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싱 후 대마법사-31화 (31/150)

031화 지르다

‘그레이스’의 두 번째 작품 ‘영광’의 경매가 이뤄지는 곳은 안타르시아 최대의 경매장인 ‘플레이트’가 아니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그레이스’의 매장.

그 안에는 ‘플레이트’와는 다른 형태의 경매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일반 경매장과 닮아 있었지만, 분위기 자체는 굉장히 고급스러웠다.

엘더가 화려했다면 이곳은 그보다 고급스럽게 귀족적이었다. ‘그레이스’ 특유의 선형의 조각을 따라 한 것처럼 만들어 놓아서 대륙의 큰손들은 모두 자리에 앉으며 흡족해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카이도 무시하지 못할 경지의 강자들도 꽤 있었다.

대리인이 아니라 직접 온 것은 저번 ‘플레이트’에 나타난 ‘그레이스’를 보고 다들 심상치 않음을 느꼈기에 직접 온 것 같았다.

7성급 기사도 몇몇 보였고, 용병왕이라고 불리는 7성급 육체 강화 능력자도 있었다. 7성급 마법사도 둘이나 보였는데 그중에는 마탑주도 있었다.

개인 무력이 만만치 않은 자들 사이로 유독 돋보이는 것은 역시나 수몰의 대마법사 테오르였다. 다른 강자들의 기를 죽이려고 하는 것인지 그는 이제 본 연의 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 때문에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이들도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게다가 펜타로 상단의 상단주인 랜든이나 그 못지않은 이들도 있었다. 대륙 3대 상단은 물론이고, 각 왕국을 대표하는 상단의 상단주와 제국의 상단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예상대로 제국의 황족들도 몇 명이나 참가했다.

클란드라 만이 아니라 그녀의 동생부터 그녀에게 숙부이자 황제의 친동생 바우스 대공까지 자리할 줄은 몰랐다.

새삼 대륙의 큰손들이 얼마나 큰 관심을 보이는지 알 수 있었다.

카이는 그들의 면면을 살피다가 시선을 돌렸다. 시간이 되자 조명이 꺼지고 곧 메르샤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령의 대마법사라 불리는 그녀조차 모인 대륙의 큰손들 앞에서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지금까지는 이 도시의 시장으로 그녀는 누구 앞에서도 당당했지만, 이곳에서는 그녀조차 무시할 수 없을 만한 거물들이 많았다.

긴장한 그녀를 보면서 카이는 과연 그녀가 자신의 말을 들어줄 것인지 의문도 들었다. 그녀 선에서 모든 요청을 무시하라고 했는데 과연 들어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늘 모인 이들의 면면이 화려했다.

경매장의 무대 위로 조명이 모인 상태로 메르샤가 미소를 지은 채 인사했다.

“오늘 ‘그레이스’의 두 번째 작품 ‘영광’의 경매에 참여해주신 모든 귀빈 여러분, 반갑습니다.”

메르샤가 손을 내밀자 바닥이 열리며 오늘의 제품이 들어있는 보석함이 모습을 드러냈다. 반지가 들어있을 정도의 크기의 보석함을 보고 장내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메르샤가 대륙의 큰손들에게 알린 것은 단 하나. 충전식 6성급 마법이 들어있는 반지라는 것.

그것 하나만 듣고 이만한 이들이 모여들었다는 것은 반지라는 특수성 때문이기도 했다. 충전식 6성급 마법이 들어있는데 반지다?

그 마법이 무엇인지 몰라도 그 가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모두가 직접 행차한 것.

“우선 ‘영광’을 보고 설명을 이어가도록 하죠.”

메르샤가 소환한 바람의 정령이 다가가 딸칵 소리를 내며 반지함을 열었다.

조명이 집중되어 있어 다이아몬드가 그 빛을 반사하며 화려하게 빛났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사파이어의 형상이 눈에 들어왔다. 메르샤가 준비해둔 마법을 펼쳤다.

반지가 작기에 그 특성상 펼친 확대 마법이었는데 ‘영광’의 모습이 크게 확대되어 무대 위에 떠올랐다. 입체적으로 떠오른 ‘영광’의 모습을 본 제국의 황족 중 어린 이들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이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다이아몬드 안의 사파이어는 길쭉한 형태로 살짝 우긴다면 드래곤의 형상이라고 해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드래곤을 상징으로 쓰는 제국의 황족들이 눈에 불을 켤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카이는 자신의 얼굴을 따갑게 하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가 클란드라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눈웃음을 지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모습에 카이는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원하는 주문 제작으로 오해하는 것 같았는데 뭐 황제의 생일을 겨냥한 것이 맞았기에 굳이 설명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제국의 황족들이 들썩이는 사이에 다른 이들도 그 가치를 읽을 수 있었다.

제국의 황족들이 이만큼이나 목말라 한다면 저걸 손에 넣는 것만으로 제국과의 관계가 크게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돈보다 더 큰 권력을 탐하는 이들도 있었으니까.

그런 와중에 메르샤가 반지를 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이 반지의 성능을 보여드리기 위해 도움을 주실 분을 이곳에 모시고 싶은데···.”

클란드라가 전에 충전식 6성 보호 마법이 걸려 있는 ‘부활’을 사 갔던 것을 떠올린 이들이 손을 들어 올렸다. 메르샤는 그런 이들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클란드라 옆에 앉아있는 사내를 청했다.

“오늘 모신 귀빈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테오르님이 도와주시면 어떨까 싶군요.”

테오르가 자신의 격을 가감 없이 뿌려서 7성급 이상의 강자들 입을 다물게 했기에 다들 그일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실제로 그의 이름이 불리자 그 격을 느끼지 못했던 이들은 기겁했고, 강자들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8성 대마법사인 테오르에게 토를 달 자는 이곳에 아무도 없었으니까.

테오르는 모두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픽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마 돈이 부족해서 물건을 사지 못할 리는 없다고 여겼지만, 여기 모인 이들의 면면을 보니 만만치 않았다. 1억 프랑짜리 진금화는 오직 자신이 찍어내지만 무한정 찍어낼 수는 없었다.

언제든 제국의 황실에 환전을 요청하면 들어줘야 하는 일종의 채권과 같은 것 이어서 마음대로 찍어낼 수 없었다.

그런데 여기 모인 자들은 대륙 3대 상단부터 전쟁터만 쫓아다니는 용병왕은 물론이고 제국의 황족도 여럿 나왔다.

그러니 자신의 손에 들어오지 못할 일말의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했으니 가장 먼저 저 반지의 성능을 볼 수 있는 자리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테오르가 걸음을 옮겨 무대 위에 오르고는 귀빈들을 쭉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누군지 안 밝혀도 되겠지?”

감히 테오르를 사칭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다들 숨을 죽이고 바라보자 테오르는 피식 웃고는 메르샤를 바라보았다.

메르샤는 살짝 긴장한 채 반지를 손에 끼고 있었다.

“내가 마법 날리면 되나? 한 6성급으로?”

“아뇨! 아뇨!”

메르샤가 서둘러 소리쳤다. 고작 1성급 차이지만, 이 벽을 넘은 이는 한 세대에 하나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빤히 알고 있었다.

그런 테오르의 마법은 6성급 마법이라고 해도 같은 6성급이라고 볼 수 없었다. 괜히 놀라 소리친 메르샤가 반지를 들어보이며 말했다.

“이 반지는 6성급 공격 마법이 들어있는 반지거든요. 6성급에 맞춘 보호막을 만들어주시면 돼요.”

그 말에 장내에 침묵이 전해졌다. ‘부활’이 경매에 나와서 6성급 보호막을 다룬다는 말을 들었을 때와 같았다.

테오르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자네 지금 그 반지에 충전식 공격 마법이 들어있다는 건가? 6성급으로?”

“예.”

“6성급이라면 비전 마법의 영역이라는 것도 알고 있겠군.”

“예.”

테오르는 잠시 시선을 돌려 ‘그레이스’의 주인이라는 녀석을 바라보았다. 같은 보호 마법이라면 그 마법진을 분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참여했는데 발칙하게 이번에는 공격 마법을 담았단다.

그러니 전혀 다른 방식의 마법진들이 그려져 있을 거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구미가 당겼다.

“재미있군. 비전 마법을 담아냈다니.”

테오르가 그리 말하는 동안 그의 몸을 휘도는 물의 구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정도면 6성 마법을 견딜 수 있을 거야. 충격량을 보면 내 확인할 수 있으니 마음껏 발동시켜 보게.”

테오르의 6성 보호 마법은 일반적인 6성 마법으로 공격해서 흠집도 낼 수 없을 터. 하지만 테오르가 그 충격량을 보고 얘기해 준다고 하니 메르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반지를 낀 손을 내밀었다.

메르샤는 정령 마법사. 그녀가 낀 반지에서 정령 마법의 흔적이 있다면 그건 사기일 테니 테오르는 오히려 기대했다. 화염을 다루는 마법사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저 반지에는 놈의 비전 마법이 들어있다는 걸까?

비전 마법이 들어있다면 저 반지의 가치는 정신 나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비전이 괜히 비전이겠는가?

그 비전이 담겨 있으니 저 반지의 마법진을 온전히 분석해 낼 수 있으면 놈의 비전 마법을 배울 수 있다는 얘기였다.

오늘 참가한 마탑이 불 속성 마법을 다루는 마탑 중 하나인 블레이튼 마탑의 마탑주가 참가했다. 그자도 새로운 6성급 비전 마법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테니 이번 경매가 흥미로울 것 같았다.

메르샤가 시동어를 외쳤다.

“화륜!”

순간 메르샤를 감싸며 커다란 불꽃의 고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메르샤가 겨눈 손을 따라 작은 불꽃의 고리가 섬전처럼 날아들었다.

그 속도에 움찔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

퍼엉!

날아든 불꽃의 고리가 테오르의 물의 보호막을 강타하는 순간 폭발음과 함께 수증기가 확 피어올랐다. 테오르는 자신이 만든 물의 보호막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는 보호막이라 충격을 받아도 금세 회복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폭발하면서 순간적으로 수증기가 일어난 것은 물의 보호막이 끓어 올랐다는 건데 그보다 놀라운 것은 그 작은 크기의 불꽃의 고리가 폭발하는 순간 주위의 마력을 잡아 먹었다는 점이었다.

잠깐이지만 그가 펼친 물의 보호막에 구멍이 생길 정도였다.

그러나 놀라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메르샤가 쏘아낸 불꽃의 고리가 연달아 날아왔다.

퍼퍼퍼퍼퍼펑!

무려 열 번의 충격. 문제는 다른 마력과 부딪치는 순간 그 마력을 집어삼키는 특질이 문제였다. 6성급으로 펼친 테오르의 물의 보호막이었기에 같은 성급의 마력을 집어삼키는 특질로 구멍을 만들고 그 구멍 사이로 날아든 불꽃의 고리였다.

그래서 다시 보호막을 만들어야만 했다. 테오르였으니까 망정이지 7성급 마법사가 나왔다면 낭패를 면치 못했을 일이었다.

황급히 일으킨 물의 보호막은 7성급의 것이었는데도 마력의 일부가 소실되었다. 그만큼이나 지독한 불꽃이었다.

속성상 우위에 있음에도 애를 먹을 정도. 어지간한 보호 마법 따위는 저 마법에 걸리면 그대로 뚫리고 목숨마저 잃으리라.

테오르가 가볍게 손짓하자 무대에 가득했던 수증기가 사라졌다. 테오르는 메르샤가 끼고 있는 반지에 집중했다. 반지가 주위의 마력을 빠르게 흡수하며 충전되는 것을 보니 다시 6성 마법을 펼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도 한 시간이면 될 것 같았다.

저 반지의 주인이 될 자가 그렇게 자주 연달아 6성급 마법을 쓸 일이 있을까?

그럴 일은 없을 터였다.

테오르는 뒷짐을 진 채 걸음을 옮겨 메르샤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잠시 살펴봐도 되겠나?”

메르샤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만이 아니라 7성급에 오른 이들은 느꼈을 터였다. 반지의 공격 마법 화륜이 테오르의 6성급 보호막을 뚫고 들어간 것을.

그가 황급히 보호막을 다시 만들지 않았다면 낭패를 면치 못했을 것임을.

그런 테오르가 미친척하고 여기서 반지를 들고 도망가면 어찌 될까?

그러나 테오르는 오늘 손님으로 왔다. 메르샤가 반지를 건네자 그걸 받아 안쪽을 살피던 테오르는 의아함을 느꼈다.

6성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조합 마법진을 그려 넣은 것은 알겠는데 그러기에는 반지에 넣을 수 있는 마법진이 부족했다. 아무리 반지의 크기가 커졌다고 해도 모두 그려 넣기에 수가 부족했던 것.

그러던 중에 듀얼 잼을 장착한 부위를 살펴 본 테오르가 탄성을 내질렀다.

“대단하군.”

설마 보석을 고정하는 틀을 이용해서 마법진 하나를 대체할 줄은 몰랐다.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테오르는 메르샤에게 반지를 돌려주고는 귀빈들을 향해 돌아섰다.

“몇몇은 보았을 테지만, 내가 펼친 6성급 보호막조차 뚫어낸 공격 마법이네.

어지간한 7성급 보호 마법으로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지. 비전이라 일컬을만한 마법이군.”

테오르가 공언하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장내가 들끓었다.

테오르는 그들을 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500억 프랑부터 시작하지.”

테오르가 먼저 질렀다.

돌싱 후 대마법사-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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