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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36화 (36/150)
  • 036화 8성급 조합 마법식

    프레드의 품에 안겨있는데 그곳으로 들어서는 여인이 있었다. 프레드가 검을 겨누었지만, 그녀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문을 닫고는 엘디아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엘디아는 그녀를 보고는 프레드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정리 좀 부탁할게.”

    “저희 방식으로 처리해도 됩니까?”

    “나나 프레드 경이 연관되지 않게 정리해 줘.”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만 돌아가심이 어떠십니까? 저희가 호위하겠습니다.”

    엘디아는 고개를 천천히 내젓고는 말했다.

    “돌아갈 때도 프레드 경이 지켜주실 거야.”

    “공주님은 걱정하지 말게.”

    여인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그대로 부복했고, 엘디아는 프레드에게 말했다.

    “궁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쉬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쉬어도 이곳에서는 아니에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프레드가 엘디아 공주를 부축한 채 밖으로 나가자 자리에서 일어난 여인이 입을 열었다.

    “시녀 중에 시종장의 조카가 있다고 했다. 잡아 와.”

    그녀의 말에 아무도 답하지 않았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여인은 묵묵히 시종장의 품을 뒤져 단검을 꺼내 엘폰토 공작의 몸에 난 검상을 헤집었고, 엘폰토공작에게 검을 쥐여 주고는 시종장의 가슴에 난 상처를 찔렀다.

    서로가 공격한 것처럼 만들었을 때 시녀 하나가 리퍼에게 잡혀 왔다.

    그녀는 방의 상황을 보고 새파랗게 질렸는데 여인은 엘폰토의 손으로 시녀의 목을 졸랐다. 시녀의 숨이 넘어가도록 뒤에 선 리퍼가 그녀의 입을 틀어막아소리 한점 새어나가지 않았다.

    여인은 시녀를 침대에 던져놓고 옷을 찢었다.

    여인이 그린 시나리오는 엘폰토 공작이 시종장의 조카인 시녀를 겁탈했고, 눈이 돌아간 시종장이 엘폰토 공작을 찔렀다가 되레 당했다.

    프레드가 남긴 흔적을 지우고 그렇게 손을 쓴 여인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위 귀족이니 이렇게 여러모로 신경을 쓴 것이지 어지간한 귀족이었으면 성을 불 질러서 간단히 처리했을 일이었다.

    여인은 창가에 서서 멀어지는 공주의 마차를 보았다. 공주가 떠난 것을 알면 영지의 시종과 시녀들이 이곳을 확인할 터. 자리를 피할 때였다.

    “이만 가자.”

    “예.”

    수하들을 데리고 창밖으로 나간 여인은 잠시 엘폰토 공작의 성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떠나갔다.

    곧 시종 하나가 엘디아 공주가 말없이 떠나는 것을 보고 시종장을 찾다 못 찾아서 방으로 들어갔다가 엘폰토 공작과 상잔한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왕족인 공작의 죽음은 숨길 수 없는 것. 괜히 조금이라도 잘못 엮이면 일가족이 모두 죽을 수 있기에 그들은 살인 현장을 그대로 두고 왕궁에 연락했다.

    엘토르 국왕은 자신의 집무실을 찾아온 엘디아 공주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엘폰토 공작을 만나러 가야겠다고 보고하고 떠났다. 확인해 보니 그녀가 엘폰토공작과 만난 것까지는 확인이 됐다.

    그러니 그녀에게 직접 물어볼 생각이다.

    다른 왕족보다는 엘폰토 공작과 가까웠던 그녀였기에 그의 죽음과 그녀가 연관되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정확한 상황을 보고 받고 싶을 따름이었다.

    왕국 제일검이 안타르시아에서 결투로 팔과 다리를 잃고 돌아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목숨을 잃었단 말인가?

    무결의 마법사인 카이마저 자리에 없는 지금 왕국의 전체적인 무력은 크게 줄어들었다.

    엘토르 국왕은 들어온 엘디아의 안색이 좋지 않음을 읽고는 한숨을 내쉬고는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엘디아도 어떻게 상황을 정리했는지 들었다. 왕족의 죽음이라 조사단이 파견되었지만, 리퍼는 이런 일을 전문으로 하는 이들. 뭔가 걸릴 것은 없었다.

    “제가 도착했을 때 오빠는 죽어 있었어요. 피를 보니 어지러워서 쓰러졌나 봐요. 프레드 경이 마차에 태워서 돌아오는 중에 깨어나서 정확한 상황은 몰라요.”

    엘토르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알겠다. 심란하겠구나.”

    엘디아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고, 살며시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엘토르가 넌지시 물었다.

    “그보다 왕국 제일검이 죽고, 궁정 마법사 마저 공석이니 왕국의 전력 자체가 크게 줄어든 상황이다.”

    “그런 정치적인 것은 제게 묻지 마세요.”

    “어지간하면 묻지 않겠다만 그것 때문에 사람을 좀 구하려고 한다.”

    “사람이요?”

    “궁정 마법사가 공석인 것은 아는 이들이 얼마 없지만, 왕국 제일검이 패배해 영지에 틀어박혀 있다는 것은 주변에 알려졌거든. 게다가 이번에 그가 죽기까지 했으니 그 소문은 더욱 빠르게 퍼질 거다.”

    엘디아는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만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타메아 왕국이 우리 국경 쪽으로 병력을 모으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 지 꽤 되었다. 아무래도 간을 보는 것 같아 병력을 옮기기는 했다만, 마음을 놓을 수는 없구나.”

    엘디아는 엘토르가 무얼 말하는지 알았다.

    “왕국의 예산만으로는 안 되는 일인가요?”

    “그러면 좋겠다만 강력한 전력을 상시 보유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말이다.”

    엘더의 지분으로 얻는 수익은 상당했다. 덕분에 왕국의 군비도 크게 늘었으니까.

    다만 병사들의 수가 전쟁을 억제하지는 못한다. 전쟁을 억제하려면 적어도 7성급 대마법사나 7성급 기사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이들은 돈으로 구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다.

    그러나 돈으로 구할 수 있는 이가 하나 있다. 다만 억 소리나는 돈이 필요할뿐. 그래도 그와 계약만 따낼 수 있다면 전쟁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은 자가.

    “용병왕을 고용하는 것이 어떨까 싶구나.”

    “그의 몸값이 상당한 거 아시죠?”

    “그래서 얘기를 꺼내는 거다.”

    전쟁이 일어날 것이 확정된 것도 아닌 상황에서 전쟁 억제력으로 그와 계약하려 하는 일이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를 고용하는 데만 연간 10억 프랑이 든다. 전쟁이 벌어지면 거기서 몇 배로 뛰지만, 오히려 전쟁이 나면 고마울 따름이다.

    그가 참전한 전쟁은 모두 승리했으니.

    그렇게 전쟁에서 승리하면 얻게 되는 전쟁 배상금으로 그의 몸값을 지급하면 되니까.

    타메아 왕국이 아직 그와 계약했다는 소문은 들리지 않으니 그를 고용할 수만 있다면 전쟁 억제력은 충분했다. 연간 10억 프랑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그를 고용하는 것만으로 타메아 왕국은 감히 전쟁 선포는 하지 못할 터였다.

    타메아 왕국이 국경에 병력을 모으고 간을 보는 것은 왕국을 공격해 엘더를 얻으려는 계획일 터였다.

    ‘그레이스’라는 희대의 장신구 명품 브랜드가 나와 대륙 큰손들의 눈이 그곳에 쏠렸기에 엘더를 노려볼 수 있었다. 전에는 대륙 큰손들이 엘더를 아꼈기에 그들의 눈치를 보았지만, 이제는 눈치볼 것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뒤로 어떤 공작을 부렸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전쟁을 막기에는 용병왕 만한 자가 없었다.

    “왕가의 배당금을 선지급할게요. 그거면 충분하죠?”

    “그래. 용병왕과 계약하게 되면 알려주마.”

    엘디아는 그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잠시 멈춰서서 말했다.

    “용병왕을 만나는 자리에 저도 불러주세요. ‘플레이트’에서 몇 번 본 적 있으니 얘기가 잘 될 거예요.”

    “그러려무나.”

    용병왕이 직접 ‘플레이트’에 참석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지만, 엘더가 두 번째 참가할 때 만나본 적이 있었다.

    거친 사내의 향기를 물씬 풍기던 자였다. 귀족적이지 못하지만, 오히려 그 야성미가 더욱 돋보이는 자. 그것이 지독히도 어울리던 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엘디아는 엘토르에게 인사하고 떠나갔다. 방으로 돌아가 욕조에 물을 받아 장미 잎을 띄운 후에 그 안에 들어간 엘디아는 눈을 감았다.

    과거는 과거일 뿐, 그것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엘디아는 용병왕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덴다르트에게 7성급 아티펙트를 만들어 주기로 하면서 카이는 조금 더 욕심을 내기로 했다.

    8성급 봉인을 풀기 어려운 것이 동시에 여덟 개의 봉인을 풀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공간을 나누든 시간을 쪼개든 둘 중 하나가 필요했던 것.

    약의 도움을 받아 그것을 깼던 카이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8성의 비밀 중 일부를 보아서 7성 대마법사 중에서는 분명 다른 경지에 이르렀다고 여겼었다. 조합 마법진의 실마리를 얻은 것도 그것 덕분이었으니까.

    자신이 8성에 오르려면 모든 마법을 합성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았는데 그건 시간상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마법진을 동시에 발동하는 것은 가능했다.

    그것을 위해 개발한 것이 인공 영혼 폰이다. 여덟 개의 몸을 지녔고, 인공 영혼도 8개가 들어간 군체형 영혼.

    동시에 마법진을 가동할 수 있는 인공 영혼 폰을 만든 카이는 여덟 개의 몸에 마법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각자의 위치에서 동시에 마법이 발현되고, 그 하나하나가 모두 조합에 사용된다.

    각자 다른 조합 마법진을 가동하고 그들이 이룬 진 자체가 또 하나의 마법진을 이루는 마법진.

    그 대가로 들어가는 것이 인공 영혼이었다. 인공 영혼 여덟 개를 갈아 넣어서야 완성할 수 있는 마법.

    그것으로 인간이 오를 수 있는 경지의 끝이라고 하는 8성의 위력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연구부터 난항이 계속되었다. 8성의 경지를 엿보았다고 해도 그걸 직접 시연할 수 있는 마법진을 만드는 것은 아무리 카이라고 해도 쉽지 않았다.

    8성 비전 마법을 만드는 것에 비견되는 어려움이었다.

    카이는 우선 군체 인공 영혼을 만드는 것은 성공했지만, 아직 8성급 대인 마법은 만들지 못했다.

    발동에 오랜 시간이 걸리면 바헬에게 통하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시간을 비틀든 공간을 뛰어넘든 즉시 발동이 아니면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 8성급 대마법사의 능력이었으니까.

    카이가 그것에 대해 고민하는 중에 테오가 그를 찾아왔다. 카이의 지하 연구소에 이유 없이 찾아오지 않는 그의 방문에 카이가 연구하던 것을 멈추고 그를 맞이했다.

    “무슨 일이야?”

    “엘폰토 공작이 죽었습니다.”

    루비 광산을 무너트렸을 때 엘폰토 공작은 끝장날 거라 여겼었다. 그래도 벌써 죽을 줄은 몰랐다.

    “엘디아가 한 일인가?”

    테오는 고개를 내저었다.

    “엘폰토 공작이 시종장의 조카인 시녀를 겁탈하다가 시종장에게 걸려서 서로 죽였다고 합니다.”

    카이는 그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시종장으로서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테오는 그 말에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솔직히 제 가족을 백작님이 건드렸다고 한다면 눈이 돌아갈 것 같기는 한데 진짜 무기를 뽑아 드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 같습니다.”

    “그래. 순간 눈이 돌아갈 수는 있어. 하지만 시종장이 영주를 살해한다? 그렇게 되는 순간 겁탈당한 조카만이 아니라 시종장의 가족이 전부 죽어.”

    시종은 보통 귀족가에서 작위를 상속받지 못할 형제나 서자들이 택하는 일이다. 그렇게 시종장의 지위까지 올라가면 작위는 없지만, 영주의 권한 만큼이나 큰 힘을 부릴 수 있다.

    대부분 영주는 아내보다도 시종장을 더 믿으니까.

    그런데 시종장이 오히려 영주를 죽인다? 그 뒷감당은 그의 부모부터 자식과 친척까지 모두 전해진다.

    특히나 이번처럼 왕족의 죽음에 시종장이 연관되어 있다면 그 시종장의 가족은 씨가 마른다. 그런데 조카가 겁탈당했다고 무기를 뽑았다?

    가능은 하지만, 그 실현 가능성은 굉장히 낮은 일이다.

    “당시 엘디아의 행적을 알아볼 수 있나?”

    “수소문하면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만, 리퍼의 귀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카이는 그 말을 듣고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지금은 리퍼가 독이 바짝 오른 채 그곳을 지켜볼 텐데 정보를 캐면 이쪽이 들킬 수밖에 없겠네. 일단 묻어 둬.”

    “그보다 왕족의 죽음이라 왕궁에서 장례를 치른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꽃이나 보내줘. 화려하게.”

    테오가 물러나자 카이는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벽에 그려놓은 수많은 조합 마법식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눈으로는 조합 마법식을 보고 있지만, 다른 생각에 몰두했다.

    엘폰토도 자신의 이혼에 관련되었던 이였던 만큼 손을 봐줄 놈이기는 했다.

    그래서 결투에서 팔과 다리를 전소시키고 마약으로 그를 망가트렸다.

    그렇게 망가진 엘폰토의 죽음에는 엘디아가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엘디아에게 맹약을 맺은 이유는 엘폰토의 정신 상태를 염두에 둔 것이기도 했으니까.

    그녀는 스스로 맹약을 지키기 위해서 무슨 짓까지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이번에도 카이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고개를 휘휘 내젓던 카이의 눈에 조합 마법식 몇 개가 눈에 띈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런데 휘갈겨 놓은 수많은 조합 마법식 중 엘디아를 떠올린 순간 눈에 들어온 마법식들.

    카이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어 벽에 그려진 눈에 띈 조합 마법식들만 남기고 다른 것을 지운 후에 그 조합 마법식을 뒤섞었다.

    상상을 뛰어넘는 엘디아를 떠올리다가 눈에 띈 조합 마법식들을 뒤섞어 만든 또 하나의 조합 마법식.

    그걸 써 내린 카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거다!”

    즉발성 8성급 비전 마법. 지금까지 구름 속에서 헤매는 것처럼 떠오르지 않던 것이 엘폰토의 죽음과 엘디아의 만행을 떠올린 순간 기적처럼 만들어졌다.

    무지막지한 돈이 들지만, 8성급 비전 마법을 쓸 수 있는 조합 마법식이 완성됐다.

    돌싱 후 대마법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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