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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27화 (27/150)

027화 맹약

생각해 보면 엘디아가 가장 아끼는 것은 엘더와 엘티온이다.

엘더는 자신이 일으킨 브랜드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었고, 엘티온은 온전히 자신의 아들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었다.

왕족 중의 왕족.

엘티온은 왕위 계승 순위도 높았고, 엘더의 주식을 물려받는다면 엘티온이 차기 국왕이 되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엘토르 국왕이 아직 정정하니 그가 다음 국왕으로 물려주기에 적합했다.

엘폰토 공작은 아직 결혼하지 않아 슬하에 자식이 없다. 하긴 엘디아와 그런 사이였으니 결혼을 하고 싶어도 못했으리라. 엘디아가 또 그 꼴은 못 봤겠지.

덕분에 엘폰토 공작은 후계도 없이 망하게 생긴 상황이었다. 아마 그가 자리에서 내려오면 그의 친척들이 그의 것을 빼앗기 위해 혈안이 되겠지.

엘더를 빼앗기고, 엘티온에게 버림받게 되면 과연 엘디아는 어떻게 될까?

그게 제대로 된 복수가 되리라.

엘디아는 아침에 일어나 자신이 데리고 온 시녀들의 도움을 받아 준비를 마쳤다. 화장까지 마친 그녀가 거울을 돌아보다가 창문으로 걸어갔다.

성에 사는 사람이 고작 둘.

카이와 시종 테오 밖에 없다 보니 성에는 사람의 온기가 없었다. 인형을 이용해서 청소하고 관리한다고 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마법사의 생각은 짐작하기 어려웠다.

마석을 이용해서 사용하는 인형이라면 그거 한 기를 돌릴 돈으로 하녀를 열명은 고용할 수 있다. 게다가 인형 한 기에 들어가는 돈이 워낙에 많이 들어가고 활용도가 낮아서 상품성도 없다.

그런데도 카이는 그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그저 엘티온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아마 카이가 죽으면 저것도 모두 받아올 수 있을 터.

“공주님. 백작님께서 아침 식사를 함께하시고자 청하십니다.”

“곧 가마.”

엘디아는 시녀가 문을 열자 복도를 따라 걸었다. 돈이 될만한 것은 하나도 걸려 있지 않은 썰렁한 복도를 지나면서 엘디아는 이 성을 꾸밀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겨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에는 이미 카이와 덴다르트, 엘티온이 나와 있었다.

근위기사단장인 프레드가 엘디아의 의자를 빼서 앉게 도와줬다. 카이는 무심한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프레드가 뒤로 물러나서 자리를 잡고 서는 것을 보고 카이가 입을 열었다.

“프레드 경도 함께 식사하는 것이 어떻겠소?”

“괜찮습니다.”

카이도 두 번 권하지는 않았다. 그저 프레드의 눈빛을 보고 그가 엘디아를 좋아하고 있음을 짐작했을 뿐이다. 그러니 저렇게 경계하고 불쾌해하는 것이겠지.

카이가 마력 봉인을 당한 것을 아는 것은 왕궁 안에 사는 이들만이다. 그것도 상당히 고위직에 있는 이들만 알고 있었는데 프레드도 그중 하나였다.

이혼한 사실도 아니 엘디아가 이렇게 카이를 찾아온 것이 탐탁지 않겠지.

카이는 그런 그가 우스울 따름이었다. 엘디아가 어떤 여자인지 빤히 알고 있었기에.

돌이켜 보면 그녀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자들에게 슬슬 여지를 주고 다녔다.

그때는 그저 그녀가 다른 이들에게도 친절한 여인이라고 여겼지만, 아니다.

그들의 마음을 홀려 자신의 편이 되게 만들었던 것이었으니까.

카이는 엘티온을 돌아보며 물었다.

“아침에 프레드 경과 훈련하는 것을 봤다. 확실히 전보다 힘이 좋아졌더구나.”

“다음에는 제가 아버지 지켜드리려고요.”

카이는 그 말에 손을 내밀어 엘티온의 손을 가볍게 잡아주었다.

“고맙구나. 그러려면 잘 먹어야 한다?”

“물론이죠. 지금도 어른만큼 먹는다고 하던걸요?”

고작 일곱 살인데 엘티온은 어지간한 열 살짜리 아이보다 키도 덩치도 좋았다. 게다가 먹성도 좋은 것을 보면 덴다르트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그럼 일단 아침을 먹을까?”

같이 식사를 시작하자 엘티온은 카이가 떠난 후에 왕궁에서 있었던 일들에 하나둘 이야기해줬다. 카이는 맞장구를 쳐주며 미소를 지어줬다.

그 모습에 엘디아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카이가 자신에게 냉랭하게 대하는 것은 오히려 바라는 바였다. 지금은 이혼한 전 남편이기도 했지만, 원래 정을 준 사이가 아니었으니까.

카이는 오늘날이 밝고 아침 식사 전부터 엘티온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했다.

지금도 엘티온의 입에 묻은 소스를 닦아주고 있는 걸 보면 엘티온에 대한 마음이 아직 남아있다는 얘기였으니까.

그렇다면 긍정적인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흡족한 마음으로 식사에 집중했다.

엘티온은 식사를 거의 마치고는 카이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버지. 어머니랑은 왜 얘기를 안 나누세요?”

카이는 엘티온의 말에 미소를 지은 채 답했다.

“식사 끝나고 긴히 나눌 이야기가 있다. 지금은 오랜만에 만난 너에게 집중하고 싶구나.”

엘티온이 활짝 웃는 것을 보고 카이는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식사가 모두 끝나고 나서 엘티온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성을 구경해도 될까요?”

“별것 없기는 하다만 테오에게 말해서 함께 구경하렴.”

“알겠어요.”

엘티온은 자신이 빠져줘야 엘디아와 카이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얼른 자리를 비켜줬다. 엘티온이 나가고 모든 걸 정리한 후에 차가 나왔다.

카이는 다시 한번 덴다르트와 프레드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했고, 엘디아의 시선을 받은 프레드는 순순히 덴다르트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카이는 찻잔을 만지다 입을 열었다.

“어제 생각을 많이 해 봤지.”

엘디아가 가만히 지켜보는 동안 카이는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가족도 없고, 남은 것이라고는 엘더의 지분과 이 영지밖에 없더군.”

엘디아는 그 말에 속으로 웃었다. 이 영지도 사실 채권을 사들이고 있으니 온전히 그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엘더의 지분이 있으면 어쩔 것인가? 그의 배당금조차 왕가에서 꿀꺽하고 있었는데.

“솔직히 내가 떠나고 엘티온에게 모든 것을 말해줬을 거로 생각했거든.”

그럴 마음이 없던 것도 아니었으나 그건 카이가 죽고 나서 진행할 생각이었다. 이미 죽고 나서야 모든 사실을 말해줬어도 됐을 테니까.

다만 엘폰토가 저리 폐인이 되어 버려서 지금은 그가 친아버지라고 알려줄 생각도 별로 들지 않았다.

그저 엘티온은 자신의 자식이면 족하다 싶었다. 왕국을 구한 영웅의 아들이라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겠다 싶었으니까.

카이는 고개를 들어 엘디아를 바라보았다.

“원하는 목걸이 만들어주도록 하지. 활성화도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스승님이 6성에 오르셨으니까 활성화까지 시켜주실 거야.”

덴다르트가 6성의 경지에 올랐다는 얘기를 듣자 엘디아는 관심을 보였지만, 그렇게까지 해준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카이가 만든 작품을 다른 6성 마법사를 구해서 활성화 시키는 것도 비밀이 알려질 수 있었으니까.

“대신 조건이 있어.”

“뭔데?”

“마나의 맹약을 하나 맺어줘야겠어.”

엘디아가 인상을 굳혔다. 마나의 맹약은 모든 인간이 품고 있는 마나를 걸고 하는 맹약으로 그걸 어길 시에는 품고 있는 마나가 맹약을 어긴 자를 공격한다.

지금 자신을 죽이려고 저런 조건을 거는 걸까?

“맹약은 간단해. 엘티온을 내 아들로 만들라는 거야. 그거 하나면 돼.”

“조건이 그거라고?”

“그래. 그리해 준다면 내가 죽었을 때 엘더의 지분과 이 영지, 모두 엘티온에게 넘기도록 하지.”

어차피 모두 가져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카이가 먼저 나서서 순순히 해준다고 했다.

맹약을 맺는다는 것이 조금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방랑 마법사이자 6성 마법사인 덴다르트가 곁에 있으니 카이가 눈이 돌아가서 깽판을 놓겠다고 하면 일이 복잡해질 수도 있는데 순순히 해준다고 했다.

게다가 내용 자체도 어려울 것이 없었다.

엘폰토가 저리되었으니 굳이 사실을 밝힐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맹약이라는 것은 대상자가 죽으면 해제된다.

지금 맹약을 맺는다고 해도 그건 시한부 맹약. 병색이 완연한 카이의 눈에 남은 것은 어떤 고집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 남아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은가 본데 그 정도는 들어줄 수 있었다. 그걸 들어주고 엘더를 지킬 수 있다면 그게 남는 장사였으니까.

“좋아. 맹약은 어떻게 할까?”

“스승님이 준비해 주실 거야.”

왕족은 마법에 대해서도 배운다. 맹약에 허튼수작을 부렸다면 그녀 스스로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럼 얼른 준비해 줘. 그리고 나는 엘티온과 함께 왕궁으로 돌아갈 테니 작업이 끝나는 대로 연락해 주고.”

카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마법진을 새길 목걸이는 준비해 왔고?”

“물론이야.”

카이는 그 말에 엘디아는 거절당할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음을 알았다.

“좋아. 그럼 바로 맹약을 맺도록 하지.”

카이는 인형에게 말해서 덴다르트를 불렀다. 덴다르트와 프레드가 함께 돌아왔는데 엘디아가 프레드에게 부탁해서 잠깐 그는 자리를 비웠다.

근위기사단장으로 덴다르트 같은 방랑 마법사만 남겨 놓을 수는 없다고 주장했지만, 엘디아가 정중히 부탁하자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

프레드는 나가는 길에 카이를 쏘아보았지만, 카이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렇게 프레드가 물러나자 덴다르트가 양피지를 꺼내서 식탁 위에 올려놨다.

“이미 준비해 놓은 거야?”

“어제 마음의 결정하고 스승님에게 부탁했지.”

덴다르트는 양피지의 내용을 보여주며 말했다.

“마나의 맹약 내용은 엘디아 공주께서 엘티온을 카이의 아들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 말은 다른 소리가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는 거죠."

비밀만 지킨다면 엘티온을 카이의 아들로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엘폰토의 입도 막아야 하는 일이었지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기한은 두 분 중 누구 하나가 죽을 때까지입니다. 모두 이해하셨습니까?”

엘디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덴다르트가 양손으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양피지 위에 그려진 글이 하나씩 빛나고, 그 위로 마법진이 빛을 뿜어냈다.

허공에서 빛을 뿜어낸 마법진에서 붉은 빛줄기가 뻗어 나와 카이와 엘디아의 심장을 향했다. 엘디아는 자신의 심장에 아로새겨지는 맹약의 흔적을 느꼈다.

마나의 맹약은 마탑 연합의 지적 재산권 제 3호였던 것으로 이걸 어길 시에는 죽는다. 아마 처음 이것을 만들었던 마법사가 가족에게 배신당하고 다시는 이런 꼴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만든 것이었다고 했던가?

그 맹약의 힘이 고스란히 느껴지자 엘디아는 자신의 가슴에 살며시 손을 올렸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카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오늘 떠나려고 하는데 그래도 괜찮지?”

카이는 엘디아를 올려다보다가 답했다.

“넌 가도 괜찮아. 하지만 엘티온은 하루 더 머물렀으면 좋겠군.”

엘디아의 미간이 살며시 찌푸려지고 눈에 노기가 서렸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인데 하루만 머물고 바로 보낼 수는 없잖아.”

“네가 아버지가 아니라는 말은 못한다고 해도 아버지 행세를 하게 둘 마음은 없는데?”

“알아. 어떤 마음인지. 왜 내가 그토록 엘티온을 만나지 못하게 했는지도. 하지만 적어도 제대로 된 작품을 받고 싶다면 내가 아버지 행세를 하게 둬야 할 거야.”

카이가 지지 않고 답하자 엘디아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흥. 좋아. 그럼 내일 출발하도록 하지.”

“고맙군.”

“그보다 내가 가기 전에 유서나 작성해서 넘겨 줘.”

“그래. 그리고 밀린 엘더의 배당금도 넘겨 줘.”

엘디아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백작령을 넘겨받아 엘티온에게 줄 생각이었는데 순순히 넘겨주기로 했으니 배당금을 주지 않을 필요가 없었다.

엘디아가 밖으로 나가자 카이는 그녀의 등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엘디아는 카이가 시한부일 것을 짐작하고 맹약을 맺었다. 맹약 자체를 맺는다는 것이 꺼림칙하면서도 순순히 맹약을 맺은 것은 그것 때문일 터.

하지만 이 맹약 때문에 그녀는 자신을 파멸로 끌고 가게 되리라.

작가의말

엘티온을 빼앗는 다는 내용이 수정되었습니다.

맹약만 그런 식으로 유도했던 것으로 수정되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돌싱 후 대마법사-새로운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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