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화 테오르
필요한 물건들을 대부분 주문했기에 카이는 홀로 자신의 방에서 비전 마법을 연구하는 것에 집중했다. 카이가 요즘 신경 쓰고 있는 화두는 비전 마법이었다. 그것도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비전 마법.
대부분의 마법사는 비전 마법을 익힌다고 해봐야 한 가지 속성이다. 여러 속성을 다루는 마법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전 마법 수준으로 올라가면 적어도 현시대에는 없었다.
그렇기에 카이가 무결의 마법사라 불리며 6성이면서도 그렇게 인정을 받아온 것이었다.
그런 카이 조차도 아직 해보지 않은 일이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만한 위력을 낼 이유가 없었기에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인데 직접 8성 대마법사를 만나보니 알겠다.
화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카이가 생각한 것은 7성급 비전 마법을 섞는 것이었다. 그 정도가 되면 8성 대마법사에게도 통하지 않을까 싶었다.
카이는 왼손 끝에 불꽃의 고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오른손 끝에는 전격의 줄기를 일으켰다. 아무래도 상극인 두 개의 마법을 조합하는 것은 카이에게도 무리가 있을 것 같아 화염과 전격을 택했다.
카이가 만드는 불꽃의 고리는 분명 빠르고 강하지만, 7성급 육체 강화자만 되어도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전격 마법은 그들도 피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다.
그 두 가지만 섞어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카이도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이정도가 아니었다. 이건 시작일 뿐이고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자신이 다룰줄 아는 일곱 가지 원소 마법을 조합하는 것이었다.
그 모든 것을 조합하게 되면 벽을 넘을 거라는 막연한 감이 왔다. 그래서 카이는 그 감을 믿고 마법을 조합하는 것에 집중했다.
일반 마법도 아니고 비전 마법을 조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반발력까지 모조리 계산해야 했기에 카이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카이는 자신의 손바닥 위에서 넘실거리는 불꽃의 고리와 전격의 사슬을 이어보았다.
파자작.
역시 처음부터 모든 것이 잘 될 수는 없었다. 카이가 마력으로 감싸고 있어 그 여파가 사방으로 터지지 않았을 뿐이지만, 그 위력은 카이의 예상을 뛰어 넘었다.
고작 두 가지 마법이었다. 이 두 가지를 조합하는 것만으로도 이만큼 복잡하고 위력적이라면 원소 마법을 모두 더하게 되었을 때는 그 위력에서만큼은 8성 마법사도 위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장 8성에 오르지 못하기에 바헬을 상대할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었지만, 이건 통한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카이가 그렇게 연구에 집중한 사이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카이가 걸어가 문을 여니 접객원장 베이트가 미소를 지은 채 서 있었다.
“잠깐 시간 괜찮으십니까?”
“그렇기는 한데 무슨 일이지?”
“시장님이 찾으셨습니다.”
“메르샤가?”
“예. 제가 모시겠습니다.”
카이는 순순히 그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시장의 방. 그곳에는 아는 얼굴과 처음 보는 얼굴이 있었다.
카이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뭐지?”
메르샤가 씨익 웃으며 답했다.
“일단 앉아 봐.”
“이러면 재미없는데?”
카이는 그리 말하면서도 메르샤가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카이가 자리에 앉자 메르샤는 맞은편에 있는 이들을 소개해줬다.
“여기는 펜타로 상단의 상단주 랜든과 따님이신 모네.”
펜타로 상단이 대륙 3대 상단 중 하나로 그 이름이 높은 것은 알겠는데 그 상단주가 자신을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다.
“내가 분명히 얘기했을 텐데?”
메르샤는 그 말에 어깨를 으쓱이고는 랜든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랜든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허리를 깊이 숙였다.
“시장님에게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러니 너무 노여워 마시지요.”
“내가 왜 그쪽 말대로 해줄 거로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군.”
모네가 발끈했지만, 랜든이 눈빛으로 그것을 제압했다.
“함께 식사하시며 대화를 나눌 기회를 주신다면 이걸 드리겠습니다.”
랜든이 식탁 위에 올린 것은 1억 프랑짜리 진금화였다. 대화를 나눌 기회를 주면 1억 프랑을 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
카이는 손을 뻗어 랜든이 내려놓은 진금화를 손가락으로 툭 튕겨 그에게 밀어냈다. 랜든이 당황스러워할 때 카이는 맞은 편에 앉으며 말했다.
“돈은 됐다. 대신 언제든 내가 원할 때 부탁 하나 들어주지.”
랜든이 그 말에 진금화를 챙기고는 자리에 앉았다. 모네는 볼을 부풀렸지만, 카이는 무심하게 랜든을 바라보았다.
랜든은 잠시 주저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죠. 부탁은 부탁으로 갚아야죠. 제 이름을 걸고 약속드리겠습니다.”
카이가 돌아보자 메르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보증할게.”
카이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랜든을 바라보았다.
“그럼 이야기를 들어 볼까?”
“우선 식사를 나누시면서 대화를 나누시죠. 귀한 식재료를 준비해 왔습니다.”
카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곧 베이트가 수레를 끌고 나타났다. 그리고 각자 앞에 접시를 내려놓고는 물러났다.
카이는 접시 위에 놓인 요리를 바라보았다. 푸른색의 고기로 만든 스테이크를 보고 카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귀한 식재료라고 하더니 이건 삼대 마경 중 하나인 외해라고 부르는 바다에서만 잡히는 몬스터 베로시트라는 수면 위를 달리는 녀석이었다.
마력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베로시트는 워낙에 빨라 잡기가 힘든 데 그 다리 고기가 진미 중의 진미라고 알려졌다.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잘 잡히지 않는 녀석이라 귀한 식재료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카이도 한 번밖에 먹어보지 못한 녀석이었는데 진미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맛이 좋은 녀석이었다. 그만큼 귀한 음식이었기에 카이도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일단 드시고 얘기하시죠.”
카이도 고개를 끄덕이고 고기를 잘라서 입에 넣었다. 싱싱한 바다 내음이 느껴지는데 그 안에서 전해지는 육즙은 또 고소했다.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맛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역시 베로시트가 진미라고 불리는 이유이리라.
카이는 온전히 식사에 집중했다. 베로시트 스테이크를 모두 먹은 카이는 다른 이들도 식사를 마친 것을 보고는 물었다.
“그래서 이런 진미를 그냥 권했을 리는 없고.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랜든이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모네의 말을 듣고 알아본 결과 ‘그레이스’의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더군요. 그래서 혹시 투자할 수 있을까 해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투자라···.”
하긴 첫 번째 제품이 아무리 경쟁이 붙었다고 해도 200억 프랑에 낙찰되었다.
수수료를 제한다고 해도 엄청난 수익.
당연히 투자하고 싶어 하는 이들은 넘쳐날 터였다. 엘더는 지분 투자는 외부에서 유치하지 않고 모두 왕국 내에서만 받았다. 그것으로 고위 귀족들을 마음대로 쥐락펴락했었다.
지분을 투자한 이들은 떨어지는 수익에 환호하며 어떻게든 그 자리를 지키고자 왕가에 잘 보였고, 덕분에 엘도 왕국은 건국 이래 왕권이 가장 강한 상태가 됐다.
카이가 아무런 답도 하지 않고 있자 옆에서 구경하던 메르샤가 입을 열었다.
“나도 투자하게 해주면 경매 수수료를 안 받을 수도 있는데.”
카이는 코웃음을 쳤다. 메르샤가 얻는 수익은 ‘그레이스’의 낙찰가의 20%. 물론 카이가 다른 판매로를 개척하면 언제든 사라질 수익이기 때문에 그녀는 안정적인 지분을 원하는 것이었다.
단기적으로는 손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득을 볼 수 있는 선택. 그리고 경매 수수료를 안 받고 지분까지 보유하고 있으면 앞으로 안타르시아를 배제하고 일을 진행하기 어렵다. 안타르시아도 ‘그레이스’의 경매를 놓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깨달았기에 던지는 얘기였다.
랜든도 메르샤도 어떤 마음으로 꺼낸 이야기인지 알았지만, 카이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생각 없다.”
메르샤가 미소를 지었다.
“‘아직’이라면 기회는 있다는 얘기네.”
카이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레이스’는 앞으로 아티펙트 계를 선도할 명품브랜드였고 지분을 내놓는다는 것은 돈이 아니라 다른 것을 원해서이리라.
그리고 아직 카이는 그만큼 절실히 원하는 것은 없었다.
‘그레이스’를 만든 것 자체가 복수를 위해서였다. ‘그레이스’의 토대가 되는 조합 마법진은 바헬을 상대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것이기는 했지만.
돈도 넉넉히 벌었고, 엘더를 집어삼키는 것이 주목적인 ‘그레이스’의 지분을 내주고 구해야 할 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다.
그래도 여지를 남긴 것은 그래야 저들이 더 목말라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람 일이라는 것이 정말 한치 앞을 모른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기에 여지를 남겼다.
카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부탁 거리가 생기거든 연락하도록 하지.”
카이가 훌훌 떠나는 것을 보고 랜든은 입맛을 다셨다.
“아쉽군.”
모네가 그런 랜든을 보며 말을 건넸다.
“아무래도 이번 경매 물품을 사고 나야 조금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요?”
“그건 네 욕심은 아니고?”
“제 욕심이기도 한데 이건 무조건 돈이 된다니까요?”
모네의 생각에는 랜든도 동의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시간이 금보다도 비싼 그가 이렇게 직접 움직일 리는 없었으니까.
펜타로 상단이라면 어지간한 일국의 왕보다 더 많은 돈을 굴리는 이였다. 그런 그가 손을 내밀었음에도 코웃음을 치는 것을 보면 확실히 그 배포가 남다른 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랜든이 메르샤를 돌아보며 물었다.
“정말 이번 경매 물품에 대한 정보를 더는 안 알려 줄 것이오?”
“파격적이라는 것만 기억하세요. 아마 발표 당일에는 깜짝 놀랄 테니까.”
“휴. 알겠소. 이거 돈이 부족한 건 아닌가 모르겠군.”
메르샤는 랜든의 반응에 미소를 지었다. 천하에 펜타로 상단주가 돈이 부족할 걱정을 하는 것이 우스웠지만, 정말로 돈이 부족할 수도 있겠다 여겼기 때문이었다.
엘더의 매장이 빠졌다고 해도 엘디아는 이번에 ‘그레이스’ 경매에 참여할 자격을 얻었다. 돈이라면 그녀도 부족함이 없었기에 참가 자격은 충분했다.
카이에게 유작이 될 물건을 만들라고 했지만, 아직 그것은 완성되었다는 소식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레이스’의 다음 작품 경매 소식이 전해졌으니 안 와볼 수가 없었다.
돈도 넉넉히 준비해서 온 엘디아는 이번 만큼은 지지 않을 생각이었다. 다행히 클란드라라는 강적도 저번에 200억 프랑을 썼기에 해볼 만할 것 같았다.
아무리 돈이 많은 황녀라고 해도 큰 돈이었으니까.
엘디아는 경매장으로 가는 길에 클란드라를 볼 수 있었다. 한 사내와 함께 경매장으로 걸음을 옮기는 클란드라에게 인사나 할까 다가가던 엘디아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클란드라의 뒤를 따르는 시종의 품에 안겨 있는 고양이 목에 걸린 목걸이를 본 탓이었다. ‘플레이트’에 내놓았던 엘더의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발끈한 엘디아가 멈춰서 있을 때 클란드라는 걸음을 빨리해서 한 사내에게 다가갔다. 그 사내는 엘디아에게 모욕을 주었던 ‘그레이스’의 주인이었다.
엘디아는 클란드라가 다가가자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를 보고 주먹을 꼭 쥐었다.
자신에게 그런 모욕을 줬던 남자는 여전히 무심한 표정이었지만, 클란드라에게 정중히 예를 표하고 있었다.
단순히 마법사인 줄 알았는데 귀족의 예법을 아는 자였다. 그런 자가 자신에게 그런 모욕을 줬다는 것에 엘디아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오늘 그가 내놓은 물건을 자신이 낙찰받고 나서도 그리 대할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엘디아가 독한 마음을 먹고 멀어지는 것을 카이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건 클란드라와 함께 나타난 한 사내 때문이었다.
푸른 머리에 푸른 눈을 한 사내. 나이는 서른 내외로 보였지만, 그 눈빛의 깊이는 짐작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 사내의 등장에 카이는 전신의 솜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이미 만나보았기에 알 수 있었다.
카이에게만 내비치는 대해를 연상하게 하는 넓고도 깊은 마력. 7성에 올라 전과는 비할 수 없이 마력 보유량이 늘었지만, 역시 8성은 달랐다.
수몰의 대마법사 테오르.
또 다른 8성의 대마법사가 카이를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성큼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반갑네. 테오르일세.”
마법사가 손을 내민다?
손을 맞잡는 순간 자신에 대해 속속들이 들킬 것은 빤히 알았기에 카이는 그의 손을 무시하고 살짝 고개만 숙여 보였다.
“아벨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테오르는 내민 손을 머쓱하게 거두었다. 아티펙트로 이것저것 가리고 있지만, 테오르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테오르는 상대가 품고 있는 마력이 확실히 7성에 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만한 나이에 7성에 오른 자.
클란드라의 짝으로도 어울릴 만한 재능이었다.
“흐흐. 와 보기를 잘한 것 같군.”
돌싱 후 대마법사-지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