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7화 발견
클로젠 제국의 황궁에서 황제가 거하는 성을 제외하고 가장 웅장한 성이 있었다. 삼엄한 경계를 서는 곳이었지만, 그곳을 무인지경으로 걸어가는 이가 있었다.
뒷짐을 진 채 휘적휘적 걸어가는 이는 황궁의 태사인 테오르였다. 그런 그의 걸음을 처음으로 막아 선 이가 있었다.
“잠시 확인 좀 하겠습니다.”
테오르는 잠시 걸음을 멈춰서 자신의 앞을 막아선 자를 보았다. 클로젠 제국의 황태자를 지키는 황금룡 기사단의 단장인 마일드가 서 있었다.
테오르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진짜야? 날 확인하겠다고?”
“예외는 없습니다.”
테오르는 픽 웃고는 품을 뒤적이더니 명패 하나를 꺼냈다. 테오르의 명패에는 여덟 마리 용이 휘감고 있는 것이었는데 그걸 본 마일드가 품에서 꺼낸 판으로 그 명패를 비춰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되었습니다. 그런데 태사께서 약속도 없이 어쩐 일이십니까?”
“내가 약속 잡고 와야 돼?”
마일드는 테오르의 말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 인간을 상대하느니 내려치기 일만 번을 하는 것이 나을 정도다.
“지금 황태자 전하께서는 정무를 보시는 중이십니다.”
“알겠으니 비켜라.”
테오르는 명패를 보여주는 것으로 자신의 아량은 끝났다는 듯 마일드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마일드는 더는 따지지 못하고 들어가는 테오르의 등을 바라보았다.
4대째 황제를 모시는 테오르는 작위가 따로 없지만, 황궁 내에서는 태사라고 불리며 검성조차 함부로 하지 못하는 이였다. 마일드도 그저 양해를 구할 뿐 그를 막지 못했다.
테오르는 마일드를 지나쳐 황태자인 클로이트의 집무실로 들어섰다. 클로이트는 상소문을 읽다가 들어오는 테오르를 보고는 상소문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를 내와라.”
클로이트가 그리 말하고는 자리를 옮겨 집무실의 테라스로 걸음을 옮기며 자리를 권했다. 테오르는 그가 권해준 자리에 앉으며 주위를 살폈다.
“고생이 많군.”
클로이트는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제국의 황가에는 미남미녀가 많았다. 그 중에서도 클로이트는 독보적인 미모를 지녔다.
만약 황태자를 미모로 뽑았어도 그가 황태자가 됐을 정도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초대 제국의 황제는 미녀만을 안았으니 점점 미모가 빼어난 이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
테오르는 그 물음에 굳이 답하지 않았다. 시종이 차를 가지고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차가 나오자 그걸 한 모금 마시면서 기다렸다.
시종이 물러가자 테오르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클로이트는 테오르가 방음 마법을 펼치는 것을 보고는 호기심에 눈을 빛냈다.
잠시 눈을 빛내던 클로이트가 차를 마실 때 테오르가 입을 열었다.
“뭐 하나 물어보려고.”
“다른 이가 들으면 안 되는 겁니까?”
테오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엘도 왕국에 그림자 좀 심어 놓았나?”
“엘도 왕국이요? 대륙 서부라 그림자를 넉넉히 넣어놓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원하는 정보는 알아낼 수 있습니다.”
“흐음. 그럼 혹시 근래에 무결의 마법사에 대한 소식을 들은 것이 있나?”
클로이트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관심을 두는 이라서 소식은 전해 들었는데 자신의 영지로 돌아갔다는 소식만 들었습니다.”
“자신의 영지로 돌아갔다?”
“영지로 돌아간 이후에는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왜 그러시죠?”
테오르는 잠시 고민해 보았다. 자신이 만났던 아벨이라는 ‘그레이스’의 주인.
두 가지 이상의 속성을 비전 마법의 수준으로 익힌 자.
클란드라가 말리지 않았다면 그자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마음 같아서는 직접 가서 확인해 보고 싶지만, 자신이 움직이면 신성교국에서 난리가 날 터였다.
괜히 제국이 대륙 서부에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보이면 벌떼처럼 일어날 것이 뻔했다. 그러니 고민이 됐다. 안타르시아에 가는 것과 엘도 왕국을 가는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였으니까.
“무엇 때문에 자신의 영지로 돌아갔는지, 지금 뭘 하는지 알아볼 수 있을까?”
클로이트가 가만히 테오르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륙 서부 담당자에게 말해서 조사하라고 하겠습니다. 더 필요하신 것은 없으십니까?”
테오르는 역시 클로이트와 대화하기를 잘했다고 여기며 고개를 내저었다.
“없어. 그것만 처리해주면 돼.”
클로이트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번 안타르시아에서 큰돈을 쓰셨다고 들었습니다.”
“왜? 내 돈 내가 쓰는데.”
클로이트가 실눈을 뜬 채 말을 이었다.
“확실하십니까? 태사께 드린 돈 다 모았어도 조금 부족할 것 같은데요?”
“클란드라가 보탰어.”
클로이트는 더는 캐묻지 않았다. 어차피 진금화가 바로 황궁으로 돌아온 것도 아니었으니까.
“폐하의 생신 연회에는 참석하실 거죠?”
“당연하지. 그럼 나중에 보세.”
테오르가 자리에서 일어나 휘적휘적 멀어지는 것을 보고 클로이트는 차를 마저 마시면서 손짓했다. 곧 그의 그림자 속에서 남자 하나가 일어났다.
“부르셨습니까?”
“엘도 왕국의 무결의 마법사. 왜 영지로 돌아갔는지 파악하고, 지금 뭘 하는지 알아내서 보고해.”
“예.”
클로이트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테오르가 직접 가지 않고, 이렇게 부탁한 것 자체가 감사할 일이다.
만약 그가 움직였다면 신성 교국에서 얼마나 난리를 피웠을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영지를 늘리는 것에 욕심이 없어 제국은 지금 내실을 다지는 중이다.
영지를 넓히는 전쟁은 단기간에 큰돈을 벌 수도 있지만, 전쟁이라는 것 자체가 무지막지한 돈을 까먹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벌인 전쟁의 뒷수습을 위해서 아버지가 십 년이 넘게 내실을 다지고 있었지만, 주변에서는 그걸 믿지 않았다.
제국이 웅크리고 있지만, 언제든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에 바짝 긴장한 중에 테오르가 움직이면 신성 교국을 중심으로 대륙 서부가 힘을 합칠 수도 있었다.
그리고 하늘 신을 모시는 신도는 제국 내에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귀족부터 평민까지 그 신도의 수가 넘치는데 그들을 솎아낼 수도 없으니 당장은 저들이 의심할 만한 일은 피하는 것이 좋았다.
그림자들이 발각되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렇게 어수룩한 이들은 아니니 뭔가 결과를 얻어올 수 있을 터였다. 엘도 왕국에 매수한 자들도 있으니 뭔가 소득이 있기를 바라며 클로이트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상소문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았다.
인공 영혼 폰을 만들고, 그들에게 막대한 돈을 들여 8성급 대인 마법을 하나 준비한 카이는 덴다르트와 함께 잠시 영지를 벗어났다.
8성급 마법을 아무리 국소적인 부위에서 쓴다고 해도 그 마법의 여파는 리퍼에게서 숨길 수 없었기에 잠시 영지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큰 걱정을 하지 않았던 것은 이제 영지에는 나이트와 룩이 있었다.
제대로 검술을 배우지 않고 오직 워 메이지인 덴다르트와의 대련으로 만들어진 그들은 적어도 5성급 워 메이지 정도라면 합공으로 충분히 죽일 수 있을 수준까지 올라왔다.
그들의 성장에 고무된 덴다르트가 제대로 된 검술 스승을 알아보겠다고 했는데 그건 그것이고, 지금 중요한 것은 바헬을 상대할 수 있을 8성 대인 마법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영지를 벗어나 가장 사람들이 없을 곳을 찾아간 곳이 대수림이었다.
대수림에 들어간 이는 돌아온 이들이 없다고 하지만, 카이나 덴다르트 모두 대수림 안에 있을 야만인들을 두려워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게 대수림 안으로 들어간 카이는 마법으로 일대를 먼저 청소했다. 빽빽하게 자란 나무들이 베이고, 쓰러져 공터가 완성되자 그 중심에 준비한 물건을 가져다 놓았다.
진금, 진은, 진철을 섞어 만든 합금 트리달리움.
현존하는 가장 단단한 물질이고, 마법 저항력도 상당한 물건이다. 저기 세워 놓은 인간형 크기 하나에 1천만 프랑이 들 정도의 고가의 물건.
인공 영혼들의 육체 파트를 저것으로 모두 변경하는 중이었는데 오늘의 실험을 위해 준비했다.
게다가 저건 6성급 보호막도 세 겹으로 발동할 수 있는 아티펙트였다. 그래도 8성 대마법사에 비할 수는 없으나 객관적으로 마법의 위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만들었다.
이번 실험에 들어간 돈만 해도 1억 프랑을 가뿐히 넘었다. 인공 영혼도 영혼이지만, 그들이 들어있는 폰의 육체 8개만 해도 대당 1천만 프랑을 호가하고 있었으니까.
그 안에 그린 마법진의 마석들이 헐값이라 느껴질 정도였다.
덴다르트도 이번 일은 빠질 수 없다고 쫓아왔는데 제 한 몸 지킬 수 있는 그만 대동해야 했을 정도로 이번 실험은 많은 위험 요소를 안고 있었다.
8성급 대인 마법을 준비했는데 만약 이게 실패해서 중간에 그 여파가 주변을 휩쓸면 카이나 덴다르트도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허수아비처럼 세워 놓은 트리달리움 인형을 작동시켜 6성급 보호막 세 개를 모두 활성화 시킨 카이와 덴다르트는 멀찍이 물러나 공터가 내려다보이는 나무 꼭대기 위에 섰다.
“제자야. 되겠냐?”
“돼야죠.”
되기만 한다면 이건 역사에 남을 일이다. 들어가는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각국에서 미친 듯이 탐낼 조합 마법식이었으니까.
인간의 한계라고 일컬어지는 8성급 강자를 죽일 수도 있는 마법식이라면 돈이 얼마가 들든 무조건 하나 이상은 가지고자 할 터였다.
‘그레이스’의 작품조차 우습게 여기게 팔리리라.
문제는 그 전에 카이가 8성급 강자들의 표적이 될 테지만.
그러니 이건 오직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만 만들고 남을 위해 만들어 줄 마음은 없는 것이었다. 만약 카이가 8성에 오른다면 없애버려야 할 마법식이기도 했다.
그랬기에 아직 누구에게도 이 마법식을 알리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카이의 말에 덴다르트는 보호 마법을 연달아 펼쳤다. 그 모습을 보고 카이는 그에게 빙옥을 쳐줬다.
방어 마법으로도 유용한 빙옥을 몸에 두른 덴다르트가 고개를 끄덕일 때 카이는 폰에게 명령했다. 폰은 전투가 주가 아닌 이들이라 오직 속도에만 치중한 이들이었다.
바헬의 팔방을 점해야 했기에 그들의 움직임은 신속했다. 움직임만 놓고 본다면 6성급 기사들을 뛰어넘을 정도.
그렇게 이동해 팔방을 점한 폰들이 일시에 마법진을 가동시켰다.
각자 조합 마법진을 가동하는데 그것이 동시에 진행되며 여덟 개의 조합 마법진이 공진하는 순간 그 대가로 인공 영혼이 사라졌다.
그리고 마법이 발현되었다.
폰들의 중심에서 일어난 직경 2미터 정도의 새하얀 불꽃 덩어리가 트리달리움인형을 휘어 감았다. 마법이 발현되며 트리달리움 인형이 그대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극고온의 화염 마법. 그러나 그 불꽃 덩어리가 점점 줄어들더니 주먹 크기까지 줄어든 후에야 훅하고 사라졌다.
인공 영혼 여덟 개를 대가로 바친 8성급 대인 마법의 위력은 확실했다. 6성급보호막과 트리달리움을 순식간에 녹여버릴 정도의 극고온.
그 위력은 멀리서 보아도 느낄 수 있었다. 저 중심에 있었다면 카이가 빙옥을 펼친 상황이었어도 녹아내렸을 거라는 것을. 이거라면 바헬도 피하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들 정도의 마법이었다.
폰이 바헬의 팔방을 점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단한 일이었다.
카이는 인공 영혼이 사라진 폰들이 우수수 쓰러진 중앙으로 뛰어내렸다. 그곳에는 8성급 대인 마법. 그 새하얀 불꽃에 녹아내렸던 트리달리움의 잔해가 떨어져 있었는데 완전한 구체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얼마나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건지 바닥을 천천히 녹이며 아래로 빠져들어 가는 중이었다.
카이는 마력으로 그것을 들어 올리려고 하다가 인상을 굳혔다. 7성 대마법사인 카이의 마력으로도 구체를 잡을 수 없었다. 카이의 마력이 다가가면 흩어 내 버리는 구체.
카이는 그걸 보고 잠시 고민하다가 차가운 냉기 바람을 몰아쳤다. 그 냉기의 바람이 뜨겁게 달아오른 구체를 식히면서 바닥을 녹이며 내려가던 것이 멈춰졌다.
주변에 새하얀 서리가 내린 곳으로 다가간 카이가 그 중심에 있는 구체를 들어 올렸다. 새하얀 구체를 바라보던 카이의 옆으로 덴다르트가 다가와 물었다.
“그거 뭐냐?”
“저도 모르겠습니다.”
박학다식한 방랑 마법사는 물론이고 무결의 마법사라 불리며 대부분의 마법에 능통했던 카이조차 처음 보는 구체였다.
크기에 비해 상당한 무게를 자랑하는 이 구체. 카이가 마력을 일으켜 주변을 감싸보자 그 마력이 그대로 흩어졌다.
7성 대마법사의 마력 지배력을 웃도는 구체. 카이는 그걸 가만히 바라보다가 답했다.
“얻어걸렸나 봅니다.”
8성급 대인 마법. 카이가 만든 그 마법의 이름은 지옥의 불꽃이라는 이름의 마법이었는데 그 지옥의 불꽃으로 벼려낸 트리달리움은 세상에 없던 새로운 금속이 되어 카이의 손에 들어왔다.
돌싱 후 대마법사-카이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