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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33화 (33/150)
  • 033화 결정

    클란드라의 눈은 카이의 눈에 고정되었다. 그녀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던 카이가 테오르를 돌아보았다.

    황녀의 스승이라며? 말려야 하는 거 아냐?

    카이의 눈짓에 테오르가 헛기침하고는 클란드라를 말렸다.

    “그래서라니? 당연히 문제가 되지.”

    클란드라가 돌아보았다.

    “저 나이에 7성이면 자격을 논할 문제는 아니지 않아요?”

    바우스 대공도 도와줬다.

    “아무리 그래도 넌 형님의 장녀이자 내 조카이기도 하다. 7성 정도로는 안 된다.”

    7성 마법사가 대륙에 열둘 밖에 없다.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음에도 이혼남에게 제국의 황녀를 내줄 수는 없는 법이었다.

    클란드라는 그 둘의 반응에 낮게 코웃음을 쳤다.

    “그냥 물어본 거예요. 흥분들 하시기는.”

    “하하하. 그렇지?”

    “그 나이 먹고도 장난치는 것은 여전하구나.”

    테오르와 바우스 대공이 어색하게 웃는 것을 보고 카이는 클란드라의 다른 면을 본 것 같았다. 고귀함을 두르고 태어난 것만 같은 그녀에게서 저런 모습을 볼 줄은 몰랐다.

    그러나 깊은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더는 여자에게 관심이 없었으니까.

    테오르는 음식을 포크로 쿡쿡 찌르다가 물었다.

    “자네 제국에 올 생각 없나? 이혼했으면 아무래도 황녀는 무리겠지만, 황가에 다른 아이들도 있는데.”

    “···결혼 생각 없습니다.”

    “아쉽군.”

    카이는 빤히 테오르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테오르님도 결혼하지 않으시지 않았습니까?”

    “나야 워낙에 풍류를 알고 지냈기에 그런 것이지. 결혼은 안 했어도 애인은 서른두 명이나 있다.”

    카이가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는 사이에 클란드라가 그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8성 마법사인 테오르가 옆구리를 꼬집힌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나 격 없이 지내는 클란드라의 손길을 피하지 않고 죽는다고 소리소리 질렀다. 생각보다 둘이 가까운가 보다.

    테오르는 장난을 그치고 카이를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혹시 내게 조합 마법진에 대해 가르쳐 줄 마음은 없나?”

    카이가 바라보자 테오르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한에서는 무엇이라도 해주겠네.”

    카이는 그런 테오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조합 마법진은 장신구에 넣었기에 6성 마법까지 들어가는 것이지 갑옷이나 검에 넣는다면 8성 마법까지도 넣는 것이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

    그러니 테오르에게 알려준다면 그는 8성 마법으로 아티펙트를 만들지도 모른다.

    축소 마법진으로도 8성 마법을 아티펙트로 만들지 못하는 것은 그 마법진을 하나로 그려낸다면 그 크기가 무지막지해지기 때문이다.

    아티펙트로 담아낼 수 없는 크기. 결국 제대로 만들려면 못해도 집채만 한 크기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조합 마법진이라면 8성 마법도 아티펙트에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해도 테오르가 하는 일이 오직 연구뿐이었다.

    그리고 아티펙트에 8성이 아니라 7성만 담아내도 대륙의 정세가 변하게 된다.

    제국이 군에 투자하는 돈은 상상을 초월하니 돈이 부족할 일은 없으리라.

    카이는 가만히 그런 테오르를 보며 답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솔직히 이 뛰어난 마법을 장신구로만 만드는 것은 너무 아깝지 않나?”

    카이는 테오르의 모습을 보고는 그가 8성의 대마법사임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안타르시아인데도 불구하고 제국의 일을 얘기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자신이 말해도 메르샤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세상 저 혼자 사는 것처럼 구는 자들이 8성 대마법사들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지금 하는 말도 권고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말이 당연히 지켜질 거라는 것을 아는 것처럼 하는 말.

    수몰의 대마법사라고 불리지만 이 자도 미치광이다.

    카이는 나이프와 포크를 놓고는 테오르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답을 원하고 있었고, 카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이 자리에 테오르가 올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냥 끌려갈 마음은 없었다.

    카이가 왼손에 불꽃의 고리를 만들고 테이블 아래로 오른손 안에 전격을 일으키며 답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테오르는 카이가 마력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는 씨익 웃었다.

    “재미난 친구로군.”

    테오르의 머리 뒤로 물의 고리가 나타나 회전하기 시작했다.

    “잠깐! 잠깐만요!”

    메르샤가 기겁하고 나섰을 때 테오르가 그녀를 보지도 않은 채 물었다.

    “왜 그러나?”

    “제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멈춰 주시면 안 될까요?”

    테오르의 시선이 그제야 메르샤를 향했다.

    “체면? 내 앞에서?”

    메르샤는 그 시선을 받은 순간 마른침을 삼켰다. 테오르의 눈이 반쯤 돌아간 것이 이거 까딱 잘못하면 안타르시아가 물에 잠길 수도 있겠다 싶었다.

    과거 전장 하나를 물에 잠기게 만들어 수만을 죽였던 테오르가 하는 짓이다.

    안타르시아 하나를 잠기게 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러나 메르샤도 이 도시의 시장이다. 테오르가 이 도시를 물에 잠기게 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그녀도 이 도시를 무너트릴 수 있다.

    메르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을 때 클란드라가 포크를 들어 접시를 내리찍었다.

    쨍!

    접시가 깨지는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제야 클란드라가 입을 열었다.

    “태사. 이곳에 올 때 저랑 했던 약속 잊으셨어요?”

    “응? 아, 그랬지.”

    테오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머리 뒤에 띄웠던 물의 고리를 사라지게 하고는 카이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태연하게 웃었다.

    “미안. 내가 거절이 익숙하지가 않아서. 잠깐 흥분했네.”

    8성 대마법사가 사과를 한다?

    카이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손에 들고 있던 불꽃의 고리를 사라지게 했다. 테이블 아래에서 전격을 일으켰던 마력도 거뒀다.

    그냥 당해줄 마음은 없었다. 딱 보니 쓰러트릴 자신은 없어도 어떻게든 몸을 빼낼 수는 있을 거라 여겼으니까.

    그러자면 시장실이 박살 났을 테고, 이 건물도 못 버텼으리라.

    클란드라 덕분에 좋게 끝난 것 같았다.

    “사과 받아들이죠.”

    태연하게 대꾸하는 모습에 테오르가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생각보다 재미있는 친구군.”

    테오르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사이에 식사가 끝났고, 베이트가 수레를 가지고 왔다. 수레 위에 올라가 있는 커다란 상자가 열리고 그 안에 든 진금화가 빛을 발했다.

    “확인해 보게. 진금화 1천 개니까.”

    “그거야 시장님이 알아서 확인했겠죠.”

    클란드라는 디저트로 나온 푸딩을 수저로 잘라 입에 넣고는 말했다.

    “고마워요.”

    카이가 바라보자 클란드라가 담담히 말을 이었다.

    “조금 특이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아버지 50번째 생신에 어울릴 만한 선물을 준비해 줬으니까요.”

    카이는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럼 먼저 일어나죠.”

    클란드라가 일어나자 테오르와 바우스 대공도 일어나서 먼저 떠났다.

    그들이 나가고 나자 메르샤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와 씨. 내 살다살다 수몰의 대마법사랑 대거리를 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네.”

    카이는 그런 메르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중재하려고 나서려고 한 것이기는 했지만, 그녀가 나서줄 줄은 몰랐다.

    조금은 그녀를 다시 보게 됐다.

    축 늘어졌던 메르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맞다. 수수료 챙겨야지.”

    메르샤가 콧노래를 부르며 진금화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200개의 진금화를 챙겨 테이블에 올린 메르샤가 보는 것만으로 배가 부르다는 듯 그걸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사실 진금화 하나나 두 개는 별거 없지만, 이게 백 개가 넘어가면 또 하나의 권력이 된다는 것 알고 있어?”

    카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메르샤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제국과도 거래하는 만큼 한 번에 많은 진금화를 내놓으면 그들도 난처한 상황이 돼. 그래서 이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지.”

    카이는 그 말에 남은 진금화를 바라보았다. 그만큼이나 큰 가치를 지닌 것이 이만큼이나 나왔다니 대단한 일이었다.

    카이는 잠시 그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최상급 마석이 하나에 얼마나 하지?”

    “최상급 마석? 원석으로?”

    카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메르샤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최상급 마석은 크기에 따라 또 달라지는데 가장 큰 것 같은 경우에는 몇천만 프랑도 우습지.”

    카이는 진금화 스무 개를 꺼내주며 말했다.

    “이만큼 최상급 마석을 구해줘.”

    메르샤는 카이가 7성에 오른 것을 알고 나서는 그가 원하는 것이 최상급 마석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티펙트 만들려고 하는구나?”

    카이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메르샤는 그 부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혹시 내 것도 주문해도 돼?”

    “아니.”

    “값은 후하게 치를 게.”

    대륙 최고의 도시 안타르시아의 시장인 메르샤니 그녀가 후하게 쳐준다는 말은 농담이 아닐 터였다. 하지만 들어줄 수는 없었다.

    카이가 만들려고 하는 아티펙트는 7성급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아티펙트. 장신구는 그 크기 때문에 조합 마법진으로 6성까지 만들 수 있지만, 크기가 커진다면 7성급 마법을 담을 수 있다.

    다만 활성화하려면 7성 대마법사인 카이도 최상급 마석의 도움을 얻어야 했지만.

    이번에 테오르와 마주하면서 느낀 것이 있었다. 맨몸으로는 간신히 몸 하나 빼내기도 쉽지 않았지만, 제대로 된 아티펙트로 무장한다면 적어도 몸 하나 빼내는 것은 충분하리라.

    카이는 고개를 내저었고, 메르샤는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일단 조금씩 가까워져야겠다고 여겼다.

    어쨌든 안타르시아의 ‘그레이스’ 매장을 이용해 물건을 파는 이상 가까워질 기회가 있을 테니까.

    “다른 주문한 물건들은 모두 준비되었다고 해. 그런데 최상급 영혼석을 그리 많이 구하는 이유는 뭐야? 흑마법사들이 관심을 보이던데.”

    최상급 영혼석을 만드는 것은 흑마법사. 그리고 흑마법사들은 대부분 범죄자들이다.

    카이도 인공 영혼이 아니었다면 굳이 영혼석을 구하지 않았으리라.

    카이는 굳이 그런 비밀까지 알려줄 생각이 없었다. 카이는 진금화를 한 줌 꺼냈다. 이번에 꺼낸 것은 모두 오십 개.

    “이건 환전해줘.”

    “다 가지고 갈 수는 있고?”

    “괜찮으니까 환전이나 해줘.”

    메르샤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집까지 물건들 다 보내줄 수도 있어.”

    “됐어.”

    수고스럽지만, 지금 당장은 굳이 자신을 밝힐 생각은 없었다. 다행히 메르샤가 신경 써주는 덕분에 다른 비공정이 따라붙지 못하니 그곳에서 흔적을 숨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카이는 진금화가 가득 들어있는 상자를 닫고는 마력을 일으켜 마킹을 가렸다.

    그 모습에 메르샤가 눈웃음을 지었다.

    “알고 있었네?”

    메르샤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던 건가?

    카이는 굳이 더 말하지 않고는 상자를 마력으로 들어 올린 후에 시장실을 떠났다.

    클란드라가 방으로 돌아와 술을 따른 술잔을 들고 창밖을 내려다볼 때 뒤쪽에서 테오르가 물었다.

    “무결의 마법사라는 꼬마를 기억하나?”

    클란드라는 뒤로 돌아 창문에 등을 기댄 채 테오르를 바라보았다.

    “물론이죠.”

    “그 녀석 요즘 뭐한다고 하더냐?”

    클란드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솔직히 관심 밖이었다. 그가 만든 축소 마법진 설계는 분명 마법학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지적 재산권 보호까지 받고 있었지만, 그저 뛰어난 마법사라면 그녀의 관심을 끌 수 없었으니까.

    엘더의 제품 중 무결의 마법사가 만들었다고 하는 것들도 몇 개 가지고 있는데 워낙 화려하게 만들어진 것들이라 요즘은 질리는 중이기도 했고.

    “모르겠네요. 그러고 보니 이번 ‘플레이트’에 나온 엘더의 제품은 그가 만든 것이 아니긴 했어요.”

    클란드라가 그리 답하고는 테오르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시는 거죠?”

    테오르는 그녀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아까 그놈을 압박했을 때 왼손에 불꽃의 고리를 만들어 냈지만, 테이블 아래로 내린 손에서는 다른 마력이 느껴졌다.

    전격의 마력.

    한 인간이 두 가지 이상의 속성을 다루는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다. 무결의 마법사라는 꼬마가 6성에 도달했다는 것을 들었을 때 관심을 보인 것은 두 가지 이상의 속성을 다룰 수 있다는 말 때문이었으니까.

    그런데 한 시대에 그런 자가 둘이나 나타난다?

    테오르는 우연을 믿지 않는다.

    “아니다.”

    클란드라는 황녀로서 뛰어난 재녀이지만, 정보를 구하는 일에는 그녀보다 황태자의 도움을 얻는 것이 좋다.

    테오르는 그리 말하고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물었다.

    “그보다 언제 돌아갈 거냐?”

    클란드라는 테오르가 한번 입을 다물면 절대 열지 않는 것을 알았기에 다른 방식으로 알아봐야겠다고 여기며 답했다.

    “서둘러야죠. 돈 벌어야 하니까요.”

    “크크크. 그래. 얼른 벌어서 내 돈 갚아라.”

    온전히 클란드라의 선물이 되기 위해서 테오르가 돈을 빌려준 형식이기 때문에 갚아야만 할 돈이었다.

    “금방 갚을 거예요.”

    클란드라는 오랜만에 진지하게 돈을 벌어볼 생각이었다.

    돌싱 후 대마법사-기름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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