐다.

    “무슨 일이십니까?”

    “리퍼다.”

    엘도 왕국에서 자신들처럼 왕가의 그림자 역을 맡은 것이 리퍼라는 자들. 수준이 그리 높지 않은 자들이라 먼저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들은 분명 카이 백작의 성을 염탐하고 있었다.

    카이 백작은 몸이 좋지 않아 요양하러 영지로 돌아갔다고 했는데 리퍼가 주위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백작성을 염탐하고 있는 것은 무슨 뜻일까?

    왕가와 무결의 마법사가 틀어졌을 가능성도 염두에 둘 수 있었다.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가는군.”

    “어쩌실 계획이십니까?”

    그냥 침입하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리퍼들이 살피고 있는 곳을 침입하는 것은 아무리 그들이라고 해도 무리가 있었다. 리퍼를 제거하고 들어간다면 모를까.

    자신들의 존재가 발각되면 안 된다는 조건이 붙은 상황이니 일단 그들이 매수한 귀족들을 움직여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일단 귀족들을 움직이도록 하자. 그 전에 대수림에 잠깐 들어갔다 나와야겠다.”

    베가가 미간을 찌푸렸다.

    “거기 들어가면 다시 나오지 못하잖아요.”

    “깊이 들어갈 것도 아니니 걱정하지 마라. 뭔가 일이 벌어진 것 같으니 확인하러 가자.”

    “알겠습니다. 그럼 전 귀족들에게 연락을 취하러 가보겠습니다악!”

    베가의 귀를 잡아당긴 제프가 말했다.

    “어차피 네가 직접 갈 것도 아닌데 무슨 헛소리야. 따라와.”

    베가는 구시렁대면서 바람의 정령을 소환했다. 비록 하급이라도 정령을 다루는 것만으로 그는 고급 인력 취급을 받았다.

    서부 총단에 엘도 왕국의 귀족들을 움직이라는 명령을 보낸 후에 베가는 제프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대수림에는 뭐가 있다는 겁니까?”

    “모르지. 하지만 그냥 넘겨서는 안 될 것 같다.”

    제프는 베가를 이끌고 리퍼들의 눈을 피해서 다시 영지를 벗어났다. 대수림에서 뭔가를 느꼈지만, 임무가 우선이었기에 카이 백작성에 먼저 와 봤다.

    리퍼들이 감시하고 있는 것만 해도 충분히 황궁에 보고를 올릴 만한 일이었다. 이제 귀족들을 움직여서 그들이 무결의 마법사를 만나서 정황 파악을 하면 될 일.

    대수림 앞에서 제프는 잠깐 고민하다가 베가를 끌고 안으로 들어섰다. 대수림이라고 해서 금지라고 알려졌지만, 외부는 그저 빽빽한 숲일 뿐이었다.

    대수림에만 자라는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 있었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특별한 이상 따위는 없었다. 제프가 베가를 돌아보니 그도 뭔가 편안해진 표정이었다.

    “별거 없네요?”

    “소문은 과장되기 마련이지.”

    제프는 그리 말하고 베가를 데리고 더 안으로 들어가며 물었다.

    “정령은 어때?”

    베가는 그 말에 잠시 눈을 감았다 뜨고는 답했다.

    “정령 소환에도 문제없을 것 같아요.”

    “좋아. 그럼 안으로 들어가자.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대수림 안쪽으로 향하는 제프의 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커다란 공터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러나 마력을 감지할 수 있는 제프의 인상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베가도 그곳에서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여기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제프가 위화감을 느끼고 카이의 백작성에 다녀오는 동안 해가 기울어졌다. 적어도 여섯 시간은 전에 이곳에서 느꼈던 것인데 그 마력의 잔향이 지금도 남아있었다.

    이게 만약 마법이었다면 최소 7성급 이상의 마법이 펼쳐졌을 것이다. 그런데 공터에는 그정도 대규모 마법이 펼쳐졌다고 보기에는 영향이 미미했다.

    마치 이만한 마력을 한점에 모아서 터트리기라도 했다는 건가?

    그 정도라면 7성급 마법이라고 해도 대인 마법으로는 최상위에 꼽힐 정도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 봐.”

    베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지의 하급 정령을 소환하려다가 인상을 굳혔다.

    “이곳에서는 소환이 안 됩니다.”

    마력의 잔향을 생각하면 이곳이 위험하다고 느낀 정령들이 소환을 거부할 수도 있었다. 베가가 제대로 된 정령사였다면 모를까 그 수준이 그리 높지 않으니 거부하는 정령을 억지로 소환할 수는 없었다.

    “그럼 주위를 살펴라. 뭔가 단서가 있을 거다.”

    제프는 베가와 함께 공터를 조사하다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곳에 남아있는 마력의 잔향이라면 숲에서 가까운 곳을 지나던 자신이 그 정도밖에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이곳에서 최소 7성급 이상의 비전 마법이 펼쳐졌다면 확인하려고 라도 들어왔을 테니까.

    제프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빽빽하게 자란 나무가 공터 주위를 감싸고 있었는데 어쩐지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숲이 살아있는 것만 같았다.

    제프는 공터를 돌아보다가 공터 중앙에 난 구멍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이 손으로 파낸 흔적까지 있었는데 바닥의 흙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뭘 파낸 거지?”

    “뭐 좀 찾으셨습니까?”

    베가가 다가오는 것을 보던 제프는 품에서 비도 세 자루를 뽑아 던지며 소리쳤다.

    “피해!”

    베가가 제프의 외침에 앞으로 엎어지듯 몸을 날렸지만, 그의 등에는 이미 도끼가 한 자루 박혀 있었다.

    카카캉!

    제프가 날린 비도 세 자루가 모조리 튕겨 나가자 그곳에는 늑대 가죽을 두르고 있는 사내가 서 있었다.

    제프는 베가의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는 곧장 연막탄을 터트리고는 몸을 빼내려 했다. 그림자 중에서 대륙 서부를 총괄하는 제프는 6성급 육체 강화자였다. 베가도 4성급이었는데 반응도 못 하고 죽은 것을 보면 상대가 만만치 않은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연막탄을 터트린 채 기척을 죽이고 빠져나가려던 제프는 어느새 자신의 발목을 휘감고 있는 나무뿌리를 발견했다. 자신이 반응조차 못한 사이에 묶여 있는 것을 보니 보통 술사가 아니다.

    후웅!

    풍압에 밀려 흩어지는 연막 사이로 양손에 도끼를 든 늑대 가죽을 둘러쓴 사내가 히죽 웃었다.

    “세렌티. 혼자서도 충분한데 뭘 도우려고 그래?”

    제프가 고개를 돌리니 여우 가죽을 둘러쓴 여인이 있었다.

    “생포해야 하니까.”

    우드드득.

    나무뿌리가 빠르게 몸을 타고 올라오며 구속하자 제프는 한숨을 내쉬고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퍼엉!

    제프의 머리가 폭발하며 사라지자 그 피를 뒤집어쓴 타베시가 입맛을 다셨다.

    “생포 당하느니 죽는다는 건가?”

    타베시가 죽은 베가의 등에 박힌 도끼를 뽑으며 중얼거렸다.

    “이번 일 재밌겠는데?”

    세렌티는 그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재밌기는 뭐가 재밌어?”

    “크흐흐. 이거 조사를 위해서 신령의 숲을 나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잖아. 그런데 오는 중에 떡하니 8성급 마법이 한 번 더 사용되고 그걸 조사하러 나온 녀석들의 실력도 만만치 않은 것을 보니 당연히 재미있지.”

    세렌티는 타베시의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8성급 마법으로 추정되는 마법이 신령들의 관심을 끌었다. 제사장의 허락 아래에 이번 일을 벌인 마법사를 확인하러 가는 임무를 맡고 나왔는데 오는 중에 또 한 번 마법이 펼쳐졌고, 그곳에 도착하니 조사를 위해 나온 자들이 눈에 띄었다.

    신령의 숲 밖으로 나가는 것이니만큼 조심 또 조심해야 하는데 타베시는 들떠 있었다. 그렇다고 뭐라고도 할 수 없는 게 타베시는 차기 전사장 후보 중 하나였다.

    이번 임무를 성공적으로 치른다면 차기 전사장이 되기 이롭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신령의 숲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에 즐거워하고 있었다.

    세렌티는 품에서 작은 해골을 꺼냈다. 손에 쏙 들어오는 초록색 안광을 빛내는 해골을 공터 중앙에 내려놓자 딱딱 소리가 나게 입을 열었다 닫기 시작했다.

    세렌티는 잠시 그걸 바라보다가 다시 품에 넣고 입을 열었다.

    “숲 밖으로 나가야 돼.”

    “좋았어.”

    세렌티는 신나하는 타베시의 팔뚝을 잡았다. 타베시가 돌아보자 세렌티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할 일은 상대를 확인하는 거야. 괜히 적을 늘려서 좋을 게 없다는 걸 잊지 마. 미치광이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니까.”

    타베시는 그 말에 히죽 웃었다.

    “걱정하지 마. 이번 임무가 중요하다는 건 나도 알아.”

    세렌티는 품에서 로브를 꺼내 두르고는 말했다.

    “좋아. 그럼 나가자.”

    타베시도 세렌티를 따라 가방에서 로브를 꺼내 둘렀다. 눌러쓴 로브 안쪽은 묘하게 어두워 살펴보기 어려웠다. 그렇게 로브를 두른 두 명의 야만인이 대수림을 벗어났다.

    또 하나의 헬리움을 만든 카이는 흡족했다. 돈은 많이 들었지만, 항마 금속이라고 할만한 헬리움을 얻을 방법을 알아냈으니까.

    자신이 8성에 오른다면 더 적은 돈을 들여서 만들 수 있겠지만, 돈만 있으면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전에는 하나뿐이라 몇 가지 실험밖에 못 했지만, 이제 두 개가 되었으니 마음껏 연구할 수 있었다.

    우선 다시 인공 영혼 폰을 만들어서 8기의 전투 인형을 만들어 놓은 카이는 헬리움을 제련할 법을 찾고자 했다.

    현재 가장 높은 수준의 열을 낼 수 있는 것은 마법 화로였는데 마법의 불꽃은 헬리움이 흩어버리니 녹일 방법을 찾아낼 수 없었고, 트리달리움 망치로 두드려도 흠집이 나지 않으니 물리적인 방법으로도 불가능했다.

    그냥 투환기의 탄환으로만 쓰기에는 너무 아까운 물건이라 연구실에서 그걸 살피던 카이는 성에 둘렀던 마법 결계를 넘어서는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테오나 덴다르트였다면 비밀 통로로 들어왔을 테고, 그곳에는 그들의 마력 패턴으로 통과할 수 있도록 만들어 뒀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 나타난 것은 분명 다른 자들이다.

    바헬인가 싶었지만, 두 명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카이가 연구실을 나왔을 때 지하 작업장에서 작업하던 다비드와 에르케, 프릴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이 성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이곳이었기에 카이는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침입자를 확인해 보고 올 테니 이곳에서 꼼짝하지 마십시오.”

    다비드와 에르케, 프릴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때 카이는 손을 들어 그들을 안심시켰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녀오겠습니다.”

    카이가 지하에서 올라오자 그의 뒤로 인공 영혼 폰이 따라붙었다. 카이는 만약을 대비해서 투환기를 품에 넣고 이번에 만든 7성급 아티펙트까지 차고 연무장으로 나갔다.

    그곳에는 로브를 걸친 남녀가 서 있었다. 카이는 그들을 보고는 의아함을 숨기지 못했다. 로브에 특수한 기능이 있는지 얼굴을 확인하기 어렵게 만들었지만, 카이는 단숨에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누군지 바로 파악할 수 있었는데 성 안에서 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이들이었다.

    “야만인?”

    돌싱 후 대마법사-신령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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