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싱 후 대마법사-29화 (29/150)

029화 영광

아이스 토네이도는 카이가 반지에 넣고 싶었던 공방 일체형 마법에 대한 영감을 줬다. 그래서 카이는 ‘영광’이 완성되었을 때 그 안에 마법진을 그려 넣기 시작했다.

카이는 그렇게 그려 넣은 마법 반지는 손에 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광’의 완성을 기다린 모두가 보는 앞에서 카이가 반지를 들어 올린 채 입을 열었다. 방어 마법은 자동 발동이지만, 공격 마법은 시동어가 필요했다.

“화륜.”

순간 일어난 화륜이 카이의 몸을 감싸고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이가 반지로 겨눈 곳을 향해 화륜이 날아갔다.

총 열 번까지 날릴 수 있는 화륜은 불꽃의 고리처럼 마력을 집어삼킬 수 있었다. 즉 마력을 이용해 육체 능력을 강화하는 자들도 죽일 수 있는 마법이었다.

이 열 번의 공격을 받아낼 수 있으려면 최소 7성급에는 올라야 했다. 날아가는 속도 또한 비약적으로 높아서 쏘고 나서는 피하기가 쉽지 않은 공격 마법이었다.

대인전에서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마법.

카이는 화륜을 장착한 ‘영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다이아몬드 안에 들어있는 사파이어가 눈에 들어왔다. 다이아몬드는 커팅 방식에 따라서 빛을 반사하는 것이 달라진다. 둥근 형태로 깎아 놓아 가장 눈부신 형태로 된 데다가 안에 들어있는 사파이어의 결정이 드래곤의 머리를 떠올리게 할 형태였다.

드래곤은 클로젠 제국의 상징이다.

제국에서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는 물건이었다. 어쩌면 제국의 황제가 대대로 물려줄지도 모를 물건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카이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다비드와 에르케가 합심해서 만든 반지였기에 조손이 기뻐하며 답했다.

“이런 기회를 얻은 것 자체가 기쁜 일입니다.”

“감사해요.”

카이는 그 둘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1억짜리 진금화를 환전해서 다녀오는 대로 배당금을 지급하겠습니다. 지분을 5%씩 드리기로 했으니 지난 판매 대금의 수익 중 10%를 드리죠.”

다비드가 그 말에 정색하며 말했다.

“제가 다시 망치와 정을 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저희에게 너무 과분한 돈입니다.”

에르케도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그냥 1%만 주셔도 돼요!”

“에르케!”

에르케는 찔끔했지만, 카이는 잠시 그 둘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분을 드린 것은 하멜 가의 세공법 자체가 브랜드의 정체성을 나타내기에 가장 적합한 것이었습니다. 현금으로 1%씩 두 분 모두에게 드리고 나머지는 제가 관리하다가 언제든 원하실 때 드리겠습니다.”

카이도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하멜 가의 세공법을 지금 당장 익힐 수 있는 이들이 없는 이상 이들은 대체 불가의 자원이었다. 이번에는 다비드까지 함께 해서 선형의 문양이 마법진을 대체하기까지 했다.

그게 가능한 순간부터 이들은 엘더에서 구했던 어떤 세공사들보다 값졌다. 물론 그런 마법진을 설계하고 이들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려내는 것은 카이가 아니면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이들이 귀한 인재들인 것은 사실이었다.

다비드는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에게 다시 망치와 정을 쥘 수 있게 해준 것이 너무나 감사했지만, 카이의 고집도 쉬이 꺾이지 않을 것 같으니 돈은 받더라도 그 이상으로 잘해주리라 결심했다.

그건 에르케도 마찬가지였다. 에르케는 자신의 재능을 발현할 기회조차 없었는데 이번에 마음껏 실력 발휘를 한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실력 발휘를 할 기회가 있으니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카이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플레이트’ 때는 같이 움직였지만, 이번에는 홀로 움직일 계획입니다.”

에르케와 프릴이 아쉬워했지만, 카이는 이번에 바삐 움직일 생각이었다.

릴리에게 듣기로 엘폰토 공작은 지금 생각보다 훨씬 많은 양의 아프록시아 잎을 구해가고 있었다. 중독 증상이 심각하다는 얘기.

온실 속의 화초처럼 커온 그는 이번에 제대로 무너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길게 끌 것도 없었다. 이번에 나가는 중에 그의 루비 광산을 무너트려 버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신성 교국에서 비공정을 타고 안타르시아로 들어갈 계획이었다.

그러니 이들과 함께 움직이면 이동이 느릴 수밖에 없다. 황제의 생일까지는 시간이 있지만, 그래도 경매 소식을 알리려면 최대한 서둘러야 했다.

수몰의 대마법사 테오르는 지금 눈앞에 그려놓은 마법진들을 보면서 새삼 감탄했다. 7성에는 올랐을 거로 짐작하는 아벨이라는 녀석의 조합 마법진은 수많은 마법진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서 성급이 달라졌다.

예시가 6성급 충전 보호 마법 하나였지만, 그것만 해도 대단했다. 게다가 그냥 따라 하면 마법이 발동하지 않는데 그것은 조합 마법진을 활성화 시키는 중간에 수작을 부려놨기 때문이었다.

테오르 조차 지금 열두 번째 그 수작질에 걸려서 실패했다.

그런 테오르의 거처로 문을 열고 들어온 이가 있었다.

“무슨 일이냐? 아직 분석 안 끝났다.”

당연히 마탑 연합에서 지적 재산권 보호를 발표할 줄 알았던 조합 마법진은 아직까지 그런 발표가 없었다. 그 이유는 테오르가 가장 먼저 실감했다.

8성 대마법사인 그조차 이걸 분석하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고 있었으니까.

새로운 이론, 새로운 개념으로 만든 마법진은 아무리 테오르라고 해도 단번에 이해할 수는 없었다. 저 미치광이 바헬이라는 자의 마법을 자신이 단번에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이것도 마찬가지였다.

그걸 보면서 테오르는 의심하는 중이었다. 이건 7성 마법사가 벌인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8성에 살짝 발을 걸친 자일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그래서 아예 ‘부활’을 가져다가 연구 중이었다. 지적 재산권 보호가 안 된다면 일단 분석해 놓고 그걸 이용해 황궁 최강의 무력이라 칭해지는 황궁 근위대의 무장으로 만들어도 좋으니까.

“경매 소식이 있어서 왔어요.”

“경매 소식?”

클란드라가 미소를 지은 채 답했다.

“안타르시아 시장이 지금 대륙 전역에 연락했어요. 이번에 ‘그레이스’의 신제품이 나왔다고.”

“호오. 일단 그걸 구해봐야겠구나.”

두 개의 제품을 비교해 본다면 분석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 테오르가 관심을 보일 때 클란드라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반지라고 하더라고요.”

“반지? 6성급 마법이 들어가 있다고 하더냐?”

“예. 그래서 지금 가볼 생각이에요.”

테오르는 잠시 고민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가자.”

“진짜로 같이 가실 거예요?”

“그래. 그 제작자를 만나볼 수도 있을 테니까.”

클란드라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설마 거위의 배를 가를 생각은 아니죠?”

“왜? 가르면 안 되냐?”

클란드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 돼요. 이만한 예술품을 아티펙트로 만들 수 있는 이에요. 솔직히 이 정도 심미안을 가진 자가 이만한 아티펙트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르시죠?”

“잉?”

“태사가 이걸 분석한다고 해도 이만한 예술품을 만들 수는 없다고요.”

테오르는 마법사다. 실리를 추구하는 이지 예술적 가치 따위는 관심이 없는 이였다.

그게 마법사의 제대로 된 정신 상태라고 여겼다. 오직 실리만 따지는 자들.

그런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크흠. 알겠다. 손은 안 쓰마.”

그자가 어디에 소속된 자인지 모르나 그만한 경지에 든 이라고 해도 제국에 해가 되지는 못한다. 제국에는 자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검성 또한 있으니.

이번 황제가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혀서 확장 전쟁보다는 지금까지 벌린 선대 황제들의 영토 확장을 한 제국의 내실을 다지는데 집중한 이라서 그렇지 확장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근처 왕국들이 살아남지 못한다.

지금도 거의 속국처럼 알아서 조공을 바치는 중이지만.

그렇기에 테오르도 순순히 그저 호기심을 채울 겸 그자를 만나보고 싶은 마음만 밝혔다.

“그럼 같이 가요.”

클란드라가 활짝 웃어 보이자 테오르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너 혹시 다른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왜요?”

“네 눈에 차는 것이 가장 먼저겠지만, 우리 눈에도 차야 하는 놈이어야 하니까.”

클란드라는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테오르의 말처럼 그녀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상당히 눈이 높았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서 다음 난관은 그녀를 아끼는 이들이었다.

검성 맥클렌과 수몰의 대마법사 테오르만 있는 것이 아니라 황태자인 오빠도 있었다.

동생들이야 끽 소리도 못하겠지만, 이만한 이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으니 짝을 찾는 것도 요원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내게 일부러 알려주러 온 거냐?”

“돈 좀 있죠?”

테오르는 그제야 클란드라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크크크. 하긴 저번에 200억 프랑 썼으면 너도 간당간당하겠구나.”

“그래서 태사랑 같이 가는 거죠.”

“돈 빌려달라고?”

클란드라가 고개를 끄덕이자 테오르는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비록 마법적 성취는 낮지만, 그녀는 테오르도 아끼는 손녀와 같은 아이였다.

게다가 이번 작품이 어떤 것인지 자신도 궁금하니 돈을 빌려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황궁에서 돈 많기로 손에 꼽히는 이가 테오르였으니까.

“알겠다. 다른 놈이 채가게 둘 수는 없지. 가자!”

클란드라는 이번 반지도 자신이 손에 넣을 확신이 들었다.

카이는 메르샤의 초대에 그녀와 함께 식사 중이었다. 카이는 이번에 대량으로 재료를 구매할 생각이었기에 메르샤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했다.

메르샤는 카이와 함께 식사하며 그를 살펴보았다.

이번에 가지고 온 두 번째 ‘그레이스’의 제품 ‘영광’은 정신 나간 장비였다.

대체 어떻게 반지에 충전식 6성급 마법을 때려 넣었는지도 의문이었지만, 공격 마법을 넣을 줄은 정말 몰랐다.

장신구 아티펙트를 선도한 것이 엘더이다 보니 그들이 만든 보호 마법이 사람들에게 확실히 인식되었다.

장신구 아티펙트는 보호 마법이라는 공식이 성립된 것처럼 사람들에게 각인되었던 것인데 그런 엘더를 비웃기라도 하듯 공격 마법을 넣어올 줄이야.

보호 마법은 보신을 위한 것이라면 공격 마법은 과시용이다.

그리고 대륙의 큰손들은 과시에 미친 인간들이다.

그들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한 물건.

이 남자가 만들어 온 반지는 디자인 또한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게다가 이번 장신구는 남성이 쓰기에도 문제가 없었다.

메르샤는 가만히 ‘그레이스’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안타르시아에게 경매 대행을 시켰지만, 이 남자는 큰손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안다.

안타르시아의 누구보다도.

구미가 당겼는데 이게 딱 봐도 견적이 나오지 않았다. 전에 만났을 때도 의심했지만, 이제는 거의 확신이 들 정도.

이 남자는 아무래도 7성에 든 것 같다. 그가 반지에 넣은 것이 6성 공격 마법이지만, 발동한 그 마법을 보고는 확실히 알았다.

만약 6성 마법사였다면 이걸 활성화하는데 들어갈 마석의 양이 상상을 초월할 양이었다. 7성 대마법사를 알고 지낸다고 보기에는 힘드니 본인이 7성에 올랐다는 것이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엘폰토 공작에 관한 이야기는 들었어?”

“그게 누구지?”

카이는 태연하게 되물었는데 그 표정에는 전혀 기억이 안 난다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보고 메르샤는 미소를 지었다.

역시나 이 남자는 재미있다.

그가 엘폰토 공작의 팔다리를 전소시킬 때까지는 확신이 들지 않았지만, 그가 엘더를 표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 엘폰토 공작도 일부러 그런 것이라는 의심이 들었었으니까.

그런 엘폰토 공작이 마약에 취했다는 소식이 들린 지 얼마나 됐다고 그의 영지에 있는 루비 광산이 무너졌다. 광산이 종종 무너지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다는 얘기였다.

루비 채굴량이 제법 되던 곳이라 대륙 서부의 루비 가격이 오를 것 같다는 분석을 들었는데 그 시기가 이 남자가 비공정을 타고 오기 얼마 전이었다.

그런데도 이런 태도를 고수하는 것을 보니 알아서 맞춰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륙의 큰손들을 볼 수 있겠어.”

“‘플레이트’에서 거의 보지 않았나?”

“그때는 대리인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본인들이 올 것 같더라고. 아무래도 ‘그레이스’에 관심이 많은 것 같으니까.”

카이는 그 말에 빤히 메르샤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메르샤가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어쩌면 영입 제안? 영입 협박을 받을지도 몰라.”

카이는 그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비싼 수수료 받았으면 알아서 걸러. 영입에 대해서는 내 대답은 무조건 ‘꺼져’니까.”

메르샤는 역시 이 남자가 마음에 들었다.

돌싱 후 대마법사-테오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