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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32화 (32/150)
  • 032화 그래서?

    엘디아는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듀얼 잼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저렇게 드래곤의 형상을 한 사파이어가 들어있는 것을 보아 아무래도 작정한 것 같았다.

    황제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이런 중성적인 형태의 반지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단단히 별렀다는 얘기였다.

    자세한 사정을 모르고 온 이들도 확대 마법으로 보인 반지를 보고는 특히 제국의 인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날 만큼 시선을 잡아끌었다.

    이번 황제의 50번째 생일을 기념하기에 이만한 것이 없었다.

    엘도 왕국은 굳이 제국과 거래할 이유가 없었다. 사이에 신성 교국이 껴 있기도 해서 이권을 얻어낼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엘더의 물건들은 대륙의 큰손들이 아니어도 충분히 팔 수 있었으니까.

    그랬는데 ‘그레이스’는 제국을 상대로 물건을 팔고 있었다. 이곳에 모인 이들 모두가 대륙의 큰손들.

    그만한 이들이 고작 아티펙트 하나에 모인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만큼 이번 물건이 상식을 깨부수고 있었으니까.

    목걸이도 아니고 반지에 6성급 마법이 들어간 것도 놀라웠는데 메르샤는 그곳에 공격 마법이 들어있다고 했다.

    그리고 수몰의 대마법사 테오르가 나서서 확인하기로 했다.

    엘디아는 새삼 바헬을 만났을 때의 공포가 떠올랐다. 홀로 왕궁에 나타나 당당히 과거의 약속을 지키라고 했던 자. 그를 상대하기 위해 움직였던 근위기사단장이 손가락 한 번 튕기는 것으로 죽을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대로 엘티온을 빼앗길 수 없어 카이에게 눈물을 흘리며 부탁했었다. 막아달라고. 그리고 그는 세 번의 공격 앞에서 마력을 봉인 당한 채 그대로 무너졌다.

    7성까지는 전쟁 억제력이 될 수 있지만, 8성부터는 압도적인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미치광이 바헬이 그런 미친 짓을 벌이고도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 8성 대마법사 테오르.

    새삼 제국이 부러웠다. 저만한 마법사는 물론이고 검성이라 불리는 대륙제일 검까지 보유하고 있으니까.

    주변국이었다면 아마도 그들에게 조공을 바치며 살아야 했겠지.

    메르샤가 보여준 반지의 마법은 경악 그 자체였다. 테오르가 감탄할 정도의 비전 마법이었으니.

    “500억 프랑부터 시작하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엘디아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500억 프랑은 아무리 대단한 이들이라고 해도 손익 계산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가격이다.

    제국에 특별히 잘 보여야 할 일이 없는 이상 쉬이 쓸 수 없는 돈이기도 했다.

    엘더가 대륙의 장신구형 아티펙트 계를 휘어잡고 발 빠르게 마법사들을 고용하고 보석 세공사들을 구해서 벌어들인 1년 매출이 100억 프랑이다.

    그것만 해도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많은 금액이었다.

    왕국이 부유해지고 귀족들에게 목줄을 채웠다. 그러고도 매년 돈이 쌓였다.

    그렇게 모은 돈이 7년간 500억 프랑을 조금 넘겼다. 엘디아도 돈을 펑펑 썼지만, 그래도 프랑은 빠르게 쌓였다.

    그런데도 이곳에서 대륙의 큰손들을 보니 그들이 쓰는 돈은 그 단위가 달랐다.

    “520억.”

    “550억.”

    빠르게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엘디아는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그레이스’의 주인이 처음에 자신에게 모욕을 주었지만, 그의 가치는 그 이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정도 모욕을 감수해도 될 정도의 가치.

    그렇기에 저것을 손에 넣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모은 돈에 이번에 준비해 온 왕가의 재산까지 더해도 쉽지 않았다.

    전에 200억 프랑에 낙찰된 것도 과하다고 여겼기에 그녀가 최대로 준비한 돈은 600억 프랑이 전부였다. 엘더의 지분을 팔지 않는 이상은 그게 한계였다.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기에 손을 들어본다.

    “600억.”

    단번에 가격이 크게 뛰었지만, 개의치 않는다. 엘디아의 한 마디에 잠깐 장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500억 프랑으로 시작해 처음부터 대부분 경쟁 상대들을 쳐냈던 테오르가 돌아볼 정도였다. 그는 흘끔 엘디아를 보더니 클란드라에게 귓속말을 걸었다.

    엘디아가 조마조마할 때 클란드라가 손을 들었다.

    “650억.”

    엘디아는 클란드라에게 다시 한번 패했다. 주먹을 꼭 쥐고 부르르 떠는 그녀에게 장내의 누구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메르샤가 미소를 지은 채 물었다.

    “650억 프랑 나왔습니다. 더 없으신가요?”

    지금까지 조용하던 이가 손을 들었다. 황제의 친동생이자 공국의 주인 바우스대공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700억.”

    클란드라가 움찔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테오르가 슬쩍 그를 돌아보고는 다시 귓속말을 전했다. 클란드라는 한숨을 내쉬더니 손을 들었다.

    “800억.”

    바우스 대공마저 움찔할 정도였다. 이제 강대국의 국가 1년 예산을 훌쩍 넘어버린 가격이었다.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나 싶지만, 자존심 싸움으로 돌입한 것 같았다.

    그때 불쑥 손을 드는 이가 있으니 블레이튼 마탑의 마탑주 베논이었다.

    지금까지 나서지 않다가 나선 것은 더는 미룰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새로운 비전 마법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하기 힘들다. 그래서 그도 이번 경쟁에 나서기로 했다.

    “900억.”

    블레이튼 마탑의 몇 년 치 매출이 그대로 들어갔다. 주력 상품이 무기인 블레이튼 마탑의 검을 얼마나 팔아야 할지 감도 오지 않지만, 저 비전 마법을 이해할 수만 있다면 충분한 가치가 있었기에 투자했다.

    바우스 대공은 헛웃음을 흘리며 손을 들었다.

    “이거 형님 생일 챙겨주다가 기둥뿌리가 흔들리겠군. 950억.”

    바우스 대공으로서도 큰마음을 먹고 내건 금액이었다. 더는 그라고 해도 무리였을 때 클란드라가 테오르와 얘기를 나누더니 손을 들었다.

    “1,000억.”

    바우스 대공은 그 말에 두손을 들고 물러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태사를 내 옆에 앉힐 걸 그랬소.”

    “늙은 바우스 대공이랑 같이 앉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테오르가 툭하고 내뱉은 말에 바우스 대공만이 웃음을 터트렸다. 테오르는 현황제의 태사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선황제의 태사이기도 했다.

    그런 테오르였기에 바우스 대공도 그에게 뭐라고 할 수 없었다. 개인의 무력을 떠나서도 테오르는 제국의 황가에서 쉬이 대할 수 없는 존재였으니까.

    메르샤가 둘의 대화를 듣고는 결정이 났음을 알았다.

    “1,000억 프랑. 더 있습니까?”

    모두 침묵하는 것을 보고 메르샤가 손을 내밀었다.

    “오늘 ‘그레이스’의 ‘영광’은 1,000억 프랑에 클란드라 님이 낙찰받으셨습니다.”

    모두 손뼉을 쳐주는 사이에 클란드라가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로 올라왔다. 메르샤가 반지를 보석함에 넣어 건네자 클란드라가 그걸 받아들고는 높이 들어 보였다.

    뜨거운 박수갈채에 클란드라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카이는 그 모습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만한 돈을 쓰고도 지금 이 순간은 온전히 즐기는 그녀의 모습은 확실히 시선을 잡아끌었다.

    예상보다 몇 배나 되는 높은 가격에 물건을 팔게 됐으니 그것도 잘된 일이다 싶었다. 사실 카이도 구경해보지 못한 돈이었다.

    대륙의 부는 제국을 향해 흐른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나 보다.

    경매 물품의 낙찰자와 식사를 하는 것은 전통 중 하나였기에 카이는 식사 자리에 참석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카이는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을 볼 수 있었다. 클란드라와 테오르는 이미 예상했다. 아마 둘이 자산을 합쳐서 이번 경매에 참석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들의 옆에 앉아있는 사내는 달랐다. 현 황제의 동생이자 바우스 공국의 주인인 바우스 대공이었다.

    개인의 무력 또한 6성급 기사인 그는 카이가 들어서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6성급 기사라고 한다면 엘폰토 수준밖에 되지 않는 이다.

    그러나 그는 묘하게도 쉬이 볼 수 없는 기품이 느껴졌다. 대륙의 정점에 서 있는 황제의 친동생이라고 하더니 그 기품마저 닮은 것인가?

    새삼 자신이 얼마나 얕은 물에서 놀았는지 알 수 있었다.

    “내 고집을 부려 이 자리에 동석하게 되었으니 시장을 나무라지 말게.”

    “그럴 마음은 없습니다.”

    카이의 대꾸에 바우스 대공은 진한 미소를 지었다. ‘영광’을 보았을 때 어렴풋이 그의 경지를 짐작했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만나고 보니 알겠다.

    테오르가 짐작한 것처럼 7성에 오른 자임이 틀림없다. 다만 그것을 숨기고 있는데 자신 앞에서도 당당한 것을 보면 말이다. 그 성품 또한 마음에 들었다.

    “그럼 함께 자리하지.”

    카이가 자리에 앉자 다른 이들도 자리에 앉았다. 메르샤가 미소를 지은 채 이야기를 꺼냈다.

    “‘그레이스’의 주인인 아벨도 인정했으니 그럼 식사를 시작하죠.”

    메르샤가 손짓하자 베이트가 수레를 끌고 와서 그들 앞에 음식을 준비했다.

    식사 중에 가볍게 이야기를 꺼낸 것은 테오르였다.

    “뭐 하나 물어봐도 되겠나?”

    카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테오르가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자네 경지를 왜 숨기고 다니는 건가?”

    카이는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느꼈다. 메르샤도 그렇고 대충 짐작들은 하는 것 같았다. 카이가 장비로 마력을 억제한 것은 6성 마법사라고 하면 대충 숨길 수 있지만, 7성 대마법사가 되면 대륙에서도 그 수가 많지 않아 당연히 정체를 숨기기 어렵다.

    잠시 고민하던 카이는 담담히 말했다.

    “제가 돋보이기보다 ‘그레이스’가 돋보이기를 바라서입니다.”

    그의 대답을 듣고 테오르는 웃음을 터트렸다.

    “황녀가 그러더군. 자네는 예술을 아는 마법사라고. 그 말을 들었을 대는 제정신이 아니다 싶었지. 마법사가 예술을 알아서 뭐하나 했는데 자네를 보니 자신의 작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군.”

    카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나온 스테이크를 잘라 입에 넣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테오르는 음식에는 관심없다는 듯 궁금한 것을 또 물었다.

    “마탑 연합에 확인해 보니 아직 지적 재산권 보호 신청을 하지 않았던데 이유가 있나?”

    “이건 설명해주기도 어렵고, 그들이라면 조합 마법진을 만들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테오르는 그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 마법진을 직접 보고 뜯어보며 살피는 중인 테오르 조차 어떻게 만든 것인지는 알아도 재현을 못 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 마법진을 살펴볼 기회조차 없는 마탑에서는 당연히 그걸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마술보다 예술에 더 집중하는 것을 보고 마법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는데 이렇게 이야기를 해보니 알겠다. 저 오만한 심상은 마법사에게 딱 어울리는 심상이다.

    마법사라면 그 정도 오만함은 가지고 있어야 했다.

    “자네 나이가 어떻게 되나?”

    “···서른입니다.”

    테오르는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말했다.

    “대단하군.”

    그 말에는 바우스 대공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 서른에 7성에 올랐다면 최연소의 기록은 깨지 못했다고 해도 대륙에 이름을 남길 정도로 어린 나이에 경지에 이른 것이었다.

    대단하다는 말이 아깝지 않은 이였다.

    테오르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클란드라를 돌아보았다.

    “황녀 나이가 몇이더라?”

    “스물아홉이죠.”

    “그랬군!”

    테오르가 카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우리 황녀는 어떤가?”

    테오르의 물음에 클란드라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그것은 살기에 가까웠는데 테오르는 태연하게 귀를 후비며 카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바우스도 호기심을 가득 담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서는 말을 잘해야 한다. 싫다고 하면 무시했다고 욕 먹고, 좋다고 하면 어딜 넘보냐고 욕을 먹겠지.

    카이는 그래서 솔직히 답했다.

    “전 한 번 다녀왔습니다.”

    이보다 명백한 거절은 없다. 황녀나 되는 사람이 이혼남에게 관심을 보일 리는 없으니까.

    “그래서?”

    그런데 클란드라가 되물었다.

    돌싱 후 대마법사-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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