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싱 후 대마법사-38화 (38/150)

038화 카이저

마법사는 호기심에 미친 인간들이다. 그리고 카이와 덴다르트는 마법사다.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금속.

8성급 화염계 비전 마법으로 벼려낸 트리달리움. 마력을 흩어내는 새로운 금속에 대해 몇 가지 실험을 통해 알아낸 것이 있었다.

일단 지금까지 만난 어떤 금속보다도 뛰어난 강도를 자랑했다. 근력을 강화한 나이트가 내리치는 트리달리움 해머에도 오히려 해머가 깨져나갈 정도로 단단했다.

그뿐이 아니다.

모든 마력을 흩어내고 튕겨내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마력을 흩어내는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카이는 지금 빙옥을 펼친 채 서 있었다.

“진짜 던진다?”

덴다르트가 새로운 금속. 헬리움을 던졌다 받으며 건네는 말에 카이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마력을 흩어내고 튕겨내는 금속. 지옥의 불꽃으로 벼려내 헬리움이라고 이름 지은 금속이 과연 비전 마법도 뚫을 수 있을까?

열을 식힐 때도 주위의 기온이 떨어져서 그렇지 마법에 의해 직접 열이 내려가진 않았었기에 해보는 실험이었다. 덴다르트가 다리를 높이 들었다가 허리를 틀고 어깨를 돌리며 손에 들고 있던 헬리움을 던졌다.

날아오는 헬리움을 보면서 카이는 혹시나 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자신이 직접 만든 비전 마법인 빙옥이었다. 적어도 자신이 알고 있기로 최강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빙계 마법.

과연 헬리움이 이걸 뚫을 수 있을까?

“간다!”

힘찬 외침과 함께 덴다르트가 헬리움을 던졌다. 카이는 자신의 가슴 한복판을 향해 날아오는 헬리움을 보고 혹시나 했다. 그런데 빙옥의 마력 결속이 그대로 흩어지면서 별다른 저지도 없이 카이를 향해 날아왔다.

카이는 덴다르트가 던진 헬리움을 손에 받고는 가만히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덴다르트가 잰걸음으로 다가와 카이의 손에 들린 헬리움을 보며 물었다.

“제자야! 빙옥이 뚫린 거야?”

“어째 고소해 하시는 것 같습니다?”

덴다르트가 얄밉게 어깨를 으쓱이는 모습에 짧은 한숨을 내쉰 카이는 헬리움에 시선을 주었다. 7성에 오른 카이가 펼친 빙옥은 대전사와 싸울 때와는 또 달라져 있었다. 그런데 그런 빙옥이 이리도 허무하게 뚫렸다?

카이도 나름 마력 지배력에 자신이 있었는데 헬리움의 능력을 확인하고 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마법사에게 있어 천적이나 다름없는 금속의 발견이었으니까.

만약 이걸 검의 형태로 만든다면 기사들 손에 마법사들이 싸그리 죽어 나갈 무기였다. 다만 카이가 일으킨 마법의 불꽃으로도 이것을 녹일 수 없었다.

일단 마법과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도 이것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지옥의 불꽃을 다시 한번 일으켜서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지금 당장은 불가능했다.

인공 영혼 폰을 만들었던 신체는 재활용할 수 있었지만, 그 안에 들어있던 마법진은 모두 타버려서 다시 만들어야 했다. 결국 헬리움이 우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서는 인공 영혼부터 시작해서 트리달리움까지 구해와야 했다.

돈이 넉넉하니 실험이야 다시 해보겠지만, 지금 당장은 재료가 부족한 상황.

안타르시아에 또 다녀오기보다 이 우연의 산물일 수도 있는 헬리움에 대한 연구를 이어갈 생각이었다.

바헬을 죽일 수도 있을 물건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다만 마법으로는 이걸 제대로 다룰 수 없으니 물리적인 힘이 필요했다. 상대를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 쏘아낼 수만 있다면 바헬도 죽일 수 있다.

마법사라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물체를 봤을 때 자신의 보호막으로 막을 수 있을지 먼저 확인하게 된다. 구체 하나가 날아오는 것이라면 당연히 그걸 확인해 보려고 할 텐데 그리되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뚫고 들어갈 수 있다. 그건 확신이었다.

카이의 빙옥조차 뚫을 수 있는 구체가 바헬의 보호막 정도를 못 뚫을 리가 없었다.

이걸 쏘아낼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야겠다.

대수림의 공터에 한 쌍의 남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친 야성의 느낌이 물씬나는 사내는 늑대 가죽을 통째로 둘러쓰고 있었는데 그는 주위를 돌아보다가 입을 열었다.

“세렌티. 네가 이곳에 와야 한다고 해서 오기는 했는데 여기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거야?”

사내와는 달리 여우 가죽을 둘러쓴 여인이 바닥에 난 구멍을 내려다보고는 눈을 감고 작게 중얼거렸다.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중얼거리던 여인이 입을 열었다.

사내는 투덜거리면서 허리에 차고 있는 손도끼를 뽑아서 휙휙 던졌다가 받으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든 것처럼 주변의 나무가 모조리 잘려 쓰러진 채였다.

그 모습에 사내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아무리 외곽이라지만 신령의 숲 나무를 베다니 미친놈이군. 누군지 알아냈어?”

“시끄러.”

여우가죽을 두른 여인, 세렌티가 차갑게 한 마디 내뱉고는 주변의 흙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미치광이는 아니야.”

그 말에 사내가 씨익 웃었다.

“8성급 마법의 발현이 의심되어서 왔는데 미치광이가 아니다?”

“그래. 미치광이가 아냐.”

사내는 어느새 세 자루 도끼를 꺼내서 던졌다 받았다를 하며 물었다.

“요즘 미치광이 잠잠하던데? 그렇다고 수몰의 대마법사가 온 것도 아닐 거 아냐.”

“그래. 아니야.”

사내가 던졌다 받는 도끼의 수가 다섯 자루가 넘어갔다. 그 모습에 세렌티가 인상을 팍 썼다.

“타베시. 정신 사나워.”

“미안.”

차라라락.

다섯 개의 도끼가 타베시의 손으로 빨려 들어가듯 들어갔다. 그는 다시 도끼를 허리 뒤에 넣으며 물었다.

“그래서? 결과는 어때? 숲을 나가도 돼?”

“아니. 그 정도는 아니야. 그래도 이상 현상이니 조사 나온 거지. 우선 돌아가자.”

타베시는 그 말에 입맛을 다셨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가?”

세렌티가 한심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면 너도 추방되고 싶어?”

“워! 진정해. 그런 거 아니야.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세렌티는 바닥의 흙을 퍼담고는 중얼중얼 주문을 읊고는 말했다. 주머니를 꼭 닫고는 입을 열었다.

“돌아가자.”

입맛을 다시는 타베시는 순순히 세렌티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면서 아쉽다는 듯 뒤를 돌아보았다.

추문이 붙은 자의 장례식은 아무래도 성대하게 치를 수 없었다. 그가 설령 왕족이었고, 왕국 제일검이라 불리던 이였다고 해도 그의 죽음은 시녀를 겁탈하다 시종장의 손에 죽은 비참한 죽음이었기에 입단속을 시키고 친분이 있던 이들만 모여서 진행된 조용한 장례식이었다.

엘디아는 장례식장에 참여했고, 그의 뒤에는 언제나처럼 근위기사단장인 프레드가 서 있었다.

검정색 드레스에 모자까지 쓰고 얼굴을 가린 그녀의 뒤에 선 프레드 경은 장례식을 지켜보면서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왕국 제일검이라 불리던 엘폰토 공작은 그도 존경하던 인물이었다.

젊은 나이에 6성 기사가 된 엘폰토 공작은 모든 기사들의 꿈이었던 이였다.

빼어난 용모와 뛰어난 무재로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던 그였는데 그의 마지막은 처참하다는 말도 부족했다.

왕국 제일검이라 불린다고 해도 대륙 전체로 놓고 보면 그 순위는 한참 낮았던 이였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비참한 말로.

왕국 내에서야 제일검이라 불렸지만, 안타르시아는 그런 이들만 모이는 곳이었으니 자중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팔과 다리를 잃고 약에 취하지 않았다면 그런 미친 짓거리를 하지 않았을 테고 이리 허망하게 죽지도 않았을 텐데.

프레드가 그런 생각을 할 때 엘디아는 열린 관 안에 들어가 누운 엘폰토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만히 그를 내려다보던 엘디아가 관 위로 국화 한 송이를 내려놓고는 말없이 돌아섰다.

한때 자신이 사랑했던 이의 싸늘하게 식은 모습을 보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그러게 얌전히 잘 지낼 것이지 허튼 소리를 해서는.

엘디아는 돌아서 나가다가 한쪽에 있는 화려한 화환을 보았다. 국화로 만든 거대한 화환을 보고 엘디아가 돌아보니 새로이 시종장에 오른 이가 그 눈빛을 보고는 답했다.

“카이 백작님의 이름으로 온 화환입니다.”

엘디아는 문득 성녀가 예견했던 카이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떠올렸다. 그 전에 작품들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잠시 골몰하던 그녀의 곁으로 한 장년인이 다가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공주님.”

엘디아는 그를 돌아보고는 살짝 인상을 굳혔다.

“오랜만이군요. 엘제토 후작.”

이름뿐인 후작이지만, 왕족으로 엘디아에게는 육촌이었다. 작은할아버지 쪽의 자손이라 거의 만날 일이 없었다. 권력에서 멀어진 대신 상재를 발휘해 중계 무역으로 돈을 좀 만졌다고 들었다.

인척 관계로 따진다면 엘폰토 공작에게 육촌이었으니 이번 기회에 슬쩍 얼굴을 들이민 것으로 보였다.

“엘폰토 공작의 죽음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받아야 할 빚이 있는데 난감하게 됐습니다.”

그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왕가에서 이번 장례식에 참석한 이가 엘디아공주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요즘 엘디아 공주가 왕가에서 가지는 발언권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겠지.

엘제토는 후작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영지가 없다. 영지 없이 작위만 내린 것은 정계에 들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가 이렇게 운을 띄워 엘폰토 공작의 공작령을 받아가고 싶어서이리라.

영지의 일부라도 얻어낼 수 있다면 정계에 진출할 수 있을 테니.

이미 이곳에 오기 전 엘토르와 얘기를 나누고 왔기에 엘디아는 간단히 그 답을 내려줄 수 있었다.

“그 빚 모두 엘더가 갚아주죠. 공작께서 엘더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 값을 셈하면 되니까요. 그리고 영지는 직할령으로 흡수됩니다.”

왕족의 영지는 정당한 후계자가 없다면 다시 직할령으로 환수된다. 엘폰토 공작과 육촌지간이니 슬쩍 끼어들려고 했나 본데 왕가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니 굳이 그에게 영지를 내줘야 할 필요는 없었다.

작은할아버지 계파가 정계에서 완전히 밀려난 것은 할아버지 눈 밖에 나서 벌어졌던 일. 그 자식들도 귀족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려고 했지만, 엘더가 나타나면서 그들의 영향력은 거의 사라졌다.

그런데 이렇게 엘폰토 공작의 죽음에 슬쩍 엘제토 후작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중계무역하는 그도 ‘그레이스’의 이름을 들어서일 터였다.

그러나 부자는 망해도 삼 년은 간다고 했다. 중계무역으로 돈 좀 만졌다고 해봐야 엘더에 비할 바가 아닌 만큼 그들에게 빌미를 내줄 마음은 없었다.

엘제토 후작도 엘디아가 하는 말의 저의를 읽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언제 왕궁에 한 번 들르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그럼.”

엘제토 후작이 물러나는 것을 보고 엘디아는 가만히 그의 등을 바라보았다.

엘제토 후작이 중계무역을 하는 곳이 타메아 왕국이라고 했던가? 가뜩이나 타메아 왕국과의 국경이 시끌시끌한 지금 그가 엘폰토 공작의 빚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영지를 탐내는 것이 과연 우연일까?

여러모로 귀찮은 것들이었다.

이 모든 것이 엘더가 1위 자리를 빼앗기면서 벌어진 일. 새삼 ‘그레이스’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한숨을 내쉰 엘디아는 프레드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만 돌아가죠.”

장례식은 하늘 교단의 식대로 벌어진다. 불에 태워 재를 하늘로 날려 보내는 것이었는데 그 절차는 장례식이 모두 끝나는 사흘 후에나 가능한 일.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엘디아는 프레드와 함께 왕궁으로 돌아왔고, 이미 왕궁에 와 있던 손님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떡 벌어진 어깨에 흉갑을 걸치고 망토 하나 두른 채 팔의 근육을 과시하는 야성미 넘치는 사내. 엘토르가 주선하겠다고 하던 용병왕이었다.

용병왕 카이저.

제국에 의해 몰락한 왕국의 왕족이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는 자였다.

7성급 육체 강화 능력자로 돈만 있다고 고용할 수 있는 이가 아니었다. 연간 10억 프랑이 필요한데 그만한 돈으로 그를 항시 고용할 수 있다면 제국에서 그가 다른 곳과 고용하게 뒀을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제 마음 가는 대로 사는 남자.

카이저가 엘토르와 식사 중이라는 말에 한껏 멋을 부린 채 그 자리에 참석한 엘디아를 보고 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엘토르 국왕은 신경도 쓰지 않고 다가온 카이저는 그녀의 앞에 서서 그녀의 손을 잡아 손등에 입을 맞췄다.

귀족의 예법대로라면 무릎을 꿇거나 최소한 허리라도 숙여야 하는데 엘디아의 팔을 높이 들어 고개만 숙인 채 입을 맞추는 그의 눈이 봉긋한 그녀의 가슴을 향했다.

엘디아는 역시 거친 사내라고 여기며 살짝 가슴에 손을 얹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오랜만이네요.”

“하하하. 그렇소이다. 그런데 국왕께서도 말을 안 해주시더군.”

“무엇을 말인가요?”

“무결의 마법사는 어디 있소?”

탐색하듯 쏘아보는 눈빛에 엘디아는 오히려 요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몸이 편치 않아 영지에서 요양 중이랍니다.”

“하하하하. 그렇소? 하긴 마법사치고 제법 기개가 있었지만, 천재란 자고로 단명하는 법이니.”

카이저는 마치 자신이 이 자리의 주인이라는 듯 그녀의 손을 잡아끌어 자리에 앉히고는 그 옆에 떡하니 앉아서 엘토르를 돌아보았다.

“거래합시다.”

“잘 생각했네.”

카이저는 엘토르의 말에 관심도 없다는 듯 엘디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대신 내가 왕궁에 머물 곳을 마련해 주면 좋겠소이다. 아무래도 내가 왕궁에 떡하니 버티고 있어야 타메아 왕국이 끽소리 못할 것 아니겠소?”

엘토르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지만, 엘디아는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주시면 든든할 것 같아요.”

“하하하하. 역시 공주와는 말이 잘 통할 줄 알았소.”

돌싱 후 대마법사-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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